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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고 육우당

[4월 추모주간 기획][회원에세이]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 닿지 않을 주저리 주저리

by 행성인 2024. 4. 24.

새하, 어쩌면 당신과 나 사이의 에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광주 어느 대학가 근처 카페에 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한창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런지 무거워 보이는 다크써클과 찌뿌둥한 어깨를 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죠. 저는 현재 대학원생인데, 방금까지 당신의 흔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논문 계획서를 수정 중이었어요. 물론 부족한 부분 투성이이지만, 쓰다보면 가장 막막한 부분이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라 한다면, 조금 우스우려나요?

 

당신의 이름 중 하나일 육우당이란 글자를 처음 마주한 건 아마도 2014426일 홍대입구역 한복판에서 진행했던 추모제였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신의 얼굴도, 목소리도 그 무엇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던 주제에, 그저 모든게 신기하고 재밌고 웃겼던 것만 떠올라요. 당신의 얼굴이나 사연이 먼저가 아니라 그 때 누구를 만났었고, 누가 아이돌 춤을 추면서 깔깔대고, 뭐 그런 .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십 대 후반은 당신의 흔적 위에 기대어 보내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2013년 크리스마스 무렵 첫방문한 청소년 자긍심팀 이후 저와 제 친구들이 청소년 인권팀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2015년 겨울까지.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의 느낌들이 제 몸 꽤 많은 부분에 스며 있기 때문인지 20244월 광주에서 이 글과 당신을 주제로 한 석사 논문 계획서까지 작성하고 있다니!(심지어 이 글이 웹진에 기고되면 빼도박도 못하게 될텐데!ㄷㄷ)

 

저는 지금 새하라는 필명으로 불려요. 당신의 흔적 위에 기대어 보낸 세월 동안은 에버라고 많이 불렸죠. (당신도 자퇴생이라 들었어요!) 자퇴 이후 이전의 관계들이 대부분 자연스레 멀어지고, (지금은 행성인이지만) 동인련을 비롯한 인권 단체들을 들락거리면서 본명으로 불리면 오히려 더 어색한 시기였죠. 에버란 이름은 사실 별 뜻도 없이 급하게 지었는데, (놀랍게도!) 처음 동인련 와서 자기소개를 했을 때 다들 별 이상한(?) 이름으로 소개를 하고, 알고 보니 ‘닉네임’이라는거에요! 그래서 저도 그냥 급한대로 아무거나 막 가져다 붙였고 전 에버가 되었죠. 당신의 흔적 위에서 그렇게 우연하게도, 변덕스럽게도 말이죠. 지금 새하로 불리기로 결정한건 다분히 고의적이었다고 말해둘게요. 새하란 이름도 별 큰 뜻은 없지만, 행성인과, 에버와 멀어지고 싶었거든요. 트라우마라도 되는 마냥 요즘 에버란 이름으로 불릴 때면 저도 모르게 움찔해요. 뭔가 쿵하고, 뭔가 푹하고, 뭔가 띵하게. 행성인과 멀어지기로, 에버를 현재가 아닌 과거로 밀어 넣기로 결정한 이유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2015년 얼떨결에 제가 청소년자긍심팀 팀장을 맡기로 얘기된 직후에, 팀을 소모임 단위로 바꾸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었어요. 그러다가 운영위 회의에서 안건으로 제시되었는데, 어떤 분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저에게 생각을 물어보셨어요. 사실 마구잡이로 싫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왜 말하지 못했나 싶은데, 결국 뭘 말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었죠. 어쨌든 회의 끝에 팀으로 유지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아마 제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도 그렇게 결정될 사안이었을 거에요. 결과 여부보다는 과정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에버란 놈이 점점….

 

그니까. 쪽팔려서에요. 가만히 있기만 했던 에버란 놈이 누구였는지 설명하기가 쪽팔려서. 행성인과 2015년 후반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건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이 어렵기도 했고, 단체에 섭섭함도 없지 않았고, 조금 지치기도 했고, 그러한 감정과 상태 대해 에버란 놈은 어디에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도 잘 몰랐고.

 

어쨌든, 대학원 입학 때부터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를 하겠다는 결심에 어마무시한(?) 대의 같은건 없어요. 그저에버란 놈이 누구였는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던 놈이었는지 설명하고 싶었던 것 뿐이니까요. 요즘 많이 떠도는 자살위기청소년이란 말을 마냥 부정할 수는 없더라도, 자살 암시글을 올린 친구를 찾는답시고 홍대 근처 모텔이란 모텔은 싹 돌아다니며 CCTV 보여줄 수 있냐고 묻던 에버를, 직장인 시간대에 맞춰진 단체 행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한시간 반거리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어떻게든 막차 시간 안에는 돌아와야 했던 에버를, 친구가 가출을 결정하고 그 부모와 어떻게 협상하면 좋을지 얘기하던 우리를, 원하던 대학을 붙은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노래방에서 깔깔대던 우리를, 10시 이후 갈 곳 없이 청계천을 거닐다가 자갈치 과자 한 봉지 나눠 먹고 길바닥에서 아님 24시 카페에서 밤을 새던 우리를.

 

그렇게 청소년 성소수자 키워드 하나만 가지고 계속 자료를 찾고 또 읽고 고민하고 글을 쓰다 보면, 의도치 않게 반복적으로 당신의 흔적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어요. 아차! 청소년자긍심/인권팀 에버는 당신의 흔적 위에서 가능했었던 거였지!(이런 멍청한 자식!) 그래서 육우당이란 흔적을 제대로마주하기로 결정했고, 이걸로 자살 위기율로만 재현되는 청소년 성소수자 담론을 비판해보자!!!란 포부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엉망이었어요. 전 당신을 만난 적도 없고, 당신이 살던 시대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당신과 직접 연이 있는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거든요. 그렇게 지도교수님에게 욕만(?) 먹다가 뭐라도 하자 싶어서 당신의 화장된 몸이 안치된 봉안당을 찾아갔어요.

 

 

202447, 벚꽃 구경은 생각도 못했는데 우연찮게 소풍 분위기를 내며 산책을 하다가, 문제는! 제가 길치라서 이만 보 정도 (일주일 걸을 거 다 걸었어요) 걷고 난 뒤에야 봉안당을 찾을 수 있었죠. 아마 에버였다면 돈이 없어서 청소년자긍심팀 운영 지원금으로 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그만 꽃다발도 하나 챙겼어요. 그렇게 도착했는데, 육우당이란 이름은 온데간데 없고 당신의 본명과 세례명이 적혀있어서 적잖이 당황을 했었죠. 그렇게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사용허가 취소 알림' 안내 스티커가 유리문에 붙어있어서 뒤통수를 쌔게 얻어맞은 듯했어요. 그러니까 사용료를 장기간 내지 않았으니 관련자가 빨리 찾아가던지, 그렇지 않으면 무연고자로 간주해서 처리한다는 통보였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그러다 유리문에 비친 제 얼굴과 당신의 유골함이 겹쳐진 걸 보고 별안간 울어버렸어요. 커다란 스티커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꽃다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더 울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당신의 진짜이름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현재 나는 과거 당신과 결코 마주해 이야기 나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물었어요.

 

그 날 이후에 다시 제가 썼던 글을 읽어봤어요. 정말 끔찍하더라고요. 국내외 스타 이론가들과 어디선가 긁어온 인용문으로, ‘번지르르한개념들로 당신을 설명하려고 했던. 그 글은 당신이 누구인지는커녕 에버를 설명하는 일 모든 것에 있어 철저하게 실패작이었고, 심하게는 폭력적이게 읽혔어요. 밀려오는 수치심 탓에 며칠간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제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폭력적인 것만 같고, 너무 오만해 보이고,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우리에게도

.

 

그렇게 며칠 아무것도 안하다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다시 당신의 유골함이 안치된 봉안당을 찾아갔어요.

 

 

2024416. 분명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새 벚꽃이 대부분 떨어지고 비가 와서 쌀쌀했어요. 이전에 왔던 날씨일거라 생각하고 겉옷을 챙기지 않았던 걸 후회했죠. 이번에는 꽤나 익숙하게 길을 찾은 덕분에 빠르게 당신의 유골함 앞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제가 전에 두고 간 꽃다발과 '사용허가 취소 알림' 스티커는 여전히 유리문에 부착되어 있었는데, 생화라서 금방 시들어버린 꽃다발과 달리 (심한 말) 스티커는 변색 하나 없이 멀쩡해서 짜증이 났어요. 당장 스티커 자국을 지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어쨌든 조금 울 뻔 했지만, 막 울진 않았어요. 그보단 전에 둔 꽃다발과 스티커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새로 가져온 꽃다발을 어디에 둘지 한참 고민해야만 했죠. 마음 같아선 스티커를 가려버릴 위치에 두고 싶었지만, 에휴 유가족도 아니고 당신과 직접 연이 있는 사람도 아닌 제가 봉안당 관리자한테 가서 뭘 따질 수도 없고, 관리 규칙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저 뭣 같은 스티커 말대로라면 곧 당신의 유골함이 어디론가 보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사용료를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저를 괴롭게 했죠. 그 때부터 뭐라도 하자가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한다로 바뀌기 시작했죠. 정작 저는, 저의 십 대 후반의 시간을 사용하는데, 당신의 흔적 위에서, 그런 생각 흐름은 결국 , 에버란 놈은 당신에게 채무를 지고 있었다란 무게감으로 응고되어 저를 압도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에버를 설명하고 싶다는 개인적 요구는, 당신이 누구였는지 물어야만 한다는 윤리적 의무로 변모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당신의 유골함과 나의 얼굴이 겹쳐 반사되는 저 얼굴은, 명확히 저도 아니고, 당신도 아닌, 에버라는 놈. 그니까 당신이란 존재와 저라는 존재 사이에서 가능해진 에버. 저도 당신도 아닌, 저와 당신 사이에서 이뤄진 채무 관계로 형태화된 에버라는 이상한 놈에 대한 설명이어야만 한다는 결심으로 가닿게 되었어요.

 

벌써 한글 기본 설정으로 3페이지가 넘어가려고 하네요. 글은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지도교수님의 강조사항을 실패한 탓이겠죠. 저의 구구절절은 분명 당신에게 닿지 못할거에요. 유리벽에, (심한 말) 스티커에, 세월에, 저 꽃다발의 시듦에 휩쓸리고 흩어지고 부유한 채 그렇게 발신 기능의 오작동만 발생할 뿐이겠죠. 이런 문제 속에서 결국 당신과 저 사이의 채무 관계란 결코 완수되지 못하리란 것을 알아요.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새하라고 불리는 제가 당신과 저 사이 유리벽에 비친 울먹거리던 에버와 같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의 새하는, 한때 저였지만 이제는 제가 아닌 유리벽에 비친 에버와 채무 관계에 놓여있다는, 그니까 새로운 차원의 문제로 분유 된 상황이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제 연구에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망설여져요. 이제 더는 육우당이라고 좀처럼 불려질 기회가 없는 현재 속에서 점차 유골함에 적혀진 당신의 본명과 세레명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현재 속에서, 당신이란 존재를 어떻게, 당신의 시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래서 일부로 당신에 대한 얘기를 떠들고 다녀요. “육우당을 아세요?”, “혹시 들어봤어?”, “사실 그 사람 이름이 현석이래!”, “그 사람은 천주교인이었고, 반전 투쟁도 했데!”, “해방 이런 단어 사용했던 거 보면 노동 운동 쪽 영향을 받은 걸까?” 이런 식으로요(머쓱). 며칠 전에는 당신이 죽은 2003년에 태어난 지인에게 육우당을 아냐고 물어봤더니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30분 가까이 앞뒤 없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어요. 그러다가 제 연구주제도 얘기하게 되고, 그러다가 고민도 얘기하게 되고, 지인도 귀 기울여 들어주면서 감응해줬어요. 그 때 처음으로 저의 결심이 조그만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신에게 가닿지 못하더라도, 이 채무를 완수할 수 없더라도, 이런 우연 속에서

 

기고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망설였지만, 어쩌면 당신의 흔적이 이끌어준 우연하고 소중한 기회이자 책임이라 생각하니 하고 싶다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연구를 하면 당신과 우정을 나눴던 사람들, 당신의 삶과 함께하고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또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기억에 가라앉은 사람들과 만남을 갖기 시작할 거예요. 누구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그 분들이 저를 만나줄지,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지 예상조차 안돼요. 그럼에도 기대가 돼요. 그것도 분명 우연하고 소중한 기회이자 책임일 테니까요. 처음에는 청소년 성소수자 권리 인정 문제 비판이란 (지금 생각하면 건방진)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낸 주저리 주저리가 한 편의 이야기로 기술되고 그걸 읽게 될 누군가에게 그런 우연과 소중함과 책임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요. 당신의 흔적 위에서, 당신의 흔적에 의해서, 당신의 흔적을 위해, 그러니까 한편의 기억과 애도문이 될 수 있기를.

 

에휴, 또 말이 길어지네요. 전 항상 글을 쓸 때 이게 문제에요. 편집 담장자 분이 저를 용서해주길 바래야 겠어요. 주저리 주저리 할 또 다른 기회는 당신의 흔적이 선물해줄 거라고 믿어요. 당신이 남긴 시 중 하나인 환생내 혼은 꽃비되어 당신 곁에 내리는데 / / 임이여! 내 속삭임에 귀 기울여보아요라 외치고 있는 걸 봤어요. 전 다시 그 채무 속에서 적셔지는 일을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떻게 적셔질 수 있을지, 제 고막이 꽃비에 잠겨버리는 순간 들리게 될당신 목소리가 담긴 거품에 어떻게 손을 뻗을 수 있을지 고민과 실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당신의 유골함 앞에 찾아가 유리벽에 비춰진 에버를 사이에 두고 이름을 묻는 일만을 반복하려고 해요.

 

저번에 봉안당에서 나오는데 마침 헤드폰 너머 들리는 노래가 NCT DREAM<Candy>였어요. 검색해보니 원곡 버전인 H.O.T<Candy>1996년에 발매되었더라고요. 당신은 아마 HOT 버전을 들어봤으려나요? H.O.T2001년 해체했더라고요. 조만간 노래방 가서 엔시티 버전이 아니라 H.O.T 버전으로 불러보고 싶어졌어요. 당신과 느슨한 연결감을 그렇게라도 느껴볼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죠.

 

이제 정말! 이 글을 끝내야겠어요. 편집자 분 욕이 벌써 들리는 거 같거든요. 이번 주 토요일에 행성인 기억식을 한다고해요. 거기서 당신의 사진과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사진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있으려나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때 어떤 이야기를 누구로부터 들을 수 있을지, 당신과 다른 여러 존재들이 펼쳐놓은 세계의 순간 한가운데에서.

 

우린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었지/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언제나 니 옆에 있을게/ 이렇게 약속을 하겠어/저 하늘을 바라다보며

 

NCT DREAM <Candy> 2022.12.16. 발매

 

 

ps. 맞춤법 검사기를 돌릴까 했다가 (분명 틀린 게 한 둘이 아닌텐데;; 쪽팔리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주저리 주저리란 원래 그런 맛이니까요.

 

 

 

 

* 편집자 주: 웹진 발행 이후 행성인 사무국은 육우당이 있는 납골당에 연락을 취해 10년 사용 연장을 신청했습니다. 소식을 전해준 새하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