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달달한 날, 할래윈 파티
우리 인보는 드디어 단것을 좋아하는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탕과 아이스크림입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아 미감을 느낄 때 그 눈 빛은 황홀하기 그지없는 달달함입니다. “아~맛있다. 아~행복해요”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집에서 사탕, 아이스크림 그리고 청량음료는 금지입니다. 단것을 일상에서 먹지 않도록 하는 저의 방식이지요. 단것들은 오로지 특별한 날 (생일잔치) 또는 외부 행사에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탕이 약으로 돌변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아플 때 사탕을 줍니다. 그리고 탈수를 예방하고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설탕물을 먹입니다. 물론 아이가 맛있게 먹지요.
올해도 달콤함이 하루 종일 넘쳐나는 핼러윈을 맞이했습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핼러윈 파티는 이 틀간 이어졌습니다. 그저께는 어린이집에서 그리고 어제는 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가했어요.
이번 핼러윈을 즐기는 일에 찰스 아빠가 빠질 수 없지요. 아이만큼이나 행사를 신나라 하는 아빠인걸요. 올해 핼러윈을 맞이한 찰스 아빠는 망토를 하나 구매했어요. 드디어 마녀 모자를 쓰고 망토를 걸치고 어린이집에 갔습니다. 부모님들이 각자 음식을 장만하여 한 상 가득히 차려 놓았습니다.
두 명의 어린이가 오프닝 공연을 했습니다. 하나는 춤, 다른 하나는 노래였습니다. 공연이 열리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오로지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광장에서 열리는 파티에는 여러 어린이집, 초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참가했습니다. 저는 일을 마치고 광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인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호박 바구니에 한가득 받은 사탕과 과자를 열심히 까먹고 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그리고 사탕과 과자가 아이들의 바구니를 가득 채워져 신나는 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이어서 사탕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오늘 받은 사탕을 숨겨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집에서 받은 사탕을 그날 밤에 줄줄이 까먹었기 때문입니다(양치도 안 하고 그냥 잤어요. 너무 신나게 노느라 피곤하셨어요.).
그래서 사탕바구니를 제방으로 가져가 에코백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제방에서 놀면서 에코백으로 달려가더니 미소를 짓는 겁니다. 사탕이 그곳에 숨겨진 걸 안거 에요. ‘아니 정말 어떻게 알았지? 핼러윈 마녀 할멈 귀신이 씌었나 봐’ 한 참 시간이 지난 후 아이가 보지 않을 때 에코백을 다시 옷 장으로 옮겨 감추었어요.
이 녀석 문득 저녁에 놀다가 사탕이 떠오른 겁니다. 사탕 먹고 싶다고 주세요 하길래, “엄마가 다 먹었어, 없네”라고 했더니 이 녀석 인상을 구기면서 엄마가 밉다네요. 아가야!, 요 사탕은 크리스마스에 대방출할 거야.
고향 마을 퀴어 커뮤니티
이민 첫 해를 수도 마닐라에서 보내고 이듬해에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필리핀 가장 남쪽 섬 민다나오섬 북단에 위치한 (수리가오 시티에 속한)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우리 집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깡촌 이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해변 마을인데요 산수와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마을이 하도 코딱지 만해서 누구네집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정도입니다. 그리도 ‘우리 동네에 누구네 아무개가 게이다 레즈비언이다’라는 것을 다 압니다. 프라이버시가 없어서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대가족 제도는 퀴어들에게 아주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자녀를 많이 낳아 형제자매들이 많습니다. 친가와 외가로 뻗어나가는 친척의 수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많지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함께 사촌들과 놀고 성장하면서 아이들의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온 친척이 다 알게 되지요. 이런 배경하에 (제가 보기에) 혐오스럽고 역겨워하기보다는 친밀한 우리 아이들이라고 여겨지는 듯합니다. 실제로 이 마을에서 놀려 대거나 험담 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거든요.
찰스는 고향으로 컴백홈 하더니 물 만났습니다. 친구들 동창들 지인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특히 퀴어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찰스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일찍 퀴어함을 드러내 온 가족이 알았다고 합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부모님이 많이 사랑해 주셨데요. 그래서 그런지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저와의 관계를 속이거나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이 너무 좋아요.
퀴어 단체 결성 LGBTQ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리핀에도 있더라고요. 몇 해가 지난 후 친구들은 자신들의 모임 ‘LGBTQ San Francisco’를 결성했어요. 시는 공공건물 한편에 사무실을 흔쾌히 내주었습니다. 또한 시에서는 단체의 재정을 위해 바닷가 옆에 작은 카페테리아 공간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자고로 정부는 열악한 퀴어 단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지원을 대한민국 지방자치 단체들은 보고 배워야 합니다.
단체 결성 1주년을 맞이하여 친구들은 마을 어린이를 위해 잔치도 열었습니다. 저희 마을에는 소수민족 마만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피부가 검고 곱슬머리를 갖고 있어 아주 귀여운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비슷합니다. 이 잔치로 아이들이 간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퀴어 커뮤니티가 가난해도 마음은 부자이고 참 착해요.
이런 대사가 생각이 나요 “(퀴어 동지들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우리 집에서 열린 드랙쇼
노는 것 1등인 남편은 자신의 (50세) 생일을 맞이하여 친구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집에서 퀴어 미인대회 드랙쇼를 열었습니다. 그야말로 퀴어들의 끼(氣)가 발광한 밤이었어요. 영광의 1등은 요리를 잘하는 조가 차지했습니다.
조는 의사가 되고 싶었답니다. 군인 출신 아버지는 굉장한 호모포비아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게이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너무 무서웠답니다. 그래서 조는 자신의 정체성을 꽁꽁 숨겨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의대 진학을 하지 못했답니다.
이 친구들이 안쓰러운 점은 동성결혼을 꿈꾸지 못(안)한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동성결혼은 안된다고 세뇌시켰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동성결혼은 교회에 반하는 행위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회장 친구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는 (가톨릭) 교회를 존경해. 그래서 함께 동거는 해도 결혼은 안돼”.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니 웬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야? 존경은 무슨 노무 존경?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교회를. 내 인생의 걸림돌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려도 시원찮을 판에.’
교회를 비롯한 종교 기관들은 이렇게 세뇌하고 가스라이팅 합니다. 교회의 이 거룩한 반동성애 설교를 듣는 성소수자들은 스스로 자괴감을 느껴야 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되지요. ‘자기 검열 Self-censorship’이란 권력이나 사회의 압력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기검열 현상을 말합니다.
자기 검열을 한 퀴어는 ‘나는 이렇게 해서는 안돼’라고 포기해 버립니다. 레인보우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을 모두 빼앗깁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자신의 반동성애 종교에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반격에 나서야죠. 그리고 나의 신앙과 영성을 보존하기 위해 나를 환대해 주는 친동성애 교회로 옮겨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동성애를 단죄한)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성공회 교회로 옮긴 후 저의 아름답고 소중한 영성을 다시 되찾았어요.
수리가오 친구들을 못 본 지 몇 년이 흘렀습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들, 보고 싶다.
영국 신사 마틴 형님네
어느 날 지인의 집에 놀러 갔습니다. 옆집에 어느 외국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이렇게 마틴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은 영국 출신으로 저보다 8살이 많은 형님입니다. 필리핀 파트너 프랭클린과 함께 자신들의 집 짓고 있고 있었습니다.
마틴형은 영국에서 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온 이주민입니다. 마틴형은 아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농담도 곧 잘합니다. 영국 특유의 발음이 멋진 노신사여요. 이 커플은 저희가 딸내미 생일에 꼭 초대를 합니다. 오실 때마다 인보 선물을 꼭 챙겨다 주시는 산타할아버지랍니다.
집을 아직도 짓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술술 잘 풀리는 티슈를 사들고요.
야채가게 딸내미 지아
우리 동네에는 주말마다 장이 섭니다. 시청 앞 넓은 광장이 장터입니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 매장이 들어섭니다. 그리고 커피와 주스와 같은 음료 매장과 햄버거 스낵 코너도 자리를 잡습니다.
이곳에서 인보에게 제법 큰 찐 옥수수를 사주었는데 한 번에 다 먹어 치웠습니다. 가끔 남편과 저는 햄버거도 사 먹고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정말 맛있습니다.
한 달에 4-5킬로 정도의 김치를 담가 먹습니다. 이 장터에서 배우와 야채를 구매해서요.
저희가 가는 단골 야채 가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엄마를 도와 일하는 지아를 여기서 만나게 되었어요. 짧은 헤어스타일이 게이다에 딱 걸려 레즈비언처럼 보였습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맞답니다.
지아는 이곳 주립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애인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물어보니 애인 부모님과 가족들이 혐오하지 않고 잘 대해 주신답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이런 환대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지아의 페이스북에서 사진을 캡처했습니다. 애인과 함께 근처 섬에 놀러 간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내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님을 만나면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딸(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겨주세요”. 이 말을 지아 어머니에게도 해드렸더니 좋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금쪽같은 딸내미, 아들내미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이면 어떻습니다.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환대해 주고 사랑하면 되는 것을요. 성소수자 자녀들이 성공하길 바라는 부모님들은 가슴에 새기셔야 합니다. 내 아이가 퀴어로 사는 것이 행복하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란 것을요.
퀴어한 삶의 테마여 세상에 메아리쳐라
지난 칼럼에 이어 퀴어 친구들 이야기 재미있으셨나요?
퀴어의 명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랑이 이긴다, 사랑이 혐오보다 강하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 존재한다”
“하느님은 퀴어를 사랑하신다”
“우린 이렇게 별나게, 다르게 태어났어 Born this way”
우리의 삶을 테마로 만들어 들려준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지한 세상을 향하여,
편협한 인간들을 향하여,
소중한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함께 공부하는 동문들에게
그리고 일터에서 함께 노동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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