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성(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매년 6월, 전 세계는 자긍심 행진의 열기에 무지개 빛으로 물듭니다. 1969년 6월 28일의 ‘스톤월 항쟁’이 바탕이 되어 시작된 자긍심 행진은 그 규모는 각기 다르지만 현재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소수자 문화를 보여주고 당면한 인권 현실을 알리는 중요한 무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긍심 행진들은 초창기에 불과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당대의 억압적인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시선에 저항하는 ‘시위’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투쟁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 상황이 진전됨에 따라 이들은 점차 그 규모를 키워나갔고, 진전된 권리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성소수자 문화와 시장의 창출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생겨난 커뮤니티 기반 기업들, 그리고 성소수자 고객층의 구매력에 주목한 기존 기업들이 자긍심 행진을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오늘날의 규모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논쟁 지점들이 있지만, ‘핑크 머니(Pink Money)’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커뮤니티 기반 기업과 성소수자 고객층의 구매력은 자긍심 행진을 만들고 이끌어 나감에 있어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긍심 행진인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게이&레즈비언 프라이드’와 호주의 ‘시드니 마디그라’의 경우 그것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독립 법인으로써, 일종의 커뮤니티 기반 기업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 법인이기에 이들은 예산을 자유롭게 모으고 편성할 수 있으며, 정기적인 외부 회계감사를 받음으로써 투명성 또한 제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긍심 행진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동네의 작은 게이 바에서부터 전국적인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큰 게이 잡지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커뮤니티 기반 기업들은 재정 또는 자신들의 유형자산을 후원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고객층의 구매력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긍심 행진들을 만들어 낸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큰 규모의 자긍심 행진은 전국적인 화제일 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들에서도 행진을 즐기기 위한 참가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것 때문에 종종 이들은 지역의 관광 산업에 막대한 기여를 하는 것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게이&레즈비언 프라이드’와 ‘시드니 마디그라’의 경우 이들과 연계된 다양한 관광상품(항공+성소수자 친화적 호텔 패키지에서 호화 게이 크루즈 여행에 이르기까지)이 현지 여행사들을 통하여 매년 개발되고 있으며, 참가자 기준 세계 최대의 자긍심 행진인 브라질의 ‘상파울루 파라다 게이’의 경우 상파울루 시 정부로부터 매년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성소수자 고객층의 막대한 구매력에 있습니다. 대체로 성소수자 고객층은 비성소수자 고객층에 비해 브랜드 충성도와 소비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외국계 은행들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 고객층은 같은 소득 수준일 때 비성소수자 고객층보다 30% 가량 더 많은 소비를 하며, 특히 외식 및 문화예술 부문 지출이 특기할 정도로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외식, 문화예술 부문의 경우 특히 지역밀착형 산업이 많고, 대표적인 내수산업이기에 수많은 성소수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대규모 자긍심 행진은 해당 지역의 지역밀착형 내수산업을 진작시키는 데 의미있는 공헌을 한다는 유추가 가능합니다. 이것은 곧 해당 지역 정부의 세수 증대와도 직결되며, 그러하기에 일부 대규모 자긍심 행진의 경우 지역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커뮤니티 기반 기업과 성소수자 고객층의 구매력이 어우러진 ‘핑크 머니(Pink Money)’는 분명 자긍심 행진의 성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창기 당대의 억압적인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시선에 저항하는 ‘시위’로 시작된 자긍심 행진이 돈의 힘 앞에 초심을 잃어버리고 상업적인 쇼로 전락했다는 논쟁의 지점 또한 존재합니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이라는 고유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지역사회의 풍요에 기여’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 자긍심 행진을 이끌어가는 것, 이것은 아마도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을 이어나가야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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