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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활동 후기] 퀴어답게 안녕히 일하려면 – <퀴어 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 후기

by 행성인 2023. 5. 27.

 

라넌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성소수자 정체성을 갖고서도 조직에 적응하여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한참 했던 때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하던 고민이지만,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다. 그 당시에는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노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상상해왔기 때문에 던질 수 있는 질문도 막막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많은 성소수자를 만나고, 그들이 일하는 현장에 대해 엿듣고, 나 역시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됐다. ‘아, 다들 이렇게 대충 숨기면서 사는구나’. 생각보다는 할만 했지만 답답했다. 마치 나 혼자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것 같았다. 이제 일하기 시작한지는 2년이 조금 넘었고, 고민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요즘의 주된 고민은 ‘직장 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해도 괜찮을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이다.

 

그러던 중, 얼마전부터 활동하던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퀴어동네'와 함께 노동법 교육을 기획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단체였기 때문이다. 퀴어동네가 처음 생기고 언론에 인터뷰가 실렸을 때가 생각났다. ‘한국에 드디어 이런 모임이 생기다니!’, 마치 든든한 빽이 생긴 기분이었다.

 

 

퀴어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 (일명; 퀴노아)

웹자보 ⓒ 행성인 노동권팀 제공

 

 

<퀴어 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는 총 2강으로 기획되었다. 강의해준 노무사 선생님들이 활동하는 퀴어동네는 퀴어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노무사 및 법률활동가들의 모임이다 

 

앞 파트는 근로계약서를 함께 살펴보며 어떻게 하면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연장근로수당, 연차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또한 징계, 해고, 근로계약 갱신 거절에 다툴 수 있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퀴어에게 안전한 일터’를 주제로 차별과 직장내 괴롭힘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해외 노조의 사례를 알아보며, 직장에서 커밍아웃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두 강의 모두 ‘알고 있으면 좋은 상식'일 뿐만 아니라 삶에 와닿는 내용이 많아서 초집중하며 들을 수 있었다. 근로계약서에 딸려있는 권리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면서, 정해진 근로시간보다 더 일해도 보상받지 못하거나 연차가 있지만 제대로 쉬지 못하는 주변 성소수자 친구들의 사례가 떠올랐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일터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 답답한 마음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성소수자 당사자가 모여서 만들어나가는 강의가 갖는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사소하다고 말할지도 모를 부당한 대우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고,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노동법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직접적인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동시에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작은 구절 하나 하나가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과 연결된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해석과 상상력이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퀴어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 (일명; 퀴노아) 연속 강의 참여자 인증샷 ⓒ 행성인 노동권팀 제공

 

강의 중에 나의 삶을 지키는 ‘도구’로 노동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관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록 그 도구에 부족함이 많고 바뀌어야할 점도 많지만, 잘 활용한다면 언제든 다투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막연한 불안감을 갖기 보다는 조금은 더 적극적인 태도로 일터를 마주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곤란한 일이 생겨서 노동법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없는게 가장 좋겠지만, 앞날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머릿속에 챙겨둘 필요가 있다. 나의 권리를 알고 있으면 더 당당하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퀴어동네 명함 ⓒ 퀴어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