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에 피살당한 다음 날, 백인 거주지역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인 엘리엇은 학생들로부터 왜 그가 살해당했는지 질문을 받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을 알려줘야겠다 생각했지요. 그는 눈 색깔에 따라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특정한 눈 색깔이 보다 지능이 높다 알려주고 여러 특권을 줍니다. 이에 특권층이 된 그룹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멸시하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입니다. 반대 집단은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시험 성적까지 떨어지지요.
추후 유명세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될 이 실험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차별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고, 작위적인 이유로도 누구나 차별에 가담할 수 있으며, 권력 관계에서 차별이 정당화될 때 억압받는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차별로 인해 성적까지 떨어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언젠가 겪었던 거절과 소외의 고통으로 바라볼 때 아픔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차별은 아픕니다. 차별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은, 스트레스 개념의 제창자인 셀리에 박사가 관찰한 실험용 쥐들처럼 매일매일 고통스런 자극에 놓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나쁜 상황에서 겪는 고통과 화를 참고 있으면 병이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매일같이 스트레스와 힐링을 주제로 한 소비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비정규직이나 이주민과 같이 혼자서는 차별에 저항하거나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성소수자처럼 존재 자체가 지워져 자신들의 처지가 차별아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일상적인 폭력, 혹은 구조적으로 마주하는 배제는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지난 5일 성소수자 인권학교에서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님은 인구집단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는 역학 전문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차별과 건강 수준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강의에서 우리는 한 방울 규칙(편집자 주: 한 방울 규칙(one-drop rule, ODR)은 미국 남부지방에서 조상 중에 흑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였으면 흑인으로 간주했던 제도를 말합니다.)이나 두개골로 인종의 우열을 가린 해부학자의 사례 등을 통해 차별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빚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또 사회적 거부 등의 실험을 통해 경험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다시 여러 조사 결과들을 통해 집단 수준에서 차별이 건강에 심각한 위험 요인이 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번 인권교육은 그간 권리의 관점에서만 읽어오던 차별의 문제를 생존, 특히 건강의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차별선동세력이 스스로 성소수자의 우울증과 높은 자살률을 조장하며 동성애 반대의 보건학적 근거로 들이밀던 어처구니없던 광경을 떠올리면서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본 교실 실험으로 돌아와봅시다. 차별을 겪었던 아이들은 이윽고 그 반대의 입장이 되었을 때, 훨씬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실험처럼 모두가 그런 차별을 겪어야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생길까요? 하지만 실험에 대한 비판들처럼 한 때의 트라우마는 평생 씻기지 않을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연구자로서 당사자에 대한 접근 또한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국은 매우 빠르게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는 나라이고, 세계적 추세와 과학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순간에도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혹은 다른 모든 차별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모든 부당한 억압은 한 시라도 빨리 종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의 처지를 알고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먼저 손을 맞잡을 때, 그 시기는 앞당겨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권학교를 통해 다양한 타인 혹은 우리 자신이기도 한 여러 현실을 살펴보는 것은 그런 이유겠지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존엄함을 보장 받고 부당한 경험에 항의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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