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회원 : 이안, 지운
인터뷰 진행 및 편집 : 남웅 (미디어 TF)
편집자 주: 4월을 맞아 미디어TF는 최근 행성인에 두각을 보이며 활동에 참여하는 이안과 지운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사회적기업 노란들판(맞아요...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자립생활 작업장에서 시작한...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다 됐고 현수막 만드는 거기) 에서 함께 일하는 퀴어 커플인데요, 퇴사를 앞둔 두 사람의 일터와 활동, 파트너십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만나봅시다. |
웅: 먼저 두 분 인터뷰 수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이안(이): 안녕하세요. 행성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안이라고 합니다. 디자인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운(지): 안녕하세요. 저도 행성인 회원인 지운입니다. 육체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제조업이라고(웃음)
지운(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웅: 두 분을 한 자리에 모신 이유 중에는 두 분의 관계도 엮여 있는데요 (웃음) 두 분은 자신들을 어떤 관계라고 소개하고 계신가요?
이: 동거 중인 서로의 반려인입니다.
웅: 같이 산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지: 만난 지 3년이 되어 가고요, 같이 산지 2년 됐습니다.
웅: 두분 처음 만난 계기부터 들어가볼까요?
이: 제가 퀴어연극제라는 단체에 활동하면서 연극 무대를 올렸는데 그 공연을 지운이 보러 왔어요. 당시 특별한 접점은 없었는데 지운이 그 공연을 좋게 봐주고 기억해줘서 다음 해 연극제 단원을 모집할 때 신청을 해서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났죠. 저는 운영팀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고요.
웅: 이안님이 작업했던 연극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이: 제목이 ‘쓰까페미’라고...퀴어페미니즘을 중심으로 공연자들이 모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같이 풀고 그걸 극화시키는 작업을 반 년 가까이 진행해서 공연을 올렸어요. 2019년도 작품인데, 당시 극작에 공동 참여를 하고 배우로도 올라가고 홍보 디자인도 했죠.
웅: 멀티플레이어셨네요. 지운님이 단원으로 들어가서 같이 작업했던 작품은 뭐였나요?
지: 21년도였나? 제가 전역한 해 3월 공연이었어요. 저는 그때 음향 오퍼레이터로 들어갔고 (배우?) 저는 배우가 아니었어요! (웃음) ‘줄리아나는 죽었나요’ 라는 작품이었어요.
웅: 지운님이 퀴어연극제에 들어간 동기는 뭐였나요?
지: 사심이었어요. 보통 신입단원은 참여가 안 되고 그다음 공연부터 좀 배우고 나서 참여를 할 수 있는데, 이안이 참여한다는 걸 알고 떼를 써서 들어갔어요. 근데 제가 또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줬어요. 신입단원인데 행사들을 다 나가고, 운영진 분들이랑 손발을 잘 맞췄어요. 어떻게 보면 거의 특별채용인 거죠. 그렇게 참여하게 됐어요.
웅: 상대에게 반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는 흔치 않은 이 바닥 로맨스 같은데요. (웃음) 그러면 퀴어 연극제에서 만난 이후엔 어떤 활동을 같이 했나요?
이: 그나마 직접적으로 같이 한 거는 인천 퀴어문화축제 자원활동 정도인 것 같아요. 만나면서 제가 지운을 직장인 노란들판으로 데려왔고요. 지운은 그 이후로도 서울 퀴퍼 자원활동과 인천 퀴퍼 자원활동을 이어갔죠.
웅: 지운님은 퀴퍼 자활을 자주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지: 제가 원래는 인천에 살았는데 인천에 퀴퍼를 한다고 해서 1회 자활가(자원활동가)를 신청했죠. 그렇게 참여를 했는데 알다시피 다구리를 맞았잖아요. 그렇게 당하고 보니까 퀴퍼 자활가를 계속해야겠다.
웅: 그게 또 계기가 됐구나
지: 그리고 인천을 떠났습니다. 인천을 떠나라는 얘기 많이 들어서 (웃음)
이: 이사를 갔다는 얘기죠.
지: 이제 그런 일을 겪으면서 기획단에 걸친 친구들을 사귀었어요. 이후에는 같이 집회도 나가고요.
웅: 행사와 활동을 통해서 인연을 많이 만들었네요.
지: 그거 말고는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할지 몰랐죠.
퀴어든 장애인이든 여기서는 현수막을 뽑아야 돼!
웅: 아까 지나가듯 말씀해주셨는데, 이안님이 지운님을 본인 직장인 노란들판에 데려왔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어떻게 데려왔는지 궁금해요. 듣는 김에 두 분은 노란들판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도 말씀부탁드려요.
이: 저는 전공 살려서 디자인 노동을 하는데 주로 현수막, 판넬 같이 집회용품이나 기자회견 현수막도 만들고요. 토론회 자료집도 만들고 뽑는 건 거의 다 한다고 보심 돼요.
노란들판에서 제가 2년 정도 근무를 했을 때쯤 신입직원 채용이 크게 있었죠. 그때 지운은 기계 다루는데 능숙해서 제조업 분야, 출력 기기 같은 걸 다루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운도 이제 막 독립해서 집구하고 알바하면서 월세 낼 즈음이었고요.
지운이 장래를 고민하는 과정에 중장기적으로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방향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노란들판은 아무래도 장판에서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잖아요. 그만큼 어느 정도 인권의식이나 감수성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거라 느꼈고, 회사라고 해도 인권단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죠.
저는 당시에 회사에 커밍아웃을 한 상태였어요. 회사측은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떤 걸 더 조심하면 좋겠냐, 어떤 게 더 필요하겠냐고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노력을 보였죠. 지운도 여기서는 불쾌한 일을 겪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무엇보다 노란들판은 장애인 고용 기업이잖아요. 청각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이랑 같이 노동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추천을 했어요.
웅: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노란들판 페이지를 찾아봤는데요. 일단 사회적기업이고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자립생활 작업장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기틀을 잡아 활동해왔다고 나옵니다. 이 곳이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직장인의 관점으로 설명해주세요.
이: 말씀하신 대로 장애인들이 졸업을 하고 나서도 자신이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노동할 수 있는 곳이 없잖아요. 거기다가 나가서 집회할 때 써야 하는 물품을 만드는 공장을 만들고 거기서 일하는 걸 가르쳐서 임금을 동일하게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죠.
지금도 여전히 집회할 때 필요한 피켓이라든지 현수막 같은 것들을 만들고 있는데, 주문이 많아 버거운 감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들을 딱딱 만들어 투쟁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데 기여하는 거, 그게 저희가 할 수 있는 투쟁이자 연대 활동이라고 생각을 해요.
웅: 말씀 들으니까 노란들판의 설립취지가 장판이 싸우기 위한 자급자족형 사업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웃음) 내가 싸우기 위해서 싸움에 필요한 물품들을 만드는 거잖아요. 행성인을 비롯해서 다른 시민사회 운동단체들도 노란들판을 많이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활동가 입장에서 상당히 신뢰 가는 거래 업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당일 주문을 해도 당일 배송이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인권운동계의 쿠팡 같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지만. (웃음) 정말 급한 일정에 사정사정해야 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만한 데가 없죠.
그리고 또 하나는 노란들판에 맡기면 1차 디자인을 기본적으로 해주는 거였어요. 예쁘게 만드는거 잘 못하는 운동권 똥손들한테는 되게 중요한 메리트거든요. 노란들판에서 일하는 분들 하나하나가 운동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지 않으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노란들판의 노동자들이 사회운동 이슈에 대해서 사전 학습을 하는건가 궁금했고요. 의식만 있다고 일이 바로바로 진행되는 건 아닐 거잖아요. 노란들판의 직장 문화 같은 건 어떤지도 궁금했습니다.
이: 이거는 저희 두 사람이 일하는 팀이 서로 달라서 하게 될 이야기도 다를 것 같아요.
지: 이런 말 해도 되나? 작업팀은 실적을 위해서 일을 하죠. (웃음) 물론 기본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나 연대운동의 경우에는 무리한 주문이 들어와도 우리가 이걸 만듦으로써 연대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제작할 때는 디자인이 다 돼서 넘어오기 때문에 이걸 생산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단 말이예요. 제일 먼저 결과물을 보잖아요. 출력을 하면서 이런 일이 있구나, 만들면서 열받는 거죠. 아직도 이게 문제라고? 아직도 이걸 안해줬어? 이런 식으로요. 내가 왜 일터에서까지 이재명 윤석열을 봐야 되냐! (웃음) 보고싶지 않은 얼굴들도 나와 있는데 그래도 이걸 잘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있고요.
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작업하기 위해서 사전 학습이 필요하겠지만, 저희는 만드는 공정이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거죠.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긴박함이 있습니다.
이: 디자인 쪽은 앞에서 지운이 말해준 것처럼 따끈따끈한 의제가 오잖아요. 예를 들어서 전장연이 T4(편집자 주: 나치 정권이 독일 우생학 사상에 따라 행한 장애인 안락사 정책이다)를 이야기 해. 이런 걸 또 한다고? 싶은 거죠.
전장연 유관 기관들은 (대학로) 유리빌딩에 모여 있으니까 물어보기 수월해요. 하지만 바깥의 소식들은 검색을 하죠. 어떤 내용인지, 어떤 이미지가 활용되었는지 검색하고 제작하도록 리서치를 합니다. 본인이 더 관심을 갖는 의제에 따라 분담하기도 해요. 어떤 동료는 빈곤, 빈민, 가난 이슈에 좀 더 관심이 있으니까 그쪽 주문을 가져가고요. 저는 성소수자 의제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런 디자인을 가져오는 식으로 배정이 되는 거죠.
웅: 일하는 개인의 관심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네요.
이: 노란들판에 들어오는 투쟁 관련 주문을 당연하게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그러려면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동료들에게 이런 건 어떤 이미지를 써야 하냐, 이게 무슨 내용이냐 물어보고 정보를 주고 받는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요.
웅: 아까 이안님이 얘기한 부분 중에 기억나는게 있어요. 제가 노란들판 페이지를 보면서 발견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하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지운님을 추천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같이 일하는 건 어떤지 듣고 싶어요.
지: 저희 팀에는 뇌병변 장애인 직원분이 한 분 계시고 비장애인 직원이 저 포함해서 3명 이렇게 총 4명이 팀원으로 있어요. 그런데 입사하기 전부터 저는 장애를 신체적 차이 정도로 생각을 해서 일하면서도 그냥 저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저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거다 생각을 했죠.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노란들판에서 나보다 더 오래 일하신 분이고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내가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 장난 치고 농담도 하는 관계이다보니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웅: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아까 제작팀은 실적이 먼저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적은 사실 속도전이잖아요. 그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한다고 하면 바깥에서 보기에는 과연 실적을 위한 속도를 맞추는 것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하는 것이 어떻게 함께 성립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거죠.
지: 다행스럽게도 제가 입사할 때부터 이미 합이 맞춰져 있던 것 같아요. 장애인 비장애인 각자가 할 수 있는 노동의 최대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속도는 조금 느릴 수 있더라도 이미 제가 들어왔을 때부터 최적화가 되어 있었다. 잘할 수 있는 일들을 분담한 거죠. 어떻게 보면 그래도 기업이니까 직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놓은 묘 같은 게 있죠.
웅: 분업을 그때그때마다 조정을 하나요? 아니면 딱 정해져 있는 건가요?
지: 컨디션이나 일정에 따라서 조정하는 게 있고요. 한편으로는 서로가 할 수 없는 업무가 분명히 보이기 때문에 그건 팀 내에서 애초에 못하는 업무는 어렵다고 미리 얘기를 하죠. 제작팀은 물 흘러가듯이 일을 하는 편이예요.
이: 디자인팀 같은 경우는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함께 일을 해요. 비장애인 직원 4명 청각장애인 직원 3명 이렇게 거의 반반인데요. 아무래도 청각장애인 동료들이 대부분 구어를 사용하시기 때문에(농인은 아니셔서) 눈을 맞추고 순독(입술 모양을 읽는)이 수월하도록 또박또박, 청인들끼리 티키타카 할 때보단 조금 천천히 발음해서 말하도록 일러줘요. 처음 해보는 청인들은 조금 오버해서 느리게 말하기도 하고 크게 말하기도 하는데, 청각장애인 동료들은 그런 게 처음인 분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또 알려주죠. 그렇게 몰랐던 소통방식을 노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나 알려주기 같은 것이 잘 조성되어있습니다. 거기에 더 해서, 두 분은 보조 언어로 수어를 같이 쓰세요. 메신저로만 소통하거나 텍스트로만 작업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비장애인 팀원들도 수어를 어느 정도 배워야 돼요. 기초 수어 있잖아요. 영어로 치면 하이, 헬로, 월요일, 화요일, 1, 2, 3, 4이런 거.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단어들도요. 고객님, 안 돼, 수정, 현수막(단어마다 수어를 보여준다) 그걸로 이제 소통을 해요. 고객님들한테는 저희가 디자인 직원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으니 가능하면 메일로 소통해달라고 양해를 구하지만, 우리 고객님들은 항상 지치고 바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보통 전화를 하세요. (웃음) 그러면 청인이 아닌 디자이너들은 전화를 못 받잖아요. 그래서 노란들판에는 시안 소통자가 따로 있어요. 시안 소통자들도 수어를 배워야 돼요. 그러면 ‘고객님이 현수막 폰트 바꿔 달래, 빨리 빨리.’(수어를 보여준다) 이렇게 하는 거죠. 그런 걸 항상 배워야 되고, 또 청각장애인들만 있는 게 아니라 뇌병변 장애가 있는 분도 계시잖아요. 이 경우에 긴 문장이나 준비된 말은 AAC(보완대체의사소통, Augmentative and Alterative Communication)나 TTS(Text to Speech) 같은 걸 쓰시는데 평소에도 그것만 이용해서 쓸 수는 없어요. 그럴 땐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수어를 공유 하죠.
웅: 클라이언트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의 속도를 고려하는 절충안 같은 거네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소통법은 아닐 것 같고요. 저는 시안 소통자라는 업무를 주로 전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 주문 접수하는 분들이 고객이랑 소통을 하니까 그 전화를 이제 대신 받아서 내용을 전달하고 작업 담당자를 배치하는 거죠.
웅: 이거 여쭤봐도 될까요? 하루에 보통 몇 개의 작업을 하나요?
이: 그나마 평균적으로 계산하면 많을 때는 하루에 7, 9개 까지 할 때가 있고요, 두세 개 할 때도 있고 편차가 커요.
웅: 그것도 계절을 타겠네요.
이: 4-4분기에는 항상 새벽까지 일하는 편이에요.
지: 제작은 디자인팀 7명이 인당 7개를 한다고 치면 49개, 그거를 제작팀 네 명이 분배해서 생산하는 거죠. 그래서 여기도 잔업이 많아요.
웅: 사업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합을 맞추면서 일하려면 현장 노동자들의 기술과 감각도 중요하지만, 직장에서 규약과 원칙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도 중요할 거 같아요. 안그래도 노란들판 페이지를 보니까 평등한 직장문화에 대해 자랑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웃음) 평등한 노동환경을 위해 회사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듣고 싶어요.
지: 제작팀에는 장애인 당사자가 한 분밖에 안 계시고 이미 최적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장애인 비장애인 직원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대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워낙 바쁘니까 뭔가 누락된 게 있거나 하면 이제 구멍을 낸 팀원을 찾아가게 돼요. 이건 장애인 직원이건 비장애인 직원이건 대수가 없어요. 이거 왜 안 했냐, 빨리 해라, 바쁘다, 장애인 직원이라고 해서 이걸 못했던 게 아니라 안 했다고 판단이 되면 독촉하는 거죠.
웅: 역시 회사는 회사인가 싶지만. (웃음) 그럼에도 독촉을 할 때 하더라도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장 안에서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규약이나 원칙 약속 이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궁금한데요?
이: 명시된 건 없어요. 저희가 행성인 모임 시작할 때 함께 읽는 약속문 같은 걸 예전에 전체 워크숍 때 만들긴 했어요. 그것들을 매번 일할 때마다 숙지하지는 않지만, 다들 체화가 되어 있기는 한 것 같아요.
또 신입사원을 뽑을 때, 노란들판은 이런 곳이라는 점을 300번 강조를 해요. 회사 소개서에도 그렇고 면접 볼 때도 그렇고 여기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 난민,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자들과 연대한다, 다 지지한다는 걸 얘기해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죠. 그래서 적나라한 차별이나 혐오적인 표현 같은 것들도 사실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웅: 곧있으면 420 장애차별철폐의날이 오잖아요.(인터뷰는 4월 17일에 진행되었다) 그럼 특별한 교육을 하나요?
이: 전장연 활동가가 와서 매년 강의를 해줘요. 전장연이 그동안 해왔던 1년간의 운동, 그리고 앞으로 어떤 걸 할 건지 이번 420에는 뭘 외칠 건지 등등을 이야기해요. 그리고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가 왜 당신들에게 급하게 주문을 넣을 수밖에 없는가를 해명하고 가시죠. (웃음)
웅: 오리엔테이션이라 쓰지만 양해를 구하는 자리겠군요. 인권친화적인 문화와 실적 중심의 문화가 양립하는 직장이라는 건 잘 알았습니다. (웃음) 직장 안에서 커밍아웃을 한 분들도 있나요?
이: 네 저희 둘도 그렇고 직원 중에 한 두분.
지: 아까 말씀드렸던 장애와 비장애 노동자처럼 그냥 다 직원인 거죠. 회사는 돈을 벌어야 돼. (웃음) 성소수자 직원이라고 해서 뭔가 더 챙겨주는 게 아니라.
웅: 사회적 기업도 성과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지: 당신이 게이여도 현수막은 뽑아야 돼.
웅: 확 꽂히네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현수막을 통해서 바깥의 메세지들을 많이 보면 지금 하는 일도 활동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 직접적으로 운동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활동가 방언이 익숙한 회사죠. 이것저것 보장하라 아무거나 규탄한다 식의 표현들이 너무 익숙한 거예요. 회사 저쪽에는 단결 투쟁 머리끈도 있고, 재밌는 회사입니다.
웅: 과거에 행성인에서 활동을 하고 장판 상임 활동가가 되셔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 계시죠. 거꾸로 장판에서 활동을 하다가 행성인에 가입하면서 면을 넓힌 분들도 있고요. 당시 그 분들 중 몇몇 분들이 몇년 전쯤 장판 퀴어모임 같은걸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지금까지 이어지는가 궁금했어요.
이: 저희 직장이 대학로랑 거리가 있고(편집자 주: 노란들판은 돌곶이역에 있다) 인권단체보다는 회사이다보니 전장연에서는 우릴 동지 활동가로 불러주셔도 솔직히 직원이라는 느낌이 어쩔 수 없이 있어요. 관계를 맺고 싶어도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하고요.그래서인지 요즘은 거기서 모임을 계속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확실히 성소수자로 알려졌거나 관련된 활동을 하는 분들이 계신 걸로 알아요.
짝꿍들의 퇴사
웅: 화제를 좀 돌려보죠. 아까 인터뷰 시작하면서 말씀하셨지만 두 분은 ‘반려인’이라고 관계를 소개하셨는데요, 그렇게 표현하는 배경같은게 있나요? 커플도 있고, 애인도 있고, 부부도 있잖아요.
지: 저는 ‘짝꿍’이라고도 얘기해요.
이: 맞아. 이전부터 계속 연인이든 부부든 짝꿍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로 정리를 해버렸어요. 직장에서 전에 있던 분들이 그렇게 정리를 해놨어요. 여자친구 남자친구 애인 남편 아내 이런 말 쓰지 말고 특히 남편 아내 쓰지 말자고 장판에서 그게 좀 오래됐어요. 그래서 짝꿍 옆지기 두 개를 제일 많이 쓰는 것으로 알아요.
웅: 두 분의 관계는 직장에서도 알고 있죠?
이: 저희는 주소지도 같고 연인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웅: 제가 알기로는 두 분이 익숙한 헤테로 커플은 아니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성애자 커플로 본인들을 정체화 하고 있는가 궁금했어요.
지: 우리는 다르긴 하죠.
웅: 이제서야 여쭤보는 거지만, 님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게 인터뷰에 들어가도 된다는 전제 하에 말씀해주세요.
이: 저는 논바(논바이너리)입니다. 논바 팬섹슈얼입니다.
지: 저도 범성애 젠더퀴어라서 맛있으면 주워 먹어요.
이: 마음에 들면 상관없다. 정도로 정정을...
웅: 두 분이 통념 상의 헤테로 커플은 아니라는 걸 직장 사람들도 알고 있을까요?
이: 이 부분이 사전질문을 받으면서 고민이 들었어요. 직장에서 저희를 별로 궁금해하지 않거든요. 직장에 헤테로 연인이나 부부였던 직원들에 대해서도 특별히 이야기를 나누지 않기 때문에 저희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직장 바깥에서는 불쾌한 일들이 있죠. 아무래도 저를 새댁 취급하거나 지운을 예비신랑 이라고 워딩을 쓰는 일이 종종 있고요. 단골 카페에서는 애기 계획도 물어보기도 하죠. 그럴 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저희는 둘 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어서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생각이 없습니다.’ 이러고 말아요. 더 이상 말을 안 꺼내더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여기서 말한 헤테로 패싱이라는 게 남자친구로 칭한다거나 여자친구라고 칭한다거나 하는 거라면 저는 직장에서 그런 경험을 당한 일은 없었어요. 그래도 기저에는 깔려 있겠죠. 다들 그냥 사실혼 관계로 생각하고 하고 있겠구나 생각하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지운은 있었나요?
지: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 팀은 완전 남초인데 일단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연애에 별로 관심이 없으셔서. 그래서 질문을 하지도 않기도 하고, 제가 일상적으로 전 남친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불쾌할 정도로 꺼려 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렇게 한 번씩 리마인드 시켜드리죠, 내가 보통 내기는 아니라고.
웅: 의도적인 차별이나 혐오는 아니어도 미세한 긴장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노란들판 페이지에는 사회적 기업 중에서도 복지가 좋다고 나와있더라고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도 회사가 노력하고 있다는 게 보이는데요. 그래도 휴가나 경조사는 보통 이성 부부한테 집중이 되긴 하잖아요.
지: 제도만 봤을 때는 공기업에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성애 중심의 기존 제도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계속 개편해야 한다는 필요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도 이걸 적극적으로 추진을 해야 사측도 수렴을 할 거잖아요. 추진하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해볼까도 생각을 해서 한동안 차별 없는 그런 조직 문화 정보 수집도 하고 책도 받았는데 바빴다는 핑계를 댈수밖에 없네요. 사내 인사 업무 담당자분은 여기서 빨리 제의를 해달라, 바꾸자고 하죠.
웅: 당신들의 제안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회사가 직접 알아볼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지: 필요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거죠. 저희 회사는 직책이나 보직이 따로 없어서 특정 업무 담당자라고 해도 업무를 복수로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본업만 신경써도 바쁜 편이라 필요한 사람이 준비해서 가져오는 게 보통이에요.
웅: 근데 제가 듣기로는 이제 두 분이 퇴사를 준비하고 계시다고요. (웃음) 퇴사를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지: 제가 먼저 결심을 했는데 지금 직장에 들어가면서 제조업의 기본적인 강도와 필요한 에너지를 간과한 것 같아요. 저는 이전에 있던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좀 격하게 당하다가 와서 제가 강해져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또 농업에 종사하고 계셔서 자주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는데 그러면서 1차 산업 정도는 감내할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자신감이 좀 올라가 있었는데 제조업은 제조업이더라고요.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내 삶을 컨트롤할 수 없는 거죠. 계획과 일정을 짜서 이대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업무 특성상 갑자기 일이 들어오면 그걸 수행을 해야되고 언제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죠. 일이 있어야 일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게 제조업이잖아요. 내가 저녁에 이걸 해야겠다 생각해도 퇴근 30분 전에 갑자기 엎어지는 일이 생기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저녁 일정 잡는 걸 주저하게 되고 친구들 얼굴 보는 것도 좀 머뭇거리게 돼요.
이렇게까지 내가 일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면서 다른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팀 내에서도 이런 고민을 얘기해봤는데 업종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개선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현실적인 답변을 받다 보니까 이부분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느꼈죠. 그래서 이직하거나 쉴 계획을 했습니다.
웅: 그럼 이후에 어떤 일을 하겠다라는 계획이 당장은 없으신 건가요?
지: 그렇죠. 정말 할 일 없으면 아버지 댁에 좀 내려갔다가 올라올 생각은 있어요.
웅: 이안님은 어떠세요?
이: 지금 근무한 지 만 4년이 넘었는데요. 하고 싶은 걸 일단 충분히 했고요. 여기 오기 전에 공연 예술, 연극을 했잖아요. 그쪽을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예전부터 음악이라든가 미술 분야를 좀 진하게 해보고 싶은데 사실상 직장생활이랑 병행하기엔 하루가 24시간밖에 없는 거죠. 그런 것도 있고 아시다시피 빨리빨리 쳐내야 되는 업무 위주로 하다 보니까 진득하게 고민을 해서 오래오래 쓰일만한, 아니면 빅픽쳐를 그리기가 힘들어요. 아주 바쁠 땐 오늘 출근해서 내일 퇴근하기도 하니까... 지금은 몸이 너무 아파서 잠깐 쉬고 앞으로 공연예술 분야를 해보고 싶어요.
웅: 향후에 합류하거나 가고 싶은 극단이나 기관 같은 데가 있나요?
이: 우선 올해 연말에 ‘장애인문화예술판’에서 공연이 있는데 제가 무대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셔서 가을쯤 합류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제가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10월 말에 대만에서 타이완 프라이드 위크가 있더라고요. 거기를 둘이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것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연 예술 말고 디자인 작업도 앞으로 쭉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행성인 같은 운동단체들의 디자인을 좀 계속 쭉 하고 싶어요. 그걸 주로 하는 단체나 회사까지는 아니고 개인 단위로 운영하는 곳을 몇 군데 리서치하고 있어요.
웅: 두 분이 같이 살면서 같은 직장을 출퇴근 했던 거잖아요. 업무까지 같은 건 아니지만. 그 생활이 사라지는 건 조금 아쉽겠어요…아닌가?
지: 고등학교 기숙사 살면서 룸메이트들이랑 같이 등하교를 했고 중학생 때도 친구들 집 가서 친구 데리고 등하교 하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까 비슷했어요. 짝꿍을 데리고 같이 출근을 하는 것만 달랐던 거죠. 퇴근은 좀 다르게 했죠. 늦어지면 기다리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집에 가서 고양이를 돌보고 집을 좀 돌봐야 되기 때문에. 같이 살면서 이런 일상이 계속 유지됐는데 이안이 먼저 퇴사를 하니까 이제 한 두 달은 제가 혼자 다녀야 되잖아요. 이제 차이가 느껴지겠죠. 좋았었던 걸 이제 못한다는 걸 느끼겠죠. 더 출근하기 싫어지겠고.
이: 구름이(고양이 이름)랑 혼자 열심히 놀아야지
웅: 같이 산 지 2년이 됐다고 했잖아요. 계기가 뭐였나요?
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 저는 누군가랑 같이 사는 거를 어려워하는 편이 아니라서 같이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그냥 기본적으로 했었고 두 번째는 현실적인 건데 같이 살면 더 좋은 조건의 집에서 살 수 있으니까.
이: 그 시기가 딱 이 친구도 고향에서 서울로 와서 집을 구했던 시기였고 저도 원가정에서 독립하고 나서 너무 경제적 부담이 심한 셰어하우스를 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같이 살고 있죠.
웅: 좀 뻔한 질문인데, 같이 살면서 장단은 뭐가 있었나요?
이: 전 개인적으로 서류 만지는 일을 잘 몰라요. 공과금 같은 것도 아직 잘 모르고 대출도 저는 학자금 대출 이런 거 말고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걸 이 친구가 다 해요. 아주 그냥 쏠쏠한 친구에요. 대신에 저는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되게 잘하죠. 이 친구가 관심을 덜 갖는 부엌일 같은 것들을 제가 더 잘해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살고 있어요.
지: 확실히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집이 어지러지는 걸 싫어하는데 치우지도 않아서 애초에 뭘 안 했어요.
이: 먼지가 3년씩 쌓이고. (웃음)
지: 근데 이안이랑 같이 살다 보니까 집에서 요리도 해먹게 된 거죠. 단점은 집안일이 두 배로 늘었다는 거고 장점은 그 집안일을 같이 할 사람 인력도 2배로 늘었다는 거.
웅: 다행히 분업이 잘 되어 있네요.
지: 좀 더 자신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저는 집에 고장 난 거 있으면 고치는 거 좋아하고, 만들고 조립하는 거 좋아하고. 이안도 잘하는 일을 하니까.
이: 이게 또 그게 있어요. 너무 이성애 부부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런 게 외부에 비쳐지면 전 또 새댁이 되는 거예요. 얘는 또 예랑이가 되는 거고. 진짜 미치겠어요. 바깥에서 볼때 그런 게 있어요. 동네 어르신들 만나기 좀 껄끄러워요.
지: 맞아요. 저희 주변에 다 어르신밖에 안 살거든요. 옆집에 인사드리러 갔더니 아이고 학생 같이 젊은 부부가 왔네~ 이러시고. 자기 아들은 장가 안 갔다고 안 궁금한 거 말씀하시고. 일단 우리가 결혼했다고 기정사실화를 해.
웅: 말씀 들으니까 궁금한데 두 분은 일단 반려인이라고 관계를 소개하셨는데, 결혼은 경제적인 필요나 다른 욕구들을 위해 하기도 하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나요?
지: 해봤죠. 사실 신혼부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어 있는 퀴어 커플이잖아요. 그래서 기존 결혼제도의 유혹에 넘어가야 되나, 눈 딱 감고 넘어갈까 이런 고민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게 꼭 이성 부부가 아니어도 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또 열받는 거예요. 오기도 좀 생기고. 그래서 안 하고 악으로 깡으로...
웅: 활동가의 삶을 택하셨구만요. 신념을 따라서
이: 사서 고생 고생하는 거죠. 다시 직장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아까 얘기했던 직장 내 돌봄휴가 같은 것도 혼인 관계거나 직계 존속이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웅: 그런 거는 빨리 바꾸면 좋겠다. 노란들판은 제안을 하면 바꿀 것 같은데
이: 타이밍이 아쉽죠. 제가 그만두기 전에 제안을 했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게 되면 왜 너네는 혼인신고 가능한데 안하고 있냐는 질문부터 받을 것 같아요. 추궁까진 아니어도 바탕 설명을 시작해야 되는 거죠. 대외적으로 동성혼 법제화가 되기 전까지 혼인신고 안 할 거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희들의 신념 때문에 결혼 안 하는 걸 우리가 보장해줘야 되냐고 덜 협조적으로 얘기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우리가 어디까지 말을 해야 되냐, 왜 해야 하나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행성인
웅: 성소수자의 삶은 설명할 게 너무 많죠. 그 고민을 두 분이서만 안고 가지 않기 위해 행성인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행성인은 언제 처음 알고 참여하셨나요?
지: 행성인을 안 건 좀 됐는데, 참여는 디딤돌을 계속 노리고 있다가 작년에 정말 오랜만에 디딤돌을 한다고 해서 나갔어요. 여름쯤 둘이 같이.
웅: 저는 기억에 남았던 게 행성인이랑 전장연이 서울퀴퍼 준비한다고 이상한 연대 행진단 프로그램 할 때, 노란들판에서 축전 배너를 만들어서 들고오셨잖아요. 너무 감동했어요. 감동하라고 작정하고 준비해오신 것 같았고(웃음) 제가 두 분을 처음 본 건 그자리였네요.
이: 딴얘기지만 작업하면서 행성인 로고 깔끔하고 매끈하게 손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년 전부터 했어요. 깃발 모양 있잖아요. 디자인할때 보면 좀 울퉁불퉁하거든요. 저거 왜 매끈하게 안 만들까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웅: 한번 손을 보긴 해야할 거 같아요.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많은 성소수자 운동단체들 중에서도 로고까지 손볼게 많은 행성인을 찾은 계기는 뭐였나요?
이: 저는 우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좀 친화적이고 포괄적인 성격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게 너무 좋았어요. 크게 보면 투쟁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제를 동시에 가져가려는 노력이 보였고, LGBT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두루루 잘 지내는구나,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이 느껴졌어요. 그냥 딱 봐도 투쟁 단체라서 왔어요. 맨날 깃발 들어.
지: 저도 이안이랑 비슷한 생각인데, 이런 데까지 왔나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행성인 깃발이 보였어요. 저 단체는 다 오네 농담처럼 얘기하면서 여기가 큰 물인가 보다 (웃음) 그래서 온 것도 있고, 정말 그냥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단체라고 느껴서 함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웅: 물론 그렇게 보이기까지는 내부에서의 여러 일들과 긴장도 있긴 하죠. 그게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조정하고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두 분은 행성인에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보고 함께하기도 했잖아요. 인상 깊은 활동은 뭐가 있었나요?
지: 행성인 활동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액션으로 봤을 때는 무지개행동에서 작년 차금법 농성기간 중에 국회 맞은편 빌딩에 대형 현수막을 걸었잖아요. 그거 우리팀이 고심해서 만든 거라서 (웃음) 물론 야근을 했지만. 뿌듯했던 건 그거고, 제가 직접 참여해서 재밌던 활동은 후원주점이었어요.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와서 행성인 25주년을 축하하면서 연대하고 후원했다는 거. 스탭 했던 회원들도 이게 돈 받고 하는 게 아니어도 엄청 열심히 했죠. 안주도 맛있었고요. 그런 것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지금까지 행성인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웅: 마침 25주년이었던 게 한 수였네요.
이: 저는 인상 깊은 활동이 있었다기보다는 행성인이 뭘 자꾸 만들거나 하잖아요. 그게 아니어도 연대활동들에 주관, 주최, 후원, 참여로 그 이름이 있는 거에요. 저는 ‘성소수자’ 단어만 보면 자꾸 눈이 간단 말이지. ‘차별 금지’ 이런 거 들어가면 계속 보는데, 행성인이 자꾸 눈에 띄니까 인상 깊었죠. 토론회나 문화제, 집회도 그렇고. 이상한 연대 행진단! 저는 그게 그냥 제일 기억에 남아요. 주문받아 만든거지만 작업하면서도 너무 즐거웠고.
지: 그걸 못 봐서 너무 아쉬워요. 왜 못 봤지? 저는 그때 퍼레이드 자활가로 참여해서 당시 친구사이 트럭 옆에 가 있었거든요.
웅: 고생하셨네요. 이상한 연대의 행진단 준비하면서는 다른 해보다 행진에서 장애여부를 고려하며 함께 거리를 걷는 것이 어떤 기반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두 분은 그간 본업을 하면서 성소수자 운동에도 참여를 하셨는데요, 관심을 두는 성소수자 의제나 이슈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 행성인 아카데미를 통해서 더 느끼게 되기도 했지만, 퀴어들이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단 가장 구체적으로 동성화 법제화가 가장 눈앞에 놓인 문제가 아닐까 싶기는 해요. 왜냐하면 그게 돼야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지: 저는 우선순위를 둘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다 같이 해결되면 더 좋잖아요. 예를 들어 누군가는 같은 건으로 의료보험의 대상이 되지만 누군가는 되지 못하고 누군가는 국가에서 보장하고 지원해주지만 누군가는 그걸 못 받고. 그래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빨리 제정이 돼야 한다라고 생각을 해서, 우선순위를 만든다면 그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건강보험 적용받고 싶다.
웅: 퇴직 이후 계획을 잠깐 얘기나눴는데, 현실적인 계획 외에도 막연하게나마 하고 싶은 활동 같은 게 있으면 뭐가 있는지 들려주세요.
지: 서울퀴퍼 자활을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매년 했던 거라서 놓을 수 없다! 거기에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기도 하고요. 가까운 거는 그거고, 이번에 아카데미참여하면서 이제 팀 활동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 가서 뭔가 해볼까 했는데, 최근에는 웅님이 계속 영업을 하시잖아요. HIV/AIDS인권팀에 재미있는 얘기 많이 한다고.
웅: HIV/AIDS 인권팀은 속풀이 뒷담화를 위해 회의를 합니다.
지: 웅님이랑 술먹을때 그 얘기를 다섯 번이나 들었어요.
웅: 트랜스팀 가세요. (웃음) 이안님은 어때요?
이: 저는 예정한 대로 장문판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디자인은 공부한 것까지 세어보면 거의 10년이 다 돼가거든요. 디자인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걸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최대한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그런 작업으로 연대도 하고 싶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제 동생이 발달장애인이어서 후견인 같은 것도 알아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독립이나 자립을 도모하는 곳에서 내가 필요한 인력이 된다면 그런 것도 하고 싶어요.
웅: 저희가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면 부탁드려요.
이: 오늘 얘기를 하다보니까 전 직장에 대해서 이런 걸 얘기해도 되는지 고민을 했어요.
웅: 장애차별철폐의날을 맞아 하는 노란들판 퇴사 기념 인터뷰죠. (웃음)
이: 오늘 인터뷰 너무 재밌었어요. 얘기를 하면서 떠올라서 정리되는 것도 많고 아주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 인터뷰라는 걸 처음 해봐서 어버버버 하면 어떡하나 엄청 걱정 하면서 왔는데 생각보다 많이 잘 떠든 것 같아요. 근데 회원인터뷰는 어떤 걸 기준으로 해요?
웅: 활동하면서 많이 보인다는 게 제일 큰 기준이죠. 자주 봐서 익숙하고, 어느정도 정보도 나눈다는 건 친밀함만 높이는 게 아니라 개인의 서사를 활동과 연결시킬 가능성을 발굴할 수 있는 계기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의 이야기를 활동과 연결지을 수 있겠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면 좋겠고, 인터뷰이에게도 그런 기회를 열어서 같이 활동하는 일이 많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있고요.
지: 웅님을 비롯해서 상임활동가분들이 이렇게 너무 소모되지 않고 지금 하시는 일 그대로 맡아 오래오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게 언제나 고된 과제 같은 느낌이에요. ‘포기’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얘기를 주기적으로 해주는 것도 좀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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