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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고 육우당

[육우당 작품집] 다시 욕망하고, 희구하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이반’들에게 -『내 혼은 꽃비되어』교열 후기

by 행성인 2023. 6. 23.

이심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필자의 메일링 서비스 <이 차를 다 마시고(2023)>에서 썼던 글을 일부 가져와 수정·보완하였습니다.)

2006년 발간한 故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  당시 표지는 동인련 회원 류이찌가 그렸다.

 

 

 

노트1.

 

육우당이라고 하면 성소수자 운동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추모집 재발간 작업을 약간 도운 것을 계기로, 얼마 전에 그가 모셔진 납골당에 다녀왔다. 그 이전까지 나는 그의 본명조차 몰랐다.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다들 잘 모르는 것 같기는 했다. 납골함에 새겨진 그의 본명과 생몰 연월일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에게도 친구와 동지들이 있었겠지만, 당장 나와 함께 납골당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의 친구이자 동지였겠지만... 추모집 작업을 하면서, 살아생전의 그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해 전이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시간이었을 터인데, 와중에 유난히 동성애자들걱정이 많은 그였다. 심지어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그 걱정이 뻗치곤 했던 것 같다. 마음속에 사랑이 많았던 것이지. 남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은 괜히 외롭다는 것이 나의 오랜 생각이다.

 

 

노트2.

 

어쨌든 나는 글을 통해서 육우당을 비로소 만나게 된 것인데, 어쩌면 그 만남이 모종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육우당의 글들을 읽으면서 어떤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마주했고, 그의 내밀한 결핍과 욕망이 나의 깊은 곳 역시 건드렸다. , 일기, 유서 등 다양한 형식의 글들 속에서 육우당은 불가촉천민이반으로서의 설움을 토로하고, 때로는 젊음과 자유가 넘치는 이태원을 찬양하며, 동성애자들이 멸시받지 않는 세상이 오게 해달라고 거듭 기도한다.

 

추모집 재발간 작업 최종 단계에서 일기와 유서 등이 제외된다고 하여 못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육우당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다양한 글들을 빠짐없이 모아놓고 읽을 때 육우당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 세계 역시 묘하게 자기 완결적인 면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해서, 그 안을 탐색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는 있을 것이다.

 

 

노트3.

 

하여간 육우당이 떠난 지 20년이 지나 왜 우리가 그의 글들을 다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요원해 보이기만 하는 2023, 이태원과 종로라는 공간이 아직도 쉽사리 혐오와 차별의 표적이 되는 2023, 성소수자 운동이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힘을 쏟기로 다짐한 2023, 왜 우리는 육우당의 글을 다시 읽으려 하나. 이때 20주기라는 숫자는 좋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해보겠다. 20주기라는 핑계를 대고, 우리는 다시 욕망하고, 희구하고, 다짐하고, 실천하기 위해 이 글들을 읽는다.

 

나는 언젠가 희망의 언어는 공허하고 무책임한 단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만이다. ‘그저 스스로 여기 존재하는 희망이란 없는 것이고, 결국 희망이란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쓴 적이 있다. 육우당 20주기를 맞아, 그의 영전에 그 말들을 되돌려 놓는다. 육우당의 한숨 어린 글들은 허무와 비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글들은 더 밝은 세상에 대한 희구였고, 또 실천을 위한 다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 세대의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 잊지 마시구요.”

 

육우당이 걱정했던 그 후세대의 인간인 나는 육우당의 걱정을 다시 받아안는다. 그리하여 걱정의 마트료시카를 만들고 만다. 마트료시카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걱정하는 사람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사람은 떠든다. 걱정하는 사람은 손을 잡는다. 언젠가 우리 모두 사라질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이런저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또 역설적으로 그래서 무엇이든 잘해보고 싶기도 하다.

 

다들 비슷한 마음일까. 오늘도 어떤 사람들은 싸운다. 온 힘을 다해.

 

부디 그들이 쓸쓸하지 않도록, 동지가 될 수 있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