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는 종로 3가에 위치한 전시공간 D/P에서 2023년 5월 2일부터 6월 10일까지 진행한 전시 《Bench Side》 도록에 기고한 글입니다. 《Bench Side》 전시는 기획 유닛 QF(하상현, 권시우)가 기획하고, 안초롱, 최고은, 김민훈, 이승일, 윤정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
남웅(행성인 HIV/AIDS인권팀)
어떤 데뷔
80년대 후반, J는 『선데이 서울』과 같은 황색 잡지에 가십처럼 등장한 ‘P 극장’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까먹지 않기 위해 세 글자를 입안에 사탕처럼 굴리면서 비슷한 철자의 극장들을 하나씩 찾고 지우기를 거듭하며 배회하던 시간, 그에게 종로는 이전과 같은 장소가 아니다. 알게 된 이상 돌이킬 수 없다. 범인(凡人)에겐 철저하게 타인의 영역으로 갈라쳐지는 프릭쇼에 가깝지만,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조리돌림 하는 이미지와 가십거리는 나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실마리로서 필사적으로 쥐어야 하는 정보였을지 모른다. 속을 들킬까 부끄럽지만, 이미 수치가 다 무어냐는 갈급이 우선이다.
찾는 길은 수월하지 않다. 종로바닥에서 이름에 'P'가 들어가는 극장이 하나만 있던 건 아니니까. 피카디리인가 파고다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현생에서 도피하듯 문밖에 나와 한참을 헤매야 찾을 수 있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쉽게 얼굴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입구의 분위기와 대기만으로 여기가 P 극장이라는 걸 안다.
명색이 극장이지만 대다수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같은 극장을 찾았던 N은, 비어 있는 열의 좌석을 찾아 가운데로 들어가 앉았다고 한다. 이윽고 사람들이 다가온다. 그들은 강시처럼 통통 좌석 열 양 끝에서 자신에게 다가왔다. ‘강시’라니, 80년대 붐을 일으킨 오컬트 영화 중에서도 아시아권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얻은 청나라 좀비가 곧장 어둠 속에 출현하는 타인의 존재로 오버랩된다. 여기에 ‘통통 옆으로 왔다’는 긴박감은 당시 순간이 얼마나 생애에 강렬하게 각인되었을까를 가늠케 한다.
첫 만남이 나쁘지 않았다면 나가서 술 한 잔 마시자는 제안이 들어온다. 그렇게 처음 발을 들인 이는 이윽고 낯선 이를 따라 ‘이쪽’ 술집에 입성한다. 클럽이 흥행하지 않던 시절, 이태원이 ‘게이 해방구’로 뜨기 전인 8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에는 을지로와 신당, 종로 등지 개봉관 근처 2류 극장을 중심으로 업소들이 편재되어 있었다.
통금이 한참 전에 해제된 시점이지만 밤이면 문을 열어도 닫은 것처럼 암암리에 운영된다. 멤버십 클럽처럼 알음알음 아는 이들만 찾아오면 몰래 술을 파는 장소는 줄곧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은 어느 때고 쫓겨 다녀야 함을 체화한 듯 보였다. 공권력의 출몰에 인이 박인 이들은 이미 퇴로를 확보해두었다. 왜 경찰이 그들을 급습하고, 그들은 왜 도망가야 하는가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CCTV도 블랙박스도 없는 공간에 경찰의 인기척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면 손님들은 비상계단으로 올라가서 2층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건물 밖에는 누가 마련했는지 골판지와 스티로폼 등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들을 쌓아뒀다고 한다. 매일같이 긴장을 놓지 않는 동안 밤새 이뤄진 시선 교환에 그저 끈적한 성적 뉘앙스만 가득했던 건 아닌 셈이다.
주어진 기능에 어긋나는 공간은 우연적이고 일회적이지만, 우연들이 모이면 기대와 실낱의 희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밤의 공기에도 지층이 쌓이고 느슨한 기후대가 형성되면서 문법과 질서가 만들어진다. 밤낮으로 하루살이처럼 어둠 속에 뛰어들고 연희가 끝나면 나가떨어져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언제라도 다시 만나자는 기약이 오가고 만남의 형식들이 구성된다. 누군가 나서서 그럴듯한 업소를 만들자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고, 자동문을 설치하고, 최신 인테리어를 구비한 것도 그 즈음이다.
나 같은 이들이 모이는 공간,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그러지 못하는 공간, 그러니까 비슷한 남자 또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들이 입장하는 공간은 낮보다는 밤이 어울렸고, 낮 동안도 여기는 밤이었다. 그만큼 드러나지 않고 드러내지 못한 이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들키지 않으면 불이익받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 종일 노고를 감수하고 밤사이 숨통을 틔우기 위해 모이는 공간, 하지만 그 공간조차도 일상에 나오면 안 될 치부처럼 살뜰하게 들락거리던 공간, 그러니까 종로는 인생을 망친 내 생을 구원해준 공간과 비슷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항할 수 있는 언어는 충분치 않고 커뮤니티에는 문화라고 할만한 것들이 있더라도 내부의 기록은 많지 않다. 기억이 전해지지 않기에 온전히 애도할 것이 없었고 그저 당시의 장소와 기억은 도시 전설처럼 소모하고 소비하는 이들로 남겨 두어야 했다. 1 아니, 그것은 반쪽짜리 이야기다. 언제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장소라고 할지라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서로를 돌보면서도 감시하고 소문으로 만드는 질서가 작동한다. 누군가는 단골이 되었고, 다른 누군가는 손님에서 업소 사장님으로 말뚝을 박았다. 익숙한 얼굴들은 말을 트고 잔을 나누며 종로의 지박령이, 성주신이 되어 갔다. 하여 종로의 퀴어 이야기는 온전히 분리된 종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온전히 도시에서 소외된 이들로만 점철된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내부의 취약함에 주목하여 우연과 우연이 엮는 낭만과 비극을 이야기하는 건 어느 정도 편향된 해석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취약한 삶을 택하면서 가부장의 역할을 포기한 이들의 서사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강제적으로 묶인 정상 가족을 탈주하지만, 자식들은 성장의 터전이었을 가족의 일원을 잃는다. 물론 이러한 경우보다는 정상 가족을 유지하면서 제 밤의 시간을 따로 향유하는 이들이 많았을 테다. 이는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자신을 드러내고 설명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들어줄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인데, 나는 그것이 그들만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조금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비밀은 많은 역동을 감추고 지운다. 누군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을 때, 그는 소문으로 한동안 구천을 맴돌다 이내 집단의 기억에서 증발한다. 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당신을 소문으로 남게 만들고, 소문으로 사라지라고 명령한다. 말 그대로 누군가는 귀신이 되었고 귀신 취급을 받았다.
치료제가 보급되는 근과거에도 질병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운동장의 동료들은 편하게 대화와 스킨십을 섞기 어려웠다. 애도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타인을 부정하고 나까지도 부정과 가십의 대상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정체화가 어려웠을 상황에서, 희박하고 한시적이나마 이뤄졌을 접촉과 만남과 교감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낭만으로 수렴하는 유혹을 경계하면서, 우리는 이를 재차 소문 저편의 아련한 추억으로만 주억거리지 않는 것을 지금의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운동장의 역사를 기록하는 운동
2013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은 5-60대 HIV감염인을 대상으로 생애사연구를 진행했다. 2 당시 연구는 생애사인터뷰와 더불어 8, 90년대 종로와 이태원, 을지로와 신당에 이르는 퀴어 지리학을 다시 긋는 커뮤니티 보고서를 남겼다.
당시 많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과거의 커뮤니티를 발굴하고 연구하기를 원했지만 이렇다 할 기록과 자료가 손에 잡히지 않던 환경에서 연구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직접적인 기록보다는 차라리 관람객의 시선으로, ‘인간동물원’의 양태로 그려지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검거와 단속의 대상이거나 어쩌면 그조차 셈해지지 않던 이들은 단속할 법적 명분조차 필요 없었던 것일까. 단속은 일상이었고, 자신들의 공간이 안정과는 그리 어울리지 못했다.
그나마 대중들이 볼 수 있는 다수의 이미지란 어둠 속에 플래시가 개입한 낮은 해상도의 흑백사진 얼굴들이다. 만남과 유흥의 자리에 섬광처럼 포착한 프레임에 인물들은 반쯤 나체로 놀란 표정을 짓거나, 짙은 화장이 번져 귀신처럼 출현하고, 무리 지어 엉킨 채로 당황하는 표정들을 고스란히 전시 당한다. 그것이 내가 어린 시절 기억하고 지금도 종종 불손하게 등장하는 오랜 ‘선배’들의 모습이다. 아니, 이건 다분히 주관적인 인상비평이다. ‘단독 취재’와 모자이크에 가려진 모습들, 혹은 가림막 뒤에서, ‘동성연애자’라는 오명과 드라마틱한 무대 위에 자신의 정체를 강제적으로 밝히는 모습들, 나를 알아가는 과정부터 부끄러움으로, 수치와 모욕으로, 회피하고 싶지만 그만큼 끌림을 인정해야 하는 이들로 동기화되고 있음을 감각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버린 얼굴의 프레임이다. 하지만 그건 불안정하고 취약한 가운데에도 주어진 환경에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꾸미고 타인과 스킨십하며 관계를 만들고 쾌락을 이어간 이들, 자신들을 '보갈'과 '호모'로 부르던 이들이 어떻게든 확보해온 존엄의 표상이기도 하다. 싫지만 버릴 수 없는 자기혐오와 애착이 짝패를 이룬 은둔의 시간, 나와 다른 세계에 있다는 강제적인 분리에도 기어이 업장의 위치와 이름을 찾고야 마는 그들의 열의는 지금에 이르러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기록해두고 싶다는 충동으로, 또는 호기심으로, 지적인 사명으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어떻게 인터뷰이를 구하고 기록을 찾아야 할까. 구경거리로 전락하기 쉬운 처지에서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감염되었다고 소문이 나고, 수년간 드나들었던 업소인데도 사장에게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 그가 자리를 뜨기도 전에 앉은 자리를 세제로 닦아내는 행태 속에서, 감염인들은 대중의 시선보다 같은 운동장에 체온을 나누는 동료들에 대한 경계가 더 컸을 것이다. 3 물론 경계만큼이나 욕망도 컸기에 그것은 적어도 애증의 복잡한 사정에 놓인다.
하여 보고서 작업을 하면서 제일 큰 문턱은 이야기할 이들을 찾는 작업이었다. 섭외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2003년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산하 iSHAP(아이샵)이 설립되어 남성 동성애자를 상대로 HIV/AIDS 예방사업을 진행하고, 2004년에는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가 발족했다. 아이샵이 게이들을 대상으로 콘돔과 젤을 배포하고 검진을 통해 HIV/AIDS예방사업을 했던 것과 달리, 나누리+는 보건의료활동가와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HIV감염인 활동가, 게이 남성과 레즈비언 여성, 헤테로 시스 여성과 남성, 트랜스젠더가 모여 ‘감염인 인권이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구호로 감염인의 사회적 차별과 인식 개선에 주목했다.
그 과정에 감염인 당사자와 접면을 넓히고자 했지만, 당시 많은 감염인은 ‘고구마’ 4들의 HIV/AIDS인권운동에 다소간 거리를 두고 있었고, 더러 불신을 표시하기도 했다. 단체 안에서 활동하는 감염인 활동가가 언론과 영화, 시각예술과 출판물로 등장할 때, 5 누군가는 손상되고 아파 보이는 당신의 몸이 가뜩이나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감염인의 표상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감염인을 과잉 대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감염인과 연대하겠다고 이야기할 때, 돌아오는 대답 중 어떤 것들은 너무도 뾰족했다.
‘그래서…당신은 감염인이랑 잘 수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몇 개의 답변을 생각하고 의심 가득한 질문의 문제점을 헤집었겠지만, 당시는 응답자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저 질문에 설령 자신만만하게 ‘와이 낫? ’이라고 답해도 신뢰를 얻을지는 미지수일 것이므로.
불신과 의심의 벽은 자기 보호를 위한 합리적인 방어였을지 모른다. 6자신의 감염 사실이 어딘가에 소문처럼 알려지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는 어찌 보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여 많은 감염인은 일상에서 자신의 감염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며 일상을 이어가고, 감염 사실을 알린 이들과 좁은 인간관계를 갖거나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든다. 노출 전 예방요법인 프렙(PrEP, pre-exposure prophylaxis)이 보급되어 HIV/AIDS예방이 가능하고, 꾸준히 치료제를 복용하면 감염인도 비감염인 만큼의 건강과 예상수명을 누릴 수 있으며 바이러스를 억제하여 질병을 전파하지 않게 되는 최신의 성과들 7은 감염인의 공적 삶과 사회적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과학적인 논거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여전히 낙인이 작용하는 현실은 감염인으로서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왜곡된 리듬과 관계를 만든다. 물론 지금은 질병에 대한 치료기술의 발전과 인식 개선 속에서 감염 사실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미술 작가들의 활동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여전히 일상에는 자신의 질병 사실을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커뮤니티를 하나의 ‘운동장’에 비유한다면, 과거 운동장 안에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 조심스럽게 모이던 이들, 반강제적으로 벤치로 돌아가야 했던 이들은 이제 어느 정도 심신의 회복력을 높이고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공개적이든 공개하지 않든 운동장을 드나들 수 있다. 자신의 질병 사실이든 변태성욕이든 바깥에 이야기하는 것은 부담이 있기에 굳이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를 두고 질병을 갖고 있는 당사자만 나무라는 건 부당하지 않을까. 위험에 대한 예방과 관리가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운동장에는 이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물론 현실에는 많은 협상과 교섭이 따른다) 물론 이러한 변화와 협상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건강을 관리하게 된 상황 변화가 배경으로 작동하며,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감염인들의 요구가 늘어나고 감염인들 스스로 자조 모임과 단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역량이 높아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기까지 불신과 의심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온 동료들의 지지와 노력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또 다른 운동장을 위해서
하지만 십 년 전의 보고서는 지금 없다. 보고서가 발행되고 동료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호평이 일색이었던 와중에 득의양양했던 (팀원인 나를 포함한) 이들은 보고서를 대중 행사에 유통하고 전시했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프로파간다를 언론으로 매끈하게 가공하는 이들의 입김은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혐오 담론을 전파하던 대표적인 인사였던 국민일보의 B 기자는 해당 보고서를 가지고 특종인양 기사를 냈다. 그는 보고서의 앞뒤 사방을 자르고 단연 하나의 문장에 집중한다. ‘한국의 HIV/AIDS감염인 중 다수는 남성 동성애자이다.’ 기사는 수다한 생애의 민낯과 고백들을 폭력적으로 누락하고선 제가 확인하고 싶은 것,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만 가져다 썼다.
공격은 당사자를 위축시킨다. 호의를 갖고 이야기했건만 그 결과가 다시 가십거리로 돌아왔고, 공들여 만든 보고서는 반동성애 프로파간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장작이 되었다. 인터뷰이들은 연구팀에 문제를 제기했고 연구팀은 사과와 함께 보고서를 폐기했다. 8
지금 생각하면 이야기를 듣기 의한 책임의 훈련이 미흡했고, 위험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경험이 부족했다. 자원이 없는 이들은 많은 것들을 알고 위기에 대비하며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 자원일 수 있고, 대항할 수 있는 논리와 문법일 수 있다. 당신의 질병 사실과 성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 평가에 앞서 위험을 최소화하고 맥락을 살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고, 차별금지법과 같은 제도뿐 아니라 의료와 보험, 주거, 장례, 노동, 도시계획 등 생애를 아우르는 환경에 성원의 면면을 고려할 수 있는 변화 또한 필요하다. 당연히 그것은 당사자의 자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인식과 제도가 험악하여 사방의 공격과 눈총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겨우 만든 연결은 끊기기 쉽고 적대로 돌아서기도 쉽다. 보고서는 폐기했지만, 서먹해진 관계가 아물 수 있던 것은 그간 시행착오의 HIV/AIDS 인권운동을 해온 시간과 대항언어를 만들어온 시도들이, 그 과정에 불화와 친밀함을 거듭한 시간이, 그러니까 우연성들의 반복 속에서 질서를 만들고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온 시도들이 바탕 한다.
인터뷰이의 상당수가 활동하는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이후 HIV/AIDS활동가들과 ‘한국 HIV/AIDS 낙인지표조사’ 주요 연구 단체로 이름을 올렸다. 낙인지표조사 보고서는 기존 비감염인 위주의 연구자와 감염인 대상자로 양분되었던 구도를 탈피하여 감염인들도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연구방법론을 배우고 연구를 설계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해당 보고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흔적도 남지 않아버린 2013년의 연구 경험은 의미 있는 선례가 되었다. 구전으로만 남은 운동장의 기억뿐 아니라, 운동장의 기억을 서툴게나마 남기고 그마저 실패로 갈음한 시도 또한 역사가 된 셈이다.
운동장의 공백으로부터
하지만 이 또한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굳이 HIV 당사자 모임이나 감염인 단체에 들어가지 않아도, 굳이 질병 사실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회에 큰 해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HIV/AIDS커뮤니티는 변화의 상황을 마주하는 중이다. 그것은 에이즈 위기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십수 년이 넘도록 에이즈 위기의 끝을 계속 이야기하는 데에는 어떤 봉합되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는 것인가.
취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여건들을 마주하며 더 이상 취약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취약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하여 에이즈의 위기가 종식되었다고 섣불리 진단하고 선언하는 상황에서, 하지만 취약함은 여전히 취약함이라는 프레임과 낙인으로 작동하고 HIV/AIDS는 이전과 다른 복잡한 변화를 맞닥뜨린다. 단적으로 HIV/AIDS에 대한 위험성이 낮아지고 지식과 정보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오랜 두려움의 관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최근 HIV감염인들이 직장에서 자신의 질병 사실이 노출되어 불이익을 받게 되어 재판 등의 대응을 하는 상황이 늘어나는 추세는, 질병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현실 속 질병의 부정적인 프레임 사이 경합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식적인 대응이라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성과들을 바탕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 여론을 환기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사회가 주목하는 이슈는 HIV/AIDS와 약물, 전염과 중독, 문란함과 위험 사이의 연결고리다. 언론과 경찰은 약물 이슈에 남성 동성애자를, 그중에서도 HIV 감염인을 엮어 중독과 전염의 시나리오를 재생산한다. 2023년 4월 각종 언론들에서는 ‘마약 환각 파티’를 열다가 검거된 61명이 모두 HIV감염인이라는 이야기를 여과 없이 내보냈다. 나는 여전히 그것이 불명료한 문장표현의 오류이거나 과대포장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금은 대다수의 기사들이 ‘일부 HIV감염인’이라고 표현한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고, 거부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경계해야 하는 추정은 무엇인가. 취약하고 위험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와 스킨십을 건네야 할까.
지금의 환경에서 퀴어로 정체화하는 이들은 이전의 공동체성과는 다른 감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밀한 분석은 다음으로 미룰지라도 지금은 이러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의 위상과, 이를 공론으로 꺼내놓기에는 커뮤니티라는 허수가 당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기분을 남겨 둔다. 표현에 따라서는 ‘희박함’과 ‘파산’, ‘공백’이라는 극단적 수식도 허용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지금 공동체를 부정하거나 이야기하는 작업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최소한 파산을 이야기하겠다면 누구와 어떻게 기록하고 향유할 것인가. 파산의 인프라는, 친밀함의 파산으로부터 파산을 이야기할 근거리의 친밀함은 또한 어떻게 구성하고 작동시킬 것인가. 그리고 이 부정성 속에서도 어떤 공동체가 몸짓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도 다시 이야기해보자. 애도는, 운동장의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그로부터 어떤 운동장이 다시 (오)작동하고 있는가. 불화하며 경합하지만 필연적으로 서로의 취약함을 분리할 수 없음을, 어느 정도는 서로 고립된 중에도 돌볼 수밖에 없음을 깨우칠 공동의 현실을 열고, 이미 열어젖힌 공동체의 모습을 읽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
- 하지만 자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송희일이 성소수자 잡지 『버디』편집위원을 역임하던 1998년 취재를 바탕으로 집필한 〈한국 동성애 게토, 오욕과 오명의 연대기〉는 현재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링크: https://chingusai.net/xe/newsletter/125014) 객관적인 정합성을 갖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구술과 현장 기록을 통해 남겨둔 자료들은 한계를 가질지라도 한계의 지표를 정립한다는 점에 가볍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본문으로]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보고서1. 8,90년대 남성 동성애자 게토·커뮤니티 보고서/ 보고서2. 40-60대 남성 동성애자 HIV/AIDS감염인 생애사 보고서」, 2013. [본문으로]
- 여기서 2023년 홍민키 작가가 제작한 〈낙원 Paradise〉(31분)을 언급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로 분류함직한 작업은 6,70년대부터 활동한 퀴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시 남자 성소수자들이 모인 바다극장(앞의 P극장과는 다른 극장이다)을 장소로 삼았다는 점에 위의 작업과 대동소이한 방법론을 취한다. 특기할 점은 그가 사라져가는 ‘이야기보따리’를 모으는 과정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학자이자 UC샌디에이고 대학교수인 토드 A. 헨리와 협업했다는 것이다. 전언에 따르면 라포(rapport)가 없는 데다 섣부른 대상화에 대해 노년 퀴어가 가질 법한 불신으로 섭외에 난망을 가졌던 상황에서 ‘미국 교수’의 이름값이 섭외를 성사하는데 좀 더 수월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선배 게이들은 1992년생의 20대 후반 한국인 게이 남자와 미국에서 교수를 하는 백인 중년 게이 남성(이면서 한국어를 곧잘 한다)에게 어떤 차이를 가졌던 것일까. [본문으로]
- 감염인은 스스로를 ‘감염자’의 약칭인 ‘감자’로 부르기도 했다. 감염병과 HIV/AIDS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도 그렇거니와, 자신을 낙인이 강한 질병으로 표상하는 데 대한 심적 부담과 불안도 작용했을 것이다. ‘AIDS’를 에이즈가 아닌 ‘아디다스’ 등으로 변형하여 부른 것도 그저 재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 비감염인은 ‘감자’의 대구처럼 ‘고구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본문으로]
- 현재까지 나누리+ 대표로 활동하는 윤가브리엘은 2006년 거대세포 바이러스가 신경계로 침투하면서 생사를 오가는 상태를 맞았다. 기존 치료제들은 내성이 생겨 신약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최신 의약품이던 푸제온을 생산하는 로슈의 특허권 독점으로 보험적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HIV/AIDS인권운동은 2008년 ‘로슈 규탄 국제행동’을 조직했다. 의약품투쟁 전후로 그를 모델로 삼은 창작물들이 소개되었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 『하늘을 듣는다』(2010)와 김준수 사진전 《Hello! Gabriel》(2011), 영화 《옥탑방 열기》(2012)는 당시 국내에서 생존하는 HIV감염인을 대상으로 삼거나 당사자가 제작한 작업으로는 매우 드문 예였다. [본문으로]
- 2017년 진행한 『한국 HIV/AIDS 낙인지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감염인들은 다른 국가보다 차별지수와 우울감, 자살 시도 등의 수치들이 월등하게 높게 나온다. 하지만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직접적인 차별을 받은 경험은 많지 않은데, 낙인지표조사 보고서는 이를 ‘내적 낙인’이라고 부른다. 한국 HIV 낙인지표조사 공동기획단, 『한국 HIV 낙인지표조사』,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2017. 보고서는 이어지는 링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링크: https://www.stigmaindex.org/wp-content/uploads/2019/11/South-Korea_PLHIV-Stigma-Index-Report_2017_Korean.pdf [본문으로]
- HIV감염인이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으면, 혈액에서 바이러스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억제된다는 과학적 사실은 ‘바이러스 미검출=전파 불가(Undetectable=Untransmittable, U=U) 캠페인으로 국제적으로 진행되기에 이른다. 관련한 이야기는 KNP+ 페이지의 설명과(https://knpplus.org/campaign)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글 ‘HIV/AIDS 인권팀 세미나- Undetectable (바이러스 수치 미검출) = Untransmittable (감염불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lgbtpride.tistory.com/1593) [본문으로]
- 본 원고를 시작하며 띄운 이야기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남긴 메모와 일곱 명의 감염인과 진행한 인터뷰의 기억을 더듬어 각색과 가공을 거쳤음을 밝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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