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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

위풍당당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 [스케치/인터뷰]

by 행성인 2016. 10. 13.

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10월 13일 오후 11시반, 안국역 북인사마당 앞에 한복 크로스드레싱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한복 착용 시 고궁 무료 입장 기준에 성별에 따른 복장을 요구하는 항목이 있는 것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위해서였다.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 고궁 한복 무료입장 젠더차별 논란 - 여성신문 / 2016.10.05)

 

 

실제 경복궁 매표소에 있는 한복착용자 무료관람 가이드라인

 

이번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 행사는 퀴어문화축제 때 훈도시를 입고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던 우주씨의 제안으로 기획됐다. 어떻게 기획 되었고, 무슨 목적에서 기획되었는지 기획자 우주씨를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단아한 자태를 뽐내는 우주씨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인권운동을 하고자 하는 우주라고 하고, 이번에 트위터에서 켄타카 라는 이름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 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된 의도가 어떻게 되나요?

 

고궁에 한복을 입고 입장을 하면 무료로 입장을 하게 해주는 게 있어요. 처음에는 다른 성별의 한복을 입어도 상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한복에 제한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다른 성별의 한복을 입거나 성별을 섞어서(여자 한복 저고리에 남자 한복 바지를 입는다거나) 입으면 무료 입장이 안 되게 됐어요. 어떤 고궁 담당자가 ‘요즘에 한복을 적절하게 입지 않고 입장 하는 꼴불견 관람객들이 늘고 있다’고 언급한 게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고,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에도 한복을 자기 성별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너무 성별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 친구랑 같이 기획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했는데 제한이 왜 생겼나요?

 

저도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한복을 위아래 중 한쪽만 입고 들어가는 식으로 한복 착용 무료입장을 악용하는 사람이 생겨서 방지 차원에서 시작됐다고 저는 알고 있는데요. 그로 인해 남성은 남성 한복만, 여성은 여성 한복만으로 제한을 두는 건 생각이 조금 짧았다고 봅니다.

 

이번 행사가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관심을 많이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원래는 이런 거창한 행사가 아니었어요. 오늘 보니까 퍼레이드 참가자보다 (언론)카메라가 더 많았거든요. 같은 한복인데 성별만 다르게 입고 걷는 것이 이렇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자가 큰 이슈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하고 다니든 신경 쓰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카메라가 많이 왔다는 게 한편으론 좋은 일이긴 한데, 한편으론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아픕니다.

 

퀴어문화축제 때는 훈도시를 입고 와서 화제가 됐었어요. 이번에는 한복으로 크로스드레싱 퍼포머스를 벌이셨는데, 의복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저는 사실 쇼핑을 싫어하는데요. 옷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웃음) 그런데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사람들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굉장히 심하고 대표적인 게 옷이라고 생각해요. 첫인상에서 가장 많이 비중을 두는 게 무엇일까 봤을 때 얼굴도 얼굴이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입고 있는지도 눈이 많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옷에 변화를 많이 주면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의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

 

훈도시는 퀴어문화축제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입었던 거잖아요.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크로스드레싱을 하니 어떻던가요?

 

퀴어문화축제 때는 저를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 성소수자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종로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긴 하지만, 평일 낮 시간대라 불특정 다수인 사람들이 대부분인 거리에서 크로스드레싱을 하고 행진을 하게 됐는데요. 처음에는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람들이 모이면서 즐겁게 행진 했던 것 같아요.

 

오늘 이후의 계획이 있나요?

 

구체적인 기획은 없는데요. 이 행사를 매년 한 번씩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를 연례행사로 만드는 거죠. 야간개장 시즌 때마다 이런 차별적인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 행사를 꾸준하게 키워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경복궁에서 무료입장이 가능하게 되면요?

 

그러면 축하의 행진을 하겠죠. 기쁨의 행진.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는 인사동 길을 시작으로 종로를 한바퀴 돌며 보신각을 거쳐 되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됐다.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 일정 퍼레이드 코스

 

평일 낮 시간이었지만,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길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한복 크로스드레싱을 한 채 행진을 하자 행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대개는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였고, 간혹 환호를 보내주는 분들도 계셨다. 다행히도 행진 참가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퍼레이드 사진

 

보신각 앞에서 경복궁 앞에서

 

1차 행진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경복궁으로 향했다. 한복 크로스드레싱을 한 후 입장표를 사려고 하자, 매표소 직원은 직접적으로 '반대 성별의 옷을 입었을 경우에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2차 행진이 진행됐고, 유쾌하고 당당했던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는 마무리 됐다.

 

우주씨의 바람대로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가 기쁨의 행진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