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28. 어린이집, Ready Go!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
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요즘 아이와 경찰에 전화하는 폴리스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여보세요, 폴리스 헬프 미(뭐라고 뭐라고 궁시렁 궁시렁대고), 우리 집에 와서 이놈 해주세요” 하고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의 놀이랍니다. 요 녀석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러바칩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코코멜론과 아기상어를 즐겨 보았어요. 지금도 아기상어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자 노래랍니다. 조금 커서는 아빠와 딸내미가 나오는 나스띠아Nastya 동영상을 애청 중입니다.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러 갈 때 인보의 손을 잡고 ‘곰 세 마리’, ‘봄(엄마 엄마 이리 와)' 같은 한국 동요를 함께 불러 줍니다. 요 녀석, 발음은 엉망이지만 잘 흥얼거려요. 이 동요 때문에 아빠의 똥배를 보고 뚱뚱하다고 놀려댄답니다. 그리고 율동동요를 보면서 손과 발을 요리조리 올리고 굴려대는 시늉을 합니다. 언제인가는 발레를 보았는지 “엄마 (보세요라는 의미에서) 룩look”하고 나를 부르고 나서 발레춤을 추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녀석의 흥을 돋우어 주기 위해 백조의 호수를 흥얼거려 맞장구를 쳐줍니다.
마을 어린이집(Day Care Center) 방문
우리 마을 봉하오Bong-Ao에는 작은 마을 어린이집(공립)이 있습니다. 올해 건물도 새로 지어졌습니다. 3세 아동부터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의 차 가보았습니다(사립 어린이집은 4세부터 가능). 아이들이 좋아하는 교육용 매체들이 알록달록 형형색색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원하게 에어컨도 설치해 놓았더라고요. 전에 살던 민다나오섬 마을의 유치원에 비해서 환경이 무척 좋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에게 유치원 개원과 준비물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두 개의 마을 어린이집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다른 마을에서 오전 수업을 하시고 우리 마을에서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 동안 수업을 담당해 주세요.
준비물
찰스 아빠가 선생님을 다시 만나 준비물 목록을 받아왔습니다. 학용품과 교복 그리고 학용품이 적혀 있었습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왔어요.
이제 무엇을 샀나 볼까요?
책가방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교복으로 반팔 티셔츠와 붉은 운동복 바지와 운동화를 샀습니다. 그리고 노트, 필통, 색종이, 풀도 샀어요. 책가방이 도착하자 아이는 “우와~”하면서 매우 좋아하더라고요. 요즘 밖에 나갈 때 스스로 책가방에 학용품 넣고 메는 것을 아주 즐긴답니다.
모든 학용품에 아이 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 이름을 적을 수 없는 물품은 자수를 놓았습니다. 간식을 먹거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때 입는 앞치마와 손수건에 'Rainbow'를 수놓았습니다. 이렇게 어린이집 갈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마을 체육관에서 열린 부모 오리엔테이션에도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깎아 주신 추억의 연필
저희 세대는 거의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한글도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서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입학식에는 아버지 손잡고 갔어요. 졸업식에는 큰누나가 오셔서 졸업사진 찍은 것이 기억납니다.
아버지께서 손수 연필을 깎아 주셨는데 아주 가지런하고 예쁘게 깎아주셨습니다. 이런 기억으로 앞으로 저도 연필을 손으로 깎아 아이의 필통에 가지런히 담아주고 싶습니다. 추억을 떠올리다보니 볼펜 껍데기에 몽당연필을 끼워 쓰고, 노트의 앞과 뒷장의 거무스레한 겉장에 빼곡하게 필기를 했던 시절도 기억납니다. 아껴야 잘 사는 법이지요.
저의 개인적, 가정적 경제 원칙은 ‘근검절약’입니다. 저는 외상으로 물건을 사거나, 대출을 받거나, 돈을 빌리는 일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 신용카드 대신에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할부 대신에 일시불로 구매 합니다.
그래도 돈을 아끼지 않는 두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건강 관리에 드는 비용입니다. 먹거리를 살 때도 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구매합니다. 또 하나는 공부입니다. 특히 학업에 필요한 책과 문구 그리고 수강하는 프로그램이 비싸더라도 지출하는 돈은 아깝지 않습니다.
필리핀에는 중고 매장이 참 많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들여오는데 생활용품을 비롯하여 신발 옷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필리핀 서민들이 많이 삽니다. 가끔 우리 세 식구의 옷이나 아이의 신발, 슬리퍼도 중고매장을 이용합니다. 저도 청바지를 여러 벌 샀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니 좋은 가방을 사주고 싶습니다. 사실 유아 책가방은 이곳 오프라인 매장에서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가 ‘처음으로’ 메는 책가방은 조금 비싸더라도 이쁜 색상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책가방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녀가 하나이다 보니 앞으로 모든 것이 처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중고등학교에 갑니다. 그리고 대학도 처음 입학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처음이니 병(病)’를 경계해야겠습니다. 축하는 듬뿍 해주되 ‘아이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각에 과소비하지 않도록요. 아이에게 물질이 풍요하더라도 아끼고 저금하는 습관을 길러주려고 저금통에 동전 넣기를 (훈련차원에서) 장려 중입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가 되어 보니 아이가 좋은 품성을 지니고 예절 바른 아이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엄마 같은) 누나들에게 들었던 말을 저도 아이에게 그대로 해주고 있더라고요. 어느 날엔가 아이에게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하고 재미있고 놀아요. 싸우면 않돼요.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요.” 그랬더니 아이는 “네”라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들과 갑론을박할 때도 생길 겁니다. 특히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엄마 없이 아빠만 둘인 게이커플의 딸이라고 놀려댄다면 단호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우리 아가야, 두 아빠의 품 안에서 레인보우 패밀리의 자긍심을 늘 품으렴. 그 자긍심이 놀림과 왕따를 물리쳐줄 거야.
그리고 오늘 밤, 처음으로 어린이집 가는 거 꿈꾸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