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입주조합원 및 교육 활동가 ‘이음이’ & 행성인 HIV/AIDS팀)
2019-2020년 당시 살던 동네는 재개발 사업이 점차 진행되어 그 동네에 살던 주민들도 하나 둘 떠나 동네가 삭막해지던 차에 나 또한 집주인과 이웃집의 갈등으로 인해 급하게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 당시 보증금 200만원으로 갈 수 있는 집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밖에 없었다. 더구나 나의 생활패턴을 돌아봤을 때 계속 이대로 혼자 살다간, '[특종] 선천성 장애를 가진 지역의 청년 고독사하다.' 라는 뉴스라도 뜰 것 같은 두려움에 찾아낸 대안이 바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 였다.
그렇게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하 민쿱, https://minsnailcoop.com/89)이 공급하고 운영하는 수많은 달팽이집 중 LH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청년주택을 위탁받아 조합이 대신 운영하는 LH특화형 주택에서 입주조합원으로, 민쿱이 매칭해준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민쿱의 운영방침에 의해 조합원들과 함께 운영하는 달팽이집의 보증금과 임대료는 청년들의 부담 가능한 적정선에 맞추면서 ‘LH’와 같은 공공기관과 협업하여 주변 시세 50~70% 내외로 공급하고 있다.
달팽이집 입주 조합원들은 매월 반상회를 열고, 달팽이집 내에서 역할을 분담하면서 다 같이 집을 관리한다. 때문에 조합에서는 따로 관리비를 걷지는 않는다. 달팽이집에 조합원으로서 입주하기 위해서는 예비조합원교육과 평등문화교육에 참여하고 입주 계약서 항목 중 평등문화규약에도 동의해야 입주 할 수 있다. 예비조합원교육은 청년주거권운동과 민쿱의 역사를 시작으로 협동조합을 알려주고 달팽이집의 문화를 전하면서 주거권 역사를 소개한다. 평등문화교육은 내가 달팽이집을 살아가면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비롯하여 서로의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알아보며 달팽이집에서는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존재로서 살아가자는 바람을 담아 만들어진 교육이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평등문화약속문 1. 우리는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협동조합으로써, 서로를 신뢰하는 생활공동체를 지향한다. 2. 우리는 연대, 교육, 지역사회 관여 등의 가치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 7원칙을 준수한다. 3. 우리는 서로의 성격, 가치관, 삶의 방식 등이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존중한다. 4. 우리는 나이, 사회적 지위, 성별, 학력 등에 의한 차별을 반대한다. 5. 우리는 공동체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성폭력에 반대한다. 6. 우리는 평등문화를 침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공동체로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한다. 7. 우리는 평등문화를 침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한다. |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평등문화 약속문. 다음의 링크 https://minsnailcoop.com/65 에서 평등문화규약과 준칙을 살필 수 있다. 평등문화교육은 다음의 링크 https://minsnailcoop.com/128 에서 신청할 수 있다.
평등문화교육에서 내 안의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달팽이집을 운영하면서 접했던 차별적인 사례를 참여자들에게 들려주는 시간이다. 그 중 하나가 '쉐어하우스에 HIV/에이즈 감염인이 같이 살아도 돼요?' 라는 말이었다. 입주자가 퇴실하면서 남겨둔 말이어서 따로 답변되지 않았다. 그 당시엔 코로나 전파 방지를 위해 정부의 방역수위가 높던 시기였다. 조합에서는 방역물품을 지원하거나, 코로나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직장을 잃은 입주조합원들의 임대료를 일부 감면해주는 등의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정부의 집합금지 요청 때문에 매달 진행하는 자치회 또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경되었다. 와중에 서울 이태원의 클럽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언론사들은 연일 기사를 내기 바빴다. 그 시점에 던져진 성소수자를 비롯한 HIV/에이즈 감염인이 같이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열려있는 달팽이집의 기조와 어울리지 않았다.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듯, HIV바이러스는 일상 속에서는 당연히 감염하지 않고, 공기 중으로도 전파되지 않는다. 감염 당사자가 예방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면, 체내 HIV바이러스 수치는 점차 줄어든다. 또한 바이러스가 점차 줄어들게 되면 결국 HIV바이러스 미검출 상태가 되는데 이는 전파가능성 마저 상실한다(우리는 이걸 ‘Undetectable = Untransmittable’ 줄여서 ‘U=U’ 라고 부른다). 이 문제를 그저 ‘우리는 같이 청년 주거권 문제에 놓여있는 청년이니까 살아도 된다’ 로 치부하기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던 중 서보경 작가가 집필한 『휘말린 날들』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불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만나고 도움을 준 HIV/AIDS 인권 활동가들과 작가님이 책을 통하여 다양한 공동체를 만나기 위해 '휘말린 사람들'을 구성해서 기획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에 교육을 준비하는 동료와 조합 상근활동가에게 책을 다 읽고 저자와의 만남을 기획해보자고 제안을 던졌다.
불편함을 품기
민쿱의 평등문화 약속문과 평등문화교육은 함께 살면서 녹아들게 하는 마음에 만들어졌다. 입주 조합원들은 입주 기간 내에 평등문화가 침해 받는 순간들이 있다면 평등문화기구를 통해 고충을 제기하면 조합에서는 해당 문제를 같이 풀어가기 위해 매 순간 노력에 노력을 기하고도 있다. 마치 HIV 감염인들이 매일 HIV 예방약을 복용하듯이, 혹은 아직 감염하지 않은 비감염인이 HIV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HIV 예방약을 복용함으로서 감염하는 가능성을 낮춰주는 프렙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제껏 경험하지 않았던 낮선 세계로 초대받거나 들어가는 입장에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왜 이런 방식을 택하였는지 이유를 묻고 싶어도 ‘여기는 약속문이 있기 때문에 그저 지키셔야 해요’ 라고만 답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우리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감수성을 헤아리며 해당 이슈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들이 있다면 달팽이집에서 같이 살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먼저 살고 있는 입주 조합원들이 달팽이집에 입주하고자 하는 예비조합원에게 조합의 문화를 알려주고, 달팽이집 안에서도 기존의 입주 조합원이 각자의 달팽이집에서 만들어진 규칙들을 알려주는 문화가 있듯이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고민을 담아 책읽기 모임을 진행했다. 같이 하기로 한 조합원 두 명과 외부 채널을 통해 모이게 된 두 명의 청년들이 2주 간격으로 3회차의 모임을 갖고, 마지막에는 '휘말린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기획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이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HIV/AIDS에 대한 생각들과 편견을 나누는데 나아가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궁금증도 풀어보고, 자신들의 HIV/AIDS 감수성을 알아보고,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과정의 전/후를 통하여 HIV/AIDS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나누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성소수자를 비롯해서 HIV/AIDS 감염인 이슈에 지지한다’ 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에게 ‘왜 지지하세요?’ 라는 질문을 던질 때, ‘ 같은 동료시민이니까 지지합니다’ 이상의 답변을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담아서 책읽기 모임과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지지합니다' 선언 너머
사회적인 의제에 있어서 당사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앨라이(지지자)들은 지지와 연결의 감각을 높여준다. 하지만 그들 중 몇몇은 ‘성소수자 인권은 지지하지만 그들의 음지문화는 아니다, 성적지향 or 성별정체성에 따른 성소수자만 지지한다’는 경우도 있다. 혹은 자신들만의 정치적 올바름이 깨지는 상황에 대해 이래도 지지하냐고 물으면 뒷걸음질 치거나 지지를 철회하는 앨라이들을 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는 모두 평등한 존재! 모두는 차별금지법에 의거하여 존중받아야한다.’ 라는 ‘선언’만으로는 자칫 그 자리에 머무르는 당사자들의 입지를 고립시킨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군가와 같이 살아간다’ 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팽이집의 ‘평등문화약속문’은, 입주 조합원들이 서로에게 안전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개입하지 않으며 차별하고 선을 긋기보다 같이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단 달팽이집에서만 지켜지는 노력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살아간다’ 라는 것은 결국 이 사회에서 나는 누군가가 먼저 경험했을수도 있는 것을 내가 뒤에서 따라가거나 곁에서 함께 걸어가고는 것이라 생각한다. 『휘말린 날들』 의 서문을 시작하는 문장처럼 말이다. - '우리는 그저 앞줄에서 먼저 바이러스를 만난 것 뿐입니다. 그래서 뒷줄에 서 계신 당신들께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들을, 느끼는 것들을, 필요한 것들을 말이지요.'
‘청년 주거권’의 관점에서, 우리는 사회에서 청년 또한 주거취약계층으로 대두되어야 하고, 그러한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버텨낸 주거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한 경험은 앞서 HIV/AIDS를 겪은 수많은 감염인과 동료들이 먼저 나서서 잘못된 인식과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면 그러한 감염병을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또 다른 사회적인 이슈에 감염하게 된다면? ‘모두는 평등한 존재다’ 라는 문장을 선언으로만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주거권과 감염의 두려움에 뒷걸음치기보다 어떻게 해야할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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