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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오리 꽥꽥

성소수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

by 행성인 2012. 11. 5.


오리(동인련 성소수자노동권팀)


외국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이 다니기 좋은 직장이 있다더라. 자주 듣는 이야기다. 국내에는 없을까? 찾아보니 IBM과 포스코가 있었다.


포스코는 윤리경영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홈페이지로 봐서는 뇌물 안 받고, 부정부패 없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이런 거 같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제적인 기준을 참고하고, 다른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윤리규범에 인권을 포함시켰다. 윤리규범 임직원 관련된 부분에 “인종·국적·성·나이·학벌·종교·지역·장애·결혼 여부·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어떠한 차별이나 괴롭힘을 하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첨가되었다.




궁금해서 윤리상담실에 전화로 물어봤다. 성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했는데 “하리수 같은 사람”을 예로 회사에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로 봐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세자금 대출이나 결혼휴가, 가족수당 같은 지점에서 동성커플도 똑같이 적용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 던지자,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며 그런 건 우리 사회가 천천히 변화하면 가능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회사내에서 어떻게 차별을 없앨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만약 상사가 게이 새끼라고 하면 그걸 고발할 수 있고 거기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하거나 안 되면 인사조치까지 취할 수 있다고 한다. 회사 윤리규범에 성정체성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이런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아닌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회사가 공개적으로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나 괴롭힘에 대처하겠다고 밝힌 것은 의미가 크다.


IBM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걸로 유명하다. 대학교 커뮤니티에 있을 때 메일로 성소수자 채용을 장려한다는 내용이 왔었는데 장난인가 했었다. 근데 기사를 찾아보니 신입사원 채용 때 서류전형 단계에서 장애인, 보훈 대상자와 함께 성소수자(GLBT)에게 가점을 준다고 한다.



여기도 전화를 걸어 봤다. 회사에 커밍아웃한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다고 한다. 면접을 볼 때나 자기소개 때 이야기하고 정체성을 밝히고 들어오신 분도 있단다. 이것만으로 일단 놀라움!!! IBM은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고, 여기에 성소수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신입사원에게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온라인으로도 달마다 이슈별로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한다.


외국의 IBM에서는 실제로 동성 파트너도 이성 파트너가 받는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가까이 있는 중국도 그렇단다. 한국IBM에서도 검토했었는데, 등본 같은 공식 서류가 필요하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동성커플 서류가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한다. 보험회사는 공식서류가 없으면 보험료가 올라가서 안 된다고 했단다. 휴직이나 가족간호 같은 경우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도 가능하도록 문구를 추가했다. 회사에서는 의지가 있는데 사회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다.


"동성애는 정신병 아니야?" 같은 말들에 어떤 식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불합리한 처우나 비윤리적이라고 느낀다면 인사부에 건의할 수 있다. 인사부 담당자 조사하고 인사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성정체성 쪽으로는 아직까지 건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소수자 노동권팀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외국에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기업 순위를 매기더라. 1등 한 기업을 칭찬하고, 성소수자들에게 친화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실제 기업의 이득에도 도움이 된다며 설득하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다. 외국에 그런 자료들도 많고.


그런데 사실 결혼한 이성커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회사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 회사들의 비정규직들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마찬가지로 어떤 식의 윤리지침이 있어도 그것을 누가 사용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성희롱조차도 비정규직처럼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을 때에는 무용지물인데 뭐.


이런 상황에서 (아마 소수의 회사 정규직들만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업무환경을 만들도록 캠패인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까? 게다가 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단체를 지원하는 기업들이 한국에만 오면 꼬리를 내리는 한국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윤리경영을 추구하는 포스코도 노조를 탄압한다. 오래된 기사이긴 하지만 2006년에 ‘포스코 노조정상화추진위' 이건기 대표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윤리규범으로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주로 현장직원이 많다. 회사 고위층에게는 윤리규범도 너무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런 윤리규범이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좋을 거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여전히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된다는 말이 기업에서 나올 때 놀랍고, 여기저기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말만이라도 아쉬운 처지다. 하지만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하는 사회를 원한다는 게 그것으로 끝이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