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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종교

“존재하는 아픔과 고통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나누는 것이다.”

by 행성인 2013. 11. 7.



민김 종훈(자캐오) 신부




1. 길 위에 서다

 

저는 장로교회에서 태어나 순복음교회를 거쳐 성공회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꽤 오랫동안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앙을 유지했었습니다.

 

그런 제게 성서가 가르치는 교회는, 가난한 이들이 그들의 조건이 아닌 존재 자체로 용납 받고 사랑 받는 교회였습니다. 제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에 만난 성서가 가르치는 교회는,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가난한 이들이 우선시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감히 교파를 바꿔 거의 정반대 성향의 교회에 속하기도 했고, 한동안 교회를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교회에서 그런 교회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토록 하늘과 땅의 규칙을 혼동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 헤맸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보수적인 신앙 고백을 하는 교회이든 진보적인 신앙 고백과 실천을 하는 교회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늘 좀 더 가진 자, 좀 더 배운 자, 좀 더 중심에 있는 자가 우선시되고, 그런 사람들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자신의 선택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가난한 사람들은 못 가지고 못 배우며 계속 언저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그런 맥락은 상관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외적, 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가난함’은 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들만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길 위에서 헤맸습니다. 제가 ‘가난한 이들의 진정한 벗’이라 불렸던 브라질 천주교회 돔 엘데르 카마라 대주교의 말을 곱씹으면서 말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빵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르지만, 왜 그들이 가난한 지를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부른다.”

 


2. 존재하는 아픔과 고통을 평가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이들을 만나다

 

그렇게 찾고 헤매다가 만난 교회가 ‘성공회 성북 나눔의집’이었고, 그 이후 저는 긴 시간의 과정을 통해 ‘성공회 사제’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게 성공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공동체는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다수 보수적인 개신 교회들에 비해서 말입니다. 최소한 이곳에서 만나는 이들은, 존재하는 아픔과 고통을 평가하지 않고 함께 나누려고 기도하며 애쓰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모여 있는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것은 선한 것’이라는 자본주의 성장 논리에 무조건 찬성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조건과 상황 차이에 대한 고려 없는 무한 경쟁, 독점하고 배제하는 것을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연약한 이웃들의 탈락을 그들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성공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은, 하늘과 땅의 규칙을 혼동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칩니다. ‘하늘 아래 모든 생명과 사람은 평등한 존재’라는 복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것이 설령 ‘교회의 가르침’으로 선포될지라도 ‘성서와 전통과 이성’에 비춰 봐서 동의할 수 없다면, 얼마든지 질문하고 의심하며 저항할 수도 있는 신앙 전통을 지켜가려고 합니다.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되는 복음을 지키려고 애쓰는 몸부림. 그러나 우리만이 ‘완전한 진리’를 소유한 것처럼 굴지 않는 치열한 의심과 겸손한 태도.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성공회와의 만남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고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3. 망각의 그리스도교, 기억을 잃은 자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제국의 복음과 ‘사람이 되신 하느님’인 예수의 복음 사이에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문제 의식’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이 세상에서의 평안과 부와 성공을 보장해주는, 힘 있는 제국의 복음을 거절한 그리스도인들은 긴 시간동안 ‘소수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랬던 교회가 오랫동안 소수자이었음을 잊고, 이제는 ‘다른 소수자들’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니 슬프고 또 슬픈 일입니다.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유대인을 차별하던 교회. 저주 받은 함의 자손이라며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차별하던 교회. 여성은 완성되지 못한 남성인 것처럼 차별하던 교회. 거처가 불분명한 떠돌이에 다른 신을 섬긴다며 집시와 나그네들을 차별하던 교회. AIDS는 신의 저주라며 환자들을 차별하던 교회. 이주 노동자는 노동력일 뿐이라고 차별하던 교회가, 이제는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4. 특별히 다르지 않지만, 쉬지 않고 질문하는 성공회

 

‘세계 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는 전 세계 165여 개국, 약 8천 5백만 명의 신자가, 다양하고 수평적인 지역 교회들에 속해서 여러 모습으로 모여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그 넓은 분포와 많은 신자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지향과 의견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다양함을 통한 온전함의 추구’라는 태도를 갖고 있어서, 어떤 사안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정리된 입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현재 첨예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 조심스럽게 묻고 답하며 논쟁이나 대화를 이어가기에 명확하게 정리된 입장을 듣기는 더 어렵습니다.

 

WCC 제10차 부산 총회를 맞아, 세계 성공회의 상징적 수장이자 세계성공회협의회의 의장이며 영국 성공회 관구장인,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대주교가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3일에는 한국 교회 청년들과의 만나 〈한국교회 청년들,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묻다〉라는 간담회를 함께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여섯 번째 질문이 바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성공회의 입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글의 주제와 맞으니, 녹취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옮겨 봅니다.

 


질문: 

성소수자(LGBT)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성공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차별하지 않더라도, 정서적, 신앙적,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한 성소수자를 하느님의 식구로 받아들이자는 입장은 여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의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

질문을 너무 너무 잘하셨습니다. 복잡한 문제에서 핵심을 잘 짚어서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세계 성공회가 한 가지의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회 교회마다 각기 다른 답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영국 성공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떤 ‘성적인 관계’는 결혼 제도 안에서 한 남성과 여성이 평생 동안 일부일처라는 틀 안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많은 주교님들의 합의된 생각은,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지고 차별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LGBT 정체성을 가진 분들을 위한 교회도 있습니다.

 

영국의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LGBT 청소년이나 청년들의 약 96% 이상이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이나 왕따를 경험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성적 지향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우리 모두를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어떤 외모도, 인종도, 성적 지향도 차별과 소외와 배제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아시아나 한국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영국이나 미국 같은 경우만 해도 지금 많은 문화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 약 85%의 사람들이 LGBT 관계가 괜찮다고 대답합니다.

 

굉장히 보수적인 교회의 한 지도자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우리 교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복음화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35세 이하의 많은 청년들이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교회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우리 교회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모습으로 비친다거나 그런 태도를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 교황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서 제가 명확한 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모색하려는 것은, 어떻게 우리 교회가 거룩함을 유지하되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포용을 반영하는 교회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5. ‘터부’와 ‘약한 고리’를 위해 부름 받은 교회, 길찾는교회

 

혹시 성공회의 영적 지도자이자 일치의 상징이며 상징적 수장인 분의 입을 통해 성공회의 입장을 들으시니 더 답답해지셨나요?

 

저는 엄연히 존재하는 아픔과 고통을 없는 것처럼, 혹은 견딜만한 것처럼 평가하지 않는 성공회의 태도를 존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문제 의식을 갖고 또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려고 합니다.

 

존재하는 아픔과 고통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런 믿음으로 만난 이들이 길찾는교회의 신자들입니다.

 

성소수자 문제는, 특히 이 시대의 교회에게 가장 터부시되며 가장 공격받는 약한 고리입니다. 길찾는교회는 그 터부와 약한 고리를 위해 부름받은 수많은 세계 성공회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성공회가 오랫동안 식별의 도구로 삼아온 성서와 (교회) 전통과 이성을 통해 고백합니다. 오래전 ‘사회적 타살’로 죽어간 故 육우당과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들도 저와 똑같은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저와 똑같이 ‘불완전’하기에 ‘온전한 하느님의 식구’입니다. 여러분 안에도 저와 똑같은 ‘하느님의 숨결’이 존재하고 ‘하느님의 심장’이 뛰고 있음을 믿습니다.



민김 종훈(자캐오) 신부


한영신대와 한세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여성인권 그룹 활동을 통해 세상을 배웠으며, 성공회 나눔의집 활동가로 ‘동네 골목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후 성공회대 신학대학원 졸업. 현재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소속 사제이자 서울교구 교육훈련국 ‘젊은 또래사목 담당’으로 있으면서, 성공회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선교형 교회 운동의 하나로 ‘길찾는교회’를 섬기고 있다. 평등 부부를 지향하기에, 동반자와 더불어 서로 거울삼아 조금씩 성장하는 아픔과 기쁨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