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리 _ 장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자신의 삶 그리고 활동이 따로 떨어져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나 성정체성은 자신을 둘러싼 것이기에 삶 안에 활동이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 동성애자인 정숙 그리고 운동화는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자 활동가이면서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에서 활동하며 HIV/AIDS 감염인 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여성 동성애자로서의 삶 안에서 에이즈 운동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이들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녹아있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2008년 7월 21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욜과 병권이 정숙과 운동화를 만났습니다.
* 인터뷰 내용이 그 동안의 에이즈 운동을 담고 있기에 이해가 필요한 이슈, 운동은 해당 기사(민중언론 참세상, 다함께 발행 '저항의 촛불')와 단체 홈페이지를 '핑크색'으로 링크시켰습니다.
정숙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그리고 운동화는 공부를 하며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에서 에이즈 운동을 하고 있다. ‘여성 동성애자가 어떻게 에이즈 운동을 할까?’하고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흔히 성소수자 운동 안에서 에이즈 문제를 남성 동성애자들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어떻게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정숙 - 내 스스로 정체성을 알게 되면서 소수자 운동에 관심이 커졌다. 우연찮게 동인련을 접하게 되고 활동을 하다 보니 정말 우리가 왜 공격을 받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 내부에서는 HIV 감염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이 문제를 피부에 와 닿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고 흔히 많은 이들이 에이즈와 죽음을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관심과 애정이 생겨났다. 그래서 동인련 활동을 하면서 나누리 활동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억압의 문제를 가장 근접해서 볼 수 있기에 활동하게 되었다.
운동화 - 직접적인 계기는 “능력있는” 정숙 활동가가 활동을 적극적으로 제안해 온 것이었다. 처음 에이즈 예방법 개정 활동(정확한 표현은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공동행동’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 을 위한 활동‘)을 할 때는 법률팀으로 제안을 받았다. 동인련 활동을 하지 않았던 상황이고 커뮤니티에서 커밍아웃한 상태도 아니었다. 활발했던 학생운동도 지나간 세대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조직적인 운동의 경험이 있지도 않았고, 다만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 쓰일 수 있다면 나에게 유용한 작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고 우연찮게 내가 배우는 공부하고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법률안을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 현실 참여적인 작업이고 법률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활동이었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를 통해서 감염인 인권 활동가 ‘윤 가브리엘’을 만났었고 에이즈 예방법 개정 활동을 하면서는 감염인 단체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여성 동성애자로 감염인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듣고 싶다.
정숙 - 나누리 활동을 하면서 이 운동의 주체는 감염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감염인 단체들을 만났고 예방법 활동을 함께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만 했지만 만나보니 훨씬 예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염인 분들의 삶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힘든 삶을 살고 있구나하고 느꼈다.
운동화 - 사실 많은 감염인들을 만나진 못했지만 카노스(KANOS,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캠프를 갔을 때가 제일 많이 만났던 기회였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이 사람들에게 에이즈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당사자이든 아니든 간에 설득해야할 문제는 아니구나.’ 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감염인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면 나도 나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알기기가 부담스러웠다. 반성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카노스 캠프를 마치고서 한 감염인 분의 차를 타고 오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처음 만났던 사이인데 그분은 자신의 생활,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 직장 이야기 등 감염인으로써의 삶을 이야기해 해주셨다. 그 분이 내가 이성애자 여성인 줄 알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내 정체성을 말하지 못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내가 에이즈 운동을 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적절하게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서로를 서로가 잘 알기 위해 소통하는 방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구나하고 느꼈다.
에이즈 예방법 개정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2년 전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식을을 할 때 우리는 ‘감염인 인권이 중요하다. 때문에 한미FTA 반대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알리러 갔었다. 그러나 입구부터 우리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았고 때문에 한참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 당시 어느 감염인 분이 감염인이 아닌 활동가들에게 ‘감염인이 아닌 사람들이 왜 이러느냐!’고 소리쳤었다. 참 난감했던 상황이었는데, 실제 당사자가 느끼는 에이즈 운동과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느낀 에이즈 운동과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두 사람 모두 자리에 함께 했었는데...
정숙 - 그 당시 그러한 질문에 우리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그 이후, 저녁 술자리를 하면서 모두 부끄러워했었다. 나는 ‘내가 지금 이 운동을 왜 하고 있나.’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운동을 하면서 나는, 내가 동성애자로서 받는 억압에 대한 소외감을 HIV 감염인들을 통해 다시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노동자이긴 하지만 예전 노동자 운동을 할 때 꼭 나 스스로 노동자일 필요는 없었던 것처럼, 내가 꼭 감염인은 아니지만 이 운동도 내 싸움이 될 수 있겠구나하고 느꼈다. 사회에서 자기 권리를 찾는 여러 가지 운동 중에서 에이즈 운동은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운동화 - 사실 액션을 처음 해봤던 때였다. 나는 그 감염인이 그렇게 소리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가슴이 아팠던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한 가지는 석주씨(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사무국장)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함께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하러 갔지만 석주씨는 끝내 행사장 안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감염인을 위한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혹은 배제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석주씨를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왜 버시바우 미 대사와 보건복지부 차관에게 우리가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우리의 생각이 급진적인 부분과 행동이 그러한 부분을 따라가지 못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 내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인가... 내가 급진적으로 무엇을 조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가... 그런 부분이 부끄러웠다.
감염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구조적인 조건을 바꿔나가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다. 2006년 12월 1일 보건복지부의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월간 사람_강곤 | 기자
정숙 - 공감하는 부분이고 그 당시 우리가 수동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버시바우가 발언을 할 때 우리는 모두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액션의 첫발을 떼지 못했다. 미란씨(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가 이야기를 했듯이 가브리엘 오빠였으면 바로 일어나서 버시바우에게 항의를 했을 텐데... 우리가 감염인이 아니었기에 우리의 문제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운동화 - 그 감염인분이 말한 것처럼 ‘감염인, 비 감염인, 혹은 당사자, 비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권위에 익숙해져있나.’란 생각을 했다. 단상이 있고 행사 내용이 있고 등 행사장에서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그 판을 못 깨고 끝까지 이성적으로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야했다는 부담이 있었지 않았을까?
병권 - 우리가 기득권을 만날 때 그들을 쉽게 만난 적이 있었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상대들이었다면 굳이 쳐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늘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주장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의 액션이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정숙 - 그 판에서는 버시바우 등의 기득권들이 아니라 여러 감염인들에게 우리의 주장이 얼마나 정당한지 알리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액션을 했을 때 감염인들이 움직일까?’를 염두하고 있었기에 부담을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예방법 개정 대응 활동을 하면서 한미FTA반대 투쟁에도 함께했다. 의약품 접근권 문제에도 결합하며 집회에도 참석했었다. 이때의 경험에서 우리는 운동사회에도 ‘에이즈’에 대한 인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서 한상열 목사가 ‘광우병보다 무서운 에이즈가 몰려온다!’라고 발언한 것이나 (바로 문제제기 해서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여러 대중들이 ‘광우병=에이즈’란 등식을 끄집어 내기도 했고,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학위에서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광우병보다 무서운 에이즈가 몰려온다!’는 웹 홍보물을 확대 출력해서 판넬로 만들어 왔었다. 문제제기를 했지만 ‘광우병’은 ‘흑사병’으로 바뀔 뿐이었다. 이런 주장들을 보면 에이즈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드는 여러 가지 느낌이 있을 것이다. 불안이라는 것을 통해서 에이즈가 호출되고 있는 지점인데, 정숙이 보는 이러한 문제는..
정숙 - 한미FTA는 의약품 특허권이라는 것이 걸려있기에 HIV 감염인들에게는 각별한 문제였다. 하지만, 한상열 목사의 발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함께하고 있는 감염인들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사실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동성애 문제도 그렇지만 운동사회가 진보적인 지점을 떠나서 우리의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과 우리는 적이 아니다. 함께 한미FTA를 반대하고 충분히 운동을 함께할 수 있기에 함께 토론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왜 이 운동을 함께해야하고 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소수자의 문제이고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고 알릴 것이다. 때문에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화’는 예방법 개정 활동도 하고, 논문 연구 차 미국 뉴욕에서 액트업도 만나고 태국에서 한 달 동안 태국 HIV/AIDS 감염인들과 함께 운동도 함께 했었다. 특히, 태국에서 에보트에 항의하는 행동을 함께 조직하는 등 여러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태국 감염인들과 한국사회 감염인들은 각각 조건과 상황이 다르지만 태국 감염인 운동에서 좋은 영감을 얻었을 것 같다.
운동화 - 태국은 10만 명이 넘는 HIV 감염인들이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숫자가 많다고 해서 억압과 낙인이 없지는 않다. 태국미국 FTA 반대 운동을 할 당시, 집회에 1000명이 나온다면 그 중에 200명은 HIV 감염인이었다. 태국 방콕에서 집회를 한다면 사람들은 그 전날 새벽부터 지역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방콕까지 온다. 감염인인 친구들이 멀리 지역에서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버스를 타고 온다. 태국 감염인들의 삶의 조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태국 정부의 사회복지 감각도 떨어진다. 의료보험 혜택 또한 등록된 태국인에게만 한정되기 때문에 버마 등에서 온 이주민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도시빈민도 많고... 하지만 태국 감염인들은 ‘우리가 활동, 행동하면 약을 먹을 수 있구나.’하는 싸움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이점이 특이한데 태국인들이 처음 의료보험을 가지게 된 시기가 태국 감염인들이 에이즈 치료제를 받는 시기와 일치한다. 아, 그리고 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들 1/3 정도가 게이였다.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조직의 여러 방식을 보았을 것이고 여러 감동적인 모습도 보았을 것 같다.
운동화 - 사실 한국사회에서의 에이즈 운동이 더 감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 활동가들은 사무실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직장도 아니고 다른 활동도 하면서 에이즈 운동을 하고 있지 않나. 태국은 TNP+ (The Thai Network of People Living with HIV/AIDS) )등 안정적인 단체들이 많고, 글로벌 펀드도 받으며 활동하고 있고 직업으로 삼고 활동을 하기에 활동가들도 많다. 태국에서의 사회운동이라는 것이 제 4 그룹처럼 미취업 대졸자 등이 하고 있다. 재정적인 안정성이 있기에 활동가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다. 비록 시작할때는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제도화 되어있다. TNP+는 한국의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이다.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어있기에 운동이 잘 구축되어 있다. 개인적인 활동을 보았을 때는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액티비즘의 정신에 입각해 보자면 아무런 계획 없이 로슈에 쳐들어가는 우리가 감동적이 아닐까 싶다. 우리야말로 행동주의의 원칙을 잘 살리고 있다고 본다.
정숙 - 알고 있기론 우리와 태국이 미국과 FTA를 같이 시작했는데 태국은 HIV 감염인들이 협상을 결렬시키는데 중요한 활동을 하지 않았나?
운동화 - 한국의 자본과 정부 그리고 태국의 자본과 정부와 비교해보면, 한국 쪽이 FTA 필요성을 훨씬 더 절실히 원했다. 태국은 민주화 되었다고는 하나 내각이 불안정하다. 제도적 민주주의도 약한 편이어서 협상이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한국 정부에서 FTA를 강력한 형태로 원했던 것에 반해, 태국의 행정 관료들은 반 FTA정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시위, 협상장 진입 등을 협상카드로 쓰려고 노력했다. 물론 에이즈 운동의 큰 힘이 있었고, 의약품 특허권 등 절박한 요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태국 에이즈 운동은 자신들의 중요한 두 번의 싸움 인 ‘BMS가 생산하는 디다노신, GSK가 생산하는 콤비비어’ 의약품과 관련한 특허권 싸움의 경험으로 지적재산권, 의약품 특허권의 체감도가 높다.
욜 _ 작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Gay Man Health Crisis라는 단체와 만났다. 그들은 한미FTA에서의 한국 에이즈 감염인 운동에 대해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에이즈관련 단체들도 운동의 경험은 있지만 태국의 활동가들을 초청해서 배운다고 들었다. 미국은 이미 감염인 지원이 체계화 되어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태국의 에이즈 운동을 주목하고 있더라.
운동화 _ 동남아시아 사회운동은 중요하다. 왜냐면 제도화되어있다. Aids Access Foundation이란 단체를 만든 사람이 유명한 정치가 가문의 아들이다. 태국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정치가 가문인데 국회의원이면서 에이즈 운동을 한다. 이것은 제도권운동과 에이즈운동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태국 방콕만 봐도 국경없는 의사회, 옥스팜 등 세계적인 단체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이 태국 에이즈 운동의 필요성, 감염인들의 절박성,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한국의 사건 (푸제온)들이 더 절박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미 제도화되어있는 전지구화적인 시민운동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동인련에서는 에이즈 문제에 있어 감염인 인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숙씨는 동인련에서 나누리+ 담당 활동가이다. 또한 작년, 재작년부터 동인련 내에서는 동성애자 감염인 에이즈 운동을 어떻게 만들어볼까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누리 활동을 통해 좋은 영감들을 받았을 것인데 성소수자 운동 안에서 이 운동을 어떻게 풀어가는 게 좋을까?
정숙 _ 참 어려운 질문이다. 에이즈 운동은 성소수자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의사, 약사 등에게도 중요한, 매우 복합적인 운동이다. 에이즈로 가장 공격받는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이지만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 때문에 동성애자들 스스로가 감염인 동성애자들을 자신들과 분리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깨야한다. 또한 성소수자들이 에이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 떨어트려놓고 보려고 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염인들과 함께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감염인들과 어떻게 이 운동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사회에서 에이즈 운동은 아직 성장하는 단계이고, 일단 동성애자 감염인들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언젠가 올 수 있는 운동의 성장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감염인 커뮤니티와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얼마만큼 일치시키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욜 _ 성소수자 인권과 감염인 인권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연관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분리해야한다 혹은 함께해야한다 등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여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동성애자 감염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내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접근해 가는 방법은 다양한, 그리고 동인련 만의 색깔을 가지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급하지는 않지만 필요하고 동인련이 해야 한다.
FTA운동을 통해 특허권, 의약품 접근권 운동을 어느 정도 확산시켰다. 지금부터는 이명박 정부가 시도하려는 의료민영화 시도를 지켜 봐야만 한다. 왜냐하면 의료민영화가 이루어질 때는 희귀 질환 당사자를 포함해 HIV 감염인의 조건이 더 열악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러한 시도에 맞서 운동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우리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정숙 _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것이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접할 수밖에 없는 먹을거리의 문제였다고 보면 의료민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 J-13에 참가했을 때 서울대병원 노조위원장이 올라와서 ‘여러분들은 앞으로 신자유주의가 널리 퍼지고 의료민영화가 되면 여러분은 아프면 병원 갈 권리가 없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라고 발언했었는데 참 공감이 갔다. 의료민영화는 지금 아프고 있는 사람들, 아픈데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인 상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특히 비싼 약값을 치러야하고 약값이 없으면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감염인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권 _ 올해 초 FTA반대 보건의료인 집회에서 가브리엘 형이 나는 살아야하고 다국적 제약회사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우리가 의료민영화 관련한 운동에서 HIV감염인의 문제를 이슈화 시켜야하고 우리가 왜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에 동참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
욜 _ 의료민영화를 통해 영리병원이 들어선다면 아마 병원 경쟁구도 안에서 에이즈 같은 질병은 돈벌이에서 번외로 밀릴 것이다. 현재도 극소수의 병원에서 치료되고 있는 구조인데 그나마 구축되어 있는 공공성이 후퇴되게 된다면 번외에 있는 질병이 얼마나 그 안에서 ‘보장’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있다. 의료보험 자체가 민영화가 된다면 지금 그나마 후불이기는 하지만 약값, 진료 등을 지원받는 감염인들에게는 절망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에이즈와 같이 질병이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시도에 맞서 제동을 누가 걸 것인가? 우리 안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숙씨는 나누리+ 활동을 시작한지 4년, ‘운동화’는 2년 정도 되었다. 정숙씨는 비정규직으로 동인련, 에이즈 운동을 하고 있고 '운동화'는 공부를 하면서 나누리+ 활동을 하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각오와 더불어 말해 달라.
운동화 _ 먼저 후제온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고 에이즈 운동의 중요한 성과로 잘 마무리 되었으면 한다. 후제온이 중요한 이유는 ‘가브리엘에게 중요하니까’, ‘필요하니까’, ‘사람들이 어떤 약이든 먹어야 하니까’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라는 것이 한정되어 있을 때 시장원리와 어떻게 싸워나갈 것이냐의 문제를 후제온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의료민영화와도 맞닿아 있다. 만약 100명의 사람들 중에 2명만이 약이 필요할 때 시장 원리에 맡겨두면 약은 공급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바로 후제온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원리가 아닌 것을 어떤 논리로 이야기할 것이냐? 시장이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 분배방식을 찾을 것이냐? 정부를 통해서이든 민간사이의 연대이든지... 그러한 해결 과정에 대해 후제온이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 필요한 사람, 살 수 있는 사람 즉 구매력 있는 수요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시장에 맡겨두면, 혹은 자유로운 경쟁원리를 통해서라면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새로운 분배방식을 발견할 것이냐가 중요할 텐데, 후제온이 그러한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최근 조중동 불매운동처럼 기업이랑 싸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후제온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건강권, 권리.. 인권으로써 시민적 권리의 확장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신자유주의 체제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너희들에게 권리가 있어 하지만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정해져 있어’ 등 권리를 강화하는 것 자체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에 근본적으로 쓸 공격의 무기는 아닐 것이다. 시민권을 선택적으로 부여하는 과정이 중요한 상징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권리를 줘!’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권리가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해야 한다. 시민적 권리를 강화하는 것과 공공성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연결되어야 한다.
욜 _ 우리가 소수자 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공공성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고 어떻게 권리를 얻어서 분배할 것인가 하는 접근에 대한 시각은 아직 한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측면이 있다. 권리를 아직 획득하지 못한 소수자 영역이 권리를 어떻게 얻고 분배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은 진보운동에서 재미있는 역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숙 _ 지금까지 에이즈 운동은 훌륭히 싸워왔다. 운동화가 말한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권리를 어떻게 배분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이즈 운동에 매력을 느낀다. 에이즈 운동을 통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잘 개입해 왔다고 본다. 우리의 운동은 이제 시작이고 여러 문제들이 에이즈에 담겨져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의 상이 있어야 한다. 현재는 이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의료민영화 문제와 잘 연결이 된다면 운동이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행동해야 한다.
긴 시간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레즈비언으로써 에이즈 운동을 하는 활동가라는 측면 보다 그동안 함께 했던 에이즈 운동에 대한 고민과 아쉬움 그리고 전망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은 공포와 불안으로 등치되는 에이즈를 넘어서기 위해 그동안 많은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특히 동인련은 에이즈 확산은 바로 사회적 차별이라는 것을 주장하며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 보장을 외쳤고 그 외침이 여러 활동을 통해 논리를 얻어가는 구체적인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 에이즈 운동은 이제 한 발을 떼고 또 다른 발을 내딛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앞으로 에이즈 운동은 이 운동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큰 운동의 전환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깨 걸고 함께 가는 그 길에 이 두 사람의 활동에 박수쳐주고 많은 이들이 에이즈 운동에 함께 동참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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