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희망
이 글을 청탁받고 어떻게 쓸까 고민할 때만해도 이렇게 비참한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경제가 어려워 제2의 IMF를 맞이할 거라는 전망 속에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주 작은 희망이 남아있었다. 때문에 긍정적인 모습의 2009년 한해를 그려보려 했다. 하지만 설 연휴를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생계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주민들을 몰아내는 막개발에 반대하며 폭력적인 용역 깡패들과 경찰의 진압에 맞서 싸우고 발버둥 쳐온 용산 철거민 5명이 결국 살인적인 진압에 의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5명의 철거민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전국철거민연합을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하지만 무리한 공권력 투입을 진두지휘했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더 나아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2009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있을까. 피로 얼룩진 새해소망
지금 이 순간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건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하루도 편히 잔 날이 없었을 것 같은 철거민들이 망루 위로 올라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보겠다며 버틴 그들이었지만 결국 돌아온 건 쓸쓸한 주검뿐이다. 자신들이 저 위에서 죽게 될 지 생각이나 했을까.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도 당당히 견뎌낸 그들이었는데. 새해부터 깊은 한숨과 함께 억장이 무너진다. 철거민들은 시민도 아닌가. 사방으로 쏘아대는 물대포에 특공대원의 투입, 그리고 화재. 도망갈 틈도 주지 않으면서 경찰차 방송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며 시위를 중단하라고 방송을 했다.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그토록 큰 죄가 된 까닭은 무엇인가. 불타고 있는 망루 앞에서 자신의 동료를 지켜봐야 했던 철거민들에게도 이 날의 악몽은 아마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사망한 철거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위대 앞에 나선 한 분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사지를 떨며 힘겹게 마이크를 잡았던 이 철거민은 지금도 거리에서 100일 넘게 농성을 하며 지낸다고 했다. 집을 잠시라도 비우고 있으면 그 틈을 타 집은 사라지고 없고,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해 작은 소망이라고 한다면, 가족들이 모여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 것. 그리고 지독한 소음 없이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이란다. 너무 소박하다. 그냥 가족들과 조용히 살고 싶다니. 2009년 철거민들의 새해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피로 얼룩졌다.
이런 철거민들의 절박한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시위대가 고의적으로 방화를 했고, 철거민들이 쏜 새총을 보고 도심테러라고 규정했다. 문제는 화염병이란다. 전국철거민연합이 반국가단체라고 호도하고 있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어수단이 그토록 문제가 된다니. 쥐꼬리만한 양심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망자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책임자는 처벌하지 않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지금 태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잔인한 1월, 이 책임은 바로 막가파식 개발로 도시서민을 삶의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 새해희망을 가질 틈도 없이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98% 서민들을 충격과 분노,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역사는 말한다. 추락하는 민주주의 속에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안전은 없다.
지금처럼 독재와 악법이 난무하고 경제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를 보이고 있을 때 사회적 소수자들은 늘 공격을 받아왔다. 그동안 힘겹게 만들어온 성과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민주주의는 파괴되며 탄압은 준비할 틈도 없이 거세게 몰아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성소수자들은 늘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어왔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동성애자들을 향한 탄압은 끔찍하였다. 20세기 초 동성애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독일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위기와 경제 불황이 겹치며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남자 간 또는 여자 간 사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우리의 적”이라고 단언한 나치는 수 만 명의 동성애자들을 집단학살하고 의학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홍색 역삼각형은 그 당시 수용소에 갇힌 남성 동성애자들이 달았던 표식이다. 동성애자들은 냉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50년대 미국에서는 “성도착자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윤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간첩의 회유나 협박에 넘어가기 쉽다”는 보고서가 제출되면서 공무원, 군인 가운데 위험인물이라는 이유로 600명 이상의 동성애자가 해고 되었고 최면술, 전기충격, 구토제, 음핵절제술 등 끔찍한 치료법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6~70년대 경제호황과 함께 급진적인 동성애자 권리운동이 등장한 시기도 있었지만 80년대 또 다시 불황을 맞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가족가치의 강조’와 ‘에이즈’를 앞세워 우리 성소수자들을 공격 했다. 수많은 친구들을 잃고 있는 동안 미국, 영국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또한 정부는 에이즈 감염인을 위한 치료제 개발이 아닌 순결센터를 지원했다. 그렇다면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는 게이 감염인들과 그 친구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거리에 나와 적들과 싸울 수밖에 없는 법. 단, 이 시기에는 30년대 대공황 시절과는 달리 전 세계적인 반전운동과 파업의 승리가 이어졌고, 동성애자 해방운동이 존재했다.
그리고 또 다시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는 조금씩 조금씩 우리 삶을 갉아먹고 있다. 최악의 경제위기가 예상되는 2009년, 역사가 반복된다면 성소수자들에게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를 상황이다. 반민주적인 독재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성소수자들의 안전과 인권이 결코 보장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현재의 한국은 어쩌면 동성애자들에겐 위기로 가득 찬 곳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동성애 운동의 경험이 단일 국가 안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상황공유가 가능해졌고 동성애, 트랜스젠더/성전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많이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계속 성장해왔다. 또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민중들의 의지가 아직은 가득하다. 이들과 함께라면 혹시나 닥치게 될지 모를 위기의 순간들을 더욱 힘 있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결코 가만히 앉아 두들겨 맞고만 있을 순 없다.
조직화되어가는 호모포비아들, 2009년 성소수자들과 정면충돌할 것인가
우리가 2009년 예의주시할 단체들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을 - 성장하고 있는 보수, 우익 기독세력들이다. 권력과 긴밀한 유착관계에 있는 이들은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하면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형체도 불분명한「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동성애반대연합)」이 설립되었고 이들은 당시 차별금지법에 포함되어 있던 성적지향 항목을 제외해야 한다며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다. 결국 법무부는 이들 편에 서서 성적지향 등 7개 차별항목을 제외시켰다. 2008년 9월에는 기독교 가치관 수호를 위한 기독시민연대가 탄생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며 다음과 같은 뚜렷한 활동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종교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하도록 한다 △낙태를 반대한다 △동성애를 반대한다 △이념적인 좌파를 경계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공중파 방송의 공정성을 감시한다 △분열을 낳는 거짓 개혁을 멀리한다 △교회개혁이란 미명하게 기독교를 가장하여 교묘히 선교와 전도를 가로막는 거짓 기독언론들을 경계한다 등) 이들은 2008년 9월 이화여대 레즈비언 인권단체가 준비한 문화제 조형물(무지개 걸개그림)을 탈취한 기독교 동아리가 동아리연합회에서 제명하자 “동성애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며 이대 앞 시위를 제안하기도 했다.
같은 해 겨울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한민국 인권상’ 시상자 기준에 ‘동성애자’를 포함시킨 것을 규탄하는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를 조직한 이들은 바로 기독시민연대, 동성애반대연합 등의 보수우익단체들이다. 이들은 북한인권 운운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의 불필요성을 요구하였고 급기야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노무현 정부 시기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 단체들에게 1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원했고,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 삭제 권고 등 親동성애적인 활동을 보였다는 것. 이들의 영향이었을까.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업무계획을 보면 ‘성소수자’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들은 기존의 활동을 그대로 유지 하겠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들을 순순히 믿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조직화 되어가는 보수 기독교 세력들이 아직 우리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활동과 주장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기독시민연대의 경우 불과 1년도 안되어 다양한 동성애 반대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성소수자 관련 활동이나 입장이 보도되기라도 하면 그에 맞서 자신들의 입장들을 발표한다. 이들의 활동 강령을 보면 동성애 반대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진보적 요구들을 하나 같이 반대하고 있다. 교계 내 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에게도 큰 안티세력으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다. 2009년 이들과 정면충돌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만약 권력과 결탁해 反동성애 운동이 더 큰 조직으로 성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포착될 경우 바로 제동을 걸 준비를 해야 한다.
참는 다고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2009년,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자
자꾸만 참으라 한다.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계속 참으라 한다. 결국 참지 못한 이들은 죽음이라는 참변을 당했다. 사람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는 지배자들은 늘 참으라 한다. 참지 못한 사람들이 과한 욕심을 부려서일까. 아니다. 이들은 단지 살고자 했을 뿐이다. 우리도 늘 참고 살아간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참지 않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말하려고 하면, 안티세력들의 집중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우리의 외침은 주류 언론에서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참아 내거나 침묵하다고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우리 성소수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삶이라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언제나 저항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2009년, 인권활동을 꿈꾸는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세미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 외 ‘레인보우 스쿨 놀토반’ 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인권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고 회원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성소수자들과 함께 할 포럼도 준비 중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는 군형법 상의 추행죄(계간 조항 포함) 위헌판결을 받아내기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고,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역시 2009년 계획을 HIV/AIDS 감염인 노동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 이것만으로도 빠듯한 일정이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명박 정부에 책임을 묻는 활동 또한 중요히 여겨야 한다. 혼자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철거민의 죽음을 단지 철거민들의 투쟁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품고 있는 시한폭탄 같은 위기를 퇴진이라는 희망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저항하는 거리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만 한다.
희망은 주어지는 게 아니다. 쟁취하는 것이다. 2009년 동성애자인권연대와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자.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