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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차별금지법

누가 ‘종북게이’를 만들어냈나? 가족가치, 민족, 국가안보로 동성애를 공격하는 자들

by 행성인 2013. 7. 18.

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이 글은 6월 14일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2회에 걸쳐 원고를 싣는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안 철회 이후 불거진 동성애 찬반 논쟁을 바라보며, 성소수자 혐오를 누가, 어떤 논리로 조장하는지 살펴본다. 1회에서는 가족가치, 민족, 국가안보라는 구실로 조장되는 혐오 논리들을 뜯어본다. 2회에서는 청소년 보호를 구실로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우파 기독교의 논리를 살펴보며, 이들이 조장하는 차별과 혐오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하여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차별금지법안 발의 이후 기독교 일부 교단을 중심으로 법 제정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의원들을 상대로 낙선 서명운동 등을 내세운 압박도 계속되고 있다. '주체사상 찬양법', '동성애 합법화법'이라는 비방과 '종북·게이 의원'이라는 식의 낙인찍기까지 횡행하고 있다.”

- 2013년 4월 19일 김한길/최원식 의원 작성

'차별금지법안 발의에 동참해주신 의원님들께 올리는 글' 중

 

지난 4월 19일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입법 철회했다. 우파 기독교 중심 차별금지법 반대 세력의 압력 때문에 의원들이 법안을 자진 철회한 사태로 차별금지법 반대자들이 차별금지법안 철회를 위해 선전한 핵심에는 ‘종북’과 ‘동성애’가 있다. 혐오 세력은 보통 보수 기독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선전하는 동성애 반대 논리는 꼭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떤 주장을 펼치는가? 이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어떤 방식으로 조장하려고 하는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혐오 세력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공격해 왔나?

 

차별금지법 이전에도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력과 성소수자 운동이 부딪친 적은 많다. 그 역사는 적어도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 2003년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가 규정하는 동성애자 차별조항 삭제를 위한 투쟁과정에서 한기총이 국가인권위의 동성애차별조항 삭제권고에 대해 비난하면서 시작되었다. 기독교가 늘 주장하듯이,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동성애가 신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가족을 붕괴시키며,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 동인련 회원이었던 청소년 동성애자 육우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를 통해 성소수자 단체는 한기총과 정면 대립하게 되었다.


2. 차별금지법 제정이 화두가 된 2007년 우리는 한기총 외에 새로운 기독교 단체들을 접하게 되었다. '국가조찬기도회', '의회선교연합' 등 기독교 정치인 중심의 여러 우파 기독교 단체들이 모여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벌였다. 이때 “북한인권 외면하고 동성애라니”, “며느리가 남자라니” 등의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3. 2010년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에서 동성 커플과 가족 간의 갈등 등이 진지하게 그려지면서 우파 기독교의 공격이 또 시작되었다. 당시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으로 뭉친 이들은 사뭇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동원하여 동성애 반대에 나섰다. 때문에 동성애 반대 논리에 대한 진보진영의 논박도 이어졌다. 동성애 반대 근거로 가족 및 사회 붕괴, 에이즈 확산, 동성애 전염 및 학습, 동성애자의 우울하고 불건강한 삶에 대한 다양한 근거들이 신문광고 및 기사들로 도배되었다. 법무부가 다시금 차별금지법안을 준비 중인 가운데 벌어진 일로 이들은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배포하는 등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해 조직적 행동에 나섰다. 이 시기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바성연)'이 만들어졌고 성소수자 운동도 맞대응 광고를 내고 기자회견과 캠페인 등을 통해 우파들과 맞서면서 혐오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4. 2010년 10월 국가인권위가 군형법 92조 계간 조항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발표한 이후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라이트코리아', '6.25남침피해유족회'. '외국인범죄척결국민연대' 등 국가주의적 보수단체들이 혐오 세력으로 새로이 등장했다. 이들은 동성애가 군기강을 흐린다며 국가인권위 해체를 주장하거나, 국가안보 논리를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5. 2011년 겨울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당시에는 '참교육어머니전국연합' 같은 우파 학부모단체들이 앞장서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반대했다. 이들은 부모의 이름으로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반대하고 임신출산과 성적지향을 공격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동성애자가 되고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겠다는 주장을 폈다. 청소년 보호 논리와 성소수자 혐오가 결합되었다.

 

6. 혐오세력은 2010년 이후 영화 <친구사이>, 레이디가가 내한공연, <XY그녀>,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 <코미디 빅리그> 등 미디어나 매체가 동성애 및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것에 격하게 반대해왔다. 최근에는 MBC에서 동성결혼과 관련하여 우호적 보도를 했다는 것을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들이 매체를 통해 동성애를 학습하고 전염된다는 논리를 펴고, 동성애를 언론이 공공연하게 선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동성애를 다루는 거의 모든 매체를 공격하고 있다.

 

7. 지자체에도 우파 기독교 세력이 압력을 넣고 있다는 사실이 마포 현수막 사건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성소수자가 드러나는 모든 곳에서 전방위적으로 공격이 이뤄진다.

 

그럼 이들은 어떤 논리로 동성애를 반대하는가?

 

“며느리가 남자라니?” 가족가치를 지키기 위해 혐오를 활용

 

혐오세력은 "동성애자는 자녀를 낳을 수도 없고, 제대로 양육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팍스(시민연대계약) 입법 당시에 반대자들이 내건 구호인 “내 조카를 아동성애자에게 맡길 수 없다”는 말은 성소수자들을 보는 사회적 시선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하지만 동성애자 커플의 자녀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이성애자 부부 자녀들보다 동성애자 부부의 자녀들이 더 불행하다는 근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동성 커플의 자녀들이 학교나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높은 혐오와 편견의 벽 때문에 더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사회적인 편견과 혐오가 진정한 문제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동성결혼을 인정하면 출산율이 떨어지고, 산업인력이 감소하여 결국 사회가 망할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동성결혼을 세계최초로 인정한 네덜란드의 출산율이 한국보다 더 높은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오히려 출산율은 육아에 대한 사회보장의 수준에 비례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필요한 비용을 사회가 책임지는가의 문제이지 동성결혼과는 관련이 없다.

 

동성결혼은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법적으로 보장하는 권리이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최근 프랑스와 포르투갈에 이르기까지 14개국이 동성결혼을 보장하며, 프랑스 등 22개국이 동성간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시민결합을 보장한다. 일부 주에서 동성결혼을 보장하거나, 동성간 사실혼 관계 등을 인정하는 국가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그런데도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금방이라도 동성애자가 넘쳐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언론에 동성결혼 반대글을 기고한 우남식 목사는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성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고 가정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생명 잉태는 소수자 인권 보호 이전의 문제이며 건강한 성윤리에 기초해 성정체성을 확립하고 가정을 지키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했다.

 

가족제도는 이성애 가족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가치 위에 폐쇄적인 결혼 구조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가족’안에서만 아이를 출산하고 자비를 들여 양육하여 노동력을 재생산해내는 것이 ‘올바르고 전통적인 가치’라고 믿어왔다. 동시에 가족제도에 완전히 고착되어 있는 고정된 남녀 성역할, 순결주의, 각종 성차별적인 관념들을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동성결혼은 이러한 관념에 일정 부분 도전하기 때문에, 저들은 기를 쓰고 반대한다. 물론 동성결혼이 허용된다고 견고한 가족제도가 흔들리지 않는다. 동성결혼이 허용된 나라들에서도 가족가치는 굳건하다. 다만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비정상’ 낙인은 ‘이성애 정상가족’을 더욱 견고히 유지하고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는데도 활용된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온 가족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동성애는 민족의 명운이 걸린 일?

 

“사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동성애 청정국이었습니다.”

-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 2012년 5월 2일자 출연 녹화분, 윤정훈 목사

 

지난 해 방송된 케이블 채널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는 '레이디 가가 콘서트, 청소년 유해판정 적절했나'라는 주제로 윤정훈 목사와 진중권 교수 간의 토론이 펼쳐졌다. 이와 같이 동성애가 한국 민족의 전통에 맞지 않으며, 사회가 개방되기 전까지 우리 민족은 반동성애적 가치를 지켰다는 발언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사회에서도 부정하는 동성애를 허락한다면 학교가 무슨 실험집단입니까?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려고 이런 폐국적, 망국적 발상을 하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략) 동방의 빛, 동방의 순수한 우리 백의민족을 에이즈로써 파탄국가를 만들어 불치의 병인 에이즈의 온상이 되어 학생들은 두려움과 공포의 장인 학교를 다니게 될 것입니다. 백의 민족,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어집니다. 조국애의 사랑으로 판단해주십시오. 이것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입니다. 자원 없고 힘없는 땅덩어리 작은 이 나라의 백성들이 미래를 보장받는 위대한 선각자로 키우는 것을 우리가 원치 않습니까?”

- 김덕영 시의원

 

“당장 내게 손해가 없다고 해서 방관만 하다가 한국에서 동성애법이 통과가 된다면, 교회만이 아닌 국가적인 재난이 될 것이다. 동성애 합법화로 몰아가는 세력들에 대항하여 우리가 용감하게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리의 행동하는 기도는 음란과 동성애를 무너뜨리는 성결의 빛이 되어 동성애 입법을 막고 우리 조국을 거룩한 나라로 세울 것이다!”

-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민족 이익에 반하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선출된 대표들로부터 나온다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묶여있다고 여겨온 사람들에게는 모종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인터넷 기사라도 게재되면 “이렇게 하나씩 다 인정하다보면 이 나라가 온통 비정상이 될 것”이라고 경계 태세를 보이는 경우도 비슷한 예다.

 

이런 민족주의는 몇몇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서구에 대한 저항과 동성애 반대를 같은 맥락에 놓는 것인데, 러시아나 아프리카는 동성애를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망가뜨리는 서구의 적이라고 규정하고 낙태나 성적 자유 같은 것도 사회를 분열시키거나 붕괴시킬 만한 것으로 몰아붙인다. 우간다 무세베니 대통령(박근혜가 취임 후 처음으로 초청한 외국 정상이다)은 삼십년이 넘도록 독재를 하면서 망가진 경제 때문에 불만에 가득 찬 대중의 분노를 동성애자들에게 돌렸다. 러시아 정교회는 서구에 물들지 않고 러시아 정체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하고 최근 러시아 혐오범죄 및 반동성애 법안 통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동성애혐오를 이용하여 약해진 정치력을 지탱하기 위해 동성애는 서구를 따르는 행위라는 해괴한 공식을 만든 것이다.

 

차별금지법 반대집회에는 어김없이 태극기와 ‘대한민국 만세삼창’ 구호 등이 등장한다. 백의민족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것을 국가를 파탄 낼 동성애와 에이즈 오염 논리와 명확하게 대립시킨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민족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길이며, 그것은 곧 가족가치를 강화하는 것과 연결되고 더 나아가 동성애를 반국가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것을 반공이데올로기와 연결시키게 되는 길이 된다.

 

“종북게이”? 친북 = 빨갱이 = 동성애옹호, 국가안보=반동성애

 

지금 한국은 종북 낙인을 이용한 진보진영 탄압이 무서울 지경이다. 종북을 동성애와 결합시키는데에는 이런 논리가 사용된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은 빨갱이인데, 빨갱이 대표로는 주로 전교조와 통합진보당 등 진보정당 정치인들을 꼽아 공격한다. 주로 이 둘은 ‘친북’을 교육하고 대국민 선전을 한다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친북적인 빨갱이’들은 동성애를 지지하므로 군기강을 무너뜨려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국가와 사회의 도덕성과 윤리관을 무너뜨리고 국민 통합을 방해하는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면에서 반사회 세력이라고 공격받는다. 결국 빨갱이들의 목표는 사회 붕괴인데, 동성애도 ‘건강한 사회’를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보니 매우 잘 들어맞는 것 아닌가. 반공이데올로기는 객관적 상황 변화에 따라 때로 약화되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박근혜 정부에서 진보진영을 탄압하고 사회분위기를 냉각하기 위해 ‘종북’을 의도적으로 강조할 때에는 더욱 강화된다.

 

군형법 92조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은 위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10년 10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군대 내 동성애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 제92조에 대하여 위헌 의견을 국방부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바로 이틀 뒤인 10월 29일에는 조선일보 하단광고가 다시 실렸다. 아래가 광고의 주요 내용이다.

 

“나라 지키러 군대 간 내 아들, 동성애자 되고 에이즈 걸려 돌아오나, 군대 내 동성애 허용하면, 내 아들 군대 절대 안보낸다!! - 3대 세습 독재 속에 굶어죽는 북한동포인권 외면하고, 동성애 확산시키는 독버섯 같은 국가인권위원회 즉각 해체하라!”

 

광고가 게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난입하였다는 기사가 났다. 어버이연합은 아시다시피 희망버스도 반대하고 이주민 권리도 반대하는 우파 집단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동성애 관련 조항이며, 유일한 처벌 조항이라는 사실 때문에 군형법 92조의 동성애자 차별조항 삭제 문제는 수년 간 동성애자 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고등군사법원이 군형법의 취지가 “군사의 기강 문란 및 전투력 약화, 개인의 성도덕 관념과 성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벌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는 것은 군형법의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위와 같은 이데올로기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주입한 것이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이미 뿌리 깊게 내재된 편견과 고정관념들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이성애를 정상적인 성으로 규정하고 동성애를 비정상이라는 틀 안에 놓아둠으로 인해 도덕적 보수주의를 쉽게 조장하고 정상가족을 또한 강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앞서도 재차 언급한 것이다.

 

<참고> 

파시즘, 메카시즘 - 성소수자들에게 더욱 끔찍한 역사

 

1. 파시즘

 

과감하게 ‘빨갱이’와 동성애자들을 연결시키는 사례는 빈번히 찾아낼 수 있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는 보다 야만적인 성소수자 탄압이 있어왔는데, 파시즘과 매카시즘의 역사는 민족주의와 반공이데올로기 그리고 가족가치가 어떻게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나치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괴벨스는 “여성에게 적합한 장소는 가족이며,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국가와 민족에게 아이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참된 민족 국가는 ‘자연스러운’ 남녀의 영역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구분하고 정치와 국방과 같이 남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남성들에게 일임할 것을 지적하였다. 히틀러는 “남성들의 세계가 국가이고 그들의 임무가 사회를 지키는 일이라면 여성들의 세계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인 것이다”라고 했다. 한편, 나치는 동성애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인 175조를 철폐하려는 노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적대적인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는 나치가 동성애를 대했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좀먹는 어떤 것이라도 거부하기 때문에 당신들, 동성애자들을 거부한다. 동성애를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우리의 적이다. 우리는 우리 국민을 나약하게 만들고 적들에게 놀림감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거부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과 현실은 투쟁이며, 따라서 남자들이 서로 껴안는 것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역사는 동성애와는 정반대로 가르친다......이것은 단지 한 가지 방법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 독일국민은 단련하는 법을 다시 한번 배워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특히 동성애와 같은 모든 음란한 행태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민을 억압하는 노예 상태로부터 우리 국민을 해방시킬 마지막 기회를 우리에게서 앗아가기 때문이다.”

 

나치는 사회주의자, 동성애자, 유대인, 집시 등을 집단화시켜서 수용소에 수감시켰다. 특히 동성애자들은 175조항에 의해, 단지 행위 뿐 만이 아니라 ‘욕망 대상 응시’라는 알 수 없는 감별법을 통해 단지 생각만 한 것으로도 처벌할 수 있었다. 당시의 사망자 기록은 확실하지 않지만 약 5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용소에 보내진 동성애자들은 분홍색 삼각형을 가슴에 달게 되었는데, 이렇게 분류된 동성애자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최악의 대우와 폭력과 비난에 노출되었다. 나치는 동성애에 음란, 부자연스러움, 나약함을 덧씌웠다. 이는 동성애가 성의 문제와 결부된 정체성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치는 ‘동성애’라는 하나의 성 정체성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외적으로는 법적 처벌, 내적으로는 견고하게 형성된 가족가치를 강화하여 동성애가 사회에 매우 해악적인 존재임을 선전했다.

 

2. 메카시즘

 

미국은 어떤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통적인 성적 지배질서로 복귀하기 위한 절차를 취하자마자 그 동안 용인되었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용은 실종되었다. 전쟁 이전의 보수주의가 다시 활보하였던 것이다. 관청과 대중매체, 학교와 교회 등이 모두 합심하여 이성애 가족의 재확립을 위한 캠페인에 가세하였다. 여성에게 전통적인 성역할로 돌아갈 것을 강제하였으며, 보수적인 성윤리를 강화하였다. 이 캠페인은, 위험하지만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적이라는 점에서 동성애자를 공산주의자와 동일시하여 고립시키는 전략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동성애자에게 전후 정상생활의 복귀는, “마녀사냥, 불시습격, 검거와 투옥, 지하은거”를 의미하였다. 전후 억압상황 하에서 “자유주의와 급진주의 조직이나 단체들조차도 지지를 간청하는 동성애자를 외면하였다.

 

1950년대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은 1940년대 후반기보다 더더욱 잔인하고 대대적이었다. 동성애자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은 메카시즘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의 긴장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시기에, 공화당은 공산주의자와 연루되어 있는 동시에 동성애자가 행정부처의 요직에 침투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트루만 행정부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외부와 내부의 적으로부터 선량한 미국국민을 보호해야한다는 구실로, 우파조직은 정부관료, 학교교사, 대학교수, 그리고 산업경영자의 지위에서 동성애자를 무자비하게 몰아냈다. 동성애자의 제거작업은 정당화되었다. 동성애자는 정서적인 안정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무고한 국민의 건강을 해치고, 무엇보다도 외부의 적인 공산주의자와 내통하고 있다는 지배담론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유포하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의 정권교체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취임 후, 미국국가는 동성애자에 대한 탄압에 FBI, CIA와 경찰과 같은 억압적인 국가기구까지 총동원하였다. 1950년대 초에 동성애자들은, 냉전에 의하여 주조된 적으로 일반국민의 공포의 대상이 되어 속죄양으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