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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멸망에의 욕망, 미시마 유키오

by 행성인 2010. 5. 26.
- 『가면의 고백』에 드러난 어느 동성애자의 기록

 

소설『금각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현대 문학을 이야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 중 한명이다. 마치 독자를 녹여버릴 듯 달콤하고 아름답게 달려 나가는 그의 미려한 문장들은 그가 일본문학에서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곤 한다. 작품 전반에 드러난 우익적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미시마 소설의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름다운 문장의 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소설에는 웬만큼 공을 들여서는 쓰기 쉽지 않은 빛나는 문장이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페이지 곳곳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러한 빛나는 문장들은 미시마가 철저한 장인정신에 입각해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철저한 탐미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자살했던 열성적인 극우파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성애자였다. 소설『가면의 고백』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문장들 틈바구니에 작가의 이 모든 정체성을 녹여낸 수작이다. 패전 후 일본 사회의 불안과 무기력을 온 몸으로 체화한 주인공 ‘나’는 같은 반 남학생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끌려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나의 이러한 동성을 향한 이끌림은 허약한 자신의 육체와는 사뭇 다른 남성적 강인함에 대한 강렬한 매혹이다. 평생 우익적 마초성을 희구했던 미시마의 실제 삶을 대조해 볼 때, <가면의 고백>이 보여주는 이 같은 동성애 인식은 매우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곡된 남성성을 향한 이러한 강렬한 추동은 전쟁을 치룬지 얼마 안 되는 일본 사회가 끊임없이 강요했을 테고, 미시마의 우파적 세계관과 만나 작품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출처 _ http://yanaros.tistory.com/246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동성을 향해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는 한편,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동성의 육체를 파괴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칼에 베이고 화살에 꽂힌, 근육질 남성의 육체를 그린 미술품들을 보며 마스터베이션하는 주인공 ‘나’의 행동에는 이러한 파괴의 욕망이 잘 드러나 있다. 남성적 강인함에 대한 이러한 애증의 감정은 미시마의 탁월한 탐미주의적 감수성이 읽혀지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곡된 남성성을 향한 무의식적 거부감과 ‘나’ 스스로 체화한 동성애 혐오로부터 말미암은 죄책감의 복잡한 발현이다. 실제로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스스로의 동성애 정체성을 숨기고 ‘소노코’라는 여인을 사랑해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절망하게 한다. 주인공 ‘나’는 이성애자의 가면을 쓰고 위장된 삶을 살아가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가면을 영원히 해제할 따름이다.



『가면의 고백』은 작품 자체로 멸망에의 욕망을 드러낸다. 미시마의 여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파괴를 통해 무(無)로 돌아가는 것을 하나의 미적 완성 행위로 여겼고, 그 정점에 소설『금각사』가 있다. 파괴와 멸망을 통해 영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미시마는 금각사 방화 사건으로 소실된 금각의 아름다움을 영원의 미(美)로 그렸다. 이와 같은 미시마의 멸망에의 미적 추구는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고 자살하는 실제의 행위로 소설 바깥에서 완성된다. 『가면의 고백』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자신의 동성애적 경향과 고민을 숨김없이 드러낸 이 소설은 일종의 커밍아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한 커밍아웃은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적 죽음을 예견한 자기 파괴와 멸망에의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마초적 남성성에 목말라했으면서도 뭇 남성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미시마의 삶을 반추해 볼 때 더욱 명확해 진다. 미시마가 가면을 벗고 치부라고 생각한 동성애라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멸망을 향한 허무주의적인 미적 행위의 하나였던 것이다.


<가면의 고백>을 이해해 나가는 내내, 우익의 선봉에 서서 자신의 삶을 점차 파괴해 갔던 미시마 유키오를 같은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즉 필자와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대척점에 서있는 그의 일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그가 꿈꾸었던 아름다움이란, 결국 우리 모두가 멸망하는 파괴와 폭력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병적인 미의 인식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병들었던 그의 삶에 대해 깊은 연민의 감정이 솟아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계와 화해하지 못하고 결국 아름다운 자살을 선택하고야만 그의 현명한 어리석음에 미시마 역시 역사의 한 희생자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죽은, 한 우익 동성애자의 희비극적 결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비루한 희비극적 현실마저 돌아보게끔 한다.




해와 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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