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Juste un doigt pour se faire dépister! HIV 검사, 한 손가락이면 돼요!


프랑스에 온 지 1년 하고 4개월이 조금 넘었다. 파리의 이태원이라고 부르는 마레(Le Marais)에서 흔히 보이는, 레인보우 깃발을 쇼윈도에 부착한 가게들부터, 지난해 6월에 본 퀴어 프라이드(2014 The LGBT Pride March in Paris - Marche des Fiertes), 올해 2월에 갔던 중국인 퀴어 주간(La Semaine LGBT Chinoise à Paris)까지 이곳의 커뮤니티들, 행사들을 돌아보며 보고 느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유하고 싶은 것은 에이즈 관련 활동가들의 그룹인 에드(AIDES)에서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다. AIDES는 프랑스 곳곳의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에이즈 검사를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AIDES를 만났나


프랑스에 난민 신청자로 온 지 1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많은 것들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겪어온 것에 비해 많이 달랐다. 여기 사람들은 나의 생김새,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떻게 옷을 입는지,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걷는지, 누구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큰 참견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각설하고, AIDES를 알게 된 것은 절반은 의도한 것이 맞는데 좋은 우연이었다! 난민 신청 과정 때문에, 또 프랑스어를 배우느라 지난해에는 이곳 커뮤니티에 꼭 가볼 것이라는 결심은 하였으나 여유는 많지 않았다. 에이즈 주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브라질인 친구에게 단체 소개를 해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다. 친구는 곧 2월에 중국인 퀴어 주간이 있는데 그 때 다양한 행사들(‘중국에서 커밍아웃의 불편함’을 주제로 한 세미나들, 영화 <해피 투게더> 상영회와 퀴어 작품 전시회, 퀴어 여성들의 수다, 함께 식사하는 뷔페)이 열릴 테니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개막식(Soirée d’inauguration)에 갔다. <해피 투게더> 상영회였다. 아는 사람 없이 홀로 간 것은 물론 여기서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윽고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질문했다. AIDES의 Montreuil 지부(Lieu de mobilisation)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하는 스티븐(Steven)은 자신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간략히 설명해 주고 관심이 있으면 내일 보자고 하였다.


다음날 비가 내리는 파리의 다리를 두 번 건너 마레 지구의 한 바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스티븐은 단체 활동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놓고 나를 사무실이 아닌 게이 바로 불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곳 퀴어들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려고 했다는 설명을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아! 하고 무릎을 쳤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이곳의 게이 바에서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눴다. 취한 덕분에 아파트 열쇠를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게이 바에서 나와 유령의 집 분위기를 풍기는 멋있는 대문의 데포(Le dêpot)라는 곳에서 2차를 했다. 데포는 오로지 만사 잊고 춤만 추라고 만들어 놓은 클럽. 다만 파리의 바나 클럽이 좀 달랐던 것은 아예 밖에서 “저런 문란한 것들”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요란하게 노골적으로 ‘이곳은 게이 바입니다’라고 광고를 해도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이다. 클럽과 바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AIDES가 하는 활동들과 관련이 있어서이다. AIDES에서 진행하는 에이즈 검사(dépistage)는 클럽, 바, 사우나(!), 숲(!), 이민자 공동체(Foyer) 등등 취약군들이 있는 곳들에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며 진행한다. 술을 마신 다음날 저녁, 나는 파리 근교의 Montreuil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AIDES에서 활동하기로 하면서 만든 활동 계약 문서. AIDES에서 해야 할 일들, 나에게 기대되는 역할 등이 적혀 있다. 이름과 주소를 적고 사인을 했다.


1분 검사와 30가지 질문 항목


AIDES는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고 있다. Lieu de mobilisation(활동 지역)이라고 불리우는 지부는, 수도 파리에 3곳, 동서남북 근교에도 하나씩 있다. Montreuil은 파리 근교의 위성도시(banlieue)이고 AIDES의 Montreuil 지부에서는 동부 근교 도시들의 활동을 책임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AIDES는 관심이 있는 누구나 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한다. 에이즈 검사를 하는 것도 미래의 활동가들을 만나는 것이다. 구분 없이 누구나 자신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개념을 mobilisation이라고 한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 눈웃음이 매력적인 통통한 스테판(Stéphane)을 만나고 그에게서 검사를 받았다. 스테판은 AIDES에서 활동한 지 5년이 넘는다. 연필깎이 비슷하게 생긴 도구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냈다. 능숙한 스테판의 솜씨와 함께 검사는 1분 안에 음성(négative) 판정을 받으며 끝났다. 스테판이 내게 30가지 정도 되는 질문지를 통해 나의 게이 라이프(!)에 대한 면모를 파악했다. 이 질문은 검사받는 방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검사자인 스테판은 이후에 질문에 적힌 내용들을 내 허락 없이 말할 수 없다. 물론 검사받는 방 안에는 두 명 외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검사당사자가 불어 화자가 아닌 경우 통역 문제로 통역자가 배석할 수 있다.) 체계적인 질문과 개인 정보 보장을 통해서 AIDES는 자신들이 만나야 하는 취약군에 대한 상을 더 자세히 그려볼 수 있다.


에이즈 검사(통상 에이즈 검사라고 하지만 면밀히 HIV 바이러스 검사라고 해야 한다. 앞으로는 HIV 바이러스 검사로 적을 예정)에서 양성 반응(séropositives)이 나왔을 때 최종적인 검사 안내와 함께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지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은 La beauté c';est, ce n';est pas(아름다움이란 이런 것, 아름다움은 하지만 이런 것은 아니다) 캠페인으로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오리엔테이션과 검사 활동


그 다음 주, 나는 AIDES와 자원 활동을 하기로 1년 계약(!)을 맺고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보통 직업 교육을 비롯해 연수 훈련에 관련된 교육 강의를 불어로 포마시옹(formation)이라고 부르는데 AIDES의 활동가 연수는 앙포르마시옹(information)이라는 점이 달랐다. 정확한 정보를 준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만나야 하는 취약군(cible)들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 MSM(불어로 쓰면 HSH, Hommes ayant des rapports sexuels avec des hommes) 등 알고 있는 어휘가 나왔다. AIDES는 검사와 함께 검사 대상자들이 결과에 따른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상담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상담이 검사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활동가들이 콘돔을 나누어 줄 때에도 뭐라고 말하며 어떤 태도를 취하며 줄 것인가 등의 문제에 중점을 맞추어 교육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AIDES의 검사 활동은 시청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Montreuil 시청에 AIDES의 현수막을 걸어 놓고 밖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건물 안에서 검사를 했다. 시청에 레인보우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서울시청과 어쩌면 이리도 다를 수밖에 없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밖에서 사람들을 건물 안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인상깊었던 것은, 이곳에서 산 지 30년이 넘은 노년의 신사가 이 검사를 받고 싶었는데 자신이 대상자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어이 없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해 주어 같이 분개할 수 있었다. 세상에 검사에 적합한 군이 따로 있을까! 사람들은 에이즈라는 말에 대해서 가끔 놀라긴 했지만 충분한 정보가 있으면 안심하고 검사를 받으려 하는 것 같았다.


Avec AIDES, c';est rapide et sans douleur. AIDES와 함께하면 빠르고 아프지 않아요.

아시안 게이 행사(soirée Asian Gay)


AIDES Montreuil에서 주최한 Soirée Asian Gay


AIDES Montreuil 지부는 아시안 게이 행사라는 것도 주최했다. 프랑스 사회의 인종적 소수 집단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인 당사자들이 에이즈에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는지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인종과 민족, 국적 등, 사회가 정한 구분의 장벽을 넘어 함께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고민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자리에서 Hiper Gay라는 약물(médicament)이 소개되었다. 이 약물은 복용 후에 HIV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 것이 효과인데 이 Hiper Gay를 당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활동 목표이다.


IPERGAY(HIPER GAY) 임상 연구에 참여를 독려하는 포스터다. HIV 감염에 취약한,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HSH)의 참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 약물이 예방 효과가 있는지를 진단하고 있는 연구가 프랑스와 캐나다 퀘벡 두 국가에서 진행 중이다. 사진의 문구는, Moi, je suis ipergay et vous? "저는 ipergay입니다. 당신은요?"


아프리카 이주민 공동체 방문


몇 주 지나, 나는 사무실 근처의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사는 공동체를 방문했다. 큰 철창 문이 있고 그 안에 건물 세개가 ㄱ자로 붙어 있는 곳이었는데 안에는 생필품 등을 판매하는 곳과 단체 급식실이 보였다. 수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곳에서 지내도록 되어 있었고 배수, 화장실, 창문, 바닥 등 모든 것들이 낡았다. 주민들은 정보에 대한 충분한 접근권을 누리지 못했다. 사무국 활동가들인 다비드(David)와 막심(Maxime)은 스페인어권 검사 대상자들에게는 스페인어를 하면서 안내하기도 했다. 야외 검사였던 지라 검사실은 트럭 안을 개조(?)해서 만든 곳 둘, 텐트 하나로 마련했다. 이날은 특별한 경험과 과제들을 남겼다. 열악한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활동을 하며 이런 문제들과 관련하여 다양한 일들을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진행될 성매매가 행해지는 숲, 그리고 사우나 등에서 하게 될 검사들에 대한 상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래도 비교적 많이, 프랑스 현지의 활동들을 본 것 같다.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들에서 더 자세하게 소개하려 한다. 물론 내 소식도 전하고 이후 전개될 AIDES의 활동과 한국의 행성인의 활동에 접점을 발견하고 연대를 전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대된다! 에드!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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