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트랜스 추모주간] 정현입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지들에게

by 행성인 2024. 11. 24.

정현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안녕하세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현입니다.

 

저는 현재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남성,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확정수술은 못 했지만(ㅠㅠ) 5년 넘게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어요.

 

먼저 저의 성적 지향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저는 자신이 시스젠더 여성 헤테로로맨틱 헤테로섹슈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사랑이 바로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시스젠더 여성이라고 정체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성을 좋아한다고 알았던 거죠. 현재 기준으로 마지막 연애가 4년 전인데 그때까지 연애 상대 성별은 다양했습니다. 시스젠더 여성도 있었고 시스젠더 남성도 있었고 트랜스젠더 여성도 있었고 논바이너리도 있었고...

 

하지만 마지막 연애 이후 누구에게도 로맨틱 끌림, 섹슈얼 끌림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서 스스로를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지요.


성적 지향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다음은 성별정체성을 정체화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먼저 알고 젠더퀴어(혹은 논바이너리)라는 정체성을 알기가 쉽습니다. 저는 젠더퀴어(논바이너리)라는 정체성을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전부터 2차 성징(ex. 월경)으로 인해 신체적인 불쾌를 느끼고, 상대가 나를 여자로 알고 대하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 컸기에 다른 정체성을 찾아보면서 바로 정체화를 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젠더퀴어로 정체화를 하고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스무 살이 되어서야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재정체화를 하고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스무 살에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정체화 하고, 서른 살이 되어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도 중간에 몇 번 호르몬 치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만 저를 무척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외할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해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와 동생에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호르몬치료는 5년에 접어들고 있네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나니 신체적인 디스포리아도 적어지고 제일 큰 스트레스였던 목소리 패싱이 어려워지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죠. 예를 들어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에 전화로 문의할 때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나서 본인이 맞는지 의심을 받고(일곱번째 자리가 아직 2이다보니...) 심지어는 본인이 아닌 것 같다고 유선상담을 거부당한 적도 있습니다.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비자발적으로 19개월이란 시간을 백수로 지냈습니다. 이후에도 에피소드는 이어집니다. 사회복지시설에 원서를 접수하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마도 면접을 보러 오라고 전화했던 것 같은데, 제 목소리를 듣자마자 인사담당자가 죄송합니다하고 전화를 끊은 거죠. 

 

운이 좋게 취직하고 그 후로도 몇 번 회사를 옮기다가 지금은 다시 백수상태입니다. 이럴 때마다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법적 성별정정을 하지 않아 주민등록번호도 2로 시작하는 지정성별 여자로 인식됩니다.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만한 회사에 지원을 해야하는데 아직 대한민국에는 그런 곳이 많지 않습니다. 경력과 자격증들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곳이 있음에도 트랜스젠더라는 걸 밝히고서 이어질 일들이 두려워 회사를 골라가며 찾고 있습니다. 당연히 지원할 만한 곳이 많이 없는 현실이죠.

 

아직 대한민국에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기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기 때문에 저를 포함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들이 세상을 바꾸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함께 열심히 활동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