[트랜스가시화주간 기획] 나의 모장실 투쟁기
기획자 주: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입니다. 미디어TF에서는 가시화주간을 맞아 행성인 트랜스젠더인권팀원들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팀원들은 차별에 맞서고 성별이분법적 제도를 변화시키는 투쟁뿐 아니라, 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경험하는 일들을 나눕니다. 장소를 구하는 일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트랜스젠더는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도록 만들어진 사회에 너무 쉽게 돌출됩니다. 매 순간 숨쉬는 일까지도 신경써야만 할 것 같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는 그저 힘들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언 너머 함께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대화하자고 제안합니다. |
연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꼭 가야하는 곳이 있었다.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 있었다.
그 곳에 가지않으면 안 되었다. 무조건 가야만 했다.
이 글은 반드시 가야만 했던 ‘그 곳’에 이르기 위해 분투했던 나의 투쟁기이다.
두 개의 문 앞에서
어느 건물을 가든 반드시 있는 공간이 있다. 여기를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전세계에서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디일까? 바로 화장실이다.
학교, 회사, 병원, 은행, 마트, 지하철역 등등. 사람이 다니는 곳엔 그 어디든 화장실이 있기 마련이다. 배설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배설하는 모든 인간이 다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왜냐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선택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
배설하기에 앞서 우리는 항상 두 개의 문 앞에 놓인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이라는 두 개의 문 말이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이렇게 두 성별로 나눠진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에 불편감이나 거부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바로 선택받은 사람이다.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과 정체화한 성별이 일치하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던 거니까.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시스젠더(cis-gender)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정받은 성별과 정체화한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즉 트랜스젠더는 두 개의 문 앞에서 심리적 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왜 나는 남자/여자일까? 왜 나는 남자/여자로 불려야 할까? 왜 나는 남자/여자로 보이게끔 행동해야 할까? 왜 나는 남자/여자 공간을 편하게 쓸 수 없을까?’ 하는 의문들. 그리고 이것들은 곧 고통과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화장실로 가는 입구에 계단이 있거나 폭이 너무 좁으면 휠체어 이용자가 진입하는 게 불가능하듯이, 트랜스젠더에게 있어서 성별 이분법 화장실은 접근성의 문제다.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로 통용되는 외양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면 남자/여자 화장실을 진입할 때 사람들의 의심 어린 시선이나 모욕적인 언행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정 성별 화장실을 쓰는 것 또한 당사자에게는 크나큰 디스포리아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것 역시 아주 괴로운 일이다.
논바이너리 역시, 표현된 성별이 성별 이분법 기준에서 모호할 경우 화장실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표현된 성별이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대로 읽히는, 소위 ‘패싱(passing)’이 잘 되는 트랜스젠더라면 괜찮을까?
잠깐 나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트랜스 여성으로 정체화했고, 외양이나 젠더 표현도 사회적 기준으로 여성 범주에 잘 들어맞기 때문에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여자 화장실 안팎에서 수많은 여자 사람을 마주쳐왔지만 한 번도 이질적인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다. 다만 나는 목소리가 낮은 편이기에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신경이 쓰이고는 한다. 일행이 있어도 웬만하면 대화를 잘 하지 않고, 전화통화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왔다고 항의받거나 신고를 당하는 일은 절대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트랜스젠더에게 성별 이분법 화장실은, 들어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들어가서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그냥 전반적으로 문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화장실이 성별 이분법적이지 않으면 된다. 화장실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말을 하면, 이 이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화장실을 같이 쓰냐’며 덜컥 반발할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화장실에 들어갈 때 성별을 구분할까? 생식기의 차이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좀 이상하다. 우리가 화장실에서 서로의 생식기를 확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볼일은 각자 해결하는데 타인의 생식기가 어떻게 생겼든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실상 우리는 서로의 생식기 모양을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데, 반드시 그걸 알아내서 나눠야 한다고 학습되어왔을 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남성기를 가졌을 거라 추정되는 외양’, ‘여성기를 가졌을 거라 추정되는 외양’을 즉각적으로 구분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성기 모양을 추정하기 어려운 (성별 이분법에 들어가지 않는) 불분명한 외양을 가진 사람을 보면 당혹 내지 거부감, 나아가 위협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겉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의 성기를 알 수 없다. 단지 성별 이분법적 규범에 근거한 확률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음으로 인해 그 ‘낮은 확률’에 해당하는 트랜스젠더들은 성별 분리 화장실 앞에서 고통 받는다.
화장실이라는 정치적 공간
하여 화장실은 트랜스젠더에게 정치적인 공간이다. 배설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그 공간에 안전하게 진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구성원으로서 공적인 권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별 분리 화장실이 아니라 성별 구분이 없는 성중립 화장실이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하다. 요즘은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말보다는 ‘모두의 화장실’ 이라는 말을 쓴다.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신체와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모두 안전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화장실을 뜻한다.
서론이 길었다. 이 글의 제목이 ‘나의 모장실 투쟁기’이지 않은가? 아주 힘겨운 과정이 있었다.
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라는 운동단체의 상근활동가다. 이름 그대로 사이버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단체다. 한사성에서 올해 2월 초에 정기총회가 있었고, 총회 준비과정에서 나는 장소 대관을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엔 여성단체들이 많이 애용하는 여성플라자라는 건물이 떠올랐다. 실제로 한사성에서도 이용해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공간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볼 것들을 체크하고, 금액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기까지는 아주 순조로웠다. 화장실에 대해서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었지만 일단 대관을 하고 나면 어찌어찌 되겠거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일반 기업도 아니고 명색이 ‘여성’플라자니까. 여성단체나 시민단체들도 많이 오가고 했을 테니까.
무사히 4층 시청각실 대관을 완료하고 아마 몇 주 정도 지났을 때였나? 한사성 동료들이랑 화장실 문제에 대해 상의를 했다. 한사성도 모두의 화장실 의제에 대해 깊이 동감하는 바였고, 23년도에 여성플라자에서 후원의 밤을 했을 때 여성플라자 측에 대해 ‘화장실을 성별구분없이 쓰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적이 있었다. 비록 그 당시에 해결은 안 됐지만 ‘논의해보겠다’ 정도의 유보적 답변을 들었던 터라 이번에 한 번 더 얘기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여성플라자 측에 전화를 걸었다.
기억에 따라 재구성한 대화 내용이다.
나: “저희가 화장실을, 성별 구분 없는 모두의 화장실로 쓰고 싶은데요”
플: “그건 안 되겠는데요.”
나: “왜요?”
플: “화장실은 당연히 남자 여자 구분해서 써야 하는 거고, 저희가 규정상으로도 그렇게는 안됩니다”
나: “저희가 같은 내용으로 작년에도 요청한 적이 있는데요, 그 후로 논의가 안 됐었나요? 안되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플: “법적으로도 그렇고 저희가 규정도 있고...근데 이건 제 권한이 아니라, 한번 논의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법적으로 안 된다...곧장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을 찾아보았다. 제7조 1항에 ‘공중화장실 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라는 설치기준은 명시되어 있으나, 화장실 사용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남녀화장실을 성중립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플라자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화장실에 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여성플라자 측과 다시 통화를 했다.
플: “예..저희가 논의를 해봤는데요, 안된다고 합니다.”
나: “왜요?”
플: “저희가 규정상..(어쩌구)”
나: “저번에 법을 얘기하셨는데요, 제가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을 찾아보았지만 설치 기준에 대한 조항만 있고 사용에 대한 조항은 없던데요. 무슨 근거로 안 된다는 건가요?”
플: “법적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저희가 이게 개방적인 공간이다 보니, 여기가 선생님들만 쓰는 곳이 아니잖아요, 일반 시민분들이 불편해 하실 수 있고,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고요.”
나: “저희는 시민 아닌가요? 저희가 돈 내고 대관을 해서 그렇게 쓰겠다는데 왜 자꾸 안된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플: “아니 이게 상식적으로..남자는 남자 화장실, 여자는 여자 화장실, 이게 맞지 않나요?”
나: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무슨 근거로 판단하죠? 남자가 뭐고 여자가 뭔데요?”
플: “(당황)그렇게 근본적으로 접근을 하면, 음..”
대화를 이쯤하고 나니 더 이상 이 직원에게 따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관업무 담당자 개인이 무슨 권한이 있겠는가. 그냥 알겠다고 하고 취소 절차를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다.
취소 신청서를 쓰는데 취소 사유를 적는 칸이 있어서 이렇게 적어서 제출했다.
한사성 동료들과 상의를 하여 이렇게 취소를 했을 때는 총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있을 때였다. 비상이었다. 얼른 다른 장소를 알아보고 예약해서 회원들한테 장소변경 공지도 해야 했다.
동료들과 분담을 해서 급하게 이곳저곳을 알아봤다. 그 과정 또한 굉장히 지난했다.
스페이스 살림: 모두의 화장실이 있었으나 여자 화장실로 변경됨. a 기관: 화장실을 성별 구분 없이 쓰고 있었으나 이용자들의 강한 반발로 다시 남녀로 구분하게 되었음. b 기관: 화장실을 성중립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으나 위치나 구조상 총회를 하기는 힘들다고 판단. |
당장 알아본 세 곳 상황이 이랬다. 앞의 두 곳은 있었다가 없어진 것이니 심적으로 더욱 타격이 컸다. ‘아니 안 그래도 얼마 없는 데 있던 곳도 없어진다고?’
여성플라자를 취소했으니 어떻게든 장소를 구해야만 했다. 차라리 그냥 한사성 사무실에서 할까하는 선택까지 고려할 정도로 –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 굉장히 조급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 때, 구원투수같이 불현듯 한 장소가 떠올랐다. 행성인 총회 장소였던 강북노동자복지관!
전화해서 확인해보니 1층에는 장애인화장실, 5층에는 모두의 화장실이 있다고 했다. 우리 상황을 설명하니 담당자는 2층 시청각실을 사용하면 된다고 안내해주었고, 나는 우리가 2층을 예약하더라도 화장실은 5층을 사용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층이 다르다고 화장실을 못 쓰게 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총회를 단 이틀 앞두고 있던 날, 노동자복지관 측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내가 확인차 화장실에 관한 문의를 하니 그쪽에서는 ‘한사성이 대관한 건 2층이니, 5층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나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층이 다르다고 해서 화장실을 못 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런 거였다면 처음부터 5층을 대관하도록 안내했을 텐데 별말이 없었으니 당연히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알고 보니 5층 화장실은 복도에 있는게 아니라 5층의 대강당 안에 붙어있는 거였기에, 대강당을 신청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내가 노동자복지관을 안 가본 것도 아니었는데 이 부분을 놓친 것에 자책감이 들면서도, 이런 중요한 사실을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나 하는 의문과 분노가 들었다.
그렇지만 당장 내일 모레가 총회였고 장소변경에 대한 공지도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뾰족한 대응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서 취소되면 총회는 아예 열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고싶던 수많은 말을 억지로 꾹 눌러 삼키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내가 통화하는 걸 옆에서 귀 기울여 듣던 동료들이 내 안색을 살피며 다가왔다. 순간 온갖 서러운 감정이 폭발하며 울음이 터졌다. 여성플라자부터 노동자복지관까지, 모두의 화장실 확보를 위해 달려오던 이 지난한 과정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왜 트랜스젠더 관련 이슈는 시민사회 안에서도 마이너한 이슈여야 할까, 왜 항상 나는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요구하고, 부탁하고, 참아내야 하는 걸까. 나한텐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 왜 사회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어야 할까, 하는 생각들. 사무실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고 있으니 동료들이 성심껏 다독여주며 내 감정에 깊이 공감해주었다. 내가 당한 일이 너무나 모욕적이라며 대관을 취소하거나 따로 문제 제기를 해야 되지 않겠냐며 같이 분노해주었다. 결론적으로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그대로 2층 시청각실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실질적으로 ‘모장실’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쟁을 했고, 그 과정에서 동료들은 나를 홀로 두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물리적인 공간보다 더 귀한 것을 얻었다. 내가 사회에서 배제되고, 탈락 되고, 거부당하더라도 내 편에서 같이 싸워줄 동료들이 있다는 것, 그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귀한 한사성 동지들.
총회 당일, 화장실 관련해서는 안내문을 적어서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우리가 모두의 화장실을 위해 이러이러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은 확보를 못해서 죄송하다, 그렇지만 성별 분리 화장실 사용에 있어서 조력이 필요하면 활동가들에게 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누구든 안전하게 화장실을 쓸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남자/여자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여길 왜 들어왔지?’ 하는 의심의 시선을, 내가 받았던 그 시선을 누군가 홀로 감당하게 하고싶지 않았으니까.
그게 우리가 하는 운동의 방향성이니까.
나가며
나름대로 치열했던 나의 모장실 투쟁기는 이랬다.
앞서서 성공회대 활동가분들이나 다양성연구소 등 모장실 운동을 해오신 분들이 있다. 나도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 이슈를 가지고 계속하여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나의 동료들이 그러했듯이, 여러분들도 이 싸움에 함께 동참하여 주시길 바란다.
우리 사회는 화장실 뿐 아니라 모든 공간이 철저하게 성별이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료시민으로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에 의문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가능한 시설도 처음에는 당연한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건물에 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건물을 이용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이 배제되고 있는지를 살펴야할 필요가 있다. 화장실 구조가 성별분리로 되어있더라도, 임시적으로 팻말을 붙여서 성중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각자 있는 곳에서 트랜스젠더 접근성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시작하는 것을 강력히 요청드리는 바이다.
나는 트랜스젠더가 편안하게 발 디딜 곳 없는 이 사회라는 공간을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앞으로 나의 모든 걸 걸고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내가 외롭지 않도록 함께 지지하고 연대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글을 마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