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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치과에서 HIV/AIDS 검사를 하겠다고?

by 행성인 2010. 8. 5.

- 지금 필요한 것은 HIV/AIDS 감염인들의 의료접근 현실을 파악할 때 -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직장동료가 한 명 있다. 눈에 띌 정도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나있지만 피부과에서는 성분을 알 수 없는 연고만 주고 바르라는 진단만 내렸다고 한다. 특히 술을 마실 때는 붉은 반점이 심하게 올라온다. 길을 가다가도 자신을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고 가거나 마치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받는다고 한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한마디씩 던진다. “에이즈 아니야”, “가까이 오지마. 더러워. 옮아” 그냥 놀려대는 것이겠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아토피 수준의 피부 질환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붉은 반점만으로도 에이즈라는 질병이 쉽게 연상되나 보다. 그리고 에이즈를 쉽게 전염되고 피해야 하는 질병. 더러우면 걸리는 질병으로 여긴다. 놀림의 대상으로 여기다 못해 아예 멀리하려고 한다. 내 주변사람들뿐만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에이즈에 덧씌워진 공포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누가 HIV/AIDS 감염 위험을 조장하고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치과에서 HIV/AIDS 검사를 하겠다고?


구강점막액을 통해 HIV/AIDS 검사를 가능하게 한 오라퀵 어드밴스 제품



전국의 보건소에서는 익명, 무료검사를 원칙으로 에이즈 검사를 해주고 있다. 내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채혈을 통해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잘 찾지 않는다. 내가 감염되지 않았을 거란 막연한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보건소 직원을 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검사를 해야 하니 얼마나 가기가 싫겠는가.

 

그런데 앞으로 치과에서도 HIV/AIDS 검사를 손쉽게 받을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것도 채혈이 아니라 구강점막으로도 에이즈 검사가 가능하며 20분이면 결과가 나온단다. 2010년 7월27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에이즈종양바이러스과)가 대한치과감염학회(이하 감염학회)와 함께 치과병의원에서 에이즈 검사를 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연구가 완료되는 8월말 정도에 행정예고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냥 앉아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책을 반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 정책이 왜 도입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치과감염협회가 지난 6월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선 잠재 감염인들을 조기 색출(screening)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채혈검사를 하게 되면 수일 후에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감염사실이 확인된 사람들이 행방불명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치과에서 상시적으로 에이즈 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안전한 치과 진료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면 국내에서 돈을 더 많이 쓰는 외국인 환자를 더 유치할 수 있다고 한다. 신승철 감염학회 학회장도 이 제도가 치과병원의 새로운 수익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2010년 1월 치의신보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의료인과 환자 사이 교차 감염의 위험성도 언급하고 있다.

 

의료인이 갖는 두려움과 달리 교차 감염은 기본적인 예방지침으로도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따라서 안전한 치과진료를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염위험을 과도하게 포장하거나 편견에 기대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환자들과의 신뢰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선행 고민되어야 한다.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 입장에선 의료인에 대한 불신과 진료거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질병을 숨길 수밖에 없고(사실 질병을 밝혀야 하는 법적인 의무도 없다), 이 같은 상황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에이즈 감염여부 검사를 하겠다는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무엇보다 질병관리본부와 감염학회가 추진하는 정책의 의도는 감염 위험군들을 조기 식별하고 감염사실이 바로 확인되면 도망가지 못하게 바로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안전한 진료환경을 홍보하여 자신들만의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료와 기사를 샅샅이 뒤져봐도 HIV/AIDS 감염된 이들의 치과진료를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대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주객이 전도됐다. 다만 가이드라인을 세워 의무로 검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권장사항으로 행하겠다고 하는데, 환자와 의료인 사이에 이미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환자가 에이즈 검사를 권장하는 의료인 앞에서 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겠는가?

 

또한 에이즈 간이 키트기 검사를 하게 되면 병원에서 무상으로 검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가의 키트기와 수가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을 한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치과감염학회는 환자들에게 모든 비용을 충당하게끔 하려고 한다. 이는 HIV/AIDS 검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비용부담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병원 이윤에만 도움이 되고 HIV/AIDS 감염인들이 아니라 보다 안전한 환자들만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 뿐이다.

 

위험은 누가 조장하고 있는가?

HIV/AIDS에 감염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위험은 모든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의료인들도 교차 감염에 대한 위험을 보다 안전한 진료환경이 조성되었는지를 확인하거나 진료과정의 실수를 통해서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보기보다는 감염인들을 환자로서 만나는 것, 그 자체에서부터 두려움이 시작되고 있어 이는 진료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책임에서 질병관리본부가 비껴갈 수는 없다. 잠재 감염인을 확인하겠다는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들여가며 치과에서 HIV/AIDS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편의적으로 접근하는 결과일 뿐 전혀 효율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무료로 보건소에서 검사를 하는 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재점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질병관리본부가 HIV에 감염된 이들을 조기발견하고 치료받기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치과에서 에이즈 검사를 하기 전에 의료현장에서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적인 진료가 없는지. 치료거부가 왜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초연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의료현장에서의 HIV/AIDS 감염 예방은,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평등한 관계가 조성되고 전염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진료거부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료인에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2010.11.25 덧붙임>
2010년 10월8일 HIV/AIDS를 총괄하고 관리하는 부서인 질병관리본부(본부장 이종구)의 국정감사가 있었다. HIV/AIDS 감염인 윤가브리엘이 최초로 참고인 자격으로 감사장에 출석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치과에서 HIV/AIDS 검사를 추진하려는 정부에 대한 집중질의가 있었다.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윤가브리엘은 “HIV/AIDS 감염인들의 사회적 차별과 인권신장을 위해 참석하게 되었고 자신이 경험한 치과에서의 치료거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감염인임을 밝히면 진료를 회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치과에서 무분별하게 사전검사를 실시한다면 익명성 보장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감염인들은 치과진료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이야기하였다. 질병관리본부장은 “치과의사들이 에이즈 상식이 부족해 교육을 하기 위해 시작한 연구”라고 했지만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데 왜 특정 의료기를 선택해 본부장 마음대로 예산을 지원해 사용했냐?”는 질타로 이어졌고 감염인들과 협의했다는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의 답변에도 “사전의견수렴 과정이 없었고 방청석 의견을 수렴한 것이 감염인 의견을 수렴한거냐”고 하면서 감염인들에 대한 사과와 사업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질병관리본부는 더 이상 이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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