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에세이] 이연수 활동가를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소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이 글을 쓰기로 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인을 기리고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미화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점에 점을 찍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좋았던 기억과 그렇지 않았던 기억 모두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는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고인을 기립니다. 연수, 행성인 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여러분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의 활동명은 ‘소하’입니다. 거스를 소(遡), 강물 하(河).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으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활동명은 연수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연수와는 작년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 ‘조각보’의 트랜스젠더 자조 모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같은 MtF라는 공감대, 인권 운동에 대한 열정, 애니메이션이라는 공동 관심사로 빠르게 친해졌습니다. 연수와 저는 여러 활동을 같이했고 그 중 비중 있게 활동한 곳이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었습니다.
연수는 트랜스젠더인권에 진심인 활동가였습니다. 만날 때면 언제나 트랜스젠더 인권 현실에 대해 말했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해 말할 때면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정체성을 말할 때 트랜스젠더라고 밝히듯이 시스젠더 1도 시스젠더라고 말해야 한다.”, “퀴어 운동에서 LGB 운동외에 추가로 트랜스젠더 운동이 필요하다.”, “트랜스젠더는 다른 퀴어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트랜스엘라이가 필요하다.” 등. 때로는 과격하게 말하여 다른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었습니다. 연수의 열정은 말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많은 일을 도맡아하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본인 손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자 했는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회장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팀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사회를 맡아 하는 것을 좋아했고 집회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세 바퀴 시즌3에서 시작한 트랜스젠더 인권 캠페인 팀에서는 팀원들과 함께 ‘트티켓’을 만들었습니다. 주위의 평가도 좋아서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는 트티켓으로 후속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행성인 내부에서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해 많은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들을 끝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이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남은 이들이 연수의 열정과 의지를 이어 끝내지 못한 일들을 완수해 나갈 것입니다.
연수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자긍심도 대단했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성별 정정을 하고 나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트랜스젠더로서 받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연수는 성별 정정을 마쳤음에도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드러냈습니다. 연수는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용기 있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차별을 겪으면서 싸울 줄 아는 활동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어김없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쉽게 굽히지 않는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서로가 힘들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모난 성격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것이 연수에게는 꺼지지 않는 투쟁의 불씨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또, 같은 활동가로서 존경했습니다.
연수는 개그 욕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단체 채팅방에서 농담을 많이 했는데요. 유치한 언어유희를 한다던가, 뜬금없이 ‘짤’(상황에 맞춰서 사용하는 이미지를 통칭하는 인터넷 용어)을 올려 분위기를 환기하고는 했습니다. 수상할 정도로 ‘어르신 짤’이나 ‘애니메이션 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어르신 짤을 올려 인사를 나눴고, 상황에 맞춰서 애니메이션 대사가 쓰여있는 짤을 많이 쓰곤 했습니다. 도대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얼마나 스크린샷을 저장해놓은 건지, 어떻게 제때 맞춰서 가져오는 것인지. 이제는 영원한 미스터리가 되었습니다.
연수는 자기 생각을 글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연수는 자신의 차별 경험을 솔직하게 글에 담았습니다. 혐오와 차별에 민감하고 날카롭게 반응했고 이를 글로 풀어낼 줄 알았습니다. 행성인 웹진 2에도 많은 글을 썼었는데요. 브런치에는 <나의 트랜지션 일기>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에세이에는 평소에 말했던 신념과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말하기 쉽지 않은 경험담을 담았습니다. (많은 분이 이 에세이를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일부 경고 글이 있는 몇 개의 글은 정신건강을 위해 읽지 않을 것을 권해드립니다)
연수는 자신이 고통받는 만큼 타인을 도우려는 활동가였습니다. 그의 팔에는 “Transforming pain into sympathy and solidarit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공감과 연대로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평소 연수가 쓰던 글에서도 약자와 연대하겠다는 다짐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수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연수가 야속하다고도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트랜스젠더에게 부탁합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들의 몫만큼 힘 빼고 살아가 주세요.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로가 있음을 알아주세요. 트랜스젠더들은 고립감을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립감에서 조금 물러나서 다시 생각해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비록 느슨할지라도 의지할 수 있는 서로가 있습니다. (그래도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행성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행성인에는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줄 퀴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시스젠더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트랜스 앨라이가 되어주세요. 트랜스젠더는 시스젠더 퀴어와는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잘못 보일까 걱정해야 하고 성별 분리된 공간이 많은 이 사회에서 배제당하지 않을까? 가슴을 졸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평소에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합니다. 부디 트랜스 앨라이가 되어서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공간, 집단,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연수의 에세이<나의 트랜지션 일기>에서 마지막으로 썼던 문장으로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서로 연합하여 한 개인이 아닌,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함께 싸워나갔으면 좋겠다.” 3
- 출생 시 지정된 성(性)과 스스로 정체화한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두산백과) [본문으로]
- '행성인 웹진 :성적지향 · 성별정체성' 카테고리의 글 목록 에서 연수가 썼던 글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 <나의 트랜지션 일기> 73장: 트랜스 앨라이 되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