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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HIV에 감염된 외국인 입국금지, 강제출국 폐지 조치는 당연한 결과!

by 행성인 2009. 9. 15.


 

최근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가 6천명이 넘어서면서 국내 여론이 심상치 않다.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공연이나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고, 정부의 불확실한 대응 속에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나는 신종 인플루엔자에 반응하는 불안감과 공포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만나왔고, 앞으로도 만날 수 있는 HIV/AIDS 감염인 친구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신종 인플루엔자보다 훨씬 더 빨리 알려진 에이즈는 여전히 천대받고 있는 대표적인 감염성 질환 가운데 하나다. 신종 인플루엔자와 에이즈, 둘 다 전염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에이즈는 감염경로가 잘 알려져 있는 질병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방가능하다. 게다가 HIV/AIDS 감염인들의 삶의 조건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적절한 교육과 지원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예방과 치료효과가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질병은 분명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 어떤 질병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예방과 치료의 과정에서 감염인들을 차별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조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원칙들이 한국 사회는 아직 잘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환자는 안타깝게 여겨질지 몰라도 에이즈로 죽은 환자는 마땅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에이즈 환자들은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질병관리본부의 '2008년도 에이즈에 대한 지식, 태도, 신념 및 행태조사'를 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대한 연상단어로 죽음, 불치병, 위험, 고통 등 공포와 성병, 성관계, 동성애 등을 꼽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이즈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호도하지 말라!


에이즈에 관련한 온라인 기사를 검색하는 와중에 놀라운 사실들을 몇 가지 발견했다. 우선 9월3일 정부가 HIV에 감염된 외국인의 입국금지와 강제출국 조치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이 방침이 실제로 실행되게 되면 90일 이상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한 HIV 진단서 제출 의무화 방침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국제인권기준을 들먹이고 있지만, 유엔총장이 체면을 염려하여, 정부가 수용한 척 한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 총회가 개최되었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재희 보건가족부 장관을 만났을 때, 한국이 HIV에 감염된 외국인을 추방하는 12개 나라에 포함되어 있다며 에이즈 환자에 대한 출입국 제한을 해제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조치로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제한이 어느정도 해제되긴 하였지만, 이는 모든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적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기체류자 중 HIV를 전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직업종사자군(유흥업소 종사자 등)에 대해서는 현행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반쪽짜리 조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관련 기사를 보도한 동아일보와 메디컬투데이는 기사 말미에 HIV에 감염된 외국인의 입국허용으로 내국인 건강권을 내팽겼다는 반대여론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소개하자면 한국에 영어강사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E-2비자(회화지도사증)를 신청해야 한다. 인증서를 받기 위해 범죄경력 유무증명서와 함께 건강진단서 등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데, 관련 기준을 보면 에이즈 또는 법정전염병 감염자에 대해 원칙적으로 사증발급을 불허하고 있다. 한 외국인 교수가 이 같은 조치가 국적에 대한 차별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자 ‘올바른 영어교육을 위한 시민모임’은 외국인 강사들이 마약, 성추행 등 불법을 자주 저지른다고 호도하며 건강진단서 제출을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에는 외국국적 동포 취업교육 건강검진 과정에서 HIV양성 판정을 받은 이가 결과를 통보받은 당일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인계되어 강제출국 당할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법적 소송 끝에 지난해 12월 강제출국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이끌어냈지만 소송과정에서 보였던 공포와 편견은 HIV에 감염된 외국인을 왜 추방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송대리인을 맡은 장서연변호사는 [인권오름] 기고글에서 출국기한을 유예시켜달라는 요청에 대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한국인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겠지만, 외국인이고 한국 사람과 성행위를 하다가 에이즈에 감염시키면 어떻게 하냐”며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고, 법원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HIV를 전파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고 했다. 


한겨레. 2008.3.2 차별에 우는 에이즈 감염 외국인



   

한국은 현재 법적으로 회화지도비자(E2), 예술흥행비자(E6), 내항선원비자(E10), 산업연수비자(D3) 신청 시 에이즈 검사결과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비전문취업비자, E9)에게도 법적 근거 없이 에이즈 검사를 하고 있다. 8월26일 성, 인종 차별대책위 주최로 개최된 ‘나 이제 할 말 있다!’ 토론회에서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임신, 에이즈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게다가 입국한 후 HIV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되면 비자종류와 상관없이 강제 출국되어 치료권, 노동권 모두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브라질은 2008년 6월 공식적으로 보고된 외국인 에이즈 환자수가 1,2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주 공립병원에서 무료로 에이즈 치료제를 제공받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브라질에 거주하는 내국인환자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우선한다는 것이 브라질 정부의 방침이라고 한다. 브라질은 한국과 다르게 에이즈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오히려 입국을 자유화했다. 여기에는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는  외국인 출입을 통제해 불법 이민자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양지에서 이들을 치료해주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예방도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2004년 유엔에이즈와 국제이주기구(IOM)는 HIV/AIDS 감염인의 국가 간 여행규제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권고안에 따르면, 각 국가는 효과적인 예방정책을 전개하기 위해서 내, 외국인에 관계없이 HIV/AIDS 감염 사실로 인해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야한다. 더불어 외국인 감염인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는 HIV가 외부로부터 전염되는 것이란 잘못된 인식을 자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조장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HIV에 감염된 외국인의 출입국을 통제함으로써 HIV 전파에 대한 두려움 조장하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해 왔다. 그러다보니 외국인 감염인의 입국금지와 강제출국 조치를 폐지하겠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정부의 조치가 오히려 내국인에게 큰 피해를 줄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정책발표가 더욱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불안감을 떨칠 수 있도록 올바른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HIV/AIDS 감염인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병행 해 발표해야 할 것이다.



히틀러를 에이즈 감염인에 비교하다니!


최악의 공익(?)광고가 등장했다. 에이즈 감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영상은 공익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독일의 한 단체에서 제작된 이 영상에서는 남녀가 격렬한 정사를 벌이다 마지막에 히틀러와 꼭 닮은 남성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리고 “에이즈는 대량학살자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지킵시다”라는 문구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 광고는 독일 내에서 선정적이다, 메시지만 있지 해결책이 없다는 이유로 반발을 사고 있지만 TV전파를 타는 것은 물론, 뮤직비디오까지 제작되어 진다고 한다.


   한국도 히틀러만 언급되지 않았을 뿐, 에이즈예방법 법률에는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으로 콘돔 없이 행한 성행위 자체를 전파매개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사실 이 법조항으로 처벌된 사례는 미미하며 대개 형법으로 처벌받고 있다.)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감염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결국 자신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예비범죄자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처벌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생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2008년 1,201명과 함께 감염인 지지 페이스 선언




처벌과 통제, 규제가 아니라 감염인의 인권중심의 정책이 HIV/AIDS 예방의 최우선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