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트랜스가시화주간 기획] [빌리의 트랜스젠더 건강 에세이] 1. 연구 에세이, 시작합니다!

행성인 2024. 3. 25. 16:47
기획자 주: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입니다. 미디어TF에서는 가시화주간을 맞아 행성인 트랜스젠더인권팀원들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팀원들은 차별에 맞서고 성별이분법적 제도를 변화시키는 투쟁뿐 아니라, 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경험하는 일들을 나눕니다. 장소를 구하는 일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트랜스젠더는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도록 만들어진 사회에 너무 쉽게 돌출됩니다. 매 순간 숨쉬는 일까지도 신경써야만 할 것 같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는 그저 힘들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언 너머 함께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대화하자고 제안합니다. 

 

 

빌리(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졸업논문을 쓰고 있는 사람한테 무슨 주제로 쓰냐고 묻지 말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대학원생 친구를 두고 있다면 한 번 쯤 물어보는 질문이지만, 대개는 대답이 시원찮거나 짜증이 돌아올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 경험에 비춰 대답하면…너무 당연합니다. 장황하게 늘어놓기엔 시간도 상황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연구는 지식을 생산하는 행동인데 이게 어디까지 검증되었는지 연구자인 자신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가는 중인지라 단정지어 말하기 어려운 것이 졸업논문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논문 내용을 담은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졸업논문을 영어로 쓰게 되어서 한국어로도 그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연구의 결과를 함께 나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읽히고 평가되며 저도 연구도 자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믿음에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보건학을 전공합니다. 보건학 중에서도 역학을 전공했는데요 (감염병 역학조사관의역학맞습니다), 역학은 한 인구 집단 내에서의 질병의 분포와 원인을 파악하는데서 시작하여 지금은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규명하는 학문으로 넓어졌습니다. 역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규명하여 이에 대한 정책적 개입의 근거를 제공하여 인구집단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사회역학은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결정요인과 이에 대한 개입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볼까요? 사회역학에서는 건강 지표와 질병이 인구집단 내에서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원인에는 사회적 요인이 있을 것이란 관점으로 건강을 바라보고 연구하며 건강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성소수자의 건강을 보고자 했고, 졸업논문에서는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사회적 낙인이 이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습니다.

 

 

한국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높은 정신건강 부담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연구된 바 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일반인구 시스젠더에 비해, 혹은 이성애자가 아닌 시스젠더들 보다 높은 우울이나 불안 유병률을 갖고 있다는 연구는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확인된 바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17년 진행된 트랜스젠더 건강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집단의 우울증상의 유병률은 63.6%로 이는 남성에 비해 8.23, 여성에 비해 5.40배 높았습니다. 자살생각과 시도 역시 같은 나이 대 한국 인구에 비해 적게는 5, 높게는 10배 이상 빈번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Lee, Operario, et al., 2020). 건강격차가 큰 데에는 여러 원인이 존재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경험하지만 나머지 인구는 경험하지 않는 낙인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 되었습니다. 이는 성적 지향에서의 성소수자, 흑인과 같은 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와 궤를 함께 합니다.

 

여기에서 '낙인'은 규범에서 벗어난 특성, 정체성을 가진 개인에게 부여되는 것으로, 규범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개인의 인간성이 폄하되고 환원되는 사회적 현상을 말합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 적용되는 규범이라 한다면시스젠더규범성(cisnormativity)’이겠지요. '시스젠더 중심주의'로도 표현하는데요, 이는 사람들이일반적으로 자신이 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로 살아가는 시스젠더일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음을 짚습니다. 시스젠더가기본값이고, 모두가 그 기본값에 충실할 것이란 암묵적인 합의를 깨는 트랜스젠더는 규범을 무너뜨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죠. 트랜스젠더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규범에 어깃장 놓는틀린사람으로 만드는 분위기는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행동에서 그치지 않고 제도와 정책, 환경에 그대로 반영이 됩니다.

 

한국에서 진행되어 온 트랜스젠더 건강의 결정요인에 대한 양적 연구는 트랜스젠더 낙인에 대한 특정적인 경험들을 타겟 삼아 진행되어 왔습니다.  차별 경험이라던지(Eom et al., 2022), 내재화 된 트랜스젠더 혐오(Lee, Tomita, et al., 2020)와 같이 해외 연구에서 다루어왔던 개념들을 다루기도 하였고, 코로나19 상황에서 겪은 어려움(Lee, Restar, et al., 2021)이나 공중화장실 이용(Lee, Yi, et al., 2021), 회피행동(Eom et al., 2024)과 같이 낙인이 발현된 특정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양적 연구의 특성상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모든 낙인을 포괄하기 보다는 특정 경험을 꼽아 조작화한 변수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요. 저는 양적 데이터를 사용해서 특정 낙인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미치는 연구들이 나무가 되어 트랜스젠더의 사회적 경험이란 숲을 그려낼 방법이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낙인의 경험이 어떻게 쌓이는 지를 파악하면 이것이 어떻게 몸에 남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가 왜 시스젠더보다 더 아픈지에 대한 고민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할 데이터가 있었기에 그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으로 진행된 트랜스젠더혐오차별실태조사의 양적연구 부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경험과 건강 실태조사와 이후 2021년에 추적에 동의해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종단연구로 꾸린레인보우커넥션프로젝트 III - 한국 트랜스젠더 성인 건강 코호트 연구(RCP III)〉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에서 트랜스젠더가 마주하는 낙인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트랜스젠더 혐오차별경험과 건강 실태조사의 기술통계적 결과는 보고서의 형태로 이미 공유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데이터와 결과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보고서를 쓰고 이들과 차별화 된연구의 산물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트랜스젠더를 향한 한국사회의 낙인과 구조적 방벽 그리고 성인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의 정신건강: 레인보우커넥션프로젝트III (영문제목: Stigma, structural barriers, and mental health of Korean transgender and nonbinary adults: Rainbow Connection Project III)〉 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을 마무리했습니다. 3편의 연구로 구성하였는데요, 연구 1 에서는 트랜스젠더 삶의 여러 공간에서 발생하고 마주하는 트랜스젠더 낙인과 차별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 낙인의 체계를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 2 3에서는 낙인의 경험이 우울과 불안, 자살생각과 시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였으며, 특히 연구 3 에서는 커뮤니티 연결감이라는 회복 자원의 조절효과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논문에 담긴 연구 결과를 첫 편에 담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연구가 그렇듯 기대한 대로 흘러가진 않네요. 그래도 이후 연재물에 담길 연구의 결과를 전달해드리기 전에 연구에 담겨있는 맥락과 저의 고민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2024년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에 맞아 이 연재를 시작하는데에는 시의적절함도 있지만, 이 연재를 끝까지 이탈하지 않고 마무리 지어보고자 하는 다짐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의도도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내용에 대한 질문과 의견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sungsubilly@naver.com 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문헌

  • Eom, Y.-J., Lee, H., Choo, S., Kim, R., Yi, H., Kim, R., & Kim, S.-S. (2024). Situational avoidance and its association with mental health among transgender adults in South Korea: a nationwide cohort study. LGBT Health, 11(2), 122-130.
  • Eom, Y.-J., Lee, H., Kim, R., Choo, S., Yi, H., & Kim, S.-S. (2022). Discrimination keeps transgender people awake at night: A nationwide cross-sectional survey of 583 transgender adults in South Korea. Sleep Health, 8(6), 580-586.
  • Lee, H., Operario, D., van den Berg, J. J., Yi, H., Choo, S., & Kim, S.-S. (2020). Health disparities among transgender adults in South Korea. Asia Pacific Journal of Public Health, 32(2-3), 103-110.
  • Lee, H., Restar, A. J., Operario, D., Choo, S., Streed Jr, C. G., Yi, H., . . . Kim, S.-S. (2021). Transgender-specific COVID-19-related stressors and their association with depressive symptoms among transgender adults: A nationwide cross-sectional survey in South Korea. International Journal of Transgender Health, 1-12.
  • Lee, H., Tomita, K. K., Habarth, J. M., Operario, D., Yi, H., Choo, S., & Kim, S.-S. (2020). Internalized transphobia and mental health among transgender adults: A nationwide cross-sectional survey in South Korea. International Journal of Transgender Health, 21(2), 182-193.
  • Lee, H., Yi, H., Rider, G. N., Operario, D., Choo, S., Kim, R., . . . Kim, S.-S. (2021). Transgender Adults' Public Bathroom-Related Stressors and Their Association with Depressive Symptoms: A Nationwide Cross-Sectional Study in South Korea. LGBT Health, 8(7), 486-493. doi:10.1089/lgbt.2021.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