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 (행성인 HIV/AIDS 인권팀)
노콘섹스에 대한 짧은 이야기
나는 노콘섹스를 좋아한다. 고무 좀 덧씌우는게 뭐 그리 힘드냐 되물을 수 있지만, 그것들을 내 피부 위에 덧씌워야 하는지에 대한 절대적인 이유가 없는데 내가 먼저 행동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콘으로 섹스할때가 꽤 있다.
그러다 웃픈 일이 하나 터졌다. 섹스 도중에 바텀이였던 난 그저 싫다며 콘돔을 빼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기겁하며 혼돈에 찬 표정으로 바라봤다. 딱 봐도 알 수 있는 노콘섹스 절대 불가 표정들. 강제로 빼고 한다면 그 또한 자신의 욕망을 멋대로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폭력과 다를 바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콘돔을 끼고 했다.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섹스였다. 평범한 모텔과 평범한 젤, 몸, 얼굴 등등. 한달만 지나면 잊혀질 섹스였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잠깐 인사치레 정도 나누려고 침대에 누워 기다리는데, 상대방이 진지한 표정으로 날 걱정하기 시작했다. 콘돔을 안 쓰는게 얼마나 위험한건지 아냐, 네가 어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걸리면 힘들어진다. 약이 얼마나 간과 신장에 무리가 가는지 아느냐. 등등의 말들이였다. 정작 웃긴건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우리‘에게 미치는지 ‘이쪽’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 중 전부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이 비극을 어찌할까.
이 비극은 마침내 참지못한 나의 반박으로 클라이맥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미검출이면 감염 안되는거 아시냐. 콘돔만이 무조건적인 안전책은 아니다. 콘돔 껴도 걸리는 곤지름, 매독, 헤르페스는 안 무서우시냐? 라고 매섭게 몰아붙이는 순간, 그 문장이 나왔다.
“너 혹시 감염자야?”
난 당황했다. 운동권들이 왜 그렇게 “김일성 개새끼”라는 질문에 답하기 싫어했는지도 이해 되기 시작했다. 이건 안전 검증으로 포장된 인신 공격이다. 질병에 대한 여러 지식을 배운 결과가 결국 “너 혹시 감염자야?” 따위로 취급당하다니. 실망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제가 감염인이면 달라지는 게 있나요?”
마지막 자존심이였다. 감염자라는 단어조차 싫증 나서 감염인으로 정정해 되물었다. 종종 가서 받는 검사결과를 굳이 그에게 말하기 싫었다. 내가 한만큼 그가 배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일 수도, 아니면 HIV/AIDS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자존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린 시절 쇼핑몰 화장실에서 HIV가 만드는 공포심에 압도당해 부들부들 떤 채로, 용변칸에서 오라퀵을 까며 뒤에 놔둔 검사 키트를 보기 싫었던 순간을 다시 마주하기 싫다는 연민과 동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위험은 당신들이 만든다
HIV에 감염되면 얼마나 위험하냐고?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면, 괜찮다. 위험하지 않다. (미검출=미감염 캠페인(U=U) 참고, 자세한 내용은 https://lgbtpride.tistory.com/1593 을 보자.) 더 이상 HIV와 관련하여 아프지 않으며, 더 이상 AIDS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하나하나 캐물으며 되묻는 내게 상대는 AIDS랑 HIV를 구분하는건 말장난이라 치부했지만, 그것이 말놀음이 아닌 현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랜시간 우리들이 어떻게든 ‘그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HIV는 위험하다. 우리의 몸에 대한 위험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마음을 헤집으며, 공포 외에 어떤 것도 남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이 남은 것이다.
섹스 중에 안전해지려고 콘돔을 쓰면서, 감기에 걸리면 타이레놀을 거리낌 없이 사다 먹는 게 아무렇지 않으면서, 왜 감염인은 비타민이라 속이면서까지 약을 복용해야하는가? 감염인들의 건강할 권리마저 금기가 되어야 하는가. 당신의 감기와 꼴림이 수 많은 이유가 있음에도 우연적인 것처럼, HIV감염도 단 하나의 이유란 없다. 그저 문란해서, 합당한 심판이자 벌처럼 필연적으로 감염된게 아니다.
성찰은 공부를 통해 가능하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다. 안전은 개인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감염과 형벌을 연관짓는다. 시험 치듯 노력하고 경쟁해서 사회 구성원 일부만 안전을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짜로 경계하고 문제 삼아야 하는 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있는데 없다고 착각하는 것, 모두가 누려야 하는 가치를 사유화 하는 것.
‘걸리면 얼마나 힘들어지냐’ 처럼 물어볼 때, 문제 삼아야 하는 것들은 계속 생산된다. 그러면서 공포가 우릴 잠식하게 만든다. 정작 진정히 마주해야할 문제들을 살피지 못하고, 끝없는 공포에서 도망치다 우린 결국 지쳐버린다. 공포의 악순환, 이제는 깨야 한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악순환을 구축하는데에서 빠져나와, 그 구조를 바꾸는데 함께했으면 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올해 행성인에 기고한 두 편의 글은(첫 번째 글 : https://lgbtpride.tistory.com/m/1952, 두 번째 글 : https://lgbtpride.tistory.com/1990) 그런 공포에 대한 거였다. 안전함을 개인화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섹스도 거래되고 있다는 감각, 형벌과 감염을 연관 짓는 것은 남자 앞에서 진짜 남자를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감각들 말이다. 글을 통해 게이들의 고통과 감염의 공포가 내용만 다르지 구조가 같다는 걸 내보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쇼핑몰 화장실에서 사회적 공포로 짓눌린 내가 검사 시트를 돌아보지 못했던 것부터, 감염인이 먹을 약을 어떻게든 숨겨가며 공포에서 피하려는 선택을 이해한 것처럼, 소수자로서 느끼는 통각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나아갈 방법을 고민해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간 것이다.
당시 번개했던 상대처럼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힐난조로 물어보는 것보다, 도대체 왜 그 바이러스가 HIV라고 말을 못하는 건지, 어떤 방식으로 그 바이러스에 대해 공포를 갖게 된 건지를 꼬집어야 한다. 만연한 공포를 우리 안으로 끌고 와야 한다. 그것들을 인지한다면, 우린 더 이상 두려움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다고, 두려움을 직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포의 수렁으로 밀어넣는 막연한 두려움을 생각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것. 그래서 목청껏 높여 이야기 한다. 감염인이면 무엇이 달라지냐고 상대에게 되물을 때, 그들의 무지엔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길 것이다. 그들이 다른 존재를 마주하며 균열이 생기고, 앎이 태도를 바꾸며, 결국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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