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5월 28일 행성인 신입회원모임이 있었다. 기존에 활동하던 회원과 신입회원을 합쳐서 스무 분 정도 오셨던 것 같다. 3시가 되자 문이 닫히고 1부가 시작되었다.
성소수자 인권 그 언덕 너머, 모두의 인권
1부 진행을 맡은 나라님이 행성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인사말을 하셨고 신입회원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행성인의 역사와 그동안의 주요 활동들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았다.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에서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 그리고 지금의 행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서울시청 무지개행동 농성을 비롯한 행성인의 큼직한 활동들을 볼 수 있었다.
영상을 본 뒤에는 청소년 인권팀을 시작으로 행성인에서 활동하는 각 팀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 HIV/AIDS 인권팀은 근래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HIV/AIDS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 에이즈와 성소수자(특히 동성애)를 그저 표면적으로 단순하게 엮어 선동하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갈지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나역시 깊게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라 더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특히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동성애와 에이즈를 함께 얘기할 때 의도적이든 아니든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에이즈를 배제하거나 배척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동성애=AIDS’라는 차별선동 논리에 “동성애자와 에이즈를 동일시하는 것은 차별이다”와 같은 말들이나 에이즈(감염인)를 짐처럼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일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몰라도 이날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행성인 회원을 위한 HIV/AIDS 가이드북’이 뜻깊었다. 단지 ‘나’로 그치지 않고 ‘우리’, 그리고 ‘우리’를 넘어 ‘모두’를 위해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더 좋았던 것 같다.
1부가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2부에서는 청소년인권팀에서 활동하는 사과님의 진행으로 회원 들의 자기소개시간을 가졌다. 종이에 잎과 뿌리를 그려 뿌리에는 자신의 성격, 경험, 주변 환경,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잎에는 행성인에 바라는 점,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자신의 소망을 적었다.
나는 너무 뒤죽박죽 엉망으로 써버려서 낙서장 같이 되었는데, 양 옆에 계신 분들은 엄청 잘 꾸미셔서 부끄러웠다. 10~15분 정도 쓰는 시간을 가진 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그 곳에서 경험한 것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행성인은 어느 집회나 시위를 가도 꼭 있더라는 다른 회원분의 얘기였는데, 웃기면서도 와 닿았다. 성소수자 인권에 국한되지 않고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약자와의 다양한 형태의 연대를 하는 단체라는 의미일 텐데, 행동과 실천이 바로 행성인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들 하시는 말씀을 반복하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아닌가.
지속 가능한 활동을 꿈꾸며, 늘 펄럭이고 있을 레인보우 깃발 아래에서 만나요
나는 행성인에 바라는 점으로 거리 캠페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 국한되지 않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가시화가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거리 캠페인을 무척 좋아하는 이유도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활동할 생각이고 여유가 되는대로 후원금도 조금이나마 올릴 생각이다. 캠페인도 인력과 돈이 있어야 할 테니까.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한 말이 기억난다. “변화는 불가피함의 바퀴로 굴러오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투쟁에서 온다.”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듯 그의 문장은 단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닐 것이다. 변화를 위한 투쟁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나는 수도권 바깥의 지역 사람이라 대부분의 활동이 서울에 집중되어있는 행성인에 참여하기에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있고, 지금도 같은 고민이 계속된다. 하지만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가지는 죄책감과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결국 이렇게 글로 인사를 드리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어서 ‘주변 환경과 경험’은 커밍아웃의 경험을 얘기했다. 나는 열아홉살부터 부모님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시작했고, 다행히 아직까지 부정적인 반응을 경험한 적은 없다. 또한 성소수자라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인권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서였는지 혼란이나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정체화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복지나 인권 관련 활동을 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커졌다.
‘나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서는 닉네임 ‘여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여명은 다들 알다시피 희미하지만 ‘밝아 오는 빛’, 그리고 ‘희망의 빛’을 뜻한다. 이 빛이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세상의 가장 낮은 곳과 그 곳의 사람들을 비추고, 나 자신도 그런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지은 삶의 지향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소개 당시 심한 낯가림에 너무 떨어서 말을 못했다.
자기소개 시간이 끝이 나고 진행자이신 사과님이 마무리발언으로 신입회원모임이 끝났다. 재밌는 발언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옮길 수 없는 것이 아쉽다.
6월은 큰 축제가 있는 퀴어 명절이다. 가장 많은 성소수자와 행성인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가능하면 함께 즐기면 좋겠다.
가장 낮은 곳으로,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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