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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나는 왜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대회에 참여하는가 - 두 번째 이야기

by 행성인 2011. 8. 4.

나는 왜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대회에 참여하는가 - 두 번째 이야기

ICAAP10 부경대 앞 캠페인 모습 (출처 : www.icaap10.org)



나는 왜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대회(ICAAP)에 참여하려는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3년 전 여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3년 전 여름은 내가 처음으로 동인련에 나왔을 무렵이고, 처음으로 성소수자(LGBT)단체와 사람들을 접하게 된 무렵이기도 하다. 그 당시 나는 지친 학교생활이라든가, 무료한 집안 생활보다도, 활기차고 혹은 어떨 때는 진지한 동인련이 나에게 크나큰 에너지로 다가왔다. 그렇게 가슴 벅찬 여름을 동인련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나서 가을쯤에 로슈 반대 국제 행동이 터졌다. 이날 새벽부터 일어나서 바로 ‘로슈’ 제약회사가 있는 강남으로 갔다. 이때 처음으로 아침 일찍부터 선전물을 나눠주고, 시민들에게 큰소리로 우리를 알리며 기자회견도 함께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동인련에 나와서 여러 회의나 프로그램, 세미나를 접해도 나에게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며 이야기를 나누고 밤에는 문화제를 하면서, 가브리엘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보니 그제야 내 마음속에 HIV라는 것이 확 느껴졌다. 내 생에 처음, 진심으로 HIV를 접한 순간이다.


그 뒤로는 청소년 활동에 주력을 다했다. 내가 정말로 관심 있는 분야였고, 동인련에 ‘나 혼자밖에 없는 청소년은 외롭다’기 보다는 더 미룰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해 겨울쯤에 청소년 겨울 세미나를 열었고, 그 세미나를 바탕으로 지금의 ‘무지개학교 놀토반’이 만들어졌다. 즐겁게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자,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몇 번의 놀토반과 관련 프로그램에서 HIV/AIDS 및 Safe Sex에 대한 간단한 강의도 있었다. 그때 느꼈던 점은 또 다른 것이었다. 당시에 PPT를 통해서 정말 알기 쉽게 전달하는 내용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알고 있던 것들 중에 잘못 알고 있던 것들도 많았고, 또 모르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청소년이야말로 정말로 HIV/AIDS에서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사실상 현재 이 사회에서 ‘SEX’라는 단어조차도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시선인데, 어떻게 Safe Sex교육이나, HIV교육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다행히 동인련에 들어온 청소년들은 거리낌 없이 HIV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참여해주었고, 12월 문화제마다 함께 공연을 한다지, 도움을 주고는 했다. 그리고 작년 겨울에는 윤가브리엘 형이 책을 출간했다. 눈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던 그날에 북콘서트를 했는데, 여전히 사람들도 많고 보러와 준 청소년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그리고 이번 윤가브리엘 사진전을 통해서도, 나는 HIV에 대해서 끊임없이 듣고 접하였다.


청소년 활동에 전전긍긍해도 나 역시도 HIV로부터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ICAAP 커뮤니티위원회, 청소년 소위원장 자리를 제안 받았다. 사실 전에도 ‘ICAAP’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동인련 사람들이 몇몇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를 할 때,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서 부산에 다녀올까 싶었는데, 정말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순식간인 거다. 제의를 받고 나서도 사실 한참을 헤맸다. 나 홀로 위원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활동가분과 공동 위원장이긴 하지만, 참 이 자리가 너무나 어색했다. 아무리 앞에 ‘청소년’이라는 활동이 붙어도 아이캅과 HIV가 과연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짐일까? 그리고 한 달을 여전히 고민하고 회의를 해도 도저히 잡히는 게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위원장인 다른 활동가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우리만 기획하는 게 아니라, 국제단체와 서로 교류하며 해야 하는 게 참 막막했다. 그렇게 머리를 쓰고 고민을 한번 제대로 해보니 정답이 나왔다. 난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문득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게 어렵지도,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 것이다. 급하게 영어를 잘하는 친구를 섭외해 국제단체와 교류를 시작했다. 고민만 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했다. 그랬더니 엉켜 있던 실타래의 실을 한 올 한 올 풀듯이, 일이 천천히 쉽게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동인련에서 해왔던, 무지개학교 놀토반이나 캠페인 같은 프로그램처럼 청소년 활동도 HIV활동도 내 방식대로 편하고 즐겁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정말 가벼워졌다.


자, 다시 나는 왜 ICAAP에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자. 글을 읽는 당신도, 쓰는 당신도 정답은 이미 글 안에 있다. 나에겐 절대로 HIV라는 것은 떼어낼 수 없는 이슈인 것이다. 나 역시도 언젠가 감염인이 될지 모르니, 언제나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도는 건 청소년 활동뿐만 아니라, HIV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청소년 활동을 그만두고, 아마 다음활동을 생각중이라면 바로 고민 없이 HIV활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청소년과 HIV를 엮는 건 참으로 어렵다. 어떨 때는 진지하고, 무겁지만 또 어떨 때는 가볍고 재밌어야하는 것인데, 그 두 가지를 묶는 건 여전히 나에겐 어려운 숙제이다. 그 숙제를 조금이나마 쉽게 풀기 위해 이번 아이캅은 나에게도, 또 청소년 활동에도 중요한 활동이 될 것이다.


아직도 막막한 건 여전하다. 청소년 소위원회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함께 할지에서부터, 저질스러운 영어실력에 이르기까지, 막막한 게 한두 개는 아니지만, 하나씩 배워간다는 의미로 ICAAP에 임한다면 나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은찬_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자긍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