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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 에세이] 내 몸과 화해하는 중입니다

by 행성인 2024. 7. 28.

연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지정된 몸과의 불화

 

나는 남성으로 지정된 몸과 함께 살아왔다. 트랜스여성으로 정체화하기 이전부터도 사실 내 몸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165cm에 몸무게는 55kg. 시스젠더 남성들 중에서는 왜소한 체구에 속했고, 그렇다고 딱히 근육이 있거나 날렵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내 몸이 아쉬웠다. 말 그대로 아쉬운정도였기에 그때까지는 내 몸과의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정체화를 하고 나서부터는 내 몸과 맺는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남성으로 인식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들이, 이제 여성의 정체성을 갖게되자 다 문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마는 왜 튀어나왔지? 수염과 다리털은 왜 자꾸 나지? 가슴은 왜 없지? 뱃살은 왜 있지? 이런 식으로 내 몸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괴로워했다. 내 몸에대한 감각이 예전에는 단순히 아쉬움이었다면 이제는 디스포리아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나는 내 몸을 미워하게 되었다. 디스포리아가 심할때는 칼로 자해를 하기도 했다. 특히나 제일 끔찍이 싫었던건 다리 사이였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스스로 꿈틀거리기도 하는 그것이 참으로 흉물스러웠다.

 

사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내 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내 키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165cm인데 예전에는 나를 작다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크다고 한다. 여자 평균보다 약간 큰 편이니 괜찮은 키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키보다 체중이었는데, 여성호르몬을 하면서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1년차 쯤 되었을 때는 인생 최대 몸무게인 73kg까지 달성해버렸다. 남성 정체성을 갖고있었다면 살이 쪄도 별 생각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몸을 여성 기준에 맞춰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살이 찔수록 걱정이 되었다. 사회에서 규정한 이상적인 여성의 몸과 점점 더 멀어지는거 같았으니까. 실제로 여성복의 사이즈도 굉장히 마른 몸에 기준이 맞춰져 있으니까.

 

 

여성을 살아내며

 

그렇게 인생 최대치의 몸무게를 찍은 시점에 성확정 수술을 했다. 원하던 몸을 얻었을 때 느낀 해방감과는 별개로, 너무 아팠다. 진짜 너무너무 아팠다. 3주 정도는 아파서 잠도 잘 못잤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나에게 다리 사이는 성기가 아니라 수술부위일 뿐이었다. 통증이 잦아들고 난 뒤에도 한동안은 그 부위를 들여다보거나 만져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물며 성관계는 당연히 꿈도 못꿨다. 사실 나는 수술 의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내 성기를 편하게 여기지 못한건 그 일 때문이 컸던거 같다. 아무튼 수술 이후로는 회복기간을 갖느라 몸을 더 안 움직이게 되었고, 시시각각 몸이 더 약해지는게 느껴졌다. 약해지는 몸. 나는 내 몸이 더 여성적인몸에 가까워지는거라 생각해서 만족스러웠다.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애초에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경우가 달랐다. 그 전통적인 성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보고 싶었다. 긴 머리카락, 여리여리한 몸과 하늘하늘 한 옷,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태도. 이런것들을 잘 수행해내야 여자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내 몸아, 다시 잘 지내보자

 

그러던 어느 날, 행성인 운동소모임 큐리블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여성성을 수행하느라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던 운동이 그리웠던 나는 큐리블에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트랜지션 이후 처음으로 운동을 하게 된 날, 큐리블에서 실내 풋살을 했는데 몸이 너무나 약해진 탓인지 5분만 뛰어도 숨이 너무 차오르고 심지어 어지럽기까지 했다. 예전에도 체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렇다면 근력은 어떨까? 궁금해져서 푸시업을 해보려고 했는데 웬걸, 단 한 개도 못하는 것이었다. 양팔이 후들거려서 도무지 내 체중을 견디지 못했다. 트랜지션을 하기 전 한창 운동을 할 때는 그래도 한 번에 삼십 개 이상은 했었는데 이제는 한 개도 못하다니 너무나 충격이었다. 약해진건 그렇다치고 이걸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의 몸의 능력치와 비교하게 되니까 심각하게 다가왔다. , 운동을 해야겠다. 여자도 강할 수 있는거니까, 그리고 트랜스젠더로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강해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큐리블에 나가서 틈틈이 풋살을 했고, 혼자서도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했다. 줄넘기, 달리기, 푸시업, 아령, 턱걸이... 단련의 시간을 거치며 나의 몸은 다시 건강과 체력을 되찾게 되었다. 체중은 53kg까지 떨어져서 몸이 가벼워졌다. 풋살은 여러 경기를 소화할 수 있게 되었고, 푸시업도 다시 30개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상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감당할 수 있는 활력이 생기게 되었다.

 

제 24회 여성마라톤에 10km 부문으로 참가하였다. 5분도 못뛰던 내가 1시간 10분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단체들과의 리그전 당시, 슈팅 직전 장면. 아깝게도 골은 넣지 못하였다.

 

그렇게 여러 운동을 하게 되면서, 여성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땀흘리고 몸 부딪치며 뛰어다니는 것의 묘미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 몸이 좋다. 이제는 내 몸이 연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단련하고 마음껏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성별화된 표현을 써보자면, 나는 내 몸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좋다.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도, 단단하고 강인할 수 있는 내 몸이 좋다. 나는 앞으로도 더욱더 강인하고 아름다운 트랜스여성이 되고 싶다. 이렇게 나는 내 몸과 화해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