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완연한 봄인 줄만 알았습니다.
따뜻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쾌청한 하늘 아래 무지개 깃발을 드높이고 서울 시내를 걸었습니다. 목이 쉬는 줄도 모르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나름의 용기를 내어 입안에서만 맴돌던 노랫말을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말은 서로가 서로를 발음(發音)하는 자리였습니다. 손에는 여성이 주어임을 선연히 상기시키는 문장들이 피어났고, 어떤 재주로도 ‘반으로 나누지 못할’ 목소리가 모여 깊은 숨을 빚어냈습니다. 봄이구나. 행진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지나며 연거푸 나지막이 발음해보았습니다. 삼월의 첫 주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같은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지난 주말을 보내고 맞은 첫 외출이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자 세차게 부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올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이 귀찮아 그대로 걸음을 뗐습니다. 바람은 기세 좋게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외투 앞섶을 꽁꽁 싸맨 채로 정류장에 섰습니다. 도착 예정 정보와 달리 버스는 이십 분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재빠르게 버스에 올라타 휴대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분명, 삼월 하고도 팔일이나 되는 날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댔습니다. 인공 연못에는 살얼음이 떠다녔고 대로를 따라 늘어선 나무들의 가지는 아직 앙상했습니다. 대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탓인지 맞바람이 옷자락을 흔들어댔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는 길은 꽤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로비에서 숨을 고르며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건물 안은 고요했고 소리를 내는 사람은 저뿐인 듯 했습니다.
건물은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편지가 있어 찾은 곳이었습니다. 주의를 기울여 천천히 수령인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의 이름과 그가 남겨두고 간 이름이 달랐으므로, 그가 있는 곳을 찾는 일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작게 난 창문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허리를 살짝 숙여 그와 눈을 맞추었습니다. 밝은 색으로 물들인 머리, 맑게 맺힌 눈망울을 가진 그의 모습은 참으로 어여쁘고 생기 있어 보였습니다. 저는 꽤 오랜 시간 그와 눈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편지의 수령인을 제대로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고매한 문인이자 당찬 활동가였던 그, 육우당.
루카가 육우당에게 남기고 온 편지
최근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괴롭고 아픈 순간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육우당’이라는 이름이 그리워지곤 했습니다. 그리움은 저로 하여금 펜을 들게 했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에게 짧은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 정중한 인사를 건넨 뒤, 그렇게 쓰게 된 편지를 그의 곁에 붙였습니다. 편지를 붙이고 한동안은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이내 고민을 떨쳐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저는 가방 안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방에서 꺼내든 것은 육우당문학상 작품집이었습니다. 저는 수록된 이야기를 하나씩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아릿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울음들이 끌어올려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역할은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울음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다 읽지 못한 책을 황급히 덮은 채, 도망치듯 로비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을 비워내기 위해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을 확인했습니다. 여성의 날을 맞아 무지개깃발을 드높인 채 행진하는 동지들의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연이어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무지개깃발을 펼치고 선 동지들의 사진도 보였습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이 ‘성평등 마이크’를 드는 자리에 ‘성소수자 없이 성평등도 없다’는 원칙을 전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끝끝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확약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은 어느 바람보다도 더 세차게 저를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분노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을 지도 모릅니다. 차별에 영합하려는 그들의 비겁한 언사를 규탄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힘도 나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에서 벗어난 시선은 손에 쥐고 있던 작품집으로 향했습니다. 저의 손으로 넘긴 페이지 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지 않는 것만큼 비겁한 일도 없다”고 종종 이야기하는 저입니다만, 그날은 차마 그에게 돌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육우당에게 쉽게 갚을 수 없는 아주 큰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깊숙이 맺힌 울음을 애써 털어내려 해보았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저는 처음으로 눈물 없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마음 속 부풀대로 부푼 감정의 주머니를 하나씩 터뜨리는 심정으로, 자책과 원망 같은 통한의 덩어리를 연거푸 게워내며, 많은 시간을 붙잡고 울었습니다.
눈물 없는 울음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울음을 거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올린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십여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와 저의 처지가 너무나도 닮아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묵직한 무언가가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 좀처럼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랐던 내일은 이런 모습이 아닐 텐데, 지금보다 더 먼 ‘나중’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있다니. 그에게는 이미 오늘이 나중인데, 너무나도 나중인데.
그를 만나고 돌아온 이후 한동안 어제와 오늘, 내일이라는 시간의 개념이 덧없게만 느껴졌습니다. 그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내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흐르는 시간을 따라 우리는 수많은 ‘내일’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저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우리의 존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악랄하고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의 존엄을 짓밟고 있지요.
이제는 잃어버린 시간을 바로 잡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바랐던 내일을 되찾아주어야지요. 그러기 위해 제가 먼저 그에게 진 빚을 갚고자 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빚이라 혼자는 평생을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하려 합니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주십시오. ‘모든 이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결말을 그에게 전할 수 있도록, 존엄한 삶을 주장하는 모든 자리에 여러분의 손길과 목소리를 보태주십시오.
모든 등장인물에게 해피 엔딩을 선물했으면 좋겠습니다. 악인의 위협과 모략을 피할 수 있도록, 가난과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그렇게 일상이 된 눈물 자국을 지울 수 있도록,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펜을 들어봅시다. 아름다운 과정이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기에, 후회 없이 외쳐봅시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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