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커밍아웃입니다
화영 & 서연
테마송♪ - Born this way (Lady GaGa)
10월 10일 대한문에서 개최된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에서는 6명의 연사들이 성소수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외쳤습니다. 행성인 웹진에서는 이들의 발언을 게재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세대, 다양한 성적지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여성으로 연결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시다. (무대에서 발언 당시 각각의 연사마다 테마송이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테마송을 들으며 발언문을 보면, 연사들의 발언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위 테마송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노래의 유튜브로 연결됩니다.)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스케치 바로가기
우리 모두가 이 LGBTIQ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삼실이네 집 (좌로부터 성실,화영,서연,복실,은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앞에서 소개해주신 바와 같이 40대 중반의 성소수자 화영입니다. 여기 저와 같이 무대에 있는 이 분은 저와 같이한 지 9년 차가 되어 가는 제 파트너 장서연 변호사 입니다. 이미 장변은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시리라 보는데, 최근 몇 년간 저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성소수자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을 보면 LGBTI계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세 마리의 강아지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제가 제일 소중해 하는 활력소입니다.
우선 이 자리를 하기 까지는 많이 부담스러워 주저하였습니다만, 커밍아웃을 대 놓고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여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 취미가 커밍아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하실 텐데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들어 보시면 바로 이해하실 것입니다.
20대 초∙중반 성정체성으로 혼돈을 겪고 있었고 여자 친구와 문제가 있었을 당시 여고 동창들이 제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고 무슨 문제가 있냐며 묻더군요. 얘기를 할 수가 없어 아무것도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평소와 다른 저를 보고 집요하게 추궁하더군요. 결국 저는 사실 ‘난 여자가 좋아’라고 했었고 그 말에 그 친구들도 깔깔 웃으며 자기들도 여자 좋다며,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했던 얘기가 ‘난 여자 엉덩이와 가슴을 보면 좋다’ 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에 두 친구는 제가 자기들과는 다름을 알게 되었고, 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첫 커밍아웃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주변 절친들에게는 커밍아웃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내 가족, 직장에는 철저히 비밀이었죠. 아마도 이 두 부류의 그룹에게는 평생 하지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좌로부터 12세 은실이, 12세 복실이 5세 성실이
다시 시간은 3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제 어머니의 칠순 생신을 앞두고 가족들과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언니와 남동생 가족이 한국에 들어왔고 여행지에서 저녁에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리다 문득 ‘지금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겠다고 결심한 지 몇 분도 안돼서 입을 열었습니다. 칠순 생신에 생일 선물로 커밍아웃을 한 셈이었죠. 가족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어머니의 반응은 그것도 다 인연이라며 엄마는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보수적일 것이라 큰 언니는 ‘네가 행복하면 괜찮아.’ 라며 ‘이젠 서연이도 내 동생이야.’ 라고 했죠. 둘째 언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혹시 제자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으니 앞으로는 그 점을 고려해야겠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저는 가족에게도 성소수자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느 누구라도 내가 레즈비언임을 아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초,중,대학교 동창 송년 모임에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친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습니다. 그 중 자녀를 두고 있는 한 동창은 자기 아이가 게이일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본인은 괜찮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평상시에 성소수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 본인의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2015년 대구 퀴어퍼레이드
작년에는 제가 몸 담고 있는 직장에도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제 회사 대표 분이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시기에 갈증이 컸습니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저와 장변의 관계 및 제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대표께서는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오히려 그 이후로 관계가 더욱 편해지고 가까워졌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만계 한국지사에 근무를 하는데, 대만 본사 직원들도 저와 밀접한 관계이기에 올해 대만 출장 때에 CEO를 포함한 여러 동료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 자리도 역시 성공적이었습니다.
심지어 동네 카페 주인이나 술집 주인에게도 왜 결혼을 안 했냐는 얘기를 들으면 전 아무렇지도 않게 아직 법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고, 여자친구랑 산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제가 동성애자임을 알아 차리고 그게 뭐 대수냐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줍니다.
2015년 대구 퀴어퍼레이드
제가 왜 커밍아웃을 이렇게 빈번히 하느냐 하면, 이 세상에는 내 친구, 내 가족, 내 지인 중에는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무서운 존재도, 더러운 존재도, 거부할 존재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죠. 20-30대 분들에게는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는 비율이 어느 연령대 보다 더 높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제 커밍아웃을 통해 수많은 40대 50대 심지어 저희 어머니 70대의 분들과 소통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중∙노년도 이렇게 열려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사회는 바뀔 것이기에 다소 목적지에 가는 여정이 길고 험할 수 있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환하게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는 저! 제법 멋진 여성이지 않습니까?
이로써 제 얘기를 마칩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인권을 위해 늘 힘써주시는 여러 활동가 여러분 지지하고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LGBTIQ 역사의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