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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푸근한 빵집아저씨가 되고 싶은 욜의 이야기

by 행성인 2010. 3. 2.

 

지난 2월에 열린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총회에서 새로운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된 정욜회원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난 13년간 늘 한결같은 자세로 동인련과 함께 삶을 살아온 그에게 남겨진 추억, 앞으로의 소망을 물었습니다. 평소 고되고 바쁜 활동 속에서 놓치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평범한 질문과 대답을 나누며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episode_1. 첫 만남과 설레임



욜씨와 동인련과는 참으로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년째 활동을 하고 계시죠?


97년 겨울에 가입하고, 계속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군대에 있던 시기를 제하면, 2000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동인련과의 첫 만남은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당시는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고, PC통신만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였는지, 제가 다니던 대학교에 ‘대학 동성애자인권연합’(이하 대동인, 대동인은 1998년 현재의 동성애자인권연대로 명칭을 전환하였다.)을 알리는 대자보가 붙었어요. 당시엔 그런 식으로 동성애자 모임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걸 보고 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대자보를 보고 바로 대동인을 찾아가셨나요?


아니요. 처음 며칠간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수업시간에도 고민만 하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떨리네요. 그러다가 모임이 있는 날에 용기를 내서 찾아갔죠.


이미 당시에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거군요.


네, 그랬습니다. 그때 애인처럼 만나던 선배가 있었는데, 대학교에 처음 입학하고 새터에 가서 만난 사람이에요. 그 선배가 저를 정말로 예뻐해 줬어요. 여자선배가 제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계속 제 손을 잡고만 다녔죠. 그러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어머, 생각해보니 그땐 정말 풋풋했네요.


아무튼 그렇게 그 선배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런 고민은 선배도 저와 마찬가지로 갖고 있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PC통신으로 자료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이룬 것 같네요.


그럼, PC통신 활동도 하고 그랬나요?


아니요.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구나, 정도였습니다. 그냥 선배하고만 잘 지냈어요.


그럼 그분과 첫 연애를 시작했다는 건가요?


네. 그땐 늘 설레는 날들이었어요. 아침에 학교 가는 길도 설레일 정도였으니까요. 두 사람이 눕기도 비좁은 선배 방에 자주 놀러가서 함께 대화하고, 술 마시고 하던 날들이었는데, 그렇게 서로만 바라보면서 어색한 연애를 했습니다. 그래도 맨 정신으로는 어색하고 힘들었는지, 늘 술기운을 빌려 함께 누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자보를 보고 혼자 찾아갔나요? 선배와는 같이 가지 않구요?


저 혼자 찾아갔어요. 그땐 2학년에 올라갈 때였는데, 선배와도 많이 싸우던 시절이었거든요.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어주기만을 원했던 사람이라 저와 여러 가지로 다툼이 있었어요. 그렇게 첫사랑과 서먹해질 때 즈음, 동인련을 알게 되었던 거죠.


동인련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무실이 좁다. 이정도요.


사무실은 당시 대표 분의 반지하 자취방이었습니다.

처음 나간 날은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었는데 제가 처음 나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다들 잘 대해줬어요. 그 이후로 회원분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다니던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던 사무실을 동아리방처럼 드나들었습니다. 한주에 5번은 찾아갈 정도로요. 함께 TV보고, 얘기하고, 회의도 하고 하는 시간들이 마냥 즐거웠어요.


그때의 주요 활동은 어떤 것이었나요?


지금과 같이 특별한 이슈들은 없었어요. 모임을 알려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전 주로 홍보활동에 참여했는데, 대자보를 붙이러 수도권 곳곳의 대학을 찾아다녔습니다. 수원에 있는 K대에 대자보를 붙이러 간 적도 있는데, 그곳에서 병권씨도 처음 만났어요.


당시 대동인의 대표분과도 사귀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이야기도 살짝 해주시겠어요?


네.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축하를 받으면서 연애라는 걸 시작한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한동안은 집을 나와서 그분과 함께 살림을 차리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철이 없었던 것도 같은데, 가족이나 다른 내 주변의 일들보다 동인련과 연애가 너무도 중요하게 여겨지곤 했던 때였습니다. 뭐, 그렇게 반년 가까이 지내다 군대에 갔습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episode_2. 기쁨과 절망의 순간들


10년 넘게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만큼, 그간 어려운 일들이나 아쉬운 일들도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03년이었던 거 같아요. 2002년 회원들과 그 당시 대표와의 갈등으로 몸과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어요. 사무실도 굉장히 좁은 곳으로 옮겨가게 됐는데, 2002년 12월부터 찾아오던 청소년 회원이 사무실에서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육우당이라는 친구였죠. 특히 그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다보니 한동안 사무실에를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혼자 있는 걸 싫어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가슴이 아팠고, 해결해야만 했던 모든 일들이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을 때 힘들어요. 동인련 회원들도 활동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직장을 구하거나 학교공부를 더 하기위해 활동에 뜸한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죠. 저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면 내가 이런거 해서 뭐 하나. 내가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여유도 생기고.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어서 그런가. 


그밖에 다른 어려움들은 없었나요?


사람한테 지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때로는 주변사람들 각각의 개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사안에 대해 맞춰져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는데, 내가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너무 의무감에 사람들에게 다가간 결과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유연해지고, 솔직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돈이 없었을 때도 힘들었습니다. 동인련은 늘 가난한 단체였으니까요.


제 개인적으론 욜씨가 대학 졸업을 전후해서 참 힘들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졸업과 취업준비, 동인련 활동 등 모든 일들이 겹쳐있던 시기였지 않나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음……너무 무리했던 것도 같네요.


제가 앞에서 사람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늘 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참 즐거웠어요. 전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히나 동인련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들은 제 삶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졸업을 앞두고 바쁜 시기에도 이런 일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땐 오전마다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녔는데, 이건 저의 개인적인 꿈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대학교는 졸업해야 하니, 수업도 들었구요. 그래서 어쩌다보니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일을 세 가지나 동시에 하게 되다보니, 육체적으로 참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그때 여러 활동가들이 곁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에 그 상황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욜이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기 보다는……그러니까……


사람이 좋았기 때문에 동인련에 있었기 보다는, 동인련을 우선시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욜씨는 동인련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인상도 있구요.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랬었나? (웃음) 그 말도 틀린 건 아닙니다. 단체가 어렵다보니 늘 활동 위주로 돌아가게 되고 저도 모르게 많은 회원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거에요. 활동 외에는 소홀하게 대했을 수도 있구요. 원래 성격은 안 그런데, 동인련 활동을 하며 책임감도 많이 느끼다보니 그랬었나 봐요. 혹시 상처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해해주세요 (웃음)


동인련 활동이 개인에게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희생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활동 하시나요?


왜 그럴까요? 대답하기 어려운데요.

왜 그런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더 책임감을 갖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낫잖아요. 희생이라기 보다 동인련은 저에게도 큰 복입니다. 지금 당장은 득이 되지 않을 수 있어도 동인련이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는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해요.


때로는 아무도 나의 활동을 알아주지도 않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섭섭하고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나도 사람인데... 나도 내길 찾아가야 하는데, 나도 개인적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싶은데, 하는 욕심들도 있죠. 다들 함께 하면 일을 나눠서 한다면 더 잘, 더 편히 모임을 꾸려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솔직히 있습니다.


정욜씨는 ‘기계처럼 일만한다’라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이런 주위의 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요?


전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못 이겨낼 정도로 힘들진 않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만족보다 대의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오히려 동인련의 작은 일들이 하나하나 이뤄지고 결실을 맺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한 것 같아 뿌듯하구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맡은 일이 잘 해결되어서 좋은 평가와 칭찬을 받으면 참 기쁩니다.


또 일 얘기군요. 개인적인 취미는 없나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잘 몰라서 그렇지, 저도 일 말고 좋아하는 거 있습니다. 우선, 영화보기를 좋아해요. 극장에서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아 그냥 좋아요. 판타지물, 로맨틱 코미디, 가슴 아픈 사랑얘기를 특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낮잠과 TV보기 정도?


애인하고의 데이트 얘기는 빠뜨리시는군요. 현재 애인분과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4년 정도 된 것 같아요. 활동을 하며 만났고, 지금은 에이즈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을 넘나들며 함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친구처럼 지내고 있죠. 한 달에 한 두 번은 영화도 보러 다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뮤지컬을 봐요. 회사에서 가끔 공짜 티켓이 나오거든요. 가까이 어울리는 회원들에게 주기도 합니다. 집안 살림을 그 친구가 많이 하다 보니까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더 잘 지내야지요. 


욜씨는 본명으로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눈치 채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주변 사람들은 욜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요?


글쎄... 아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죠. 크게 개의치 않는 거 같아요. 한번 인터넷 언론에 얼굴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동생 친구들이 검색하다 찾아보고 남동생에게 말한 적은 있었어요. 어머니까지 알게 되어 집에서 걱정을 많이 했죠. 지금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머니와 남동생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서 제가 큰 어려움을 당할 때는 지지자가 되어 줄 거라 생각해요. 언론이나 웹진에 기고한 글들을 동생이나 동생친구들이 많이 보는 것 같아요. 형 한번 만나보고 싶다, 대단한 것 같다며 동생 친구들이 한 말을 동생이 저한테 전해준 적도 있어요. 이럴 때는 뿌듯하죠.


회사는 뭐...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지만 결혼을 안 하고 여자 친구가 없다보니까. 의심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직감이 맞다면 몇 명은 알고 있을 거에요. 직장동료들한테 업무 외 잘 못한 게 없으니 걱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피곤할 것 같아요. 



episode_3. 동인련의 길, 나의 길


이제 동인련의 운영위원장이 되셨습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애정을 가진 회원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각자 알아서 후원을 권유하고.

지금 동인련이 참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1년간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싶으신가요?


회원분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어요. 우선, 회원 한명 한명을 만나서 편히 술도 마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인련 내부의 팀 활동들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개입하는 활동도 이어가고요.


다시 말해, 다 잘 하고 싶다는 거군요?


네. 그렇지요. 다 할 수 있을까요?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청소년과 HIV/AIDS관련 활동입니다. 청소년활동은 우리활동의 미래이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하고, 사실은 먼저 떠난 육우당에 대한 빚을 갚는 심정이어서 특히 관심을 갖게 됩니다. 다시는 육우당과 같이 비극적인 삶을 사는 청소년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들이 있었어요. 꼭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기도 했구요. 그래서 최근엔 청소년학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2003년도에는 윤가브리엘 형과 활동을 함께 하면서 HIV/AIDS에 대해 많은 점을 알게 됐습니다. 동성애자 감염인들에 대한 얘기도 직접적으로 많이 듣게 됐는데,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통의 게이와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처음엔 비감염인이 활동을 하기 때문인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으스러질 듯한 포옹으로 진심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활동의 시작에 대해서는 딱히 이 이상으로 말할 것이 없네요. 이건 그냥 업보 같아요. 아직도 더 많이 알아야 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동인련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형식적인 모습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권위, 지위, 엄격한 체계보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따뜻하다, 재밌다, 유쾌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단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학벌, 나이, 성별, 인종, 질병에 대한 차별 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모임의 모습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꿈이나 바람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작은 빵집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간적이고 따뜻한 빵집이요. 동네 사람들한테 칭찬을 많이 듣는 그런 가게요. 저도 언젠가는 한 지역에 자리를 잡을 텐데, 그런 곳에서 참 착하고 푸근한 빵집 아저씨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 그거 정말 좋네요. 2층엔 동인련 사무실, 3층엔 활동가가 사는 원룸도 만들어요.


물론, 지하엔 술집도.


정욜의 꿈이 담긴 낙서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동인련 회원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의 롤모델은 올해로 47세가 되는 여기동 회원이에요. 늘 엄마처럼 고민도 상담해주고,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더라도 활동과 공부 모두 열심히 하잖아요. 전 아직 젊지만 동인련 회원들이 저를 동인련 엄마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려움과 고민이 있으면 같이 이야기하고 해결방안도 찾아보고. 요즘은 너무 바빠서 회원들에게 연락이 와도 잘 못받는데요. 그래도 연락주세요. 그리고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모든 이에게.




인터뷰 및 정리 _ 신이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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