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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38

스톤월 항쟁과 자긍심 행진의 정신 호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자긍심 행진에 참여해 본 성소수자들은 누구나 각별한 첫 행진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처음 행진하던 날, 광장에서 거리로 첫발을 떼던 순간의 떨림, 함께 걷던 사람들의 벅찬 표정, 거리에 크게 울리던 음악소리,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던 순간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내가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임을 한껏 드러내며, 행렬을 함께 하는 수많은 성소수자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낮의 도심 거리를 걷는 순간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성소수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종교를 제 명분 삼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증오를 선동하는 이들이 활개 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자긍심 행진은 즐거운 축제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자긍심.. 2015. 6. 10.
도쿄에서 예쁘고 강하게 울려 퍼진 무지개 함성, Tokyo Rainbow Pride 2015를 다녀오다 김민수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지난 4월 24일, 25일, 양일간 일본에서 열리는 가장 큰 성 소수자 자긍심행진인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Tokyo Rainbow Pride 2015, 이하 TRP 2015)가 열렸습니다. 퀴어문화축제기획단미디어팀 소속이기도 한 저는일본에서의 자긍심 행진이 어떻게 열리는 지 견학하기 위해, 동시에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를 알리기 위해, (그리고 벅차게 놀러)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서 열리는 자긍심 행진을 참여한 것은 두 번째입니다. (작년 10월, 필자가 다녀온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 참여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지난 해에 참여했던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가도심 속의 아기자기한 공원인 오기마치 공원에서 열렸고 참여한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에 비해 T.. 2015. 5. 10.
[2015 LGBTI 인권포럼] '광장에서 만난 기독교의 두 얼굴' 섹션을 듣고 끄적끄적 바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사람마다 몇개의 얼굴을 갖고 살까?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성소수자로서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는 내 종교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사랑한다. 몇 개월 전 서울시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제정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헌장을 만들겠다고 하던 서울시는 보수 기독교 세력의 압박에 의하여 성적 소수자를 차별해선 안된다는 조항을 문제 삼으며 헌장 제정을 철회하였다. 이에 격분한 성소수자 당사자와 지지자들은 서울 시청을 점거하고 6일간 농성을 하였다. 농성을 하는 동안 많은 일이 발생하였다. 농성장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성소수자들이 만든 피켓을 침탈하고 혐오 발언을 하였다. 경찰들은 혐오 발언을 듣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방관하였다. 성소수.. 2015. 4. 8.
변화를 지속시킬 힘, 혐오에 맞선 연대와 행동 이주사(동성애자인권연대) 최근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활동을 살펴보면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돈과 인력에 정치적, 종교적 신념까지 갖춘 이들이 모든 영역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삭제하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 자체는 익숙하고 지배적이었다지만 이렇게 조직적이고 정교하게 변화를 되돌리려는 공세를 마주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강경 우파 정권의 권력 기반과 혐오세력이 밀접히 얽혀 있고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새누리당 대표를 지내다 교육부 장관이 된 황우여는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으로 지난해 ‘한국교계 교과서 동성애,동성혼 특별대책위원회’ 등 다양한 혐오세력 활동을 지원했다. 올 여름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문창극은 퀴어퍼레이드를 비난하는 혐오세력의 주장을 강연에서 그대로 되풀이했다. 최근.. 2014. 11. 11.
사진으로 보는 2014년 서울 신촌 퀴어퍼레이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종원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2014년 6월 7일. 어느덧 한 달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쉽사리 사그라지질 않는군요. 서울 신촌에서 퀴어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퍼레이드가 열린 날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2014년 제15회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였죠. 세계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성소수자 혐오 및 탄압에 반대하고, 또 탄압에 굴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 전 세계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에게 연대를 표명하는 의미로 정해진 슬로건이었어요. 그런데 올해엔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도 ‘조직된’ 혐오를 마주해야 했어요.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이 혐오 발언을 내뱉으며 행사를 방해하고, 급기야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퍼레이드를 막았거든요. 한국 퀴어.. 2014. 7. 17.
동인련 긴급회원토론 - 혐오세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오소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이번 제15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이하 퀴퍼)는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의 얼굴을 직접 대면한 자리이기도 했다. 퍼레이드공간에 반대집회를 허가 낸 서대문구청의 이중성을, 행렬을 가로막는 혐오세력을 수수방관한 경찰들의 위선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노골적인 조롱과 반대에 굴하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본의 아니게 퍼레이드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끝났다. 밤 11시가 넘도록 거리에 모여 함께 외쳤던 분노와 기쁨의 목소리를, 길바닥에 쏟아낸 땀과 눈물을, 억압과 혐오를 벗어던진 우리의 몸들을 기억해야 한다. 퀴퍼 이후 뉴스와 SNS에서는 저마다의 정리와 감상, 평가와 비판, 적지 않은 쟁점들이 오갔다. 온라인에 올라온 수다한 글들은 퍼레이드.. 2014. 7. 17.
빤스퍼레이드의 주역들 - 그들은 왜 벗어제꼈나? 나라, 웅 (동성애자인권연대) 제15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는 준비 단계부터 혐오세력의 비난과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온갖 방해와 우여곡절 끝에 퍼레이드는 진행됐지만 축제가 끝난 뒤에도 논란은 뜨겁습니다. 혐오세력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과감히 벗어제낀 이들은 모두 동인련 회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회원들의 행보 덕분에 커뮤니티 안에서 퀴어퍼레이드의 성격과 성소수자 인권을 획득하기 위한 사회적인 전략에 대한 토론이 촉발됐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웹진 랑은 역전의 용사들에게 퀴어퍼레이드에서의 경험과 이후 논란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재성: 안녕하세요. 동인련 HIV/AIDS 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성입니다. 이번 퀴어문화축제에서는 .. 2014. 7. 17.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랑 2014년 퀴어퍼레이드 특별호 《호외》 2014 퀴어문화축제 - 퀴어퍼레이드 맞이 동인련 웹진 호외입니다. 이날 동인련은 호외를 비롯 '혐오에 맞서 행동하자! / 돈 보다 생명! 안전보장이 인권이다!' 등의 손피켓을 제작하여 축제 참여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호외 1,000부 그리고 손피켓 1,000부는 거의 소진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일 호외를 만나지 못한 분들을 위해 pdf 파일로 올립니다. 아래의 유의사항을 잘 읽고 퍼가기, 인용 등을 부탁드립니다. 나눠드린 동인련 호외에는 동인련 회원, 후원회원 가입서가 들어있었습니다. 정부, 기업의 후원 없이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인들의 후원으로 활동하는 동인련에게큰 힘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작성 후 스캔하거나 사진을 찍어 동인련 lgbtpride@empas.. 2014. 6. 11.
대구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와서 제이 (동성애자인권연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울밖에 모르던 내가 다른지방을 간다는 것은 꽤 흥분되는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대구에 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고, 더군다나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에 내가 갈지도 몰랐다. “나도 대구에 갈거야!”라고 이야기 했던 것은 어쩌면 그 때 난 6세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 이었을꺼란 생각이 든다. 대구에 가기로 한 날 나는 무척 들떠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기까지 했다. 우리 회사에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분이 계시는데 내가 대구에 간다고 하니까 ‘서울의 더움과는 다른 뜨거움’이라 말해줘서 겁이 난 상태이기도 했다. 더위를 참지 못 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터라 하루 종일 몸에서 비가 내리는 것 아닌가란 생각에 말이다. 대구까지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재밌.. 2013. 7. 18.
[순동이] 호주 언론에 등장한 단아한 어우동 종원!! 호주 라는 언론에서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기사는 올해 14번째로 열린 퀴어퍼레이드와 서울 LGBT영화제의 전반적인 모습을 다양한 사진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보다도 우리의 눈을 끈 것은 한 장의 사진!! 어우동 코스프레를 한 종원입니다. 하얀 피부와 빨간 입술(립스틱은 새롬씨가 협찬해주셨어요!)에 난이 그려져 있는 부채를 들고있는 모습이 단아하네요. 웹진팀 맘대로 ‘순간포착 동인련에 이런일이'로 선정합니다. ^^ 순동이는 원래 웹진팀 맘대로입니다. 선정되려면 웹진팀에 잘보이세요!! 2013. 7. 18.
그대는 그대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모리(동인련 웹진기획팀) 1785년 공리주의의 창시자 제레미 벤담이 영국에서 최초로 동성애 합법화를 주장 1791년 프랑스 혁명후 새로 채택한 형법에서 동성애를 범죄 목록에서 제외. 프랑스는 상호합의된 동성애를 합법화한 첫번째 서유럽 국가가 되다. 1800년대 초. 레즈비언에 대한 최초의 연구가 책으로 출판되다. 1828년 “자연에 거스르는 죄”라는 문구가 미국 형사법전에서 처음 쓰이다. 1867년 8월 29일. 칼 하인리히 울리히(Karl Heinrich Ulrich)가 독일 법조인 회의(Congress of German Jurists)에서 공개적으로 반동성애법의 폐지를 촉구하다. 1869년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단어가 출판물에 처음 나타나다. 1870년 동성애 관계를 다룬 첫 미국 소.. 2012. 5. 24.
2010 퀴어문화축제 : 퀴어퍼레이드 동인련 참가단 CHANGE!!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올해 퀴어퍼레이드에서 CHANGE!의 슬로건을 들고 참가했습니다. 도무지 변하지 않는 세상에 '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희망을 담겨져 있는 슬로건이었습니다. 여러 준비를 마치고 퍼레이드가 열리기 전 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CHANGE! 차량을 꾸며놓고 사무실로 달려가 피켓이며 차량에 달 선전물을 비닐로 잘 포장(?)을 했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서 겨우 끝났구요. 퍼레이드 할 시간만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기를 빌며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비가 내리더군요. 퍼레이드가 열리는 베를린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참가단 CHANGE!는 동인련 웹진 특별판 '랑' 배포, 연필, 버튼, 자석버튼, 자료집 등 판.. 2010. 7. 4.
뒷걸음질 치는 세상에 우리가 외쳐야 할 것은? 바꿔!!! CHANGE! - 2010 퀴어문화축제, 퀴어퍼레이드를 기다리며 지난 23일 일요일, 사무실에 동인련 회원들이 모여 올해 퀴어퍼레이드 차량과 가판 그리고 행진 때 들고 나갈 피켓을 만들었다. 우드락에 예쁜 글씨를 써서 오린 다음 머리띠에 붙이거나 피켓에 색지를 붙이는 작업들을 했다. 그리고는 차량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보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운 수다들이 이어졌다. 작년 퀴어퍼레이드 때 동인련 참가단은 'Pink Revolution'이란 이름으로 함께하며, 핑크색 삼각형 피켓에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원한다!’, ‘군형법 92조 즉각 폐지하라!’, ‘성소수자 차별없는 일터를!’등의 구호를 담아 행진했었다. 버리기 아까워 보관해두었던 그 피켓을 보자니, 지금 우리 사회에 바뀐 것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 2010. 5. 26.
누구에게도 퀴어하지 않은 퀴어문화제가 되길 2009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4. 친구와 단 둘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물었지요. “주말에 뭐 할거냐?” 저는 서울에 가서 ‘퀴어문화제’에 참석할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게 뭐냐는 친구의 질문에 성소수자들이 모여서 당당하게 정체성을 드러내고 축제를 즐기는 자리라고 대답했지요. 5초 쯤 생각한 다음, 친구가 물었습니다. “거길 네가 왜 가냐?” 저도 5초 정도 생각한 다음, ‘뭐랄까, 인권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라고나 할까-’라고 대답했습니다.(함양이라는 단어가 좀 우습지만, 정말로 저도 모르게 그런 단어가 튀어나왔습니다.) 친구는 희한하게 작동하는 조형물을 감상하는 표정으로 5초가량 저를 쳐다보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아 그래.” 저는 같이 가자고 권했습니다. .. 2009. 7. 6.
퀴어문화축제를 가게 되기까지... 2009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3. 내가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참가한 것은 2007년, 바로 재작년. 그 때 나는 라틴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가경위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라는 카페에 올라온 퀴어문화축제 개최공지를 보고 참가했던 것 같다. 거기서 ‘아수나로’ 회원이자 라티너인 해밀을 만났고, 그로 인해 퍼레이드에 처음 참가했음에도 적응을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시로부터 2년 전(2005년) 나 자신의 첫사랑이 여자였음을 까맣게 잊은 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성애자'는 아니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잠시 다른 얘기로 그것도 슬픈 얘기로 빠지자면, 난 첫사랑에 첫 아웃팅을 당해본 경험이.. 2009. 7. 6.
미소가 떠나지 않던 날 2009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2. 친구에게 물어봤다. “넌 ‘인권’이나 ‘인권운동’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난 좀 부정적?”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권운동이란 이런 이미지 아닐까. 오랜 기간 억압을 받아온 듯한 표정과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어둠의 세계에서 하는 그 정도의 일. 이 부정적인 이미지와 실제가 괴리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권운동을 비롯한 각종 운동의 지나친 비장함은 그런 이미지를 생성해내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해왔었기에, 이번에 처음 참석해본 퀴어문화축제는 나에게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운동과 즐거움은 하나가 될 수 있구나. 시종일관 화려하고 유쾌했던 그날의 축제 속에서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축제를 통틀어서 가장 인상이 .. 2009. 7. 6.
하루, 꿈을 보다 2009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1. 올해로 세 번째 참여한 퀴어 퍼레이드. 재작년,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의 축제 또한 마냥 즐기고 좋아했던 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 의해서이다. 1. 열린 공간 - 개방성 첫째는 그것이 “열린” 공간이라는 이유에서이다. 토요일 대낮, 청계천 한복판의 수많은 이성애자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역시나 수많은 성적소수자들이 (명백히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의심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낸 채,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짜릿한 전율이었다. 평소처럼 토요일 밤거리의 종로나 이태원이 아닌, “대낮”에 그 게토를 벗어난 곳에 모여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 곧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 2009. 7. 6.
빛나던 우리들의 자긍심 행진 _ 6월호 활동소식 : 동인련 회원들이 전하는 동인련 생생한 활동 해와 _ 동성애자인권연대 걸음[거:름]활동가 지난 5월 31일, 올해도 어김없이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나에게는 직접 거리로 나선 세번째 퍼레이드였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다. 2006년 처음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할 당시의 나는, 혹시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혹은 사진이라도 찍혀 얼굴이 여기저기 떠돌게 될까봐 가슴 졸이던 소심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 친구들에게 퀴어퍼레이드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일반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름다운건 제각기 다른 빛을 내는 것들이 어.. 2008.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