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남다른 10년, 늦었지만 필요했던 만남
동성애자에이즈예방센터 iSHAP(이하 아이샵)과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이하 나누리+), 두 단체가 지나온 시간은 10년에 이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직접 만나서 활동을 기획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마련되기 어려웠다. HIV/AIDS문제라는 공통의 주제를 공유하지만 각자 다른 화두로 평행선 같은 활동을 그려왔다고 말하는 건 주관적인 해석일까. 가령 한쪽은 게이커뮤니티 내의 에이즈예방에, 다른 한쪽은 감염인의 의료접근권을 비롯한 인권에 초점을 맞춰왔던 식으로 말이다. ‘예방과 인권이 그렇게 다른 이야기일까?’ 를 둘러싼 고민들은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다양하게 정리되었지만(적어도 그래왔다고 믿고 싶다.), 실상 머리를 맞대어 고민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10년이 지났다. 그들의 10년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인권포럼 HIV/AIDS세션에 두 단체 활동가를 섭외하여 이야기 나누는 기획은 다소 진부하고 늦은 감이 있음에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세션은 상대 단체가 활동하면서 방점을 찍었던 키워드로 자신의 활동을 반추하는 데 초점을 맞춰 문제의 공감대를 확장하는 것까지 아우른다. 이를테면 에이즈 이슈에서 ‘인권’을 키워드로 삼는 나누리+는 ‘예방’의 관점에서 자신의 활동들을 읽어내고, 아이샵은 인권의 관점으로 자신의 활동을 읽어내는 식이다. 이는 자신에게 향해있던 거울을 상대에게 비춰봄으로써 남다른 10년을 반추하며 ‘남다를’ 11년을 준비하기 위함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반복되는 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의 요구
하지만 다른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도의 효과가 쉬이 주어질 수는 없을 터, 두 단체의 언어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PPT로 진행된 아이샵 발제의 경우 단체의 설립부터 그간 예방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활동들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설립 당시 고된 준비과정에 대한 술회는 콘돔을 배포한 활동성과와 평가 위주로 진행됨으로써 단체 내부의 발화를 넘어서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에 반해 나누리+의 발제는 단체의 구체적인 활동 자체보다 에이즈이슈가 ‘인권’으로 접근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사회의 환경을 설명하면서 아이샵의 예방활동을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함에도 불구하고 발제문의 내용과 어휘들이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발제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한 발언자는 아이샵을 바라보는 나누리+측 발제문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들의 관점이 여전히 아이샵을 국가사업으로만 바라보는 관성에 묶여있음을 비판했다. 알다시피 아이샵은 현재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산하에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만 묶인 채 단체의 예방활동 전반을 평가절하 한다면 추상적인 논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발언자의 의견이었다. 가령 제도권 속에서 에이즈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게이들로 하여금 에이즈 문제를 인식시키고 안전한 섹스를 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인 게이’ 상을 심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협의의 해석들만 반복된다는 것이다. 발언자는 그들이 현장 속에서 주체적으로 메시지를 만들면서 커뮤니티 대중들과 만나 콘돔을 나눠주면서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에이즈 인식을 바꾸고 있는 모습들을 좀 더 ‘신랄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아이샵의 단체 구성 조건에 묶여있지 말고 현실 속 구체적인 활동의 결을 읽어내야 한다는 주장은, 커뮤니티 친화적으로 활동해온 아이샵의 친화력을 재평가하고 성소수자 에이즈 운동의 담론 속에서 예방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분명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슨 현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따라 붙는다. 10년 동안 일궈온 예방사업의 결을 읽는 시도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국가예산으로 단체가 만들어지고 활동해온 과정을 어디서부터 읽어내고 이해해야할 것인지 묻는다면 ‘구체성’의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제도권 에이즈 인식 속에서 기관을 설립하고, 에이즈 위험군으로 낙인찍혀있는 게이 커뮤니티를 향해 소리 높여 예방을 주장하는 단체의 활동이 제도 순응적인 예방 ‘활동’인지, 제도를 전유함으로써 제도 비판에 이르는 에이즈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는지 평가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논쟁의 주된 시점은 변진옥 활동가가 발제문 말미에 기술한 다음의 문장에서 비롯된다. ‘iSHAP은 국가가 에이즈 예방의 일환으로 벌이는 사업이다. 엄밀히 말해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국가사업의 일환으로서 단체가 운영되는 조건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하게 판단해야할 것은 국가기관 산하의 단체라는 조직의 구성적인 한계 속에서도 단체들이 예방을 인권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주체적으로 생산하는지를 읽어내는 것이며, 예산 삭감이라는 국가 기관의 부조리한 제도와 조직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데 있을 것이다.
물론 ‘신랄한 비판’을 위해 발언자가 요구한 구체적인 접근의 시도는 연대운동 자체를 의미하기보다 연대에 앞서 서로의 활동에 편견 없이 접근하고 알아가는 시도 속에서, 말하자면 활동의 비전보다는 활동의 조건을 고려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주장하면서 발언자가 예로 들었던 아이샵의 활동 역시 활동가들이 업소를 돌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듣고, 부족한 수량의 콘돔을 채우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예산을 받고 사업에 분배하는 구체적인 과정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샵이 관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들로 추려진다.
‘구체적인 접근’의 요구가 놓치고 있는(혹은 방기하고 있는) 것들
헌데 발언자의 지적 속에는 재고의 지점들이 존재한다. 먼저 위의 요구들이 발언자의 우려처럼 전혀 이뤄져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령 동인련 HIV/AIDS인권팀만 해도 그렇다. 작년 한해 인권팀은 아이샵을 비롯한 에이즈 관련 단체를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자료집을 냈는데, 여기서 인권팀은 기존 아이샵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의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활동을 읽어내는 작업을 통해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 예방사업이 어떤 의미와 한계를 가질 수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샵 활동에 대한 평가가 ‘추상적’이었다고 비판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앞서 나누리+의 발제에 관성의 흔적들이 있더라도, 이들의 언어는 이전의 배타적 지점과는 다른 맥락을 갖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권과 예방이 외따로 활동하는 것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 따른다. 더불어 그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있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합의뿐 아니라 논쟁과 충돌까지도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소통창구’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 이번 세션의 두 발제자들이 반복했던 자기목소리는 이전과 다른 위치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즉 이들의 언어는 (서로 간 오해와 관습의 흔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까지의 활동들을 비교해가며 서로의 의미와 한계를 평가하고, 다시금 자신의 목소리를 빚어내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변별성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의의 방향은 평가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 뿐 아니라, 기존 논의로부터 어떤 차별지점이 있는가를 벼려냄으로써 쟁점을 표면 위로 부상시키고 이후의 관계를 전망하는 시도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정 발언자의 발언을 이렇게 길게 평하는 데에는 단순히 토론시간을 상당부분 할애했던 발언의 양에 기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평가의 시도를 도외시한 채 배타적 평가의 흔적들만을 발견하고 이를 비판하는 논자의 관점 또한 배타성을 답습하며 고립된 반복에 함몰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우려가 든다는 데 있다. 현재 에이즈운동주체들 간 의미와 한계를 평가하는 가운데 서로의 활동반경을 재고하고, 키워드를 교차시켜 자신의 언어를 재조정하며 지속적인 관계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시점에서, 한쪽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와 개입을 재차 요구하는 것은 기존의 단절된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발언자가 타 단체들의 시도들에도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다면 구체성에 대한 지적은 좀 더 ‘구체적’으로 요구될 수 있었을까? 아니, 오히려 지적되어야할 것은 이러한 우려들이 현재 에이즈 운동의 담론이 유통될 수 있는 소통창구가 부재하는 상황이 초래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 있다. 발언자가 에이즈 이슈에 참여하고 수차례 목소리를 낸 바 있는 성소수자 활동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통 부재의 문제는 좀 더 심각하게 부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발언자는 애초 아이샵 설립 초기, 국가예산을 사용하는 것을 둘러싸고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을 환기하면서 단체들의 활동을 서로 읽어보려는 자리 자체가 여전히 전무한 가운데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과연 생산적인지를 지적하기도 한다.)
활동의 쟁점과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논할 수 있는 ‘채널’이 부재하는 활동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논의는 그 시도부터 어려움에 봉착하며, 공유할 수 있는 통로의 부재 속에서 활동의 접점을 산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접근은 잊히기 십상이다. ‘콘돔이 대량으로 배포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라도 나온다면 담론이 풍부하게 만들어지지 않을까’를 고민한 변진옥 활동가의 언급은, 담론의 부재 속에서 대화의 생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긴급하게 고민해온 흔적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콘돔이 예방도구로서 일상화된 현실 속에서 현실과 거리가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의견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남다른 10년? 남모를 10년!
소통통로의 부재는 곧 자기 활동에 대한 성찰‘조건’의 부족을 드러낸다.(이는 성찰 자체의 부족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서로 간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그 구성원들의 관점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단체의 구체적인 활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활동에 접근하는 주체의 관점을 스스로 돌아보고 각자의 현실적인 위상을 점검하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토론 말미부터 내심 궁금해지는 건 나누리+의 ‘구체성’이었다. 아이샵의 예방활동을 둘러싼 논의에 치중되었던 토론 속에서 나누리+가 지금까지 해온 인권활동의 활동과 평가, 그리고 비전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두 활동에 대한 일련의 물음들은 최종적으로 다음의 질문을 향할 것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예방 활동은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 반대로 예방활동 속에서 인권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이들 단체에 던지는 물음들은 동인련 에이즈 인권팀의 현재를, 나아가 에이즈 운동의 향방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물음의 다른 판본들이다. 허나 토론은 위의 질문에 접근하기보다 접근할 수 없어왔던 이유들과 그에 대한 비판들로 채워진 듯하다. 묘한 긴장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의 문제보다 묘한 긴장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제대로 읽으라는 요구에 토론의 초점이 실린 것이다. 이는 기획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구체적인 역사를 숙지하고 임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를 자문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남다른 10년?!’의 섹션 제목은 ‘남모를 10년’으로 바꿔 적는 것이 보다 정확하지 않았을까? 어찌하여 두 단체는 10년이 되어서야 함께 모여 인권과 예방의 ‘칼로 물 베기’ 같은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것인가? 두 단체를 한자리에 불러 이야기 나눌 때 최소한 기획자들이 에이즈운동의 남다른 역사를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는 전제가 타당하다면, 남다른 10년 활동의 주체는 두 단체로 국한시킬 수 없는지도 모른다. 아이샵이 설립되는 데 있어 자문을 구하고 활동의 기틀을 구성해온 과정, 나누리+가 외부 이슈에 따라 유동적으로 제 외형을 갖춰오고 그들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온 과정을 인식한다면 패널로 두 단체만을 섭외할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와 밀착된 또 다른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섭외하여 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지적들은 포럼 이후 수차례 반복되었던 평가회의에서 자체적으로 나온 반성지점이기도 했다.
물론 토론은 두 단체의 활동을 놓고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토론의 한복판에 이미 침습 되어 논의의 시작부터 어렵게 만드는 ‘균열’은 아마도 쟁점을 논하고 활동을 조직할 수 있는 소통 창구의 부재, 각자의 활동을 반성할 수 있는 단체와 활동가 개개의 성찰 조건의 부족, 무엇보다 에이즈 이슈를 자신과 동료들이 함께 풀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못하는 (성소수자 운동 진영을 포함한) 커뮤니티 전반의 인식 부재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시도 속에 벌어진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왜 포럼의 동인련 참가자들은 죄다 노동섹션으로 간 걸까요?’ 라는 불만은, 사실여부가 어떻든 포럼이 끝나고 309호에 남은 몇 안 되는 동인련 회원들(대부분은 인권팀원)이 입안에서 겨우 뱉어낸 뼈있는 자조였으리라. 개인 SNS에 소감을 남긴 인권팀원의 말마따나 남다른 10년은 정말 ‘우리만의 10년’이었던 것일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지적임에도 나는 물음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HIV/AIDS 운동담론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소통창구의 필요
평가하건대, ‘남다른 10년?!’ 토론은 타인의 키워드로 스스로를 비춰보자는 취지보다는 다시금 나의 언어가 재차 소환될 수밖에 없던 자리였고, 소통창구의 물꼬를 터보자는 취지가 무색하게 소통창구의 부재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단체와 활동가들의 관점을 정립해나가면서 이슈를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이 부재하는 상황 속에서 논의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시도되는 관점의 일시적인 교류는 오히려 오해와 반목을 반복할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고, 부담에 대한 회피는 결과적으로 에이즈 운동담론 속에서 일종의 ‘침묵’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논의 자체에 대한 부담은 애초 기획부터 ‘중립’과 ‘객관’을 재차 강조하며 경계를 확인하는 모습으로 노출되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한번쯤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결국 쟁점을 산정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리라는 토론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한 채 남아버렸다. 오히려 토론에서는 쟁점자체가 공유되기보다 쟁점이 논의되기 위한 이해의 활동만이 강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탄탄히 준비될 수 없었던 실무상의 여건을 이해하더라도 토론 진행 중에 의견발언의 시간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 이후의 쟁점이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못했던 점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쟁점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입 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토론 중에 쟁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세션에 참석한 필자는 콘돔의 효과에 대한 김현구소장의 ‘신뢰’에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전언에 따르면, 콘돔사용률이 100%에 이른다면 에이즈에 대한 혐오가 불식될 수 있고,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하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콘돔은 에이즈혐오를 완화하는 예방도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혐오를 불식시키는 답이라고 언급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세이프섹스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콘돔은 중요한 키워드이고 논의될 필요가 있지만, 이번 토론에서는 채널 부재의 토로 속에 자세히 거론되지 못한 채 묻힐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쟁점들은 지금도 괄호 안에 갇힌 채 글 속에서 어중간하게 자리매김한다.)
그럼에도 최소한 이번 세션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면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던 두 단체의 활동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시도했고, ‘침묵’을 깨려는 시도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참석자들에게 각인시켰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자기활동에 대한 반성조차 자기 언어로 관성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짧은 시간 상대의 언어로 자기 활동을 비춰보자는 기획 의도는 실현되기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한편으로 ‘남다른 10년?!’ 세션은 현재 국내 에이즈운동담론의 고착되어 있는 현실들을 함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평가지점을 남겨둔다. 이후에도 서로의 키워드가 교차함으로써 풍부한 에이즈 담론들이 생산되고 공유될 수 있기를, 인권과 예방이 서로 배제하지 않으며 효과적인 에이즈 운동을 생산할 수 있는 자리가 계속적으로 마련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P.S. 1
세션에 산적하는 문제들을 살피면서 필자의 글은 단순한 ‘스케치’로 남겨질 수 없었다. 하지만 소통부재 속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시도는 민감한(혹은 헐벗은) 언어와 소모적인 입장 충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통(창구/역사/자료)의 강조 속에서도 필자는 섹션에 참여한 플로어의 발언자들 상당수가 에이즈 이슈에 오랜 기간 동안 관심을 갖고 참여해온 활동가들이었음에도 저마다 무슨 이야기를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여기서는 토론내용의 발화자를 구별하기보다 토론의 내용과 사후 참가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활동가 간 소통의 문제에 집중했음을 고백한다.
P.S. 2
토론이 끝나고 카페에 몰려가 걷어낼 수 없는 답답함을 서로 풀어냈다. 커뮤니티 내부에서 인권의 관점으로 예방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동인련 에이즈 인권팀이 목소리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소통창구의 개발이 인권팀의 장기계획이라는 점을 팀원들 서로 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남다른’ 에이즈 운동의 역사를 함께 써갈 수 있기를 바라며 들이킨 커피는 쓰디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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