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소수자’,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커밍아웃 - <2016 여성성소수자 떠들기대회>에 부쳐
정현희(언니네트워크, 퀴어여성네트워크)
“내 삶을 누군가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해버린다면 정말로 외로울 것 같다.”
나이듦과 여성의 삶을 그린 TV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나온 대사다. ‘중졸 콤플렉스를 가진 이모의 지식인 사랑’, ‘딸년은 과부에 아들은 장애인인 오쌍분 여사’ 등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한두 줄의 묘사는 우스꽝스럽고 모욕적이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병사’로 기재된 순간도 그러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을 묻는 것을 두고 ‘시체팔이’라고 농락하는 말들도 그렇다. 한두 줄로 모욕당하는 누군가의 삶을 외롭게 두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는 매순간,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커밍아웃이다.
‘말’은 항상 부족하고 말들 사이의 빈 틈새는 성소수자들을 위험과 모험에 빠뜨린다. 불과 십수년전에도,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보다는 ‘성도착자’, ‘복장도착자’, ‘호모’ 따위의 말이 더 익숙했을 대한민국이다. 성소수자인권운동과 국내외의 문화컨텐츠, 국제인권문서에 서명하면서 한국어로 새겨지게 된 몇 가지 인권 기준을 통해, 성소수자는 그 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절한 이름으로 이 나라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 국회에서 ‘제3의 성’이라는 발명품이 나타났다. 1「여성발전기본법」개정에 관한 논의 중, 법의 명칭을 ‘성평등기본법’이라고 하면 ‘제3의 성’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되어야한다는 의견이 입법자, 정책결정자, 법전문가라는 권위로 초대되어 회의록에 적혀졌다. 2 ‘성적 지향’은 성별정체성을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양/성평등기본법과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성소수자는 싸잡아 ‘남/녀가 아닌 것’으로 퉁쳐졌거나, 남자/여자들은 어련히 포함될 것이기에 구태여 명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러 법제명은 ‘양성평등기본법’으로 확정되었다. 이 회의록은 2015년 8월, 여성가족부가「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의 성소수자 보호조항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합리화하는데 사용된 유일한, 공적인, ‘객관적’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2015년 10월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가 서울 시청역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3 6명의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무대에 서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4
“그 당시 여자의 업무라는 것은 ‘경리직’ 정도였어요. 게다가 여자는 직장의 꽃이라고 불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명 ‘바지씨’에 속한 남장여인이었던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더욱 한계가 있었지요. 제가 속한 ‘바지씨’는 요즘 언어로 ‘부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당시에 이반(동성애자)은 바지씨와 치마씨로 구분했는데, 사실 바지씨는 트랜스젠더에 가까웠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 2015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윤김명우 님 발언 중
남장여인, 바지씨, 부치, 이반, 트랜스젠더 남성… 하나의 삶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하나가 아니다. 그럼에도 “성적지향은 성별정체성과 다르다”, “부치는 유사남성이다, 또는 (트랜스젠더 남성과 달리)여성이다”와 같은 단언은 마치 객관적이고 소통가능한, 때로는 어떤 커뮤니티에 소속될 자격을 얻을 수 있으며, 법정책에 포함/배제될 가능성을 기술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는 다양한 성소수자들 중 어떤 정체성들 사이의 친연성(일종의 족보나 계보라는 역사발생적 의미에서), 연속성(정체성을 가리키는 ‘말’은 구분되지만, 어떤 경험은 공유한다는 점에서)을 지워버릴 때도 있다.
2015년의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기획단의 후속 모임으로 ‘퀴어여성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퀴어여성네트워크는 지난 5월, 여성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여성마라톤대회>에 참가해, 40여명의 참가자들이 ‘성소수자 인권없이는 성평등도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등에 붙이고 달렸다. 그러나 마라톤 주최 측의 정책에 따라, 성별에 따라 색깔이 구별되는 참가번호표를 붙여야했다. <여성마라톤> 사무국과의 상의 하에, 참가자들 모두 주민등록번호 상관없이 모두 ‘여성’으로 신청하고, 번호판을 여러 색의 매직으로 칠해 꾸며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다만, 마라톤대회가 다 그렇듯, 남/여 기록을 구분하여 시상하기 때문에, “기록에 상관이 없으시면…”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우리 중에 누군가 기록을 냈더라면, 주최 측뿐 아니라 우리 역시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종종, 1)오늘날 이태원이 게이와 트랜스젠더 여성의 장소로 의미화될 수 있다는 것, 2)어떤 나라에서는 HIV/AIDS운동이나 성노동자 운동 속에 게이와 트랜스젠더여성이 함께 존재하는 것(물론 머리 뜯고 싸울 수는 있지만 그 또한 함께하는 방식일 수 있다), 3)어떤 국제여성인권회의에서는 장애여성과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남성이 ‘난소, 자궁’에 대해, ‘낙태와 재생산권’에 대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눈다는 것, 4) 장애인, 트랜스젠더, 젠더퀴어나 부치가 ‘공중 화장실’ 접근성에 대해 논의를 함께하는 것에서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여성’이라는 것 역시 그 정체성과 경험 자체를 본질화하지 않으면서도 연결의 키워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로 귀찮고 서로를 스트레스 받게 하는 일이지만,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여성의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여성’의 역사문화적 계보 속에 있다고 생각될 수 있는 정체성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키워드가 될 수 있으리라.
그래서 <2016 여성성소수자 떠들기대회>는 우리가 여성+퀴어를 통해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이야기’가 들려주는 맥락을 경청하는 장소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여성성소수자’라는 것이 또 다른 커밍아웃의 장소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지난 10월 8일(토) / 홍대 비보이 극장에서 <2016 여성성소수자 떠들기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간략한 프로그램 소개와 진행 사진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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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성중립(gender neutral), 성별 미/불확정(indeterminate), 기타(other)에 대한 고려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본문으로]
-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322회 2차 회의록 (2014.2.24) http://ko.pokr.kr/meeting/1932223653/dialog#143 [본문으로]
- 여성가족부의 성소수자 차별에 분노하는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스케치 (2015.10.13) http://lgbtpride.tistory.com/1084 [본문으로]
- 2015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발언 전문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랑>에서 볼 수 있다. 1. 여성가족부는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으라 http://lgbtpride.tistory.com/1085 2. 남학생으로 입학, 여학생으로 졸업? http://lgbtpride.tistory.com/1086 3. 사랑만으론 부족해 http://lgbtpride.tistory.com/1087 4. 육십 평생을 사람으로, 여자로, 동성애자로 살아왔습니다 http://lgbtpride.tistory.com/1088 5. 성소수자 인권 빼앗아 모든 이들의 평등 빼앗겠다는 치졸한 여성가족부 http://lgbtpride.tistory.com/1089 6. 내 취미는 커밍아웃입니다 http://lgbtpride.tistory.com/109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