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성(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 활동회원모임)
 
퍼레이드가 있는 자긍심의 달 6월, 저 역시도 가득 찬 자긍심과 함께 뜨거운 한 달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년에 이어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죠. 바로 올해 퀴어문화축제 공식 파티인 'Private Beach' 파티에 공연팀으로 함께 한 것이었습니다.
 

 

▲ 말조심을 해야 하는 이유는, 종종 말이 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작년, 전 그 동안의 후덕한 모습에서 완전히 변신해 식스팩 근육남으로 퍼레이드와 파티를 뒤흔들었습니다. 후일 '퍼레이드 노출 논란'을 일으킨 파격적인 의상으로 거리를 누볐고, 'Jay'라는 예명으로 클럽 파티 무대에서 섹시한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죠. 그 전에도 거리에 나오고 퍼레이드 차량에 올라 춤을 춘 적은 있었지만, 작년의 퍼레이드와 파티는 이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논란과 열광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터와 집을 오가는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며 새로운 한 해가 되었습니다. 일상이 늘 그러하듯 이어졌죠. 그러다가 퍼레이드의 그 날이 가시권, 그러니까 D-100일 안으로 들어오자, 제 마음 한 켠에서는 무대를 향한 열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봄날, 올해 퀴어문화축제 공식 파티를 위한 공연팀 멤버를 모집한다는 페이스북 글이 제 눈에 띄였고, 그 순간 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글을 띄운 분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일터의 통유리 마천루, 꽉 조이는 수트만이 ‘나’를 정의하는 모든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짜 ‘나’를 찾는 일탈이 필요한 법이죠.
 
그 짧은 메시지와 함께 퇴근 이후의 시간들이 다시 퍼레이드와 파티를 위해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보다 몸 사이즈를 키워야 했고, 자유 고고쇼보다 규정 안무의 비중이 높아진 만큼 춤 연습 역시 소홀할 수 없었죠. 야근과 회식 역시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번은 정말 제대로였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제 사진이 파티의 공식 계정을 타고 커뮤니티에 퍼져나갔고, 메이킹 영상 속에 잠깐이지만 등장하기도 했죠. 의상도 있고, 단순히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짜여진 플롯이 있는, 그러니까 '기획된 무대'였습니다. 그렇게 퇴근 후의 밤과 반납된 주말이 지나가고, 어느덧 6월 13일 퀴어문화축제 공식 파티 'Private Beach'의 D-DAY가 밝았습니다.
 

 

▲ 가끔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하던 일이 눈 앞의 현실이 되곤 합니다.
 
이태원 행사장 목전까지 진출한 혐오세력들의 방해, 거기에 메르스까지 덮치며 녹록치 않은 여건이었지만, 퀴어문화축제 공식 파티 'Private Beach'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문화축제를 응원하기 위해 먼 길 마다않고 찾아주신 수많은 분들의 힘으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파티의 열기와 환호 덕에 클럽의 냉방 시스템이 살짝 오락가락하는 해프닝이 일어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무대 위의 전, 그 열기와 환호를 온 몸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 행사장 밖에서도 공연 의상을 그대로 입고 파티를 찾아주신 수많은 분들께 인사를 드렸으니, 그 열기와 환호를 무대 밖에서도 받은 셈이군요. 어찌됐든 정말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한 멋진 무대, 그리고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군 멋진 순간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채워졌습니다.
 

 

▲ 수천의 환호 앞에 서는 이 기분, 정말 해 본 사람만 압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얼굴도 사방에 팔리고, 돈도 안 되는데다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 굳이 나서서 스스로 일을 벌이느냐고. 그렇습니다. 편하지도 않고, 잘해야 ‘게이스북(Gay+Facebook)’ 셀럽에, 억만금과는 거리가 한참 멀고, 이걸 한다고 갑자기 한국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죠.
 
살다 보면 꼭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생기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종종 일상의 힘듦이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 좌절되곤 하죠. 정체성을 자각하고, 커뮤니티에 나오고, 자연스럽게 클럽과 파티문화 역시 접하게 되면서 제 마음 한 켠에서는 언젠가부터 새로운 ‘버킷 리스트’가 생겨났습니다. ‘끼 떨려고 스테이지 올라가는 것 말고, 파티에서 공연팀의 일원으로 스테이지에 서고 싶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당시 전 별 볼품 없는 체형에, 잇따른 취업 실패로 자신감마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게 많은 분들이 영감을 주셨고, 어느 순간 ‘이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그 ‘버킷 리스트’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움직였고, 두 해에 걸쳐 기어이 현실로 만들어내고야 말았죠. 공연이 끝나고, 비록 몸은 피곤하고 땀, 꽃가루, 술 등등이 뒤엉켜 찝찝함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바라던 걸 이뤄냈으니까요. 그것도 두 해 연속으로.
 
물론 아직 제 ‘버킷 리스트’가 완벽하게 달성된 건 아닙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칼은 뽑혔으니, 이제 제 사진으로 포스터를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멋진 몸매를 만들어 또 다른 파티의 스테이지에 올라 많은 분들께 이번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된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그게 제 새로운 목표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