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이경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

 

 

기자회견에서 발언중인 곽이경 활동가

 

*편집자 주: 이 글은 오늘 있었던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의 동성혼 소송 심문기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곽이경 활동가의 발언문 전문입니다.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의 동성혼 소송 심문기일 스케치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저는 오늘 저또한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와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당사자로써 주장하고자 합니다. 아마 한국사회의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법원의 판결을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동시에 누가 반대하고 누가 지지를 보내는지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이 소송은 단지 한 부부의 권리만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저는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최근 규약을 개정했습니다. 민주노총 사무총국과 지역본부 사무처 활동가들 중 동성 배우자에 대한 가족수당을 주기로 한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 같은 성소수자가 이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했는데 ‘너는 동성애자니까 안된다’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쉬운 문제입니다. 적용받아야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겁니다.

 

수십년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살아온 동성 가족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먼저 죽습니다. 남은 한 명은 혈연가족들에게 쫓겨나서 결국 자살했습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관계를 인정받고 사회 속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입니다.

 

우리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이성애자에게는 당연한 이야기를 평생 못 이룰 소원처럼 얘기합니다. 성소수자로써 행복했던 순간이 인생 중 얼마나 될까? 이런 한탄을 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배제와 차별 속에서 고립감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저의 예전 파트너는 병원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제가 보호자가 못되니까 보증금을 내고 입원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보증금 내고 입원해 보셨습니까? 다른 이유 없습니다.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투병 기간 동안 제가 실질적인 보호자였고 각종 치료를 결정하고 돈을 냈지만 병원은 제게 의료기록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사망 후 각종 절차에서도 배제되었습니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법적 보장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대비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혼자서는 헤쳐 나가기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 그 의미를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요구 때문에 성이 문란해진다거나, 가족제도가 무너진다거나, 조상이 핏땀흘려 세운 나라를 붕괴시킨다는 해괴한 선동을 하는 것은 정말로 참을 수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성소수자들도 핏땀흘려 일하고 생계를 꾸려가는 평범한 노동자들이자 시민들입니다. 공고한 가족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자들, 여성은 원래 애 낳고 집에 들어앉아야 한다며 여성에게 저임금, 비정규직을 강요하는 자들이야말로 우리의 정당한 핏땀의 댓가를 뺏은 자들입니다. 지독하게 차별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면서 부당한 대우에 순종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입니다. 저들이야말로 동성애를 지지하면 빨갱이라면서 사회 진보를 가로막고, 온갖 낡은 고정관념에 기대어 세상의 혼란이 성소수자들에게서 비롯한다고 공격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썩은 고정관념과 그에 기초한 제도가 성소수자에게, 이주민에게, 장애인에게, 여성들에게 얼마나 차별적이고 우리를 배제하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여겨져 왔는지는 이야기 안합니다. 오히려 이들은 우리를 제물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고 분노를 엉뚱한데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납니다. 이 문제는 그냥 제 삶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살아야 겠다는 겁니다. 내 삶을 찬반의 문제로, 혐오선동으로 덧씌우는 일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것이 성소수자의 요구입니다.

 

물론 이 소송이 위의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하진 못합니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은 소송을 통해 이 사회에 물음표를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것은 우리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겠다는 요구와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소송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사회 속에서 자존감이 무너지고 시민임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살지는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특별한 권리가 아니라는 걸 입증할 겁니다.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존중하고 불편함 없게 바꾸자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건지 사회가 납득하도록 할 겁니다. 이 소송은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정을 쌓고, 가족들에게 축복을 기대하며, 가면을 벗고 살겠다는 ‘인간선언’입니다. 성소수자들은 지난 퀴어퍼레이드에서 도심을 행진하면서도 바로 그런 선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0개에 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곳입니다. 해묵은 관념으로는 이 흐름을 꺾을 수 없습니다. 세계에 많은 나라가 동성혼을 인정하지만 반면에 많은 국가들이 동성애자를 탄압합니다. 하지만 그런 나라의 성소수자들도 이미 지난 날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소수자 가족의 권리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날까지 이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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