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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2016.04.16. 광화문에 다시 모이다

by 행성인 2016. 4. 26.

스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겹다’ 고 말하는 당신에게

 

이번 글은 제가 웹진에 기고한 글 중에 작성 기간이 가장 길었습니다. 며칠간 시달린 두통 때문이기도 했고, 솔직히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잘 안 왔습니다. 몇 문장 썼다가 싹 다 지우고, 개요를 짰다가 싹 다 갈아엎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만큼 하고 싶은 얘기, 해야 할 얘기가 너무 많았고 그것들이 실타래처럼 한 데 뒤엉켜 복잡했습니다. 이런 와중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더군요. 나에게 세월호란 이렇게 하나의 글이나 주제로는 절대 다 담아낼 수 없는데 누군가에겐 ‘지겹다’라는 게으른 말 하나로 못 박아버리고 종결 낼 수 있는 주제라니. 이 극심한 온도 차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 모두에겐 온도 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시작과 과정, 궤적이 다르고 경험도 느낌도 가치관도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온도 차를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이 나의 처지를 다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독선일 수 있습니다. 공감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도 독선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모르고 상대방의 삶을 살아보거나 체감한 적도 없으면서, 속편히 자신의 인생과 비교하며 상대방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 지독한 오만입니다.


 

온도 차를 설명하자니 구구절절 말이 길어집니다. 저에게 세월호는, 지겨워하고 싶어도 지겨울 수 없는 일입니다. 종결 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도덕 선생님, 어린 시절 같이 눈싸움 하던 교회 동생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왜 죽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모릅니다.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도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 한 켠에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가버렸는데 어떻게 세월호가 지겨운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세월호를 지겹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에겐 남의 인생이고, 당신에겐 참 쉽게 끝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동참해 달라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세월호를 반드시 나 자신의 일로 여겨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나는 결국 남인데 왜 그렇게 공감을 강요 하나요. 지겹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의 일로 생각하신다면 정말 말 그대로 남의 일처럼 여겨주세요. 남의 일이라면서 왜 당신이 함부로 종결하려 합니까. 남의 일이라면서 왜 함부로 ‘지겹다’고 말하십니까. 제 주변 사람이 죽었고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뿐인데 왜 당신에게 ‘지겹다’란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세월호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저와 그들의 일을 지겨워 할 권리가 없습니다.


2016.04.16 광화문 광장 수 많은 깃발들 사이에서 휘날리는 행성인의 깃발

 

 

지겨워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던 이들이 다시 모였다.

 

2016년 4월 16일, 누군가에겐 지겨웠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지겨워하고 싶어도 도무지 그럴 수 없던 2년이 지났습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다시 광화문에 모였습니다. 올해도 비가 내렸습니다. 정치인, 유가족, 연예인 등등 많은 이가 또 단상에 올랐습니다. 또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또 세월호를 덮어버리려는 세력들을 비판했습니다. 또 그들을 기억했습니다. 또 그들을 추모했습니다. 2년 간 많은 것들이 밝혀지며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는 이 곳에서 여전히 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2년 간 우리의 외침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추모제의 스케치보다는 저의 주관으로 채운 것도 이 이유입니다. 추모제는 여러분이 예전부터 알던 그 형태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어찌 보면 지겹기도 합니다. 2년 간 꿋꿋이 외침을 외면하는 그들의 태도가 정말 지겹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들어줄까요. 당연한 요구는 돈에 미친 이기심으로 묘사되고, 당연히 책임지고 해야 할 일들이 선심성 행세로 왜곡됩니다. 약자와 강자, 피해자와 가해자, 요구자와 의무자가 뒤바뀌고 있는 이꼴이 참 우습습니다. 어찌 보면 세월호는 그간 지겹게 행해지던 이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겹다’ 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세월호가 지겨운 게 아니라, 외쳐도 변하지 않을 이 사회를 지겨워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당신이 포기했다고 해서 우리도 같이 포기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해봤어, 하지만 변하지 않았어. 너도 헛수고 하지마.’ 라는 냉소적인  훈수는 이 변치 않는 사회를 오래간 유지시켜 준 지겨운 패배주의일 뿐입니다. 세월호가 지겹다면, 아니 사회가 지겹다면, 그 지겨운 태도를 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세월호를 외치는 것, 광화문에 모이는 것, 끝없이 요구하는 것, 저항과 투쟁의 태도야 말로 이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던, 전혀 지겹지 않은 새로운 태도입니다. 지겨움은 새로움과 혁신으로만 깨부술 수 있습니다. ‘지겹다’ 말하며 지겨움을 존속시키지 마세요. 새로움에 동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