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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차별금지법

누가 ‘종북게이’를 만들어냈나?②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운동,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by 행성인 2013. 9. 5.


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이 글은 6월 14일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2회에 걸쳐 원고를 싣는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안 철회 이후 불거진 동성애 찬반 논쟁을 바라보며, 성소수자 혐오를 누가, 어떤 논리로 조장하는지 살펴본다. 1회에서는 가족가치, 민족, 국가안보라는 구실로 조장되는 혐오 논리들을 뜯어본다. 2회에서는 청소년 보호를 구실로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우파 기독교의 논리를 살펴보며, 이들이 조장하는 차별과 혐오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하여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누가 ‘종북게이’를 만들어냈나? (1) 가족가치, 민족, 국가안보로 동성애를 공격하는 자들 바로가기  

 


청소년 보호를 구실로정당화된 동성애혐오


무엇을 교육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교육은 사회가 받아들이는 것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반영한다.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적절하게 훈육해야 할 학교라는 장에서 동성애에 대한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청소년보호법부터 학생인권조례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에 대한 차별, 청소년 보호 논리는 동성애혐오를 지탱해주는 한 축이다.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는 관점은 청소년을 동성애라는 부도덕한 문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각종 통제를 해야 한다는 구실을 제공한다.


<<친구사이>>에 남성끼리 목욕하면서 애무하고 키스하는 장면, 남성의 성기에 손을 대는 장면 등 청소년에게 동성애에 대한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담겼다. 중학생이 이와 같은 동성애 장면을 호기심으로 접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게 좋아지고 결국 자신의 성정체성 마저 의심하게 된다.”

- 2010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


이들은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는 동성애를 학교에서 허용하면 사춘기를 겪으면서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동성애, 양성애적 성 취향을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메사추세츠주에서 청소년들에게 항문성교를 가르치고 있다며 비난하거나,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에서 제정된 공정교육법에 반대하는 한인교포들의 소식을 전하며 동성애법이 통과된 뒤 서구사회는 무너지고 있다고 호도한다.


“동성애법 통과된 캐나다 토론토 교육청 성교육

1학년(6세)때는 사람의 성기에 대해

3학년(8세)때는 동성애와 성별정체성에 대해

6학년(11세)때는 자위행위의 즐거움을

7학년(12세)때는 이성간 성행위 및 항문성교 교육“

-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 배우고 고민할 기회를 교육이 제공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교육현장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보다 평균 수명이 20~30년이 짧고 우울증에 걸리는 등 불건강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동성애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높은 자살률이 통계자료에서의 동성애자 평균 수명을 낮추고 있는 것 아닌가.



그들은 누구인가?


기독교는 어째서 동성애를 상대로 한 ‘영적 전쟁’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가? 바성연(바른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의 주축멤버로 활동하는 이들을 나열해보자.

김미영 교수(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연구실장), 전용태 변호사(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도운동본부), 길원평 교수(부산대 교수, 낙태반대운동가), 의회선교연합, , 장헌일 사무총장(국가조찬기도회), 주선애 교수(장신대 명예교수), 최재훈 감독(Holy&bless대표), 이억주 목사(한국교회언론회), 정성희 목사(사 국제교류협력기구 사무총장), 이규 목사(신촌 아름다운 교회), 유병진(명지대학교 총장), 이은일(한국창조과학회 회장) 등 종교단체 대표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요나 목사(홀리라이프)는 처음에 주요 인물이었다가 최근 바성연이 김정현 양심고백을 이용하여 동성애자들을 괴물로 몰아붙이자 정략적으로 동성애를 이용하는 것에 반발하여 바성연을 탈퇴했다. 이요나 목사는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음을 알리며 동성애는 죄이지만 이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경적 치유 상담을 진행하는 인물이다. 동성애반대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다른 경향들이 존재한다.

2003년에 청소년보호법 상 동성애자 차별조항 삭제를 반대했던 한기총으로부터, 2007년의 동반국(동성애 반대 국민연합), 그리고 2010년의 바성연에 이르기까지 그 배후에는 ‘한기총’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우익 기독교가 존재했다. 이들은 신도수 수십만의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동성애혐오 선전을 펼친다. 얼마전 이들은 전국 교회에 4만여 부의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전단을 배포하기도 했다. 그들은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혐오 세력과 손잡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활동에 가장 열심인 ‘에스더기도운동본부’를 보자.(여기는 바성연과 한 사무실을 쓴다) 해외에서 이들은 ‘남가주 교회협의회’와 연합하여 동성결혼 금지법안인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8’에 찬성표를 던지는 운동을 전개해온 바 있다. 최근에도 의회선교연합의 김영진 장로는 미국에 건너가 한국에서 동성애, 동성혼 입법 저지를 위한 교계 회의를 열고 미주 지역 한인들을 결집했다.

‘에스더’와 ‘바성연’은 차별금지법 반대 및 동성애혐오 조장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스더의 이용희 대표는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발언자이다. 우간다 동성애 금지법 강화의 배후 세력으로 미국의 극우 기독교 단체들이 지목되기도 했었는데, ‘에스더기도운동본부’는 이러한 미국 기독교단체의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곳이기도 하다. 요컨대 국제 호모포비아 세력을 주도하는 미국 우파 기독교의 가장 적극적인 협력자 중 하나가 한국 기독교 진영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행보는 국가조찬기도회장이었다. 새누리당 대표이자 국회조찬기도회장인 황우여는 가장 대표적인 반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 정치인이자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여당의 대표라는 점에서 반동성애 입장이 의회 등에서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위원으로 임명되었던 장순흥은 한국창조과학회 멤버이다. 창조과학회는 성경의 근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동성애 반대 논리를 생산한다. 이들은 진화론을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론으로 보고 동성애가 선천적이거나 유전적 결과가 아니라는 근거를 마련한 후 결국 이것이 사회적 영향력에 의한 확산이라는 주장을 한다. 헌재소장 후보로 올라왔다가 비리로 낙마한 이동흡은 군형법 92조를 합헌 결정하고 촛불시위를 탄압했던 재판관이었다. 한편 지난 정부 이후 고위관료 및 정치인들의 개신교 성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내 설립된 선교회 관련 보도는 그런 우려를 현실화한다.

분명한 것은 박근혜 주변은 이러한 우파 기독교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집권과 함께 강경 우파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며 수준 이하의 주장을 펼치는 자들이 주류 정치의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파들은 성적 보수주의, 성차별, 가족주의를 선동하면서 동성애 편견을 부추길 것이다. 낙태는 엄중히 처벌하면서 ‘엄마가산점제’를 도입하는 의도를 보라. 박근혜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별, 가족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기 어려”우며 일반 국민의 여론도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우파 기독교의 배후에는 정치적 우파들이 있다. 그들은 아주 끈끈하게 얽혀있고, 우파 기독교는 우파 정치가 이런 혐오 선동을 통해 이득을 얻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성소수자가 드러나는 모든 곳을 공격한다.


성소수자 운동이 급격히 가시화하면서 성장하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기독교 우파들이 성소수자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에 격렬히 반대해왔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에는 서울시 및 구청의 성소수자 인권 광고 허용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우파들은 동성애가 공식적, 제도적 인정을 통해 권리를 획득하는 데 반대한다. 그래서 그들은 미디어에서의 동성애 표현이든, 구청에서의 동성애 광고 게재 문제든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며 ‘가시화’가 바로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것도 문제 삼으며 인권위법도 폐기하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제도적 인정은 그런 면에서 우파들의 핵심적인 타깃이다. 하반기 동성결혼 금지에 대해 위헌 소송이 제기된다면 제도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최근 들어 성소수자 관련 보도가 늘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성애는 사회에서 좌우를 가를 중요한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최근에 보도된 세계 각국의 혐오범죄 사건들이다. 한국에 보도되는 횟수도 잦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폭탄 테러를 암시하는 글로 동성애자 권익 운동가를 위협, "집회 때 조심하라.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림

 

중국에서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 행진을 연 18세 남성이 체포. 중국 수사 당국은 17일 국제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해 후난성 성도 창사에서 행진을 주최한 그를 불법 집회 혐의로 체포, 12일간의 구류 받게함.

 

체코에서는 교수 임면권을 가진 대통령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교수 임명을 거부. 대통령은 현지 공영TV와의 인터뷰에서 "게이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대학 교편을 잡으려는 이들을 인정할 수 없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지난 18일 한 남성 동성애자가 호모포비아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살해당함.


개인의 개인에 대한 폭력부터, 일부 무슬림 국가들에서 시행하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형집행같은 국가 폭력까지, 동성애혐오로 인한 혐오범죄는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직접적으로 신체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 불특정 다수의 혐오의 대상,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성소수자들이 다시 골방에 처박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혐오는 어떤 구실을 하는가? 사람들은 차별 받는 그 사람 자체를 지목하여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집단을 미워하고, 미워할 이유를 찾고, 불만을 쏟아낼 대상을 찾고, 이들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여긴다.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은 그 대상을 찾는데 편리한 근거들을 제공한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처럼 취급 당한다. 실제로 한 건설노동자는 자신이 스스로 불법체류자를 소탕하는 단체에 가입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노르웨이에서 수십명의 청소년을 살해한 브레이비크는 유럽에 들어온 이주민들 때문에 자신이 못 살게 된 것에 분노하여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지금처럼 경제위기와 양극화가 심화되면, 사람들은 인내심을 시험당하면서 관용의 여유는 점점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원래 자신보다 못하거나 무시해도 된다고 여겼던 대상에게 더욱 각박하고 잔인해진다. 성소수자가 동성결혼을 요구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나, 국가가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하는 것, 이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모두가 자신의 파이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결국 혐오는 사회적 권리와 분배 문제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다.

차별금지법도 그렇다. 이 법 제정이 동성애 찬반논쟁으로 기운 데에는 사실 우파의 역할이 컸다.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와 편견을 부추겨서 ‘기본적인 차별금지’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혐오가 강력해질수록 성소수자를 더욱 위축시키고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효과가 커질  뿐만 아니라 차별금지를 위한 제도적 조처도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차별은 결국 사회에서 이런 용도로 사용된다. 차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차별 받는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나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수치심 속에서, 자신감 없이, 벽장 속에 갇혀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편견은 유지될 것이고 자신들이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차별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점점 멀어지게 하고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괴물로서 서로를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해악적이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혐오에 반대하는 운동은 어떻게 확대되어야 하는가?


러시아 하원에서 ‘동성애 선전 금지법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청소년에게 동성애 정보를 제공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입양을 포함한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었다. 지금 세계는 동성애혐오와 그에 따른 폭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성소수자도 눈에 띄게 가시화하고 있고 투쟁도 약진하고 있다. 혐오는 위기를 반영하고, 권리의 진전은 적극적인 투쟁과 저항의 성과를 반영한다.

한국은 최근 가장 큰 폭으로 동성애에 대한 수용 정도가 증대한 나라이다. 하지만 그만큼 혐오도 가시화되고 있다. 성소수자가 가시화할수록 혐오도 더욱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가지가 언제나 동반 상승하는 것만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기독교 우파들의 말도 안되는 주장을 그대로 동조하거나 답습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절대 국회의원들의 말처럼 소수 기독교 우파들이 떼를 써서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한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운동의 힘, 그리고 쟁점이 제기되었을 때 사회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더 열려 있는 상황인가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과정을 보자. 당시 신자유주의 우파 정부가 여전히 집권하고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격이었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이 대거 당선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명확히 드러났다. 특히 서울에서 곽노현 진보교육감이,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하면서 진보와 보수 판세가 뒤집어지고 이명박과 집권 여당은 위기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중요한 쟁점으로 급부상했던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임신출산 및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차별금지를 넣느냐 마느냐를 두고 제도적 인정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 속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민주통합당 시의원 압박에 성공한 것도 민주당조차 좌선회하고 있는 당시 정세와 무관하지 않다. 한미 FTA 반대 촛불시위에 민주당이 참여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나가 시민들 앞에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직접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이를 위한 행동이 결집될 때에는 성소수자 권리와 같은 다른 민주적 권리와 평등권의 요구도 커질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여러 차별을 금지하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소수자 운동이 이 쟁점에서 주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까닭은 다분히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의 존재를 공격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제도에서 잘려나가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법 제정이 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게다가 법 제정 자체는 성소수자 운동이 이니셔티브를 발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대중적 압력을 가지고 요구될 때 큰 규모의 투쟁을 통해 사회 여론이 변화할 때 제정될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과정도 그랬다. 우리는 좀 더 다른 조건에 있긴 하다. 차별금지법이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혐오 공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아마 동성애자들은 공세에 맞서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함께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넓게 혐오에 반대하는 운동을 만들어갈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난 무지개행동 전체 모임에서도 참여자들이 많이 제기한 부분이다. 혐오를 넘어서기 위한 운동은 성소수자들이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법안도 혐오 선동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제정될 수 있다.

막강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동성애혐오 세력을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전에 무지개 행동에서 진행되었던 비슷한 주제의 토론에서도 많이 제기되었던 바다. 우리에겐 연대를 통한 지지자와 동료들이 더 많이 필요해지고 있다. 진보 기독교인들은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한 연대세력이고, 청소년 또한 그렇다. 다양한 세션이 진행된 지난 LGBT인권포럼은 단적으로 연대가 확장되는 현재를 보여주었다. 희망버스나 학생인권조례투쟁은 노동자, 철거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할 가능성을 크게 보여주었다. 서로 자신의 위치에서 공통성을 발견하게 되는 연대의 경험을 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겪어왔던 어느 시기보다 혐오가 가시화되는 시기이다. 하지만 다행스런 것은 그 동안 성소수자 운동도 성장하면서 연대와 기반을 확대해 왔다는 점이다. 얼마전 퀴어퍼레이드 행진에는 적어도 7~8천명 이상이 모였다. 작년에 비하면 두 배이상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곳에 참여했던 성소수자를 비롯하여 퍼레이드를 지켜본 성소수자들은 열이면 열 깜짝 놀랐다. 1만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임을 자처하거나 지지하며 거리를 행진하다니,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펴지고 자신감이 차오를 일이다. 성소수자들에게 규모는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고, 거리에 스스로 모여 자신을 드러내고 외치는 것이 규모 이상의 힘을 심어준다는 것도 중요하다.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성장은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요구가 매우 지지할만하고 사회적 관심이 큰 일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규모와 목소리가 표출될 수 있는 지속적 캠페인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