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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행성인 성평등위원회 세미나] (2) 사과에 대하여

by 행성인 2024. 2. 20.

이덕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평등위원회)

 

 

단체활동을 하면서 사과가 뭘까란 생각을 종종 했다. 성폭력이나 인권침해 사건처리 과정에서 가해자가 사과문을 작성해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피해자가 사과문을 받고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이미 신뢰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사건으로 불거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사건절차라는 형식과 시간 안에서 “사과”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SNS에 “좋은 사과문을 쓰는 법”이라고 돌아다니는 글을 보면서도 뭔가 찜찜했다. 이 시대에 사과는 하나의 기술이 되어버린 걸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흠잡을데 없는 사과문을 쓸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사건 처리를 하는 위치에서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나’란 생각을 많이 했다. 어쩌면 사과가 너무 쉽게 해결책으로 제시돼서 그런걸까. 성평등위원회에서 『사과에 대하여』(저자: 아론 라자르)란 책을 같이 읽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사과에 대한 나의 의구심과는 달리 저자는 사과가 손상된 관계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는 이런 “성공적인 사과”에 대한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그리고 성공적인 사과는 다음과 같은 피해자의 욕구 중 하나 이상을 만족시킨다고 말한다.

 

  • 손상된 자존심과 명예 회복
  •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믿음
  • 피해자는 잘못 없다는 확인
  • 미래의 안전에 대한 확신
  • 가해자의 심적 고통을 목격
  • 손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
  • 상처를 표현할 의미 있는 대화

 

이렇게 피해자의 욕구를 목록화시킨 것은 좋았는데, 사건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도 피해자의 욕구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는 자신이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이럴 때 피해자의 요구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사건처리 담당자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럴 때 이러한 목록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목록 대부분은 동의되는데, 하나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가해자의 심적 고통을 목격”이었다. 책에서 사례로 든 저자의 아내와 자녀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가해자의 심적 고통 목격”부분이 나온다. 저자의 아내는 브라우니를 훔쳐간 사람으로 자녀를 의심하고 거짓말한다고 몰아붙이는데, 나중에 아내의 실수인 것이 밝혀서 아내가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 그런데, 자녀는 사과를 받지 않고, 아내가 충분히 괴로움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사과하게 둔다.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좋네요. 엄마 스스로 바보 같다고 느끼실 테니까요”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화가 풀리고 나서 자녀는 아내에게 사과하고 관계가 회복된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처음에는 자녀가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고통을 목격해야 만족하는 건 별로지 않나. 근데 책을 읽으면서 거기에는 다른 것들이 숨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굴욕을 당했다. 자존심에 손상을 받았다. 기울어진 권력관계에서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바고 세우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우위에 서는 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괴로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가해자의 고통은 본인 스스로의 행동에 수치심을 느끼고 피해자에게 미안할 때 가능하다. 이렇듯 “가해자의 고통 목격”에는 “손상된 자존심과 명예 회복”, “피해자는 잘못 없다는 확인”과 같은 피해자의 욕구와 서로 얽혀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들을 잘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열된 피해자 욕구가 사과에 다 담기면 좋겠지만, 사과문 하나로 해결될 수는 없다. 저자는 사과를 한다는 것은 양측이 문제 해결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협상의 과정으로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많은 것들이 협상의 대상이 된다. 누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가해자와 피해자 각자의 책임 소재, 가해자가 인정해야 하는 가해 내용의 구체성, 가해자가 표현해야 할 후회, 모욕, 수치심, 진정성의 수위, 피해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크기, 피해자 측에 대한 보상 가능성, 사과의 타이밍(언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오래 양측이 대면해야 하는지), 피해자 측이 그 간 받은 고통에 대해 말할 기회 등이 그렇다. 사과는 “만족스런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협상과정의 첫걸음”인 것이다. 피해자가 만족할만한 사과문을 작성해서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기 보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사과문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충분이 이야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개인의 사과도 있지만, 단체의 사과도 있다. 단체의 사과는 개인의 사과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개인이 아니라, 단체에 잘못의 책임이 있다면, 사과는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위에 언급된 수치심, 죄책감의 목격, 권력 주도권 역전 등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해지는 걸까. 캐나다 총리가 과거 정부를 대표해 눈물을 보이며 성소수자들에게 행한 차별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 잘못한 사람들이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와 관련해서 책에 나온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직접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조상, 국가대표 스포츠 팀의 우승, 국가가 이룬 훌륭한 성과 등), 불명예(그러나 죄의식은 아닌)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적 자긍심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의 조국이 저지른 국치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단체로 활동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체가 잘못에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대표자가 물러나는 이유도 가해 단체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주도권을 역전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행해지는 것 같다. 단체의 사과는 개인의 사과와는 다른 측면들이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단체 활동에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단체의 사과는 공동체의 윤리를 새롭게 제시하는 운동이기도 한 것 같다. 캐나다 총리의 사과도 ‘우리 공동체는 더 이상 성소수자 차별을 용납할 수 없다’라는 적극적인 메시지였던 거고. 사과의 의미를 “내가 잘못한 게 뭔데”로 가두지 말고,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면서, 피해자가 미래의 안전에 확신을 갖는데 기여하는 활동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겪은, 그리고 앞으로도 겪게 될 현실에는 수많은 사과의 실패가 있다. 제대로 이루어진 사과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진정한 사과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단체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단체의 역할은 사과문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의 기준을 매번 새롭게 고치고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인권단체라는 특성상 끊임없이 무엇이 차별이고 폭력인지 고민할 수 밖에 없고, 잘못에 대한 기준은 고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들이 쌓여야 한다. 사건처리는 그러한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건처리를 통해 나온 문제의식들이 단체 활동에 잘 녹아들어야 한다. 단체의 지향이 무엇이고, 어떤 걸 차별/폭력이라고 생각하는지, 회원들과 그 내용을 공유하고, 활동에 녹여냄으로써 피해자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성평등위원회와 함께 할 회원을 찾습니다.
성평등위원회는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회원 전반의 성평등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일상 속 조직문화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지 고민하며, ‘반성폭력 규약 평등한 행성인을 만들기 위한 약속’, 회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성평등 담론 형성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입니다.
함께 즐겁게 활동하기 위한 토양을 만드는 성평등위원회와 같이 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연락 부탁드립니다.
*의무교육을 이수하신 정회원이어야 합니다.
E·mail : lgbtacti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