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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네 시작은 미비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by 행성인 2009. 2. 27.
* 활동소식 _ 2009 겨울 동인련 청소년 세미나 "청소년 이반, 인권활동을 위한 첫 걸음"



 

 ‘이반만세’는 ‘이반들의 (자신)만만한 세미나’라는 이름을 줄여서 만든 2008년 동인련 세미나 이름이다. 2008년 여름에 기획해서 정말 가볍게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 갈수록 스케일이 커졌고, 이반만세가 끝난 후 다시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회의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다음 이반만세 주제를 잡다가 내가 ‘청소년’을 주제로 건의했고, 그러다가 비공개 겨울 세미나가 순식간에 잡혔고, 청소년 자긍심 팀이 갑자기 확 커지더니 ‘무지개 학교 놀토반’까지 열게 되었다. 처음 기획 때까지만 해도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다.


 이번 세미나는 이름도 참 길었다. 풀 네임이 2009 겨울 동인련 청소년 세미나 “청소년 이반, 인권활동을 위한 첫 걸음”이니까. 목적은 청소년 이반들이 동성애자인권연대에 대하여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 청소년 이반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서 무엇이 이 세상에서 ‘청소년’과 ‘이반’을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지 직접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겨울 방학 동안을 노리고 진행한 세미나여서 4주 동안 총 4개의 주제를 선정하여 진행을 했다. 시간 순서대로 ‘커밍아웃과 우리의 삶, 그리고 세상’, ‘알쏭달쏭! 인권활동에서 만나는 단어 알아보기’, ‘학교와 청소년 인권’, ‘’성과 인간관계’가 그 주제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청소년 이반 6명에게 따로 연락을 해 참가자를 모았지만 마지막 시간에는 입소문을 타고 온 사람들 덕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고3 중반에 동인련을 알게 되어 잠깐 발을 들였다가 대학교에 들어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나로서도 청소년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청소년 시기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과거에 가진 생각이나 시각을 되살리는 것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획에서부터 청소년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필요했는데, 겨울 방학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기획을 시작했던지라 세미나를 준비하는 동안 ‘과연 우리가 원하는 만큼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세미나를 진행하는 동안 참가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불안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밝은 표정으로 세미나가 재미있다고 말하면서 무지개 학교도 기대된다고 했을 때, 무언가 큰 것을 바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세미나의 모토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었다. 미리 책이나 주제를 정하고 토론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것이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을 큰 틀로 삼았다. 어디에서도 쉽게 할 수 없었던 자신의 고민, 관심사, 궁금증 등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면서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왜 비정상으로 취급 받는지, 또 왜 쉽게 허용되지 않는지 알아보고, ‘청소년’이자 ‘이반’이 겪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겪는 성차별이나 인격 무시, 성에 대한 궁금증, 커밍아웃에 대한 경험 공유 등 청소년 시기에 학생으로서 겪는 차별과 자신들이 궁금하게 여겼던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풀어내는 자체’에 의미를 많이 두게 되었다. 이반으로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청소년이라는 신분 때문에 더욱 힘든 청소년 이반들에게는 이런 소통의 공간이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 깊은 자리가 되는 것 같았다.


 청소년 이반 문제는 성소수자 진영에서도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만 쉽게 다룰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거창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혹은 겁먹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청소년 활동이 민감한 부분이 많고 실질적인 면에서 도움을 얻거나 조언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한다고 해도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지 불안함도 많았다. 하지만 청소년 세미나나 무지개 학교 놀토반을 진행하면서 처음의 예상과는 다르게 많은 청소년들이 성소수자 인권 활동이나 행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 또한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인들이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만큼 청소년들 또한 먼저 찾고 먼저 나서는 것이 어색했던 것뿐이었다. 거창한 의미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른바 ‘세대 차이 난다’고 표현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궁금한 것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소박한 출발을 발판 삼아 앞으로도 청소년 이반 활동이 더욱 커질 것이라 본다.


 라틴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비롯해 많은 이반들이 ‘청소년 이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레즈비언 청소년들이 함께 모일 장소를 빌려 일일찻집 등의 행사를 여는 ‘일차’를 제외하고서는 청소년 이반 문화의 전례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문화와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이 대단하고 거창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청소년 이반의 욕구와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한 단계씩 밟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본다. 지금 동인련의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이 믿음 하나는 계속 갈 것이다.


“네 시작은 미비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Anima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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