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워크샵: 얼굴 색은 모두 달라도 우리 모두는 무지개 빛깔의 마음
알록달록 물든 낙엽 위로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주말, 해외 동성애자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성소수자 친구들이며,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올해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에 참가하면서 잠시 서울로 찾아온 귀한 친구들이다.
워크샵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사라(레즈비언 목사)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손님으로 온 그녀가 먼저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떡을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사라에게는 파트너와 3살 난 아기가 있다. 나에게 아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참 귀여웠다. 사라는 우리에게 멋진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지역의 퀴어들이 행사를 기획하였으나 장소를 대여해주기로 한 교회(?)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거부 당해 곤경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네 교회에 와서 멋진 행사를 보여줄 수 있다고 제안했고, 그 행사는 그녀의 교회에서 성황리에 잘 마쳐 자신도 기뻤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내가 정신과 간호사임을 알고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가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카톨릭 신자였지만 보수 기독교의 동성애 혐오증 때문에 교회로부터 점차 멀어져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신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으나, 이제 중년의 삶을 살아가면서 영적 생활을 찾으려 최근 길찾는교회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 기도 중에 성소수자란 말을 처음으로 들어 감동적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그녀는 기뻐했다. 그녀와 저녁을 함께 먹으며 나는 작은 고백(?)을 했다. 과거에 나는 하느님이 나를 동성애자로 태어나게 한 것에 대해 원망했지만, 지금은 다음 생애에 하느님이 나를 지금의 모습 그대로 게이이자, 간호사, 그리고 동성애자 해방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길 원한다고.
게리 목사님(왼쪽)과 사라 목사님(오른쪽)
워크샵의 첫 번째 주제는 각국 성소수자의 투쟁 상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럽은 1980년대부터 LGBT 포럼을 진행해 오고 있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오신 주교님(?)은 우간다가 동성애자를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들이 함께 힘을 모아 동성애자의 인권을 방어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미의 경우, 동성 결혼의 법제화 같이 매우 진보적인 흐름도 있지만 그래도 혐오와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을 종합해보면, 동성애자의 자유와 해방은 아직도 험난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워크샵은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우리 그룹에는 캐나다에서 온 게리 목사님 커플이 있었다. 게리는 캐나다에서 최초로 공개 커밍아웃 하였는데, TV 카메라 앞에서 파트너와 키스한 모습을 직접 재현해 주어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파트너도 소개했다. 그 파트너는 전직 장관을 지냈으며 현재 커밍아웃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한국의 국회에서 정치인들을 만나 이번 행사에서 들은 한국 성소수자의 상황과 필요한 사항들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게리 목사님 커플
우리의 통역은 한국계 캐나다인 한주희(Judy)님이 맡아주셨다. 한주희님은 현재 토론토대학, 지리학과에서 교수로 활동 중이시고 과거에 초동회(1993년 결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단체 - 웹진팀 주) 준비모임에 참가했었다고 한다. 해외 성소수자 친구들은 먼저 한국의 성소수자 상황에 대해 듣고 싶어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군형법, 동성 결혼에 관한 투쟁 상황과 남북 분단이 가져온 왜곡된 레드 컴플렉스와 동성애 혐오증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그런 상황이라면 도대체 북한 독재 정권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들의 이런 궁금증은 나도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모든 인간의 자유권, 평등권, 행복추구권'은 우리 같은 동성애자를 열등한 이등 시민으로 내팽개친지 오래니까.
성소수자 공동선언의 핵심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적인 혐오가 기독교가 오랜 전통으로 외쳐온 이웃 사랑과 전면 배치되는 것임을 되새기며,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다시는 이러한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서로 연대하여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 선언문은 정부, 교회, 개인에게 보내는 영역으로 구성된 메시지였다.
워크샵의 마무리는 욜님이 청소년 성소수자 쉼터 Safe Space의 계획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왜 쉼터가 필요한지, 얼마의 예산으로 중장기 계획을 실천할 것인지를 설명하는 액션 플랜이었다. 욜님의 발표 후에 "너무도 멋진 프로젝트이다. 우리가 배워야겠다.", "브로셔를 정말 잘 만들었다"라는 칭찬들을 해주었다. 그리고 사라는 즉석에서 후원금을 주면서 "비록 나의 작은 돈이지만 나도 이 사업에 참여하고 싶고 우리 교회로 돌아가서 알리고 싶어요"라며 최초의 후원금을 기부해 주어서 정말 감사했다.
#2. 기자회견: 들어라 한국사회는, 성소수자들의 외침을
쾌청한 날씨의 일요일, 우리는 다시 광화문에 모였다. 사라와 반갑게 이야기하고 잠시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쪽 부스에서 가훈 써주기 코너가 있었는데, 사라가 무척 흥미로워하면서 갖고 싶다고 하여 등록하고 대기 순번을 기다렸으나,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우리는 기자회견장으로 돌아왔다.
플래카드를 앞줄에 세우고, 우리의 마음과 주장을 담은 손 팻말을 하나씩 손에 들었다. 기자회견에는 한국의 섬돌향린교회, 열린문공동체교회, 차별없는세상기독인연대, 성문밖교회, 길찾는교회에서 함께 연대해 주었다. 외국인들도 지나가다 보고, 노인들과 청소년들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해외 성소수자 벗들과 임보라, 고성기 목사님은 다시 부산 WCC 행사장으로 떠나셨다. 이틀간 해외 이반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들은 내가 그동안 혐오적 종교에서 받은 아픈 상처를 힐링시켜 준 치유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자비의 하느님, 나를 이끄시는 해방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한 걸음씩 다가가려고 한다. '오소서 성령이시어 그리고 이끄소서 동성애자 자유, 평등, 해방의 길로, 우리는 무지개 벗이 되어 함께 손 맞잡고 사랑하고 투쟁하리다'
이번 만남을 통해 몇몇 분들과 페이스북 친구로 연결되었다. 그 친구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삶과 커뮤니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페이스북을 통해 보수 기독교 동성애 혐오증 환자들이 부산 WCC 총회 행사장 앞에서 우리의 기자회견 내용을 가지고 혐오를 퍼붓고 있음을 보았다. 이런 모습은 외국의 호모포비아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동성애 혐오증 환자들이여, 너희들이 혐오하고 증오 할수록, 우리의 저항의 날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명심하라,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자유와 평등 그리고 성소수자 해방의 이름으로 끝까지 투쟁하여 우리가 존엄한 존재임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을 전세계 성소수자들에게,
우리들의 분노를 이성애 우월주의와 동성애 혐오증 환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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