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소수자와 가족

아들의 커밍아웃, 그 후

by 행성인 2016. 5. 7.

하늘(성소수자 부모모임)

 

 

 

하늘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안 건 아들이 대학교 4학년을 다니던 가을 무렵이었어요. 대체로 4학년 때 내내 별로 웃지를 않았어요. ‘졸업이 가까워져서 취업 걱정을 하고 있나 보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죠. 가을 끝자락에 학교에서 졸업 작품으로 바쁠 시기에 (바빠서 다들 집에 못 가고 그냥 작업실 바닥에서 잠을 청함)아들이 갑자기 집에 와서 밥도 안 먹고 말도 안하고 자기 방에서 꿈쩍도 하질 않으니 참 황당하더라고요. 8년 전의 일인데도 그때 놀란 가슴은 잊혀지질 않아요. 부모는 자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게 제일 아프죠. 며칠 뒤 아들 친구가 걱정이 되어 몇 번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를 통하여 알게 되었어요.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시간, 생각, 심장이 모두 정지 되었어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살아 있더라고요... 지독히 아팠던 과거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철저히 혼자가 되었던 그 시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그때는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우리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저를 괴롭혔어요. 제 자존심은 저의 의지와 상관 없이 바닥으로 내려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 지더군요. 그제서야 제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게 되었어요. 저는 인생을 살면서 매일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산다고 생각하였는데 제 속 깊은 곳에 교만을 숨겨 놓았음을 깨달았지요. 이제는 그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해요. 아들로 인해 전 다시 태어난 셈이죠.

 

제 아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저의 귀한 아들이에요. 혼자 고민하고 많이 아팠을 터인데... 학교 생활 적응하기 힘들었을 터인데... 전 힘들면 남편이라도 붙잡고 울고 때론 투정도 부려가며 견뎠는데, 아들은 혼자 다 잘 견뎌서 자랑스러워요. 철저히 혼자 고민 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힘이 되어 주지 못했던 게 지금도 가엽고 미안하죠.

 

아들과의 관계는 커밍아웃 전보다 더 친해진 셈이죠. 2년 쯤 뒤 어느 날, 아들이 집에 들어 오자마자 “엄마 내가 만나고 있는 형이 있는데 집에 데리고 와도 돼요?” 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이 기회에 아들과 더 가까워 져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래 데리고 와라.” 했더니 문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같이 와서 허락 받으려고 문 밖에서 기다린 거죠. (웃음) 그 찰나에 ‘아들은 동성을 사랑하니까 기쁘게 맞이해야 되겠다’ 는 순간의 선택을 한 거죠. 아들의 애인은 착해 보였어요. 더 나이가 많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 했죠. 앞으로 사회생활 같은 여러 가지 문제도 형이면 더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더 좋죠.
 
제가 무조건 기쁘게 환영을 하니 (아들의 애인을 큰아들이라고 부름) 둘은 무척 고마워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생생 하게 느껴지더군요. 참 잘 했다고 저를 칭찬하고 싶어요. 저도 결혼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칭찬은 평생을 가는 거다’ 라고 생각 하거든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살고 있고 서로 위해 주며 사는 것 같아서 안심이 돼요.
 
동성커플이라 더 안심이 되는 점도 있어요. 지금 젊은이들은 맞벌이여야 겨우 생활 유지가 되더라고요. 아들은 하고 있는 일에 비해서 월급이 작다고 생각해요. (근무시간 생각하면 적은 월급이긴 하죠.) 그래도 스트레스 받을까 봐 돈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해요. 대신 맞벌이이고 동성 커플이라 자식이 없는 둘 만의 생활이다 보니 크게 돈을 모으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긴 있네요.

 

아들은 파트너의 동성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어요. 이성이던 동성이던 친구가 아주 많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동성친구가 아들에게는 더 편하겠죠 . 말이 잘 통할 수 있잖아요. 아주 많았으면 좋겠어요. 파트너가 농구광이에요. 파트너가 농구를 워낙 좋아하니 아들도 지금은 농구를 좋아해요. 그전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죠. 농구에 관한 지식도 대단하더군요. 함께하는 취미는 중요하죠.

 

걱정 되는 것도 있어요. 엄마로서 저에게는 그저 먹거리가 걱정이에요. 아들은 저의 걱정을 아니까 그게 불만이고 참견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음식을 끼니 때 골고루 잘 먹어야 하는데…  아무 때나 사 먹으니 건강 해칠까 봐 그게 염려가 돼요. ‘지금은 젊으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해야지 별수 없죠. 성소수자에게는 법적으로도 아무런 보호 혜택이 없으니 이 문제는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우리 부모도 함께 참여해 풀어가야 할 큰 숙제입니다.
 
요즘은 아들이 너무 바빠 자주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가끔 전화로 대화해요. 아들이랑 친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혐오, 차별의 주제로는 거의 대화하지 않아요. 심각하고 슬픈 이야기보다는 형과 지내는 얘기, 주로 직장에서의 얘기가 전부에요. 심각한 얘기는 저도 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 아프니까… 아들이 먼저 주제로 삼으면 할 말이 많긴 해요. 지금은 힘들지만 희망적인 말을 많이 하겠죠. 무지하고 잘못된 사상이 성소수자를 괴롭히는 것이니 언젠가 바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성소수자 주제로 대화를 별로 하지 않긴 하지만, 해도 충돌은 전혀 없어요. 제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하고 있다.(계 모임 정도) 성소수자 엄마들끼리의 모임’ 정도로만 얘기 했어요. 가볍게 그 정도로만 얘기 했죠. 처음엔 아들이 부모모임 이야기를 듣고 좀 놀라는 눈치였어요. 왜냐하면 혐오, 차별이 심한 것을 잘 알기에 혹시나 제가 혐오하는 그들에게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상처 받지 않을까 하면서 파트너와 아들이 염려 하더라고요. 아들 편하게 해주려고 인권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안 했어요. 아들을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의 나라에 태어나게 한 것이 저는 평생 미안하거든요. 아들이 구체적으로 알던 모르던 그게 중요하진 않다고 봐요. 부모로서 제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아들과 큰아들이 서로 아끼며 살고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힘든 직장 생활도 성실히 잘하는 아들이 고맙습니다. 아들 덕에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답니다. 감사함의 한쪽 끝의 늘 시린 아픈 마음은 혐오와 차별이 없어질 때 저절로 나아지겠죠. 그날을 매일 기다리며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