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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오리 꽥꽥

국가인권위원회, 지금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길 바래

by 행성인 2012. 9. 24.

오리 (동성애자인권연대 노동권팀)

 

내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라고 차별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가족? 법원? 경찰? 인권단체? 신문고? 국가인권위?
법원이나 경찰에 찾아가기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또다시 힘들어질까봐 두려움이 앞선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우팅 할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지인들이나 인권단체에 말한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나마 국가인권위가 그런데여야 하지 않나? 싶지만, 국가인권위에서 성소수자 관련해서 뭔가를 했다는 소식은 잘 안 들리고, 오히려 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소식이 더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법에 성(性)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웠다. ‘그런게 있었구나.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나? 억울해 죽겠으면 그래도 찾아갈 곳은 있겠구나.’ 했다.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가 군인이 서로 합의한 동성애 관계조차도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에 대해 “동성애자의 평등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 등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표명하기로 의결했었단다. 이때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였는데, 이 소식을 들었다면 그냥 왠지 힘이 되었을 거 같다.



 


이런 활동들이 많으면 좋으련만, 지금의 국가인권위는 엉망진창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자격에 무능력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연임이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인권단체들이 얼마나 반대를 했는데 정말 염치도 없지.(이에 관련된 기사는 많으니 찾아보시길.) 현병철 재임 3년 동안 성적 지향 차별과 관련한 진정 사건에 대해 단 한건의 권고 결정도 없었으며, 모두 기각·각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적소수자 인권 증진 관련 사업도 전무하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 홈페이지에 동성애자 카페를 만들었다가 일방적으로 폐쇄되어 차별 진정을 넣은 건도 “성경이 동성애를 허용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견의 다툼이 있어 이에 대한 판단은 기독교 내부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며 각하하였다. 회의록조차 없고, 이러한 차별에 대해 성경이 동성애를 허용하는지 여부로 기독교내부의 결정을 따른다니. 완전 비겁하다. 그런 식으로 인권에 대한 판단을 다른 이들에게 미루면 국가위원회가 뭐하러 있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학교구성원 내부의 결정을 따르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회사내부의 결정을 따를 건가? 최소한 논의를 만들어내고, 무엇이 쟁점이 되는지라도 내놓는게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일 아닌가?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관심을 갖자!”이다. 국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막고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그런 경험이 없으니 당연하지) 성소수자로서 국가의 어떤 기관에 관심을 갖기가 힘든 것 같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냥 만들어줄 일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성적지향이 들어갈 수 있었을 터이다. 국가인권위위회가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내고, 그래서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활동들을 꿈꾼다.

 

그러려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망가져가는 이때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뭘 할 수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일단 이렇게 알리는 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