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행성인 2024. 9. 24. 12:45

 

기획의 말

2024년 한 해 동안 '상임활동가의 사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행성인 네 명의 상임활동가들은 종횡무진하며 단체 안팎에서 활동을 하는데요, 한 달 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무엇을 보고 어떤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지 함께 만나봅시다. 

 

 

지오

 

지난 16일, 추석 연휴 중에 미국 TV방송 부문 최고 상으로 불리는 에미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TV조선 채널에서 생중계했었어요. TV조선은 지난 시상식부터 독점 생중계하고 있는데요. 저의 짐작으로는 오징어게임이 22년에 에미상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후 K-콘텐츠들이 약진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의 집 잔치’로 불렸던 에미상에 한국계 작품들이 이름을 올리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그만큼 높아지고 이는 소위 ‘국뽕’의 요소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변화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매체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분명 OTT의 발전은 전세계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데 기여했고 이는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아카데미와 에미상의 기류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미투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파문은 17년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이는 영화계 안팎으로 변화를 촉구하도록 만들었죠. 이런 여러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시상식에서도 여성, 인종, 성소수자, 장애 등이 화두가 되는 다양성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도 그러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일본 배경의 드라마 쇼군이 무려 18개 부문을 석권했다는 것은 일례일 뿐입니다. 미디어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드라마의 약진 덕분이라는 말로 국뽕을 채워넣기 바쁘긴 했지만요. 중요한 것은 시상식 내내 보인 분위기 일거에요. 그리고 시상식에서 펼쳐진 다양성의 향연을 TV조선 채널로 보고 있던 저는 이 아이러니에 정말이지 짜릿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에미상 시상식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자 조디포스터와 파트너.

 

사회자가 히스패닉계 배우들의 업적을 소개하고 화면은 이들의 얼굴을 담습니다. 미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몇몇 수상자들은 반드시 투표하자는 정치적 발언을 빼지 않고요. 트랜스젠더 플래그를 단 시상자와 수상자를 무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레그 벌랜티는 성소수자인 제작자로서 공로상을 수상했는데요. 공중파 최초로 성소수자 캐릭터를 선보인 이후 관련한 작업들을 지속하며 성소수자를 가시화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하이라이트는 트루디텍티브 시즌 4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조디포스터에요. 수상자로 이름이 언급되면서 화면이 조디포스터를 잡는 순간 우리의 레즈비언 배우는 파트너와 키스를 하고 있었죠. TV조선에서 여성끼리 키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 한 일이라 저는 정말 환호성을 질렀던 것 같아요. 연휴 내 가장 통쾌했던 순간이 아닌가 싶네요.  

 

보수적인 미디어에서는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다양성의 시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인이 세계에 이름을 떨칠 가능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이 다양성의 맥락에서 결코 떨어져있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말이지요.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만 같아도 이렇게 우스운 진전도 있네요. 성소수자 해방? 머지 않아 보입니다. TV조선에서 레즈비언 키스신을 보고 성소수자들에게 용기를 내라는 자막(그레그 벌랜티 수상소감)을 읽게 된 마당이니 말이죠^^   

 

 

 

오소리

 

지난 주말, 누나네 식구가 집으로 놀러왔습니다. 큰 조카가 10월에 군대에 가는데, 그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면서요. 

 

제가 남편이랑 처음 만나던 시기에 잠깐 누나네서 살고 있었는데요. 남편이 누나네도 놀러오고 하면서 조카랑은 초등학생때부터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히던 사이였어요. 따로 살면서도 종종 누나네 놀러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항상 같이 가면서도 저희 둘의 관계에 대해 명징하게 얘기했던 적은 없었어요. 뭔가 조카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게 조금 어색하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조카랑은 페이스북 친구라… 알건 다 알지 않을까 싶긴 했죠. 

 

그리고 드디어… 이번에 누나네 식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와중, 어쩌다가 저희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조카는 역시나, 삼촌 페이스북 봐서 알건 다 안다고. 그리고 그러더라구요. 나도 그런 차별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많이 대견하더군요. 집에 있던 위스키 까서 먹였습니다. 

 

그동안 조카에게 얘기를 하지 않았던 건 괜히 뻘쭘한게 크긴 컸지만, 혹시모를 불안도 있었던 것 같아요. 조카가 잘 못받아들이면 어쩌지…? 하는요. 그런데 제 기우였네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주말이었습니다.  

 

 

 

남웅

 

3월부터 망원에서 지냈다. 알 사람은 알지만 행성인의 오랜 회원 이경과 하나가 캠핑카를 만들어 결혼식 직후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동안 집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어쩌다보니(는 아니고 자원했다) 집사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연초에 두사람 인터뷰를 했던 타이밍이 잘 맞았다. 그들은 10월 초에 돌아온다고 하고, 정말 그 날짜를 딱 맞춰 들어온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것도 대단하고, 자체제작 캠핑카를 타고 운전해서 다녀오는 것도 대단하고, 둘이 한 공간에 7개월을 함께 지내는 것도 대단하다. 아무튼 나같은 범인(凡人)은 집을 지킨다. 

 

정확하게는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마루와 집세를 반반 내고 그 공간에 내가 상주했다. 마루는 수시로 술을 쟁여놓으며 종종 놀러오고 나는 말그대로 숙식하면서 집안일하다가 그와 다른 이들이 방문하면 술상을 차려주고. 해서 마루가 '별장'이라 부르는 그 장소를 나는 '레지던시'라 불렀다(...겸사겸사 예술인 라이센스도 있고 글도 솔찬히 썼으니까).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보니 출퇴근 왕복 2시간이 절약되는 것이 제일 좋았다. 6개월 따릉이를 빌려 잘 타고 다녔다. 이 공간은 뒤풀이하고 귀가가 아쉬운 이들의 2, 3차 아지트가 되었고, 몇 안 되는 술친구들이 찾는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그밖에 다양한 목적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방문했다.

 

이 동네는 내 또래 청년과 중장년 사람들이 많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특히 많이 보이고, 오후 4시가 지나면 망원역부터 시장 일대 유동인구가 많아진다. 예전이라면 맛집 표시해놓고 기분내서 갔을 주점들이 밖에 나가 몇발자국 걸으면 나오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고, 조금 더 걸으면 한강이 있어 여름날 빼고는 종종 걸어가서 멍때리고 하염없이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주말이면 오전부터 망원동에 놀러온 외지인(ㅋ)들이 돌아다니는데 추레하게 나와서 빨래방가고 쓰레기버리고 커피 사서 들어가는 모습에서 혼자 이것이 망원 바이브다 젖기도...여기는 퀴어로 보이는 이들이 그냥 돌아다니기만 하는게 아니라 장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퇴근길에는 오며가며 아는 활동가와 퀴어친구들도 종종 만났는데, 예전부터 망프란시스코라 불리던 것이 괜히 명불허전이 아니구나 싶고. 

 

 

 

가끔씩 이경 하나와 안부를 확인하면서 그들의 위치를 물었다. 대개는 한국에 이슈가 터지거나 소식을 모니터링하면서 그분들이 연락을 줬다. 어떤 날은 터키에, 이태리에, 다른 날은 모로코라고 하더니 자다 일어나 받은 영상통화에서는 프랑스 와이너리 캠핑장을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로선 그들의 소식을 접하면 집 맞은편 바틀샵에 가서 그들이 방문한 국가의 맥주나 와인을 구해 그 동네 예쁜 풍경을 띄워놓고 혼술하던 것이 소소한 이벤트라면 이벤트.   

 

7개월은 길다면 길지만 터를 잡고 생활하기에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들면 떠날때 슬플거 같아 망원시장 반찬가게와 청과물마켓 정도 단골처럼 다니다가 최근에는 괜찮은 칵테일바를 발견해서 종종 찾았다. 방빼면 지금처럼 자주 가지 못하는게 살짝 아쉽다. 망원시장은 마포의 부엌인가 싶었는데, 덕분에 밥과 술안주와 야채와 제철과일은 부족함 없이 먹었다. 

 

긴여름이 지나고 정신차려보니 벌써 추석이다. 요즘은 조금씩 짐을 빼는 중이고 가끔씩 가만히 서서 집안의 풍경들을 눈에 담아두고 있다. 한동안 본가에 들어가 캥거루처럼 살 예정인데, 엄빠의 트롯트가 항상 귀에 맴돌겠지. 나갈 준비 하면서는 자기전에 부동산 어플을 돌려보는 빈도가 높아졌다. 과연 이 동네는 집값도 남다르다. 

 

 

호림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는 게 퀸❤️의 마인드👈

 

디바마을 퀸가비의 슬로건을 되뇌며 살고 있지만, 실상 요즘 나의 역할은 피디라잌이나 매니졀에 가깝다. 다른 무엇보다 여러 사람의 일정과 할 일을 조율하고 지원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종일 수십통의 전화를 돌리고 할 일을 하나하나 격파해가며 디데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여기까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힘을 모아 다시 긋는 새로운 출발점을 축하하며 웃는 날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