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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모임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 기획단 인터뷰

by 행성인 2014. 5. 26.

인터뷰 한 이들: 이주사, 한빛, 바람(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 받은 이들: 캔디, 보비(로니), 에디Edhi, 준우



한국 LGBT운동이 시작된지 20년이 지났지만 트랜스젠더 운동은 여전히 독자적인 단체조차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트랜스젠더들의 가시화와 성별정정 절차에서의 진전, 담론의 발전이라는 성과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전환을 위한 높은 의료비용, 노동시장에서의 배제, 편견과 몰이해로 트랜스젠더들의 삶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초의 트랜스젠더 인권운동 단체였던 지렁이는 자원 부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트랜스젠더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소중한 프로젝트를 아름다운재단 지원을 받아  지난해 시작했다. 웹진 랑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 트랜스젠더 인권지지기반 구축 프로젝트(조각보 프로젝트)' 기획단을 만나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현재와 미래, 어려움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각보 프로젝트를 통해 성소수자 운동에 멋지게 등장한 에디님은 특별히 자신의 이름은 크고 굵게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각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Edhi: 저는 트렌스젠더라고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호르몬을 하고 사회적으로 앞으로 나서게 된 건  3년 정도 됐어요. 호르몬을 하면서도 주로 게이 레즈비언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한번은 클럽에서 파티를 주최했어요. 트렌스젠더들도 놀 수 있는 파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로니를 알게 됐는데 로니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예전에 절 보는 것 같기도 해서 연락을 자주 했고 지금은 같이 ODMCC라는 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해방촌에 있는 진보적인 기독교 교회에요. 거기서 같이 활동하다가 저는 조각보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을 때 먼저 시작을 했고, 2년차 될 때 제가 보비를 추천해서 연결이 된 거에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지식이나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너무 극단적으로 심취한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정보를 알아 볼 겨를도 없었어요. 모태신앙이었는데 집에서 하리수가 나오면 티비를 끌 정도였어요. 그래서 알고 있었지만 무서웠어요.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걸렸죠. 아마 정보를 알았다면 일찍 했을텐데 호르몬을 시작한 게 스물네 살이었어요.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죠. 요즘은 일찍 시작하니까요. 가이드라는게 있었다면 좀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많이 돌아왔거든요. 저는 게이가 트렌스젠더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게이 커뮤니티에도 있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왜냐면 게이 커뮤니티에 있어도 풀 수 없는 게 있으니까요. 제 뒷 세대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수진언니라는 트랜스젠더 언니가 있는데 그 분이랑 사석에서 만나서 알게 되면서 우연히 조각보 프로젝트를 알게 됐죠. 


준우: 저는 예전에 지렁이 때부터 트랜스젠더 운동을 했어요. 그러다 재작년에 센터에서 조각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캔디가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어요. 이게 단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했죠. 처음에는 자문을 해달라고 요청받았는데 하다보니 올해는 실무를 맡고 있어요. 


캔디: 저는 2006년에 민노당에서 성전환자성별변경특별법공동연대 활동을 하면서 트랜스젠더 운동을 시작했어요. 이제 거의 10년 되가네요. 공동연대 때 실무를 하고, 지렁이 활동을 했고 조각보 실무를 하게 됐어요. 지렁이 이전에는 트랜스젠더 친목단체가 있어서 인터뷰도 하고 자료도 모아놓고 했지만 사라진 뒤에는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부각된 건 하리수 씨 말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다 민노당에서 특별법 관련 활동을 하면서 트렌스젠더 당사자들이 단체 필요성을 느껴서 만들어 진 것이 지렁이였어요. 그런데 당사자 단체가 만들어지고 나니 모든 트랜스젠더 관련 문의가 상담전화부터 인터뷰, 강의 요청까지 지렁이에 쏟아졌죠. 그런데 지렁이는 사무실도 없었고, 상근자도 없었고, 한 달에 10만원 정도 후원이 전부였어요. 안정적 활동이 굉장히 어려운 상태여서 문을 닫게 됐죠. 지렁이가 없어지고 나니까 트렌스젠더에 대한 문의가 다른 단체들로 갔는데 그 가운데 제일 몰렸던 곳이 센터였어요. 다른 단체들은, 게이, 동성애자가 이름에 드러나다 보니까 센터에 몰린 거죠. 그런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고 단체가 있어야 하고 안정적 기반과 지지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시작된 게 조각보 프로젝트에요. 이 프로젝트가 아름다운재단 기금신청을 통과하면서 상근을 하게 됐죠. 



캔디님이 성전환자성별변경특별법공동연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캔디: 제가 집이 지방인데 2006년에 서울로 올라왔어요. 회사를 다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놀고 있었어요. 이젠 뭔가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티지넷에 들어갔다가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상근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봤어요. 그래서 들어가게 됐는데 상근을 시작하니 성소수자 위원회에서 주로 하는 일이 공동연대 활동이었어요. 그러다보니 트랜스젠더들을 알게 되고 친해진 거에요. 그러다 지렁이를 만든다고 하니까 같이 하게 됐고. 



준우님은 지렁이에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된 건가요?


준우: 그때가 2006년이었는데 여성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어요. 트렌스젠더 관련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고 알음알음 트랜스젠더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연락이 닿았었고 책 쓰는 작업 등을 같이 해보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이런저런 활동들 중에 지렁이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결합하게 됐어요.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다면 생물학적 남성으로서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성별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내가 페미니스트로 어떤 남성성을 가지고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트랜스젠더 정체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소수자 정체성 운동도 그렇지만 당사자냐 아니냐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 시혜적인 입장에서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럼 이제 조각보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Edhi: 커뮤니티, 자료조사, 인터뷰 이렇게 세 팀이 운영되고 있어요. 저는 커뮤니티팀이에요. 1년차에는 자료조사팀이랑 인식조사팀이 있었어요. 지지기반 구축을 위해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있거든요. 저희 홈페이지에 가면 트랜스젠더 생애사 인터뷰가 있구요. 커뮤니티팀 같은 경우엔 대외적 행사, 캠페인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어요. 퀴퍼나 아이다호 행사 때 트랜스젠더 인권활동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캔디: 홈페이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료조사팀은 작년 한 해 동안 트랜스젠더 관련 자료를 계속 조사해서 리스트화 했어요. 인식조사팀에서는 작년에 상담가 그룹을 대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조사를 했구요. 이런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어려워하고 접해보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죠. 그걸 바탕으로 작년에 상담 컨퍼런스를 진행했어요. 인터뷰팀에서는 작년에 20여 명을 인터뷰했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중이에요.  


준우: 인터뷰팀 같은 경우엔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트랜스젠더들의 다양한 삶을 여실하게 보여주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인을 함께 인터뷰하는 것이었죠. 주변인들은 어떤 고민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같이 지내고 있는지를 인터뷰해서 지지기반의 모델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식조사팀은 상담가들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1차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을 지지기반으로 끌여들이면 좋겠다는 판단이 있었어요. 또다른 인식조사 대상은 트랜스젠더가 아닌 성소수자들, 주로 동성애자들이었어요. 그래서 설문지를 만들려고 했는데 실패를 했죠. 사전조사와 논의를 해본 결과 이들은 알기는 하는데 인식은 너무 없었어요. 일반들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어떤 말이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들은 LGBT니까 트랜스젠더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더 깊은 고민이나 얘기를 끄집어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커뮤니티팀으로 전환한 이유 중 하나는 당연하게 설정한 지지기반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아가서 지지기반을 만들자는 것이에요. 


캔디: 작년에 비 트랜스젠더 인식조사를 했을 때 보면 인권이나 개념 당연히 오케이예요. 근데 그냥 여긴 우리집, 너흰 옆집 사는 사람 이런 식이죠. 딱 이만큼인 거예요. 중요하지 않은 거죠.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의식수준은 굉장히 높지만 관심은 딱히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프레임을 깨야한다고 생각해요. 10년 전에 회의에 가면 사람들이 “우리 동성애자들이” 하고 얘기했어요. 트랜스젠더, 바이들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그리고 사람들이 트렌스젠더의 성적 지향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죠. 많은 트렌스젠더들이 이성애자들인 것은 맞지만 동성애자 트렌스젠더도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 거에요.  



프로젝트가 이제 2년차인데 인상적인 일들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Edhi: 에디의 등장? (웃음) TG피로연이라는 파티를 했어요. 희노애락을 느끼자는 자리였죠.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여러 일들, 어쩌면 사소한 것들이지만, 수술 날짜가 잡혔다든가 기쁜 일인데 어디서 말 꺼내지 못했던 이런 것들에 대해 같이 기쁨을 나누자는 거였죠.  그때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그리고 부모님들도 오셨는데 저도 그랬고 같이 있었던 친구들도 부모님 입장에서 해주신 얘기를 들었죠.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떻게 해결점을 찾았는지 들으면서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또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을 만나니까 활동이 할 만한 일이구나. 이렇게 작은 변화들이 생기는구나 생각했어요.  


보비: 카페나 커뮤니티 안에서 인식 변화를 느껴요. 사람들이 관심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확실히 얘기들이 많이 나와요. 


Edhi: 저도 진짜 많이 느껴요. 사람들이 물어봐요. 트랜스젠더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해요. 그것도 관심이잖아요. 저는 성소수자 친구가 더 많은데 거기 사람들조차도 잘 몰라요. 제가 교회에 나갔을 때 첫 트랜스젠더였던 거에요.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멘붕이었어요. 트랜스젠더들이 한 번에 확 바뀌진 않아요. 과도기가 있죠. 저는 화장을 하기 시작한 지 1년이 안됐거든요. 예전엔 자신감이 없었어요. 내가 괴물처럼 보일까봐. 사람들이 날 어떻게 대할지 모르고 힘들어 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활동을 하는 걸 알리니까 속에 있는 질문들을 하더라구요. 이런 걸 보면서 주변의 변화를 크게 느꼈어요. 



반대로 어려운 점, 한계라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캔디: 저는 이 동력을 끌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활동이든 단체든 본인이 재미를 느끼면서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둘을 다 만족시키는 게 굉장히 어렵죠. 트랜스젠더들도 다양한 삶의 방법을 모색하지만 더 많은 수가 수술하고 성별변경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게 큰 가치를 가지는데 그 속에 활동이 들어가면 우선순위에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수술을 하고 일반적인 삶을 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불안한 요소들이 있어요. 다들 마음이 있고 후원이든 홍보든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라는 건 알지만 끝까지 함께하자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Edhi: 트랜스젠더들이 활동, 외부로 나오는 걸 힘들어 한다는 점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여기 있으니까 의료적인 부분이나 여러가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요. 이런 걸 올려놓으면 많이 오긴 하는데  아직도 불안한 마음들이 있고, 숨어서 살려고 하는 게 있죠. 그런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 힘들긴 해요. 저랑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도 어떤 활동에 오라고 하면 사람 많지 않냐고 무서워해요. 


준우: 현재 한국 트랜스젠더 운동에는 이슈가 많지 않아요. 의료적 지원, 법률적 지원, 상담 이 정도죠. 트랜스젠더 권익운동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당장 그 만큼의 인프라도 없으니까 이걸 갖추는 게 우선이긴 한데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어려움인 것 같아요.  


캔디: 작년에 당사자 워크샵을 했을 때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당사자들이 성별정정하고 나서도 커뮤니티에 남아서 이끌어주는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죠. 


준우: 또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예전에는 의료적 조치에 대한 정보가 호르몬은 뭐가 있고 부작용은 뭐고 이 정도가 끝이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관리하고 계속 살아갈 것인가의 고민이 더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았는데 기반 구축이라는 목표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에 대한 바람이나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보비: 소망이요? 그냥 지금처럼 갔으면 좋겠어요.  쭉 변함없이.


캔디: 나는 조각보 사무실에 내가 구경하러 가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거기 내가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놀러가는 거에요.(일동 웃음)


준우: 저도 캔디하고 비슷해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연대 활동들이 있는데 거기서 조각보에서 온 담당자를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모든 이슈가 다 깔대기처럼 모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슈와 정체성이 장기적으로는 분리돼서 더 확실히 잡고 나아가는 운동이 됐으면 좋겠어요.


Edhi: 저는 첫 번째로 조각보가 자급, 자족, 자생할 수 있는, 뭔가 힘이 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재단이 정말 잘 됐으면 해요. 3년 전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왔을 때 매끄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물길을 틀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로는 트랜스젠더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트랜스젠더인데도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트랜스젠더라는 타이틀이 흠이 아니라 자랑꺼리였으면 좋겠어요. 쉽지않은 결정들을 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돈 주고 하라고 해도 못하는 거에요. 


캔디: 이 프로젝트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에디나 보비를 볼 때에요. 에디의 존재감이 굉장하잖아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한 얘기인데 트랜스젠더 이슈가 뭐냐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슈 앞에 트랜스젠더라는 단어 하나를 붙이면 트랜스젠더 이슈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에 있는 인권 문제만큼 트랜스젠더 인권 문제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트랜스젠더 인권문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홈페이지: http://transgend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