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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4월 추모주간 기획][회원 에세이] 행복하게 잘 버티는 것이 곧 추모입니다

by 행성인 2024. 4. 24.

사루(행성인 성소수자 노동권팀)

 

 

 

미세먼지 같은 우울, 자조모임 같은 이쪽 모임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크게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던 충남에서 5년 정도를 살게 됐습니다. 지방 동네가 으레 그렇듯, 제가 사는 곳도 사람이 적고, '이 쪽' 사람은 더 적은 동네였습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음알음 있는 이 쪽 사람들 모임에는 되도록 얼굴을 비추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피곤함보다는 커뮤니티의 부재로 인한 고립감을 이기기가 어려웠던 까닭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찾아가는 이 쪽 친구들 모임은 대체로 즐겁습니다. 연애, 활동, 먹고 사는 얘기...시시콜콜한, 그러나 밖에서 하기 힘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이들 웃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의 웃음은 그저 즐겁기만한 것보다는 어딘가 초연한 듯한,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웃음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는 게 다 그렇지, 한탄인지 뭔지 모를 얘기가 따라붙을 것 같은 웃음을요.

 

가끔은 이쪽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가 우울증 자조모임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술 한 잔씩 하면서 즐겁게 떠들다가도, 모임이 길어지면 다들 가방에서 약봉지를 주섬주섬 꺼내 항우울제를 술안주 삼아 입 안에 털어넣곤 합니다. 그걸 보곤 참 우리답다하면서 웃기도 하고요. 알콜기 있고 기름진 모임에도 우울은 미세먼지처럼 알게 모르게 각자의 숨구멍 속에 내려앉고, 다들 웃으면서 동시에 공기 속 미세먼지의 존재를 느끼곤 하죠.

 

발이 좁아서인지 아직 이쪽 친구를 직접 떠나보낸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언제든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은 계속 갖고 사는 것 같아요. 아마 다른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하는 생각도 비슷할 거고요.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고, 이 쪽으로 정체화하고 산 세월은 훨씬 짧지만,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밖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지저분한 일들을 포함해서요. 그렇게 살다 보니 휴대폰에든 컴퓨터에든 유서를 미리 써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나 혼자만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될 정도로 말이죠.

 

 

열사가 된 동네 이웃들

 

충남도 열사가 참 많은 동네였습니다. 공장이 밀집돼 있는 동네라 더 그런 느낌이었어요. 사실상 같은 동네인 평택까지 넓히면 일하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은 더 많아집니다. 갑을오토텍 김종중, 세원테크 이현중 이해남, 현대차 박정식,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평택항 청년노동자 이선호, 10년의 노조파괴 기간동안 중증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목숨을 잃은 유성기업 노동자들, 손배가압류 압박에 세상을 등진 쌍용차 노동자들...전부 셀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일 때문에 세상을 떴습니다.

 

동네가 좁아서인지,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대체로 둘 중 하나였고요. 영정사진 속 열사들은 투사거나, 노동착취의 피해자거나, 그런 이미지만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술 한 잔 할 수 있을 동네 사람이라는 점은, 고인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아무도 몰라줄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열사 추모 집회는 가기가 참 망설여집니다. 너무 힘들어서요. 누군들 그게 쉽겠냐마는, 저는 특히 사람 죽는 이야기를 정말 견디지 못합니다. 죽음과 이별이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나 무뎌서, 한 발짝 잘못 디디면 바로 일상에서 미끄러질 것 같은 그런 느낌 떄문에 현실로 나타난 죽음이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방영환열사 추모제 걸개그림 이미지

 

2023년 택시노동자 방영환 열사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저도 방영환 열사도 노동당의 당원이었는데요. 사는 지역이 달라서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전날까지 텔레그램 소통방에 메시지를 올리시던 분이 그렇게 떠나는 걸 보고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후의 열사투쟁 집회에도 발걸음을 자주 하진 못했습니다. 지역에 살아서, 일이 바빠서, 다 맞는 이야기지만, 사실 견디기 힘들어서 그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그러다가 장례를 치러드려야 할 때가 되니 몇 번 가지 못했던 것이 또 그리 미안해지더라고요. 우습게도.

 

 

마음챙김은 떠난 이에 대한 추모

 

누군가의 죽음에 무뎌지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초심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무뎌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많이 합니다.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사람이 영원히 살 수는 없고,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의 역할이 그저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만일 수는 없을 겁니다. 남겨진 뜻과 소망을 잘 기억하고 이어나가며, 떠난 이를 잘 보내는 것까지가 아직 이 자리에 남아있는 우리의 역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재(不在)와 상실에 주저앉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를 잘 추스르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우리 스스로의 마음챙김 역시 떠난 이에 대한 추모입니다.

 

장례는 산 자들을 위한 의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후세계가 있는지, 거기서 우리의 말이 들리는지도 우린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떠난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추억을 나누고, 고인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며, 매장 등의 의식을 통해 감정을 승화시켜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에 잠기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장례의 본질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4/27) 기억모임 역시 그런 마음으로 참석하려고 했습니다. 떠난 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잘 추스르고 지탱하며 내일을 살아갈 동력을 만드는 것이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라고, 나는 오늘같은 기억모임의 의의를 그런 곳에서 찾으려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아쉽게도 일정이 허락하지 않아 기억모임에 참석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다들 떠나는 날까지 단단히 잘 버티며 살아가보자는 이야기를 남기고자 짧게 글을 써서 보냅니다.

 

스스로를 잘 챙기고 서로에게 잘 기댑시다. 떠난 이들을 기억하면서도, 그들의 몫까지 즐겁고 단단하게 살아나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추모의 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행복하게 잘 버텨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