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는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으라
대전 부치 라라
테마송♪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레미제라블 OST)
10월 10일 대한문에서 개최된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에서는 6명의 연사들이 성소수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외쳤습니다. 행성인 웹진에서는 이들의 발언을 게재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세대, 다양한 성적지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여성으로 연결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시다. (무대에서 발언 당시 각각의 연사마다 테마송이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테마송을 들으며 발언문을 보면, 연사들의 발언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위 테마송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노래의 유튜브로 연결됩니다. )
안녕하세요. 성소수자 배제하는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악 저지 운동본부 활동가 라라입니다. 성소수자 배제하는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악 저지 운동본부는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항목 삭제 개악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여론을 확산시켜 개악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습니다. 지지하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궐기대회인 만큼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테마송으로 했는데 어떤가요? 여성가족부가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에서도 짤렸다고요.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외면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9월 18일 금요일 대전시의회에서는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을 삭제하고 '모든 성평등'이란 표현을 '양성평등'으로 바꾸는 개악안이 단 하나의 이의도 없이 가결됐습니다. ‘양성평등 사회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에 맞게 제명을 변경하고, 성소수자 관련조항을 삭제하는 등 내용과 용어정비’ 가 개정사유입니다. 7월 1일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가 시행되고 불과 두 달여 만에 개악이 진행됐습니다.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가 시행되고 기독교계에서 반발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미 제정된 성소수자 인권규범이 삭제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성평등 조례를 양성평등 조례로 바꾸고 성소수자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그저 글자 몇 개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이 도시에서 성소수자로 있어도 괜찮다는 위로였고 자긍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례 개악을 막지는 못할망정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을 야기하는 사회문화를 변화시키는데 가장 앞장서야 할 정부부처인 여성가족부에서 개정하라고 공문을 보냈다니요. 이 일로 혐오세력이 기고만장해져 얼마나 날뛸지,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분노와 두려움을 함께 느낍니다.
대전시의회는 스스로 제정한 조례가 불과 한 달여 만에 개정될 위기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입장도 없이 모르쇠를 반복하는 무책임한 행보만을 보여줬습니다. 9월 7일 대전시의회 현관에서 농성 중에 대전시의장과의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대전시의회 김인식 의장은 “아직 의안이 의회로 제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다.”, “시장에게 가서 건의하라.”는 발언을 거듭 반복했습니다. 또한 “지금은 말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안건이 제출되면 상임위 의원과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간담회를 준비해 충분하게 제대로 심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 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대전시와 대전시의회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 한 번 없이 의사일정도 공개하지도 않고 긴급으로 올려 폐쇄적으로 개악을 추진했습니다. 대전시청과 대전시의회 앞에 걸어둔 운동본부 현수막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철거됐고, 대전시의회 의장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의장과의 면담을 재차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시장과의 면담도 재차 요구했지만 경호원에게 제지당해 끌려나왔습니다. 9월 10일 보건복지여성국 국장, 여성가족청소년과장과 면담을 진행했지만 “우리도 힘들다. 위에서 공문이 내려온 거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안건이 의회로 제출되고 9월 15일 해당 상임위인 복지환경위원회 위원장과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들으라고 면담을 진행했지만, 자신은 운동본부에서 연락받은 적 없다. 대전시의회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매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결국 핸드폰으로 전화기록과 보낸 메일함을 보여주며 따지는 헤프닝도 생겼지요. 확인 못해서 미안하다, 면담 끝나고 질의서 확인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질의서를 의원들에게 보내 응답을 부탁드렸지만 결국 질의서 답변은 어느 의원한테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9월 16일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날, 대전시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활동가에게 혐오세력이 피켓 문구를 가리고 욕설을 하는 등 시비가 붙었었습니다. 정보관은 이 상황에 혐오세력을 저지하기는커녕 왜 1인 시위는 해서 일을 만드냐고, 이곳에서 1인시위하지 말라는 얘기만 했습니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골칫덩어리’ 성소수자를 대하는 대전시와 대전시의회의 태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임위원회 심의 중에는 절차적 과정에서 충분히 협의가 이뤄졌는가를 묻는 질의가 나왔지만, 대전시 보건복지여성국 국장은 “첨예한 대립이 있는 상황에서 공청회를 여는 것은 실익이 없다.” 고 답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성소수자들에게 너무나 위협적입니다.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틀어막고 있습니다. 혐오 폭력을 가하는 강자와 그 폭력을 겪는 사회적 약자,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자명하지 않습니까? 저들에게는 아닌가 봅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혐오세력과 성소수자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더욱 강력히 지켜지고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권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울화통이 터집니다. 9월 18일 본회의에서는 단 한 명의 반대 없이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을 삭제하는 성평등 기본 조례 개악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로써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혐오와 차별에 대해 법으로 보호받기 어려워졌습니다. 대전시 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시 구로구, 과천시, 경기도 등 지자체 곳곳에서 보수·기독교 단체의 반발 때문에 성평등 정책이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안에서 저항은 더 힘든 일이 될 것이기에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여성가족부의 공문을 보며 계속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성평등 기본 조례의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이 본 조례의 모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취지를 벗어났다고 합니다. 저는 성소수자 여성입니다. 두 정체성은 단절되어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성소수자로 정체화하고 만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교정 강간 등 성폭력에 노출되곤 했습니다. 이는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입니까? 성차별은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다양한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일어납니다.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은 모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항목을 삭제한 성평등 기본 조례가 어떻게 양성 평등한 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여성가족부는 똑바로 나를 보세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