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미디어tf)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최영미 시인의 문구를 처음 접할 때에는 괜히 비장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는 저렇게 말하기도 민망한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서른을 앞둔 다니주누가 이십대 마지막 생일을 맞아 전시를 기획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엔 조금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 나이라고 그렇게 기념을 하냐는 질문에 앞서 저렇게 HIV에 감염된 시간을 세고 나이들어감을 기념하는 시도가 자신의 서사에 궤적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생각을 거꾸로 하게 된 것이다.
홍보 문구 중에는 '관람 유의사항'이라고 적어넣으며 불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관람에 유의하라는 언급이 있었다. 얼마나 불편한지 가서 확인하겠다고 능청을 떨었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싣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공식적으로는 공간을 제외한 개별 전시물에 대한 사진과 영상촬영을 제한했지만, 동료 찬스를 빌어 전시 세부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었다. 서른을 맞이하는 전시가 끝났으니, 전시장 풍경과 그의 기록들을 함께 나눠보자.
전시는 네 개의 파트로 나누어진다. 파트마다 그가 지나온 시간들이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었고, 텍스트 위에는 당시를 상기시켜줄 사진이미지들이 포개어져 나란히 붙어 있다. 전시는 20대 초반의 다니주누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술하고, HIV에 감염된 이후의 삶을 회고한다. 다니주누의 책상을 테마로 삼은 마지막 파트는 개인의 서사로부터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지금을 연결하는 소품과 그가 촬영한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일련의 변화를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한 영상이 전시장 가운데 재생된다.
파트1과 파트3은 각각 '평범한 아들'과 '더럽혀진 몸'이라는 제목을 갖는다. 20대의 경상도 시스젠더 남자로 살아온 그는 남성 중심의 영화 노동판에서 일을 하고 해군에 입대한다. 비슷한 시간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갖고 방황하던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감염되었다고 술회한다. 같은 시간 함대 밖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씨에게 대통령직 파면을 선고했다. 같은 시공간에서 일어난 소용돌이 속에 그는 다른 맥락으로 국가에서 자리를 잃었다.
직업군인의 진로를 강제적으로 포기해야 했던 그는 당시의 감정과 아픔을 지나오면서 지금의 고통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고 적는다. 그렇게 그는 고립된 개인의 문을 열고 다른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을 만난다. 인권운동단체와 자조모임을 찾아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는 그동안 여성혐오가 빈번했던 사회에 살아왔음을 자각하는 관점을 세공하면서도 시중에 확산하는 혐오의 공격들을 버텨낼 근력을 키우지 않았을까.
문란하다는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긍정하는 태도는 자신의 문란함 자체를 긍정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약통을 한데 모아 혐오문장들을 같이 배치한 설치물 아래에는 '긍/정/해/문/란/해' 문장을 타공한 6색의 천에 각각 프린트해 매달아 놓았다. 헐벗은 자신의 모습을 레이어드 해서 출력했다고 하는데, 잘 보이지는 않았다.
전시에서 마주한 다니주누는 활동가로서 정체성과 HIV 감염인 퀴어의 정체성을 나란히 두는 것처럼 보였다. 박경석 전장연 활동가가 표지에 실린 시사지와 언제 주워왔는지 기억도 못하는 누누모텔 열쇠의 흥미로운 배치 속에서, 그가 취미로 찍었다는 사진들은 두 활동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두 활동을 건사해나가는 그만의 감각이 발현한 활동은 아닐까 생각했다. 전시를 기획하고 주최한 이(다니주누)는 전장연에서 활동하는 이의 모습과 다르고, 성소수자 PL 당사자로서의 위치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전시는 여느 미술 전시나 인권운동단체의 캠페인 전시와도 다른 결의 풍경을 만들었다. 다분히 생일을 맞아 그를 위해 기획하고 그에 의해 진행된 다니주누의 전시지만, 전시를 100프로 수식할 수 있는 착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참고로 다니주누는 세례명 다니엘과 본명을 한데 묶은 이름이라고 한다. 설명을 듣고 나니 전시도 딱 다니주누의 작명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는 20대의 질풍노도를 지나온 그의 부분적인 서사들을 한데 엮는다. 당연히 모두 담을 수 없었을 이 전시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활동가이자 동료로서 다니주누의 모습도 이렇게 회고할 수 있는 자리가 있기를 바란다고 의견과 함께, 그때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파티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손이 많이 갈테지만, 내가 열 건 아니니까...)
그리고 사진의 인증샷도. 다니주누와 함께 내일을 빛낼 4명의 행성인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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