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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HIV/AIDS 인권 주간 에세이] 내가 너의 곁이 되어줄 테니, 서툴러도 같이 걸어가자

by 행성인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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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첫문장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면을 빌려 당신 곁에 우리가 있음을, 서툴러도 같이 길을 나아가자는 외침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싶다.  
 
2017년에 열렸던 키씽에이즈살롱 프로그램 ‘PLFM 단‧짠‧매 라디오’에 사연을 접수 한 적이 있었다. 당일 현장에서 내 사연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고, 해당 사연은 허핑턴포스트의 지면에도 실렸다.[각주:1]   
 
이후 몇 명과 육체적/정서적 교류를 가졌는지는 모르겠고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연애 관계를 유지하던 중 우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말고 다른 낮선이와 관계한 것을 생각하면서 감염 원인을 추적하는 일은 피차 서로에게 상처만 안길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탓도 하지 말고 현재 치료에 집중하기로, 그러니까 (서보경님의 책 『휘말린 날들』의 표현을 빌어) '휘말리기'를 자처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이 또 찾아온 것은 생각보다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팔자가 기구한걸까. 그보다는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를 고립시켰을 것이다. 설령 애인이 자신의 감염사실 공개를 허락했다고 해도, 가볍게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운 부담감이 누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질병의 무게를 서로 나누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정은 변함이 없었다. 하여 믿을 수 있는 몇명에게만 애인의 허락을 받아 애인의 감염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누군가는 상대가 동의했더라도 타인의 감염사실을 말하는 일이 감수성이 낮은 행위이고 지적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쉽사리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건 ‘감염하게 된 것은 너가 세이프섹스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잘못이고 너의 책임’ 이라고 애인을 원망하고 자책하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다. 애인과 일상을 이어가면서 현재의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답답함은 커졌다. 그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대나무숲에 마냥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나와 상대의 감정보다도 ‘너도 검사 받아야 하는거 아닌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상처만 입힐 감정들이 부정적이라는 건 알지만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애인과 아무리 가까워도 온갖 감정을 그에게 털어 놓는 일이 무조건 좋지도 않은 걸 안다. 그러니까 '결국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감염된거잖아' 라는 말이 어떤 상황에서든 부지불식간에 나오지는 않을까를, 나는 스스로를 관리해야 했다. 이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로 받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인 걸 안다. HIV/AIDS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이전보다 달리 옅어지고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에이즈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프렙을 할 수 있고, 국내에서도 감염인을 파트너(애인)으로 둔 사람들에게 약제를 지원하는 행정적 자원이 있다고 해도, 그와 별개로 나는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애인만큼이나 듣고싶은 말이 있던 것 같다. 지금 나의 상태를 물어봐주고, 나의 애인이 나와 같이 걸음을 맞춰 걸으며 다시 일상생활에 잘 복귀하듯이 나 또한 일상생활에 영향은 없는지, 관련해서 정보를 접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감염인 파트너로서 애인에게 어떠한 말과 공감을 해야하는지 듣고싶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다시 앞줄에 선 이(알의 성명에 나온 표현이다) 옆에 서게 되었다. 나도 어떤 경로로든 감염할지 모른다. 그러한 불안한 감정은 접어두고, 서툴지만 2인 3각 달리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발을 맞춰 걷는것이 어색하고, 또 맞춰 걷거나 뛰다보면 서로의 걸음이 달라 감정의 골이 생길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배워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관계를 당장 이 나라의 법으로 보장받진 못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 애인이 감염내과 주치의에게 애인이라고 소개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주전부리를 사먹고 코인노래방에서 달빛천사 혹은 디지몬 OST를 부를때 웃으며 장난치는 그런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나처럼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모이면 좋겠다.

 

이미지는 ChatGPT를 활용해 만들었다.

 

 

나는 붉은실의 인연을 믿는다. 현재의 애인이 갑자기 어쩌다가 감염하였다고 하여도, 나는 2인 3각 달리기를 멈추고싶지  않다. 감정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HIV/AIDS 레드리본이 다시 맺어준 인연이라고 믿고 싶고, 그저 나또한 휘말린 사람으로서 살아가라고 살포시 누군가가 붉은실에 레드리본을 달아놓은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