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구성권연구모임 꾼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했던가.(<씨네21> 1998.12.15. 180호 기타노 다케시 인터뷰)
나에게 가족이란 바로 그런 존재였다. 가족은 가족이란 핑계로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고, 보이지 않는 족쇄였으며,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암적인 존재였다. 나를 이해받지 못하면서도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곳. 경제력이 없으면 발언권도 없는 곳. 사랑이란 이름으로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곳. 게다가 사랑해서 결혼했다던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하지 않았는가.
나는, 가족이라 부르는 그 공동체를 뛰쳐나오면서 작은 다짐을 했다. “나는 애인이 생기더라도 절대 동거하지 않겠어. 사랑 따윈 거짓이야.”
연애 동거의 시작
늦은 밤 탱고를 추다가 사랑에 빠져버렸다. 예상치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기이가 자꾸 보고 싶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떨어지지 않으려면 같이 사는 것이 가장 좋지. 그렇지만 집을 나오면서 했던 나의 다짐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독립적인 삶을 살 건데! 아 그렇지만 집을 합치면 경제적이잖아. 집값이랑 관리비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생활비...앗! 이게 문제가 아니야!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기껏 돈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 않지. 돈은 중요하잖아. 일단 살아야 하니까...아니 지금 그걸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 내가 이 사람이랑 같이 살게 되면 예전 나의 가족과 다를 수 있을까? 자식은 은연중에 부모를 닮는다던데 매일 싸우게 되면 어쩌지. 아니야, 어차피 결혼은 못하니까 부모님과는 다른 가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아니지. 결혼이 무슨 상관이야! 같이 살면 부딪히는 거지. 나랑 동생은 결혼해서 그렇게 싸웠나!!!!그래도 이렇게 좋은데 설마 부모님이랑 싸운 것처럼 싸우겠어? 아 아니야 부모님도 처음엔 좋아서 결혼했다고 그랬잖아(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기이와 함께 살고, 커밍아웃을 하고 난 후 부모님의 관계는 눈에 띄게 좋아지셨다. 심지어 다음 주에는 제대로 가지 못했던 신혼여행을 가시겠다고 신이 나셨다. 무슨 조화란 말인가?)....어떻게 하지? 그냥 근처에 집을 하나 구할까? 참 나 돈 없지. 헉 돈도 없는데 만약에 같이 살다가 싸워서 쫓겨나면 어쩌지. 이거 순식간에 거리에 나앉을 수...아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좋아서 살겠다고 하면서 쫓겨날 생각을...아 하지만 혹시...? 아 어쩌지 오마이갓.
머릿속은 복잡했고 일분일초마다 생각이 바뀌었다. 짐을 쌌다가 풀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결국 난 짐을 싸서 기이의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기이에 대한 그리움과 경제적인 이득은 나의 모든 불안감을 잠재우고도 남을 정도의 메리트였으므로.
고양이 두 마리
연애의 달콤함이 나를 지배하던 어느 봄 날.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를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들러붙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발견된 두 마리의 고양이는, 마치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듯 닮아 있었고, 둘 다 눈도 뜨지 못한 갓난아이였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애완동물 한 마리쯤 키우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은 종종 해왔지만, 이렇게 어린 고양이는 생각치도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지 각오하지도 못했었다. 그저 저 어린 생명체가 죽어가고 있으니 이걸 어쩌나, 하는 측은지심이랄까.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이 넘치는 시기였으니. 고양이 두 마리 키우는 것은 문제없다고 섣불리 자신했다.
고양이가 온 다음 날부터 우리는 잠을 자지 못했다. 아주 어린 고양이는 4-6시간에 한 번씩은 젖을 물려야 했다. 우리가 잠을 잔다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알람을 맞춰두고 꼬박꼬박 일어나서 젖을 물렸다. 혼자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밥을 먹고 트림을 시킨 후 꼭 대소변을 보게 해 줘야 했으며, 괄약근 조절이 안 되는 녀석들은 깔아놓은 수건들에 실수를 해 댔다. 찍소리도 내지 않던 이 녀석들은 밥을 먹고 살이 조금씩 올라 집이 떠나가라 목청껏 울어댔고, 고요하고 조용하던 집에서 우아하게 보내던 우리의 삶이 마구 흐트러졌다.
몇 달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우리 둘은 점점 피곤해졌고, 누가 밥을 주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서로 고양이 밥 주는 것을 미루기도 했다. 매일 혼자서 밥을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서로를 필요로 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실망했다. 종종 의견의 차이가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건 사랑의 힘이고 뭐고 너무 힘들다고! 그렇게 힘들고 지치는 와중에 고양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애교를 부리고, 조금씩 화장실을 가리기 시작하고 제법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나. 저 녀석들을 어쩌면 좋나.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저 나쁜 녀석들은 왜 저렇게 예쁘고 귀엽고 앙증맞은 것이냐.
손님들
그 무렵이었다. 우리 집에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에게 고양이를 맡긴 원흉(..)인 친구가 찾아와서 우리가 시간이 되지 않을 때 밥을 주고 가곤 했다. 그 뒤로는 내 동생이 찾아와 고양이를 잠깐씩 돌봤다. 그리고 그 이후, 어린 고양이를 보겠다고 친구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린 고양이를 보겠다는 핑계로 우리 집에 놀러 오던 친구들은 고양이들이 커져서 어른 고양이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밥을 먹고 가기도 하고 술을 먹고 가기도 하고 자고 가기도 했다.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웃고 떠들고 춤을 췄다. 친구들은 모두 우리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도 부담 없이 자신의 연인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나눴다. 우리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친구들. 가끔은 부러워 해주고, 가끔은 신랄한 농담을 하기도 하면서 우리를 꼭꼭 세트로 생각해 주었다. 그들은 약간은 불안했던 우리의 사랑과 삶을 통째로 인정했다. 신나게 웃고 떠들고 놀았을 뿐이었지만 그것이 나에겐 우리의 사랑에 대한 지지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지지는 내가 더 당당하게 내 삶과 사랑을 긍정하는 힘이 되었고, 더욱 더 큰 힘으로 내 존재를 외치게 해 주었다.(그렇게 커밍아웃이 일상화되어 버린 것이었다. )
그때부터였을까, 사랑한다는 감정과는 다른 ‘공동체’의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트로 묶여서 지내는 거 생각보다 꽤 좋잖아?
꼭 가족의 이름이 아니어도
우리는 가족일까? 고양이 두 마리와 나와 기이? 꼭 가족이란 단어로 묶어야만 하나? 가족이 뭘까? 내다버리고 싶은 것? 고양이 두 마리는 종종 내다버리고 싶다. 그럼 우리는 가족인가? 하지만 늘 버리고 싶지는 않은데. 게다가 나는 가족이란 단어가 싫단 말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내게 자행되었던 감정적 폭력을 기억하고 있다고!
종종 내다버리고 싶지만 내다버릴 수 없는 존재, 같이 있어서 힘이 되고, 행복해지고 삶에 감사하게 되는 존재. 의견의 불일치로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심통도 부리지만 그래도 같이 살고 싶어서 풀어가는 존재. 험난한 세상에서 지친 마음을 보듬어 주는 존재. 타인에게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고, 오히려 타인에게 지지받는 존재. 꼭 가족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존재를 부를 말.(혹자는 이것을 가족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우린 가족이로군?) 그 단어가 우리 관계를 명명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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